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44화 (244/298)

# 244

244. 분투.

244.

* 242.편의 오베이션 --> 오바티오(라틴어)로 변경합니다. 혼동 없으시길 바랍니다. *

폼페이우스는 잠잠한 눈빛으로 아티커스를 바라봤다. 당연히 폼페이우스가 분노할 것이라 여겼거늘 분노한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아티커스는 의아함과 미지(未知)에서 오는 두려운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오바티오라······. 세네투스가 이 ‘폼페이우스’라는 사람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는 없고. 돌려 말할 것 없이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자신이 ‘오바티오’ 정도로 만족할 사내가 아니란 것을 모를 원로원이 아니었다. 현 로마를 위협하는 거의 모든 반란군을 토벌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트리움푸스 하나 허락해주지 못하겠다는 소리인가? 내심 못마땅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폼페이우스는 마음을 다스리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폼페이우스의 담담한 발언에 아티커스는 긴장한 눈으로 그에게 말했다.

“오해하실까 싶어서 언급하지만 이 일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제가 세네토르 님을 한두 해 보는 것도 아니고 세네투스의 중지가 그렇게 모아졌다면 세네토르께서도 별수 없었겠지요. 하여튼 세네투스가 트리움푸스를 허가하는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폼페이우스의 발언에 담긴 차가움을 느낀 아티커스는 뭐라 더 변명하려 했지만 폼페이우스의 담담한 눈빛을 마주하고 그만두었다.

“히스파니아 땅을 세네투스 관할 아래 두는 것에 협조해주신다면 사두마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거닐게 되실 겁니다.”

네 필의 흰 말이 이끄는 마차는 바로 트리움푸스를 뜻했다.

“히스파니아?”

폼페이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반문한 뒤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목숨을 걸고 내 명을 따라 싸운 이들이요. 저들에게 전리품 하나 쥐어주지 못한다면 사두마차가 아니라 팔두마차라고 해도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소.”

“오해하지 마십시오. 점령지에 대한 모든 권한을 세네투스에게 인계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스파니아 지역만 거론하는 것입니다.”

“로마 본국이라 해도 말이오?”

자신이 점령한 지역은 크게 세 곳이다. 히스파니아, 에트루리아, 달마티아. 이 중 에트루리아는 로마 본국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폼페이우스의 날선 반응에 아티커스는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게 아니란 건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보고 히스파니아 대한 권한을 포기하라? 아시다시피 달마티아 지역은 코스코니우스 장군에게 더 큰 지분이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합의된 사안을 바꿀 마음도 없고 그렇게 했다가는 나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지게 될 겁니다. 세네투스의 요청을 따르다가는 병사들에게든 코스코니우스 장군에게든 신의를 지킬 수 없는 자로 남겠군요.”

시종일관 담담하게 말하던 폼페이우스는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아티커스에게 말했다.

“세네토르 아티커스. 지금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겁니까? 로마의 모든 적을 무찌른 나 폼페이우스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고정하시지요. 당연히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네토르께서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세네투스는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고 세네토르께서는 현재 세네투스를 대표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그러니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티커스는 깊게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세네투스가 ‘폼페이우스’라는 사내를 파악하지 못할 곳이 아니라고. 또한 레가투스께서 보시기엔 저는 어떠합니까? 당신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입니까?”

폼페이우스가 다시 눈매를 좁히며 자신을 바라보자 아티커스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 시칠리아, 아프리카 등 속주 어디든 택하십시오. 물론 히스파니아만큼 양질의 토지는 아니겠지만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설마 주인이 있는 땅을 나보고 빼앗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지요?”

“어찌 그렇게 하겠습니까? 히스파니아 땅을 얻는 대가로 주인들이 알아서 내어놓을 겁니다.”

그 주인들이 세네토르일 것임을 폼페이우스도 모르지 않았다.

폼페이우스는 고심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고심하는 척을 했다.

‘히스파니아. 확실히 그곳은 풍요로운 곳이다. 하나 그곳에 거주하는 자들이 얼마나 사나운지는 모르는 모양이로군. 게다가 히스파니아 지역은 테세우스의 입김이 여전히 강한 지역이다. 테세우스에 대한 몇몇 켈타이족의 충성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야. 마지막으로 히스파니아는 로마에서 너무 멀다.’

