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241. 폭풍 속에서.
241.
그런 카이사르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말을 건네는 자가 있었다.
“대단한 사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카이사르는 셈프로니우스 회당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자신에게 걸음을 옮기는 한 사내를 바라봤다. 그가 누군지 모를 수 없었다. 카이사르뿐만 아니라 회당을 오가는 제법 많은 사람들도 그를 알아본 모양인지 고개를 돌리거나 힐끔거리며 사내를 바라봤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그는 바로 크라수스였다.
“오랜만입니다.”
그와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맺은 적이 없지만 연회장에서 만난 적이 있기에 면식이 없는 사이는 아니었다.
크라수스의 인사에 카이사르 역시 가볍게 예를 표하며 입을 열었다.
“예. 오랜만입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그가 내 연인도 아닌데 그 이름을 하루에도 몇 번을 곱씹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뜸 카이사르에게 말을 꺼낸 크라수스는 회당의 잘 세공된 기둥에 몸을 기대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테세우스를 넌지시 바라봤다.
카이사르는 날카로운 눈으로 크라수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테세우스 그는 제 친우입니다. 그 사실은 당신의 모든 재산으로도 바꾸기 어려울 겁니다.”
카이사르에 날선 반응에 크라수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테세우스를 향하던 눈을 카이사르에게 돌렸다.
“하하하하.”
짧게 웃음을 터트린 크라수스는 웃음을 거두며 카이사르에게 말했다.
“전부를 줘도 흔들리지 않는다라······. 테세우스가 왜 당신과 함께하는지 알겠군요. 뭐 좋습니다. 하지만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이 크라수스가 손해만 가득한 배신을 종용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닙니다. 염려 마시지요. 앞서 거론한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사람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그런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음.”
“테세우스 그는 확실히 적으로 돌리기에 무서운 사람입니다. 오늘 일을 보니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군요. 율리아 가문이라······. 물론 협조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풀어갈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대공사를 벌여 평민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뜻이겠지요? 공사와 관련된 종사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면 그 임금은 또 다른 선순환을 낳을 테니······. 재물을 다루는 능력까지 탁월하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카이사르는 심유한 눈으로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고도의 이간책이라······. 한수 배웠습니다.”
“심리라? 야심이라고 하는 게 좋겠지요. 이 경우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크라수스와 카이사르는 로마눔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에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돌려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이 일이 제대로 성사되어 로마의 삶이 지금보다 윤택해진다면 기부자와 기획자, 실행자 모두가 인정을 받습니다. 적어도 이 일에 한 해 떼놓을려야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되지요.”
크라수스의 말에 카이사르가 테세우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기부자는 크라수스 기획자는 테세우스, 그 일을 실행할 사람은 바로 자신을 이르는 말이리라. 카이사르는 크라수스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나보고 가교역할을 해달라?”
그러자 크라수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카이사르에게 대답했다.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면서도 놀라운 정치적인 식견으로 사람을 겁박할 수 있으며 공정한 처사와 화려한 이벤트로 대중들의 마음을 공략하는 통치자의 능력도 갖춘 자.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한데 그보다 놀라운 것은 군사적인 능력이더군요. 사실 그가 치른 전투 중 믿을 만한 소문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한데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보여준 모습과 적으로 만난 테세우스의 진면목을 생각하면 믿지 못할 것도 없더군요. 게다가······. 히스파니아에서 상당한 부까지 축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음.”
“간단히 말해 정치, 군사, 경제, 민정 등에 관련된 모든 부분을 탁월할 정도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자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입니다. 다만 다행히 그에게도 부족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눈매를 좁히며 크라수스를 바라보자 크라수스는 다시 테세우스를 향해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바로 시간과 야심!”
크라수스는 다시 카이사르를 바라봤다. 다만 종전과 다르게 매우 강렬한 눈빛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적하려고 보니 오히려 그의 무서움을 알게 되더군요. 그의 진면목을 세인들이 알게 되고 마음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로마의 그 누구도 테세우스라는 태풍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세인들이 그를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지요. 오늘도 시민들이 그의 이름을 환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
카이사르는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소름 끼치는 대목에 다다랐지요.”
“무엇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이토록 많은 것을 생각하고 준비한 자가 본인의 주력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궁지에 궁지에 몰아넣어 군사적인 행동을 일으키게끔 판을 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카이사르는 미간을 좁히며 크라수스에게 질문했다.
“확인된 증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 어떤 움직임도 발견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사실 더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내 예상을 벗어난 자가 내일이라고 벗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에게 별다른 야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그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문제지요.”
“단순히 가교역할을 해달라고 온 것이 아니군. 무슨 제안이 하고 싶은 것이오?”
“머잖아 폼페이우스가 귀환합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나와 폼페이우스는 물과 기름같은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문제를 떠나 상황 자체가 그러하지요.”
카이사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파전으로 가자? 그 일을 나보고 감당해달라? 가능하지 않은 요구를 하는군.”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카이사르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내일과 모레만 지나도 당신은 위상은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질 겁니다. 게다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테세우스는 당신을 지지하더군요. 카이사르 당신 역시 그 점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고.”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반응을 포착했단 말인가? 고작 그것을 통해 테세우스와 자신의 깊은 연계를 확신한 것이고? 크라수스가 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노련하군요.”
“생존하기 위한 발악이라고 해두지요. 그리고 사파전이 아니라 삼파전입니다.”
“말했지만 배신을 거론하는 것이라면!”
“배신이 아닙니다. 테세우스가 야심이 없는 상황을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카이사르 당신도 테세우스와 싸우는 상황은 피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를 독주하게 내버려 둔다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것도 느꼈기에 그를 바라보며 경계하고 있던 것이 아닙니까?”
