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47화 (247/298)

# 247

247. 수호자?

247.

아퀴우스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며 외쳤다.

“그.. 그게! 그게 무슨! 지금 트리뷴의 권한 부활 문제가 왜 거론되는 것인가? 지금 거론되고 있는 사안은 트리움푸스 건이오! 그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테세우스는 조소하는 표정으로 아퀴우스의 말을 끊었다.

“트리움푸스 문제라면 이미 콘술 옥타비우스께 더 할말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역시 거론한 바지만 다시 짚고 가지요. 비단 트리움푸스 문제뿐만 아니라 세네투스에서 거론되는 모든 안건에 관해 저의 의견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여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할말이 없다고.”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끊으며 의원들을 서늘한 눈빛으로 둘러봤다.

“이 자리에 트리뷴의 권한이 제한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분도 계십니까? 거부권은 둘째치고 발언권조차 없으니 저를 지목하여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렇듯 발언할 일도 없었겠지요. 그걸 생각하면 저는 이 자리에 왜 참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테세우스의 찬반은 안건을 통과시키거나 반려하는 일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없고 그런 의견을 내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원로원이 테세우스를 경계함은 그가 포룸에서 시민에게 연설을 행하거나 선동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미미한 자라면 협박과 회유로 어떻게 처리하면 될 일이지만 테세우스는 그럴 수도 없고 그런 것이 통할 인사도 아니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다고 죽지는 않지만 매우 성가시다. 내버려 두면 죽을 수도 있다. 현재 원로원에게 테세우스는 그런 존재였다. 심지어 단순히 성가신 가시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날카롭고 커다란 가시였다.

테세우스는 루푸스와 아퀴우스를 슬쩍 바라본 뒤 재차 말했다.

“한데 세네토르 루푸스와 세네토르 아퀴우스께서는 제 의견과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시는군요. 그러니 저로서는 두 분 세네토르께서 트리뷴의 권한을 부활시켜 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려마십시오. 두분께서 트리뷴의 권한을 부활시켜주신다면 이번 안건이 통과되기로 가결되더라도 거부권을 사용하여 반드시 부결시키겠습니다. 두분께서 제게 법을 수호할 수 있게끔 힘을 보태주신다면 어찌 법에서 어긋난 일들이 통과되게끔 내버려 두겠습니까?”

트리뷴은 국가의 모든 조치, 집정관, 감찰관을 비롯한 정무관이 취한 모든 조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단 언급한 바 있지만 이 거부권이라는 것은 법안 통과 전에나 유효한 것으로 통과한 후에는 의미가 없기에 거부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회의 장소에 참석하고 있어야 했다.

어쨌든 이러한 트리뷴의 거부권이 통용되지 않는 대상은 오직 독재관뿐이었다. 술라가 트리뷴의 권한을 말소하는 법안을 내세웠음에도 트리뷴이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혼란한 상황과 더불어 그의 잔혹한 피의 정치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적으로도 그가 독재관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BC 81년 독재관에 오른 시점에 호민관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혼란한 정국으로 투표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있었는데 살해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록 자체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투표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술라가 얼마나 영활하고 치밀했는지는 이러한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외쳤다.

“다만 두분도 알다시피 제가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트리움푸스 건이 종결되기 전에 행사해야 합니다.”

“이이익!”

루푸스는 분노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실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고 말았다.

원로원 회의에서는 당연히 트리움푸스를 막을 길이 없으니 시민들을 선동하여 반대여론을 강하게 형성할 줄 알았다. 그런다고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 건이 부결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하겠지만 폼페이우스의 명성에 타격을 입히고 둘의 협력관계를 원천적으로 차단, 적대관계에 돌입하게 만들 것이라 보았다.

하나 테세우스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트리움푸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대로 트리움푸스 건이 가결되면 이 일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폼페이우스가 될 것이다. 물론 뒷거래를 통해 히스파니아 지역에 대한 권한을 세네토르들이 나눠가지겠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된다면 크라수스는 이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테세우스를 끌어들이고자 입을 열었는데 졸지에 트리뷴 권한 부활을 장려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트리뷴을 부활시켜선 안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그렇다고 부활시키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법을 대놓고 어기는 사람으로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니 루푸스는 섣불리 어떤 말도 뱉을 수 없었다. 권한 부활 문제는 둘째 치고 그의 언변에 놀아난 꼴이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콘술 포스테리오르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가 눈매를 좁히며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트리뷴의 부활? 그건 안 될 말이다. 감찰관 부활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여기서 트리뷴까지 부활한다고? 그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귀족들이 원치 않는 결과였다.

“본래 안건으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는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트리뷴의 권한 부활? 더 말해 무엇하랴?

듣고 보니 네 말이 옳다. 부활시키자! 이런 식으로 일이 해결되면 세상 일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옳은 것을 들어도 옳게 행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알아도 돌이키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에 원로원이 부활시키겠다고 나섰다면 오히려 골을 싸매고 고심에 잠겨야만 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에 대해 말이다.

자신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트리움푸스를 반대할 것이라 여기던 폼페이우스로서는 빚을 졌다고 여길 것이다. 이제 그것을 이용할 때다.

테세우스는 미리 작성해둔 서신을 나디르에게 건넸다.

“폼페이우스에게 전하도록.”

“폼페이우스 말입니까? 음. 무슨 내용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트리뷴 권한 부활 건에 대한 내용이다.”

“음?”

