# 251
251. 예측불허.
251.
크라수스와 세네투스를 비롯한 파트리키의 집중 견제에도 불구하고 트리뷴 부활 건은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
이는 테세우스가 저들이 두려워하는 문제를 자극함과 동시에 저들이 꺼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암묵적으로 이뤄진 협박이자 거래로 테세우스나 세네투스 쌍방 간에 어떤 교류가 오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슨 내용이라도 있어야 협박이든 거래든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정말 어떤 교류도 없었다면 트리뷴 부활 건이 수락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쌍방 간의 요구조건을 전달할 전달자라도 있어야 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그가 바로 내용의 전달자였다. 그를 전달자로 택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테세우스였고 말이다.
키케로는 테세우스가 세 번째로 연설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부르불리우스를 비롯한 로마 귀족들에게 전했다.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을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고문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마리우스파는 술라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어떤 재판도 없이 무수히 처형당했고 그들의 사유재산 역시 강탈당했다.
사실 마리우스 역시 로마를 점령했을 당시 잔혹하게 술라파를 처형했고 술라의 통치가 두려워 별말 없이 넘어간 일이지만 원칙대로 하자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살아남은 마리우스파라고 해봐야 그 수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로마에 대한 영향력도 미미할 것이 분명한데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부르불리우스는 키케로가 너무 과한 우려를 한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술라는 훗날 저들이 보복할 것까지 우려했는지 아주 처절하게 저들을 말살시켰으니 말입니다.”
“그럼 트리뷴 테세우스의 말은 무시하면 되겠군요.”
“저 역시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음?”
“평민들에 대한 테세우스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은 콘술께서도 익히 아시는 바, 마리우스파에 대한 연설은 이번에도 호응을 이끌어낼 것이고 이는 또한 술라가 세운 법안 전체가 부당하다는 것을 확증하게 됩니다. 무려 세 번에 걸쳐서 부당함을 증명했고 심지어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트리뷴 부활을 승인하고 안 하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마리우스파가 테세우스의 연설에 힘입어 로마로 입성하게 될 것이고 저들은 로마 법에 의거해 잃어버렸던 권리와 재산 일체를 찾으려고 들 겁니다.”
“그래봐야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수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그 소수는 다수의 평민들을 집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뛰어난 자들입니다. 게다가 마리우스파는 본래부터 플레브스파였습니다.”
“음?”
“마리우스파가 처참하게 말살당했다지만 야심있는 자들은 이미 로마로 돌아와 몸을 일으킬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콘술께서도 도움을 주신 카르보 가문과 아헤노바르부스 가문, 그리고 그 가문들과 함께하는 가문들 역시 마리우스파였다는 걸 간과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테세우스의 아버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역시 마리우스의 사람이었습니다.”
부르불리우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키케로를 바라보자 키케로 역시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테세우스는 트리뷴 부활 건이 승낙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 정권을 단번에 뒤엎을 명분을 얻기 위해, 조급함과 불안함에 현 정권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를 암살한다면? 음? 그건 너무 위험하겠군.”
인상을 찌푸르는 부르불리우스를 바라보며 키케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리되면 어찌되든 공화정은 끝입니다. 가장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전개는 폼페이우스가 반란을 제압한답시고 자신의 군대를 로마로 들이는 일이 되겠지요.”
“으흠.”
“그러한 전개는 크라수스나 세네투스 역시 원치 않을 겁니다.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로마가 다시 난장판이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트리뷴 권한을 인가하지 않으면 이 로마에 거대한 혼란의 불씨를 던지겠다? 자신을 트리뷴으로 추천한 일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여길 수 없을 거라던 테세우스의 말이 계속해서 떠오르는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위험한 사내였고 어떻게든 그의 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트리뷴으로 추천한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테세우스 그자가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 문제라고 해야겠지요.”
“으흠. 연설을 행하기 전에 키케로 당신에게 말을 전한 것은 테세우스 그 역시 혼란이 일어나길 원치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글쎄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 정국에서 견제해야 할 사람은 테세우스가 아니라 폼페이우스입니다. 트리움푸스까지 행했건만 폼페이우스는 여전히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리뷴의 권한이 회복되면 폼페이우스의 문제부터 처리하겠다고 하더군요.”
“테세우스, 그자가 말이오? 확실히 현재 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광장에서 연설하고 안건을 상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압박이 되겠지요. 폼페이우스 역시 트리뷴인 테세우스를 암살하거나 폭력으로 압제할 생각은 품지 못할 테니······.”
“아울러 술라의 법안은 언제고 철회되어야 할 법안인 것은 맞지만 적어도 그 일이 테세우스의 개인의 성과를 빛내기 위한 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세네투스가 그러하듯 어떻게든 트리뷴 부활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트리뷴의 권한이 그러니까 폐지된 호리텐시우스 법을 복원하면 트리뷴은 정무관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세네투스에도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요. 그러니 오히려 그편이 낫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적을 막다른 골목에 밀어넣으면 도리어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우스파나 현 시국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기회조차 열어주지 않는다면 저들은 테세우스를 필두로 똘똘 뭉치게 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 아니 높은 확률로 로마에서 벌어졌던 술라와 마리우스의 내전이 다시금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일단 저들의 마음을 달랠 미끼를 던져야 한다?”