“음.”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이 제안이 결코 카이사르 당신에게 불리한 제안이 되지 않을 겁니다. 테세우스가 이 상황에서 나를 친다고 한들 그가 얻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테세우스의 일을 저지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트리뷴은 트리뷴의 일을 하게 두시지요. 하나 카이사르 당신이라면 이 일을 충분히 중재할 수 있습니다. 내게도 좋고 당신에게도 좋으며 테세우스 그에게도 손해가 될 것은 없습니다.”
카이사르가 침묵을 지키며 자신을 바라보자 크라수스는 최후통첩과 같은 발언을 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나는 당신이 충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남은 것은 파국밖에 없을 것이고 그 끝에 누가 살아남을지 모르나 승리자가 얻을 것은 갈가리 찢어진 로마뿐일 겁니다. 당신도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개혁도 좋지만 급진적인 개혁은 커다란 혼돈과 혼란을 조장할 뿐입니다. 로마의 적들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북쪽의 갈리아족은 지금도 로마의 속주를 침탈하고 있습니다. 기어코 로마를 찢어야겠습니까?”
카이사르는 열변을 토하는 크라수스를 심유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거부한다면 크라수스는 모든 것을 접고 폼페이우스와 함께할 것이다. 그리되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와 함께하는 로마와 테세우스와 자신이 함께하는 로마로 나눠지게 될 터, 엄밀히 말하면 그 휘하에 거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그러니 극구 자신에게 중재 및 견제를 요청하는 것이리라. 먼저는 테세우스에게 중재를 그 후에는 폼페이우스의 견제 및 중재를.
크라수스의 말따라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은 없다. 크라수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크라수스가 기부한 재산을 회수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될 터고 그것은 더 많은 일들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가까이는 폰티펙스 막시무스 선거에서 역시 매우 유용할 테지. 그렇다고 이것이 테세우스에 대한 배신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테세우스가 막대한 재산을 기부한 크라수스의 잘못을 성토한다면 세인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것을 양보한 크라수스의 뒤통수를 거하게 쳐버린 모습으로 비춰질 테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말 테니까.
자신의 생각처럼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지 않더라도 지금 만나본 크라수스라면 능히 그 일을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대외적으로 완전히 틀어지게 되니 그때는 손을 잡고자 해도 잡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릴 터. 크라수스는 그것을 막고 싶은 것이다. 그의 말따라 파국으로 치달을 테고 가장 먼저 자신이 그 끝에 다다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영향력도 명성도 미미한 카이사르, 자신을 찾아온 것이리라. 생각했던 것보다 무섭고 치밀한 사내다. 카이사르는 눈매를 좁히며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상당히. 상당히 큰 그림을 그리는군요.”
카이사르의 말에 크라수스가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 몸통보다 커다란 빵을 한입에 넣고 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뜯어먹어야 씹을 수도 있고 소화할 수도 있지요.”
“인내라······.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공공이익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내어놓은 당사자를 비리 문제로 고발하고 처벌하려 한다면 그 일이 옳고 그름을 떠나 세인들이 보기에 좋지 않은 그림으로 비춰지겠지요. 물론 트리뷴의 일을 간섭하고 막아서는 일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기부 문제에 한 해 트리뷴은 플레브스와 연관된 일만을 다룬다고 했고 나머지는 본 가문에 맡긴다고 했으니 적절한 선에서 처리해보지요. 아무래도 트리뷴이 조사한 비리와 관련된 토지 역시 이번에 기부한 것 같으니······.”
카이사르의 발언에 크라수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을 위해서도.”
곧 폼페이우스가 귀국한다. 성공적으로 달마티아 토벌을 완수했다는 소식이 로마에 들려왔으니 어쩌면 이미 귀환 중에 있을 것이다. 테세우스가 왜 크라수스를 경계하는지 충분히 알만한 시간이었지만 크라수스만 인물이 아니다. 폼페이우스는 명예욕이 넘치는 사내고 현재 로마의 누구보다 탁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었다.
크라수스도 폼페이우스도 위험하지만 테세우스도 무시 못할 사내다. 삼파전이 될지 사파전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크라수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여겼다. 물론 크라수스는 테세우스를 도태시키고 삼파전으로 나가길 원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상황에 따라 판단하면 될 일이겠지.
카이사르는 그가 내민 팔을 맞잡으며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쳐낼 것은 쳐내야만 할 겁니다.”
그와 손을 잡는다는 것이 그의 모든 부패를 눈감아주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크라수스 본인을 대신할 적절한 희생양은 있어야 할 거다. 그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카이사르의 눈을 마주한 크라수스는 싸늘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위기였다. 로마에서 크라수스라는 이름과 영향력이 송두리째 사라졌을지도 모를 대위기. 하지만 어쨌든 한시름 놓았다. 그러니 이제는 집정리를 할 시간이다. 어려울 때 등 돌린 자들에게 내가 왜 크라수스였는지를 보여주리라.
또한 제 아무리 강한 맹수도 약할 때가 있으니······. 크라수스는 테세우스를 힐끗 바라본 뒤 카이사르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지요.”
카이사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는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그가 모습을 감추자 카이사르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로마를 삼켰던 거대한 뱀의 간교함은 아무래도 크라수스가 이어받은 모양이군.”
술라의 간교함을 말이다. 그리고 거대하고 간교했던 뱀조차 인정했던 폼페이우스가 귀환하고 있었다.
“테세우스! 테세우스!”
“테세우스!”
그때 로마눔 광장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카이사르의 귓가를 울렸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그리고 테세우스. 로마 그 어디서도 카이사르 자신의 이름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뇌까렸다.
“흥미롭군. 매우. 매우 흥미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