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43화 (243/298)

# 243

243. 분투.

243. 분투.

섬세하면서도 강철처럼 단단한 근육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 위용을 세상에 자랑했다. 세상의 그 어떤 조각 작품도 그 어떤 육체도 지금 눈앞에 고도로 단련된 육체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리라.

가만히 선 채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벌거벗은 그의 상체의 근육은 마치 자체적으로 어떤 운율을 가진 것처럼 꿈틀대며 그 열기를 더해갔다. 그게 어디 상체뿐이랴? 그의 전신의 근육이 마치 제각각 의지를 가진 것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 팔을 내리고 있던 그는 두 손안에 공을 쥔 것처럼 부드럽게 허공을 감싸 쥐었다. 일견하기엔 부드러운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에 담긴 거력은 결단코 부드럽지 않았다.

그건 실로 기이한 움직임이었다. 두 팔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려면 힘을 빼고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신체구조 상 강한 힘을 가하면 당연히 그만큼 뻣뻣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나 그의 두 팔 위에 세밀하게 갈라진 근육은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찢어버릴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고 힘줄 역시 팔 전체에 곤두서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팔에 힘을 뺀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바람처럼 표홀하고 그 바람에 살짝 내려앉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는 허공의 공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어루만지다가 자신 앞에 놓인 두꺼운 나무기둥에 손바닥을 슬며시 가져갔다.

그의 손바닥이 나무기둥에 닿는 순간, 마치 천지가 터져나가는 소음이 새벽 아침의 고요한 침묵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콰아아아앙!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란 말인가? 누가 봐도 그저 살포시 손바닥을 나무기둥에 가져다 대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무언가 산산이 박살나는 굉음이 울려 퍼진단 말인가?

그의 손바닥이 닿은 나무기둥은 강력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나무결대로 산산이 박살나있었고 심지어 그 힘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땅바닥에 박아놓은 부분까지 들려서 뒤로 쓰러져 있었다.

퉁 투퉁!

손바닥이 닿은 윗부분의 기둥이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음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서진 나무토막에 바닥에 떨어지기 무섭게 섬뜩한 눈빛으로 다른 곳에 박힌 나무기둥들을 바라본 그는 바람처럼 휘몰아치며 몸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서 모든 나무기둥을 파괴시켜 버렸다.

쾅 콰광 쾅 콰광!

느릿하게 움직였던 처음의 행동과 다르게 이번에는 그야말로 눈 깜작할 사이에 이뤄진 일이었다. 아니 어떤 도구도 없이 맨몸을 이용해 저토록 두꺼운 나무기둥을 온 사방에 나뭇가루가 흩날릴 정도로 박살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하다 못해 손과 발로 친 것은 그렇다쳐도 어깨나 등으로 친 부위까지 산산이 으스러졌으니 불가사의도 이런 불가사의가 없었다. 단단한 나무기둥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피륙으로 이뤄진 사람이 그 공격에 얻어맞는다면 그 강력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단번에 즉사하고 말 것이다.

“후우우우.”

그렇게 연무장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박살낸 테세우스는 깊게 숨을 뱉으며 전신을 제어하던 모든 힘을 거두어들였다.

‘조금 더 단련하면······. 사람이 직접적으로 단련할 수 없는 불수의근까지 의지의 영역에 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실로 황당한 소리였다.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왜 불수의근인가? 사람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근육이기에 불수의근이 아닌가? 당연히 이러한 근육을 의식적으로 단련하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

사실 이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심장근이나 소화기관이 팔과 다리의 근육처럼 의식해야만 움직인다면 그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는가? 아니 그전에 목숨을 잃을 것부터 염려해야 할 것이다. 의식해야만 움직인다면 길게 갈 것도 없이 잠자는 사이에 목숨을 잃고 말 테니까.

그런데 테세우스는 지금 이 불수의근을 자신의 의지 하에 둘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근육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심지어 불수의근조차) 약물, 스테로이드제 등을 생각하면 본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테세우스이니 가능할 것도 같지만 당연히 그게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인지 또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그가 지금껏 얼마나 치열하게 육체를 단련해왔는지를 추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정도면 무예에 있어 거의 탈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사실 뭐 그전에도 탈인간이었지만 말이다.

테세우스는 아주 가까운 지점에서 순간적인 타격을 통해 나무기둥을 파괴 시켰다. 손을 가져다 댄 것처럼 보였음에도 나무기둥이 산산이 파괴된 연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일이 가능하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힘과 육체제어능력이 동반되어야 하는지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그가 무기를 버려두고 맨손으로 수련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로마 내에선 무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이미 무기술은 정점에 다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계속 강구했다. 그 결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도출해내고야 말았다.

이쯤 되면 거의 생존에 대해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대체 누가 테세우스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미래에서 총을 가져와 그에게 난사하지 않는 이상, 창칼로 그를 죽이는 일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다만 그게 스스로를 불신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아는 테세우스는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고로 이건 오히려 스스로를 냉철하고 세밀하게 바라보고 내린 결론에 가까웠다.

‘이 놀랍도록 기묘한 육체는 아직도 그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자는 주어진 결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태함을 탓하며 죽음에 이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사실이 오늘도 테세우스를 치열하게 분투하게 만들었다.

테세우스는 실로 괴물과 같은 사내였다. 육체적인 능력도 능력이지만 자신을 쉴 새 없이 몰아치며 경계하고 단련한다는 것은 범인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의 육체능력이 평범했어도 그의 노력이라면 맹장으로 변모하고도 남았을 테니 이제 그의 육체보다도 강한 것은 그의 정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그 노력은 단순히 육체단련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대체 무슨 수련을 하시는 겁니까?”

