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
246. 수호자?
246. 수호자?
야스미라가 나가고 잠시 뒤 나디르가 테세우스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아침부터 손님이 많군요.”
“또 누가 찾아왔나?”
“사실상 찾아온 셈이지요.”
나디르는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서신을 테세우스에게 건넸다.
테세우스는 봉인된 인장을 뜯고 서신을 펼쳤다. 나디르의 의미심장한 말에서 서신이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했을뿐더러 인장의 표식으로 인해 서신을 펼치기 전에 이미 누가 보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내용이 무엇일지도 말이다.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빠르게 훑어본 테세우스가 탁자 위 서신을 내려놓자 나디르가 질문을 던졌다.
“폼페이우스, 그가 뭐라고 합니까?”
테세우스는 대답하지 않고 나디르에게 서신을 건넸다. 나디르는 그것을 받아 읽어본 뒤 테세우스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폼페이우스는 테세우스에게 트리움푸스를 막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어찌하실 겁니까?”
“네 생각은 어떠한데?”
“음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평판을 고려하면 역시나 트리움푸스를 막을 생각이십니까?”
“역시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군. 심지어 나디르 너조차 말이야.”
나디르는 의문 섞인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막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트리움푸스를 행하든 행하지 않든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점이 있나? 그러니까 플레브스에게 무슨 불이익이 닥치나 이 말이야.”
“음.”
“트리움푸스가 불편한 건 파트리키, 그 중에서도 권력의 최상층에 가까운 이들이나 그런 것이지 플레브스는 오히려 환영한다. 로마의 공식적인 축제 이후에는 어김없이 시민들에게 음식을 비롯한 온갖 향락을 제공했으니 말이야.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바티오라도, 오바티오보다는 더 거창한 트리움푸스를 행하는 것이 평민들에게 이득 아니겠나? 그러니 트리움푸스를 막아선다면 오히려 평판이 깍일거야. 그런데 내가 왜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를 반대하지?”
“하지만 지금까지 그리하실 것처럼 행동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저들이 오판하니까. 그래야 응당 그렇게 해야 할 행동 속에서도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폼페이우스가 이 서신을 보내지 않았나? 크라수스는 거하게 땅바닥에 삽질이나 한 셈이고.”
나디르는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침음을 뱉었다.
“으음.”
“법과 정의의 수호자나 대변자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현 로마에서 나의 신분은 법관이 아니라 플레브스의 대변자이자 수호자인 트리뷴이야. 그리고 그 플레브스는 폼페이우스에 대해 열광하고 있지. 왜? 개선장군은 언제나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로마 시민에게 재물과 음식 많은 향락을 제공하니까. 그것에 길들여진 대중이니까. 저들은 폼페이우스를 환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플레브스의 대변자인 내가 그것을 막아서란 말인가? 법의 수호자를 자처해야 할 법관들조차 법을 제멋대로 뒤트는 마당에 평민들의 원성을 자처하면서까지 법을, 그러니까 고위 귀족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안 될 말이지.”
테세우스가 남은 포도주를 입에 털어놓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디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들이 테세우스 님께서 트리움푸스를 거부할 것이라 판단한 것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트리움푸스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법에 의거해 트리뷴 권한부활을 요구하는 테세우스 님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될 테니까요. 그랬기에 지금껏 트리움푸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것이 아닙니까?”
“야스미라 왕녀가 내가 말하더군. 당금 로마에 법과 정의가 어디 있냐고. 타국의 백성을 데려다가 자국의 안녕을 위해 압제와 핍박을 가하는 나라에 무슨 정의와 법이 있냐고. 묻더군.”
그 말에 나디르가 말했다.
“궤변이군요.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답니까?”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하나 모두가 그렇다고 법과 정의가 바로 서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음. 로마에 법과 정의가 살아있든 아니든 그것이 트리뷴께서 로마의 법을 무시하는 행동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을 저들이라고 모르겠습니까?”
테세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나디르를 바라봤다.