자신의 후원을 받는 병사들이 로마와 가까이 있을수록 이롭다. 유사시 병사들의 도움을 받고자 해도 주 거주지가 히스파니아라면 실질적인 힘이 되기 어렵다.

‘척박하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전략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그러니 내게 히스파니아는 별로 중요한 땅이 아니야.’

땅을 받을 병사들에겐 중요한 문제겠지만 사막과 같은 불모지도 아니고 세네토르들이 보유하고 있던 땅이니 불만을 가질 병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히스파니아 땅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비추어질 필요성은 있었다. 그래야 하나를 더 얻어내도 얻어낼 테니까. 아티커스 의원과 친하다지만 이는 얄팍한 이득관계로 얽매인 것에 불과하다.

하나 세네투스가 탐욕스러운 무리긴 하나 자신의 안위와 관련해서는 언제나 날카롭다.

“다만 혹여나 해서 언급하지만 땅을 나눠준다고 해도 어느 한 지역의 토지만 나눠주는 경우 있을 수 없습니다.”

폼페이우스에게 호의를 가진 군인들이 한 지역에 몰리게 된다면 그곳은 폼페이우스의 사유지나 다름없게 변한다.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리라. 히스파니아 지역은 지리학적으로 로마와 멀기에 문제의 여지가 다소 적지만 로마와 가까운 지역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폼페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그 부분은 세네투스와 상의하에 결정하도록 하지요.”

“하면?”

“세네투스의 제안.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폼페이우스는 내친김에 집정관에 오를 수 있게끔 허가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지만 현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시기상조처럼 여겨졌다. 때를 기다려 법무관에 오른 후 집정관에 올라도 되는 일이다.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낭패를 당한다는 것을 세르토리우스와 싸우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독살당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광을 영원히 맛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세르토리우스를 떠올리며 자연히 그의 아들인 테세우스 역시 상기했다.

아티커스는 활짝 웃으면서 그런 폼페이우스에게 말했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하면 로마로 돌아가 트리움푸스 준비를 거행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폼페이우스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아티커스를 바라봤다.

“이 문제는 이미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닙니까?”

세네투스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폼페이우스의 굳은 표정을 확인한 아티커스는 손사래를 치며 급히 말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세네투스의 요청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하나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대체 무슨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오?”

세네투스가 허가하면 그것으로 끝날 부분이 아닌가? 권위를 잃었어도 세네투스는 세네투스다. 그들이 하는 일을 누가 나서서 막기라도 한단 말인가? 대체 누가 그런 실없는 짓거리를 한단 말인가?

일이 이러하니 폼페이우스의 분노가 세네투스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로원이 뭔가 야료를 부리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폼페이우스 님께서도 그를 알고 계실 겁니다.”

“테세우스? 그가 왜?”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고 요즘 백방으로 뛰어다니더군요. 저희 세네투스는 트리뷴을 염려합니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지요.”

트리움푸스가 임페리움을 가진 임페라토르만 행할 수 있는 것임을 모르는 자도 있던가? 하나 폼페이우스와 세네투스의 행사를 가로막을 어리석고 무모한 자는 없다. 폼페이우스의 득세를 원치 않는 크라수스조차 그런 식으로 일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트리움푸스를 막을 것이라 보는 것입니까?”

“왜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 역시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막으려 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현 트리뷴의 정체성이니 말입니다. 무모한 자이지요. 그만큼 위험한 자이기도 하고. 물론 그자가 어떤 식으로 나오든 세네투스는 약조를 이행할 것입니다. 하나 그리된다면······.”

칭송받아 마땅할 영광스러운 행사가 비난이 뒤섞인 수치스러운 행사로 변모할 수 있다고 이르는 것이리라.

폼페이우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아티커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 음. 그는 확실히 조심해야 할 인물이지요. 하나 권한도 없는 트리뷴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세네투스의 생각도 그러했습니다만······. 그는 로마 시민의 호의와 신뢰를 얻고 있는 자입니다. 이번 가도공사에 동원된 인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동원되는 노예만 200만명에 달할 겁니다. 단순히 곡식이나 재물을 나눠주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을 도와 일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한다고 시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단 말입니다. 게다가 정말로 힘들고 위험한 일들은 결국 공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보유한 노예들이 감당할 테니······.”

“200.. 만? 그걸 무슨 수로?”

“세네투스가 과장해서 계산한 것이라 생각하진 말아주십시오. 그보다 숫자가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겁니다.”