나디르가 연무장에 들어서다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리러지 널부러지고 파괴된 나무기둥과 테세우스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하나 테세우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수련이 수련이지.”

“······.”

그 대답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나디르는 기묘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껏 신화 이야기 같은 건 믿은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를테면 헤르쿨레스 신화라든지······.”

“아니다. 그런 거.”

“어떻게 출생했는지는 사실 테세우스 님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게 끼워 맞추면 말이야 된다만······.”

“흠. 이 부분에 대해 더 깊게 조사해 볼 필요가 있는.”

“쓸데없는 소리는 그쯤하고. 무슨 일이야? 새벽부터.”

연무장에서 훈련하는 시간은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급한 일이 아니면 찾아오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다시 말해 나디르가 이렇게 훈련이 끝나기도 전에 찾아왔다는 것은 급하거나 특별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였다.

“음. 그게 말입니다.”

나디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검지로 자신의 볼을 슬쩍 긁었다.

“무슨 일이······. 음.”

테세우스는 말을 꺼내려다가 나디르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다.

“오랜만이예요.”

연무장에 수수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들어서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굴을 덮은 얇은 천을 왼손으로 걷어내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그의 이름을 말이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와 나디르를 한 번씩 바라봤다.

‘팅기스에 있어야 할 야스미라 공주가 왜 로마에?’

이건 테세우스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마우레타니아의 야스미라가 대체 무슨 연유로 이 먼 길까지 걸음을 옮겼단 말인가? 혹 사비누스가 갔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테세우스는 표정을 굳히며 야스미라에게 입을 열었다.

“혹.”

“아니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로마를 찾아온 것이 아니예요.”

“그럼 로마에는 왜?”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하시네요. 저는 테세우스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음?”

*

다그닥 다그닥

일단의 호위병들과 함께 말을 타고 북부로 달려간 세네토르 아티커스는 견고하게 지어진 폼페이우스의 주둔지를 바라봤다.

“워워. 폼페이우스가 왜 폼페이우스인지 알겠군.”

로마군의 진지구축 능력이야 더 거론할 것도 없이 대단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폼페이우스 군의 주둔지는 그야말로 철옹성과 같은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울러 목책 위와 성문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의 눈빛과 절도있는 모습을 통해 저들이 얼마나 훈련되고 노련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네투스(원로원)는 폼페이우스가 그의 점령지에 대한 권리를 일정부분 포기하기를 원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히스파니아 땅에 대한 권리를 말이다.

어차피 저들에게 세네투스의 권한이나 명예는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이득 앞에 그런 문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트리움푸스(개선식)? 그에 상응하는 이득만 보장해준다면 세네투스는 그보다 더한 것도 폼페이우스에게 제공할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세네투스가 명예와 원칙을 숭앙하는 것처럼 보여야겠지. 사실 그렇게 보이는 것쯤이야 뭐 문제될 것이 있겠는가? 지금껏 계속해오던 일들이 바로 그 일이었는데 말이다.

문제는 결국 알맹이다.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지,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엄밀히 말해 세네토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달콤한 꿀을 폼페이우스가 제공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그것만 폼페이우스가 약속한다면 세네투스는 트리움푸스 할아버지라도 인가할 것이다.

명예? 권한? 함께 물고 뜯을 수 있는 먹잇감이 나타나니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거부했을 뿐이다.

당금 로마에서 거론되는 네 명의 사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 테세우스 가운데 뒷배경과 기반이 가장 미약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테세우스다. 그러니 현 상황에서 원로원이 네 명 중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사람은 테세우스보다도 폼페이우스를 경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저들은 폼페이우스도 크라수스도 카이사르도 아닌 테세우스를 가장 경계하고 어떻게든 제거하길 원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앞서 거론한 세 명의 사내는 자신들과 타협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테세우스는? 타협이 불가능한 사내다. 누차 그것을 확인했다.

심지어 테세우스는 귀족의 대척점에 서있는 트리뷴이었고 법과 정의,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그는 자신들에게 무시무시한 철퇴를 가져다 줄 뿐, 그 어떤 달콤함도 제공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하드리아누스와 스카에볼라의 사건을 보며 안 그래도 껄끄러운 그가 능력마저 출중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세네투스가 출중한 세 사람보다도 테세우스를 경계하고 어떻게든 그를 제거하려고 드는 일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크라수스의 짜놓은 판의 일부였으니 음험하기가 과연 술라와 비견할만 했다. 카이사르는 크라수스가 어떤 식으로 판을 흔들고 있음을 눈치챘으나 어느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일의 추이가 어찌 흘러갈지 기민하게 살피고 있었고 폼페이우스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입지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다지려고 했다.

아티커스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폼페이우스의 막사로 향했다. 지척에 다다르자 폼페이우스가 아티커스를 환대하며 입을 열었다.

“세네토르 아티커스!”

자신을 기뻐하며 맞이하는 폼페이우스를 바라보며 아티커스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을 맞잡았다.

“레가투스 폼페이우스. 거듭된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에트루리아, 히스파니아, 그리고 달마티아까지 이같은 전공은 근래에 짝을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한 전공입니다.”

폼페이우스는 기꺼운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세네토르께서 오신다는 소리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드시지요.”

“제가 개선장군에게 이런 환대를 받을만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띄워주는 발언에 다시 웃음을 터트린 폼페이우스는 막사 안쪽을 향해 손을 내밀며 다시 말했다.

“하하하! 별 말씀을! 자!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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