“맞아.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내 말을 오해했군.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 그것에 찬성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반대하지 않으면 찬성하는 것 아닌가? 이건 또 무슨 궤변이란 말인가? 나디르가 눈매를 좁히고 테세우스를 바라보자 테세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법의 수호자도 정의의 수호자도 아니야. 물론 세인들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라긴 했다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법과 정의를 내세운 것은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마련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저들이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말이야. 마찬가지로 세인들이 착각하길 바랬던 것은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통한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었고.”
“인지부조화? 그건 대체? 아니 그걸 떠나서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군요.”
“법이 있으나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법도를 내세우며 이야기를 한들 그게 먹혀들 리가 있나? 그렇다고 법을 내세우는 자가 법같지 않은 법이라도 그것을 무시한다면 그 주장에 무슨 힘이 실리겠고. 정당한 주장을 해도 무시하는 자들이니 허공에 스러지는 메아리보다도 못한 지껄임에 불과하겠지. 이게 로마의 정국이다. 야스미라는 그것을 짚으며 법과 정의를 세우고자 한다면 일단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라고 하더군. 권좌에 말이야.”
“음. 현명한 여인입니다. 제 마음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군요.”
테세우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얼마나 갈까? 1년? 10년? 그렇게라도 지속된다면 다행이겠군. 나라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모든 것이 완벽해져도 그것을 지키고 살아낼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제도와 나라를 만드는 것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덧없는 피와 비극만 더할 뿐이다. 로마가 완전히 부패하여 회생가능성이 전무하다면 그렇게라도 쇄신하는 것이 낫겠지만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이르진 않았다.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답시고 기존의 모든 질서를 부숴버린다면 현 상황에서는 더 큰 혼란만 야기시킬 뿐이야.”
“설혹 그렇다고 할지라도!!”
테세우스는 손을 들어 나디르의 말을 막았다.
“그 이야기는 그쯤하지.”
나디르는 아쉬운 감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트리움푸스 문제는 어찌 대처하신다는 겁니까?”
“간단히 말해서 크라수스의 계략을 분쇄하고 폼페이우스에게는 빚을 지우고 세네투스에게는 저들이 내게 던진 쓰레기를 안겨줄 생각이야.”
“예?”
짧게 반문하던 나디르는 이내 곧 표정을 지우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후우. 테세우스 님께 대안이 있다면 제가 나설 문제는 아니겠지요. 그보다······.”
그렇게 말을 꺼내던 나디르는 테세우스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말 꺼내기 좀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혹시 문제 있으신 건 아닙니까?”
“음?”
테세우스가 무슨 소리를 꺼내는가 싶어서 그를 쳐다보자 나디르가 다시 말했다.
“다년간 테세우스 님과 함께 했지만 여인과 잠자리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들은 적도 없어서 말입니다. 전에 호라티우스는 이런 말까지 하더군요. 테세우스 님이 가진 괴력의 원천은 아마도 동정에 있는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오늘 대화를 본의치 않게 엿듣다 보니 좀 심각하게 생각되는군요. 무슨 여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것도 한눈에 봐도 테세우스 님께 호감이 있어 보이는 여인과 대화를 하면서 정세 이야기만 주야장창 하십니까?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히 안타까운 것이······.”
“뭐?”
“전에는 전투에 치여서 그렇다 쳐도 로마의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아도 예전만큼 급박한 것도 아닌데 여유가 있을 때는 수련에 공부에 그것도 아니면 못다한 정무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낼 뿐이니 이건 대단한 건지 안타까운 건지 분간하기 어렵군요. 그나마 포도주라도 즐기지 않았다면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벌써 전부터 심각하게 고려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대화를 엿들어보니 심각하게 고려를 해 봐야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염려되는군요.”
테세우스는 황당한 심정에 헛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아니 무슨 자신을 보러 왔다는 여인을 두고 추궁만 하고 계십니까? 권좌에 오를 것을, 그러니까 왕의 자리를 제안했다고 했습니까? 어떤 여인이 그런 위험천만한 이야기를 마음에도 없는 사내에게 제안하겠습니까? 정치적인 계산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입니다.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모른 척하려는 겁니까? 신체에 이상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일단 그걸 좀 묻고 싶군요.”
테세우스는 헛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나디르에게 말했다.
“지금 연애 상담이라도 하려는 건가?”