BC 75년경 로마는 전쟁 등을 통해 얻은 노예를 시켜 대략 8만km에 달하는 로마의 길을 정비하거나 새로 만들었는데 이때 동원된 노예의 숫자가 바로 200만명이었다. 현재 BC 76년, 테세우스가 시행하는 가도정비는 그것에 준하는, 상황에 따라 어쩌면 그보다 규모가 커질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아티커스의 발언은 그의 말따라 과장이 아니었다.

“노예는 노예일 뿐입니다.”

“무엇이 핵심인지는 레가투스도 아시지 않습니까? 플레브스뿐만 아니라 심지어 에퀴테스들도 테세우스에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한이 없는 트리뷴이라 하여 무시할 계제가 아닙니다. 이미 그의 존재감은 로마의 명사들조차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그런 그가 광장에 서서 레가투스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 여파는 세네투스의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네투스가 그에 대해 괜히 우려를 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티커스는 잠시 말을 끊은 뒤 다시 말했다.

“레가투스 폼페이우스. 결코 사소하게 넘어갈 부분이 아닙니다. 크라수스를 지지하는 세네토르들이 세네투스에 더 많음을 레가투스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세네투스의 결정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바뀔 수 있음도 말입니다. 테세우스의 발언과 크라수스파의 지지가 이어진다면? 그때도 레가투스께서 권한없는 트리뷴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폼페이우스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향이 제법 강했기에 원로원은 사교적이고 친근하며 아울러 많은 재물을 안겨주는 크라수스에게 더 협조적이었다. 그것은 폼페이우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티커스의 발언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세네투스는 테세우스를 더 두고볼 생각이 없군.”

폼페이우스는 지긋이 눈을 감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내용입니다. 장군께도 그의 득세는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크라수스조차 그를 처리하길 원하지요.”

“흐음.”

테세우스 그는 확실히 껄끄러운 자다. 하나 무슨 명분으로 그를 쳐낸단 말인가? 게다가 거래에 의한 관계라지만 테세우스에게는 빚이 있었다. 달마티아 토벌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던 근간에는 테세우스의 보급 역시 그 한 자리를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가투스가 협조한다면 세네토르 중 누구도 트리움푸스의 자격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 이상의 것이라도 말입니다.”

고심에 잠겼던 폼페이우스는 아티커스의 발언에 눈매를 꿈틀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을 마주한 아티커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폼페이우스에게 말했다.

“레가투스의 말따라 제가 레가투스를 한두 해 본 것도 아닌 마당에 레가투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서야 세네토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콘술, 그러니까 집정관 선거에 출마해줄 수 있게끔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뜻이리라. 집정관은 두 명이 선출되니 남은 한 자리는 크라수스가 차지했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크라수스는 군공이랄 만한 것이 없는 사내다.

로마에서 높은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물과 더불어 군공이다. 크라수스에게 재물은 넘쳐나지만 군공은 특출난 것이 없었다. 물론 자신 역시 나이 제한과 고위 정무관을 지낸 적이 없으니 적법한 인사가 아니지만 현 상황에서 크라수스는 그런 자신보다도 더 적합하지 않은 인사라는 소리였다.

“크라수스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아티커스는 폼페이우스의 말에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그것까지는 제가 알 바가 아니지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세네토르 중 테세우스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지 않은 자가 드물다는 점 입니다. 이 일이 시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레가투스도 잘 아실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껏 레가투스를 잘못 본 것이겠지요.”

자신이 아는 크라수스는 결코 맥없이 당할 사내가 아니다.

하나 아티커스 의원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았다. 테세우스 제거에 거부한다면 자신을 지지하는 아티커스조차 크라수스쪽으로 돌아서리라.

미간을 좁히며 침묵을 지키던 폼페이우스는 아티커스에게 입을 열었다.

“그는 트리뷴이오. 신성불가침권을 침해한다면 이는 세네투스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이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비효율적이고 그만큼 부담도 큽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테세우스가 보여준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세네토르라고 달랐겠습니까?”

역시 정치는 복잡한 문제다. 차라리 테세우스를 암살하고자 했다면 이해하기 편했으리라. 폼페이우스는 답답한 심정으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트리움푸스. 그것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치워버릴 것이오. 하니 남은 건 세네투스의 뜻대로 하십시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아티커스는 폼페이우스의 무거운 발언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맺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