나디르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짧게 반문한 뒤 되물었다.

“설마 그건 트리뷴 부활에 대해 폼페이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신다는 이야기입니까?”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트리움푸스가 가결된 상황에서 그가 테세우스 님에게 도움을 줄 이유가 있겠습니까?”

“물론.”

“어째서 말입니까?”

“크라수스는 나와 폼페이우스가 대립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를 원했고 그리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지.”

“으흠.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의 명성에 상처를 입히고 테세우스 님과 대립관계를 구축하려 들었군요. 그런데 그게 무산되었으니······. 하나 그것과 트리뷴 부활 건이 무슨 연관성이 있길래?”

“이어질 크라수스의 행동과 깊은 연관이 있지.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가 이 이상 더 큰 영향력을 가지길 원치 않아. 트리움푸스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수월하게 가결된 상황에서 그를 방해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폼페이우스 병사들에게 주어질 토지배분을 지연시키는 일이야. 사실 그 일은 세네토르들의 이익과도 연관되어 있으니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 문제지. 세네토르들은 폼페이우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야.”

폼페이우스는 평민 가문 출신이다. 플레브스들이 폼페이우스를 좋아하고 그의 트리움푸스에 반감을 가지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출신이 평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오만한 평민출신 장군을 좋아할 원로원 계급은 결코 많지 않았다.

“아······. 토지배분 문제에 도움을 주고 트리뷴 부활 건에 대해 지지를 요청하실 생각이십니까? 묘책이군요. 하지만······. 트리뷴의 권한이 회복되어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제가 아는 것을 폼페이우스 그자도 모를 리가 없고 말입니다.”

테세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나디르를 바라봤다.

“켄소르는 모스 마이오룸 원칙에 의거해 최고위 세네토르인 프린켑스 세네토르를 선정할 권한이 있지. 현 세네투스에는 프린켑스 세네토르가 없는 상황이고.”

모스 마이오룸(조상들의 관습)은 비르투스(덕), 피에타스(경건), 피데스(신의), 그라비타스(위엄), 콘스탄티아(지조), 디그니타스(존엄), 아욱토리타스(권위) 등을 기반으로 하는 로마 전통의 원칙을 뜻한다.

당연히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선출되는 최고위 의원인 프린켑스 세네토르는 파트리키 출신이자 디그니타스와 아욱토리타스를 갖추고 청렴결백하며 도덕적인 인물이어야 했다.

“프린켑스 세네토르? 현 로마에 그러한 위치에 오를 만한 세네토르가 대체 존재하긴 합니.. 아!”

나디르는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다가 테세우스의 계책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술라가 프린켑스 세네토르의 권한을 많이 축소하긴 했으나 여전히 명망이 높은 직위이지.”

“켄소르는 프린켑스 세네토르의 직무를 평가하고 저들을 해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안 그래도 감찰권을 가지고 있는 켄소르이니 세네토르는 켄소르의 눈치를 보지 않을려야 않을 수 없었다. 청렴한 자? 죽었다 살아난 자를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자신에게 협조하는 자에게 프린켑스 세네토르의 직위를 부여한다는 것 정도는 언급하지 않아도 눈치챌 작자들이 아닌가?

현 감찰관이 누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가?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와 깊은 연관이 있고 그 카이사르는 다시 테세우스와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아······.”

나디르는 한숨을 내쉬며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대체 어디까지 바라본 것이란 말인가? 고개를 설레설레 휘젓던 나디르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트리뷴의 권한을 되찾으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일들. 더 자세한 건 그때 가보면 알게 되겠지.”

“으흠.”

테세우스는 이미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더 큰 파란이 예상되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는 침탈하고 노략하는 도적이다. 무엇을 또 빼앗을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저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인 채 그가 행하는 일들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하리라. 그런 생각에 나디르는 그저 침음을 흘릴 뿐이었다.

*

꾸우욱

피이이잉!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허공을 떨었다.

쐐에에엑! 파박!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이내 곧 육중한 나무기둥에 박혔다.

활을 거둔 카이사르는 개선가와 함께 사두마차를 타고 로마 시내로 진입하던 폼페이우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월계수를 쓰고 흩날리는 아름다운 꽃잎과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손을 흔드는 폼페이우스의 모습은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광의 순간임이 틀림없었다.

카이사르는 들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질투라 불러도 좋고 야망이라 불러도 좋다. 무엇이라 부르던 간에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기는 매한가지니까.

굳이 로마로 돌아가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를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남동쪽 해안 도시 브룬디시움까지 연결된 카피아 가도 공사는 그야말로 대공사였고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자신은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 했으니까. 비단 가피아 가도 뿐이랴? 북쪽의 아피우스 가도 역시 신경 써야 할 문제였다.

그럼에도 카이사르는 일부러 폼페이우스의 개선식에 참석했다. 테세우스와 함께 폼페이우스를 만나 축하인사를 하고 그와 친분관계를 형성했다.

“시위를 당길 때가 있으면 쏠 때가 있고 씨를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는 법이다. 조급하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한 걸음에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근히 걷다보면 가장 높은 유피테르 신전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두 걸음 옮길 시간에 한 걸음 옮기거나 남들이 뛰고 있을 때 기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활과 화살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에 넘긴 카이사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연회 준비는?”

“말씀하신 대로 준비시켰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카이사르는 속으로 되뇌었다.

‘지방 유지들을 쥐어짜서라도 공사 속도를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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