“세네투스가 로마를 제대로 다스렸다면 이런 논의를 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얼마 전 외친 테세우스의 연설에는 저 역시 십분 공감했습니다. 그러니 저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저들의 눈에는 테세우스가 트리뷴의 권한을 쟁취한 것처럼 비춰질 것이니 어느 정도 분노가 해갈될 것이고 테세우스가 트리뷴을 감당하는 한 반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테세우스의 인기를 역이용한다? 우리가 테세우스에게 역이용당하는 것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군.”
“그럼 남은 건 독재 내지 혼란뿐입니다. 이어질 테세우스의 연설은 로마를 불태우게 할 장작이 되기에 충분할 테니 말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테세우스로 하여금 폼페이우스든 크라수스를 상대하게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조석간에도 변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그가 야망을 품었다면 혼란한 정국을 유도한 다음에 트리뷴의 권한을 외쳐도 되었을 겁니다.”
“으흠.”
키케로의 말에 동의한 부르불리우스는 발빠르게 은밀히 사람들을 설득했고 말했다시피 결국 트리뷴 권한 부활 건은 통과되었다.
트리뷴의 권한인 사법권, 입법권, 거부권을 회복한 테세우스가 가장 먼저 외친 안건은 약속대로 로마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폼페이우스의 군대에 관한 것이었다.
“트리움푸스를 행했다고는 하나 폼페이우스는 적법한 군권, 곧 임페리움이 없는 사람인데 어째서 아직도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겁니까? 이는 로마법에 어긋난 행동이니 당장 해산하거나 북쪽의 갈리아 지방을 경계하도록 재배치해야 할 겁니다.”
폼페이우스가 이 자리에 있다면 뭐라고 해명했겠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공식회의에 참석할 만한 직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폼페이우스파 라고 할 수 있는 세네토르 아티커스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건 아직 토지배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기다리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토지배분을 기다리는 게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을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아니면 토지배분을 하지 않을 경우 로마를 전복시키려고 작정이라도 한 겁니까? 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트리움푸스까지 행한 레가투스를 반란군의 수괴라고 불러야 하는 겁니까?”
“트리뷴 테세우스! 말조심하시오!”
크라수스파인 루푸스와 아퀴우스는 상황을 살필 뿐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트리뷴 권한을 회복한 것은 정말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그게 꼭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저들이 입을 열지 않으니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 역시 입을 열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세네토르 아티커스. 묻겠습니다. 오늘 나의 안건이 로마법에 의거해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여러 세네토르들께서도 말씀해주십시오. 제 안건이 로마법에 의거해 잘못된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철회하고 사과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말을 뱉지 않았다. 로마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폼페이우스의 단련된 군대는 심지어 폼페이우스파에 속한 세네토르들조차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아티커스가 더 말을 꺼내지 못하자 테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세네토르 아티커스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토지배분 건이 제대로 토의되지 않은 상황이고 저들로서는 딱히 갈 곳을 정할 수도 상황이니 폼페이우스는 저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해 군대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쳐다보는 아티커스를 일별한 테세우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 의견을 한 가지 더 낼까 합니다. 크라수스의 기부로 인해 현재 대공사를 시작한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 그 일을 염려하시는 시민들도 계시더군요. 남쪽의 가도는 그렇다쳐도 북쪽에 정비된 가도를 따라 갈리아족들이 남하할까 두려워하는 시민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화정이 수립될 당시 갈리아족에 의해 로마를 정복당한 적이 있던 로마인으로서는 갈리아인은 언제고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로마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 이유가 토지배분 문제가 아직 논의되지 않은 이유때문이라면 그 책임은 이곳 의회에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앞서 언급한대로 갈리아지방 경계로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이동시켜 주둔케 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세네토르들이 자신의 말에 웅성거리자 테세우스가 쐐기를 박듯이 다시 외쳤다.
“물론 이 또한 적법한 대안은 아니겠지만 로마 시민들치고 갈리아인의 남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임시방편으로나마 그렇게 처리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요. 물론 그 기한은 토지배분 논의와 포상이 이뤄질 때까지라고 정하면 되겠군요.”
테세우스는 세네토르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아울러 군대의 보급 비용은 크라수스의 기부 비용으로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폼페이우스, 그가 별도로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없을 것이니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이는군요. 북방의 아피우스 가도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가 책임을 지고 있으니 임시나마 보급 책임자로 임명하면 적절할 듯합니다. 어차피 배급문제를 책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세네토르들께서는 이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폼페이우스가 이것을 거부한다면 반역의 뜻이 있다고 밀어붙일 자가 눈앞의 테세우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폼페이우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설득해야 할 판이었다. 아티커스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거론한다면 세네투스에서 자신의 영향력만 약화될 뿐이니 말이다.
결국 폼페이우스는 테세우스가 언급한 대로 북방의 갈리아족 근방으로 군대를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로마에서 버틸 미약한 명분마저 테세우스가 모조리 앗아갔기 때문이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로마로 진격해서는 아니 될 일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폼페이우스의 일을 시작으로 플레브스 민회를 열고 재판을 통해 평민들의 억울함을 해소시켜줬다. 그동안 평민들을 중재하기는 했으나 사법권이 없었던지라 파트리키나 에퀴테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내릴 수 없었기에 권한 부활로 인해 사법권을 얻은 테세우스는 재판을 통해 평민들의 억울함을 해소했고 그 일을 통해 테세우스의 명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평민들이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로마 밑바닥에 들끓던 불길이 다소 진정되었으니 로마의 권력층으로서도 테세우스의 통치가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았다. 특히 해결하기 어렵던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적절하게 처리하고 갈리아족의 침공까지 방비한 점은 매우 뛰어난 수완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