“뭐 능력적인 부분에서야 테세우스 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하루를 살아도 제가 더 많이 살지 않았습니까? 여자 경험도 마찬가지고.”
테세우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신을 바라보자 나디르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야스미라 왕녀는 영민한 여인입니다. 전쟁터에서 여인의 역할은 미미하기 그지없지만 정치판에서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이곳 로마만 해도 비공식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은 테세우스 님도 잘 아실 겁니다. 물론 여러가지 다른 이유들로 테세우스 님을 찾았겠지만 거짓된 감정으로 테세우스 님을 대하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녀에게 굳이 벽을 치실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잠시 농을 치긴 했지만 모르고 계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도 아니면 따로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이라도 있거나 정략적인 이유로 옆을 비워두고 계신 겁니까?”
테세우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니고.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그럴만한 상황이라······. 글쎄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나디르는 테세우스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거릴 뿐, 그 부분에 대해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
“트리움푸스 허가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혹 투표를 연기하거나 이 안건을 상정함에 있어 반대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콘술 포스테리오르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가 낮은 연단 위에 서서 의원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나서는 이가 없었고 이에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의 시선은 테세우스에게 고정되었다.
“트리뷴 테세우스.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 허가 건에 대해 말할 것이 없습니까?”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는 친 크라수스 파에 속한 자다. 따라서 그가 발언권도 없는 자신에게 이 문제를 질문하는 저의를 모를 테세우스가 아니었다.
저들의 예상과 다르게 자신이 어떤 반응, 즉 포룸에서 선동이나 반대 연설도 행하지 않자 이 부분을 단도직입적으로 원로원 회의 공식석상에서 거론함으로 자신으로 하여금 폼페이우스의 트리움푸스를 막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폼페이우스와 깊은 골이 패이게 하려는 술책의 일환임을 말이다.
“없습니다. 또한 제 발언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것 참 이상하군. 트리뷴은 지금껏 법에 호소하지 않았던가? 트리움푸스 문제에 대해 당연히 반대할 것이라 여겼는데 말이야. 자신의 안위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나서지 않는 건가? 뭐 영리한 처사라고 해야겠군. 그간의 행동을 생각하면 매우 이질적이지만 말이야.”
세네토르 루푸스의 말이 끝나자 의원들 사이에서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한껏 비꼬는 루푸스의 발언에 테세우스는 눈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하나 그 모습 어디에서도 불쾌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덤덤한 테세우스의 눈빛을 마주한 루푸스는 다시 그를 도발했다.
“혼자 로마의 법을 수호할 것처럼 외치던 사람은 어디 가셨는가? 거대한 풍랑이 치니 말하는 법도 잊어버린 모양이로군.”
거대한 풍랑은 바로 폼페이우스를 이르는 말이었다. 다시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당연히 그 비웃음소리는 조금 전보다도 컸다. 잠잠히 루푸스의 도발을 듣던 테세우스가 대뜸 말했다.
“지금 세네토르의 말씀을 본인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언제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했나?”
루푸스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으나 테세우스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면 이 자리에 로마에 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말씀하는 분이 계시기라도 합니까?”
무슨 의도인지 몰라 의원들이 대답하지 않고 서로 웅성거릴 때 테세우스가 다시 말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선거 때 외치던 그것을 평소에도 외쳤을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저 혼자 유난 떤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그걸 어찌 받아들여야 합니까? 본인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뭣이?”
말문이 막힌 루푸스가 화를 내려고 하자 세네토르 아퀴우스가 나섰다.
“지금 그 말은 트리움푸스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는 건가?”
아티커스는 아퀴우스의 말에 미간을 일그러 뜨렸지만 침묵을 지켰다. 이는 폼페이우스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테세우스를 쳐내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에 의거해 말하자면 이번 트리움푸스가 부당하다는 것을 모르는 분도 계십니까?”
아퀴우스는 걸려들었다는 눈빛으로 강하게 외쳤다.
“그 말은 트리움푸스 안건 상정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봐야겠군!”
“물론입니다. 제게 반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반대를 외치겠습니다. 한데 제게 그런 권한 자체가 없군요. 그러니 세네토르 아퀴우스의 말씀을 트리뷴의 권한을 부활시켜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