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40화 (240/298)

# 240

240. 폭풍 속에서.

240. 폭풍 속에서.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가만히 손을 들어 저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테세우스를 비방하는 자들도 테세우스가 뭐라 말할지 들어봐야 했기에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했다. 아예 이대로 테세우스를 매도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혹 그렇게 한다면 다수의 군중들이 자신들에게 강한 적대감을 표할 테니 그리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두루 살피고 들어보니 그간 로마의 가도가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탓인지 길이 부서지거나 더러는 아예 끊어진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여 가도를 정비할 생각입니다. 그 대상이 되는 가도는 아피우스 가도와 카피아 가도로 서북쪽 해안의 피사에와 남동쪽 해안의 브룬디시움까지 정비하는 대공사를 벌일 계획입니다.”

테세우스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공사?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트리뷴의 일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그렇소이다!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플레브스를 돕는 것이 트리뷴의 일 아닙니까?”

“일단 트리뷴은 무상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직위가 아니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들을 보살피기 위한 직위입니다. 아울러 일하는 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겠지만 그러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겁니다. 무상으로 지원하는 경우는 일할 수 없고 사정이 여의치 않은 자들에게만 지원이 될 부분입니다. 아니면 무상으로 지원하는 일에 대해 나 테세우스를 도와줄 이가 여기 계시오? 언제든 환영하니 말씀만 하시지요.”

테세우스의 발언에 잠시 머뭇거리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가도정비와 같은 대공사 등은 로마의 정무관들에게 맡겨 놓으시지요!”

“맡겨 놓았습니다만 선출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어떤 정무관 하나 가도정비는 물론 공공시설 관리 및 정비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대공사를 시작하려면 그만한 자본이 필요한데 그것을 주장한다면 주장하는 본인부터 사비를 털어 넣어야 할 테니 함부로 거론하기 껄끄러운 문제였다. 나만 아니면 돼. 또는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이런 보신주의와 안일함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었으니 정무관들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거야!”

“잠깐! 대공사를 시작하는 비용은 어디서 난 것이오? 크라수스의 재산을 함부로 팔아치우기라도 한 것이오?”

“아니 적법한 증거와 서류를 가져다 줘도 지지부진하게 처리하던 일이 설마 뒷구멍으로 돈을 빼돌리기 위한 일이었단 말이오?”

“대공사는 무슨! 하는 척만 하고 모든 재물을 꿀꺽 삼킬 생각이겠지! 플레브스를 위한다더니 다 가식이었군!”

“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

테세우스를 향한 야유가 곳곳에서 퍼지기 시작했지만 테세우스는 역시나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다가 저들의 야유와 비난이 잦아들자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보셨소.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재산이 바로 이 일을 위해 사용될 것이고 아울러 로마의 공공기관과 공공시설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와 보수 등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허! 이제 인정하는군!”

“정의와 법은 개뿔! 위선자!”

“우우우우우!”

“위선자의 말은 더 듣고 싶지 않다!”

“우우우우!”

저들의 비난이 다시 빗발쳤지만 테세우스는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군중에게 외쳤다.

“하나! 크라수스의 재산은 앞서 언급했듯이 처분이 제대로 되지 않았소. 아는 분은 알겠지만 재산문제로 얽혀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또한 현금화하는데 시일이 걸리니 재산 처분은 아직!”

“흥! 아직 처분하지도 않은 재산으로 가도정비라고? 그럼 인기를 얻기 위해 거론한 모양이군! 대공사를 벌이겠다고 선전하여 트리뷴 임기 동안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그 후에 생색만 낼 생각이었어. 실로 간교하군. 간교하다!”

“간교한 위선자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테세우스는 그 모습에 크게 발을 구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여! 유니아 가문의 도움으로 이 일을 당장 오늘부터 시행할 생각이오.”

“유니아?”

“갑자기 유니아 가문이라니 무슨 소리지?”

“크라수스의 재산과 얽힌 문제는 복잡한 경우가 많아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우니 그 모든 일을 세심히 알아보는 것은 내 임기 내내 확인한다고 해도 어려울지 모릅니다.”

크라수스나 그와 연관된 자들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확정된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테세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재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대공사를 벌일 수 없고 재산이 안정된 상황이라고 해도 트리뷴은 로마를 벗어날 수 없으니 적절한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로마 내의 공공시설 부분은 내가 나서서 관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가도정비는 서북쪽과 남동쪽 끝자락까지 이어질 테니 당연히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그 책임자는 공사에 관련된 전반적인 부분을 세심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해당 지역의 파트리키들의 지원이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저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생색이나 내고 막대한 재물을 삼키려는 의도로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바로 그래서 더더욱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공동 책임자 정도가 되겠군요.”

테세우스의 말에 심각한 표정이 된 사내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게 유니아 가문이라는 소리요? 혹 켄소르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테세우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켄소르께서는 감찰문제로 올해를 아주 바쁘게 보내실 분이니 그런 잡다한 문제로 번거롭게 할 수는 없지요.”

켄소르 브루투스는 켄소르의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브루투스 본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고 테세우스 역시 그렇게 하기를 바랬다. 애초에 크라수스의 재산을 받아들이고 토목공사를 기획할 때 이 일을 주도할 사람을 마음 속에 확정지어 두었다.

“그럼?”

“여러분은 근래에 사비를 털어 시칠리아 해적들을 토벌한 사람의 일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는 근방의 귀족들을 설득하여 시칠리아 해적들을 아주 성공적으로 토벌했지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이사르!”

여기저기서 카이사르의 이름을 흘러나오자 테세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고위 정무관들의 비리를 고발했던 전적도 있는 사내이니 지금 언급한 내용과 다르게 내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뒤로 돈을 빼돌리려 한다면 그가 직접 나서서 시민들에게 외칠 것입니다. 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가 위선자 중의 위선자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카이사르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내다. 자신이 부패하고 카이사르가 그 일을 알게 된다면 카이사르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사용하고도 남을 자다.

“으음.”

“음.”

“이쯤에서 한 가지 더 공표해야겠습니다. 내가 그와 공동 책임자로 가도정비에 나설 것이나 실무와 관련된 모든 일은 카이사르가 담당하게 될 것이니 플레브스가 아닌 파트리키나 에퀴테스와 연루된 재산분쟁건은 유니아 가문이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트리뷴은 플레브스를 위해 있는 관직이니 저는 플레브스와 연관된 일만 처리할 것입니다. 물론 사건에 따라 합동 조사하고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재산분쟁건에 대해선 유니아 가문과 업무분장(業務分掌)하기로 했으니 이 점을 숙지하고 제 사무실을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이런 구도라면 귀한 의도로 기부한 재산이 탐욕스러운 자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아마 발생하기 어려울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는 위선자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나 저라고 어찌 유니아 가문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껏 테세우스를 향해 성토하던 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재물을 얻고자 유니아 가문과 척을 질 미친 생각을 하는 파트리키도 있던가? 심지어 그 재물은 본디 자신의 것도 아닌 재물이다. 그건 유니아 가문도 크라수스의 재산을 요구하는 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먼저는 크라수스의 묵인 아닌 묵인과 은밀한 독려가 있었고 트리뷴 테세우스는 건드려도 후환이 없다고 여겨서 함부로 건드렸지만 그 대상이 유니아 가문이라면 아예 말이 달라진다.

그러니 거짓 증거나 서류를 가져왔던 자들은 알아서 몸을 사리게 될 것이다. 사리지 않는다면 켄소르 브루투스에 의해 본인이 직접 철퇴를 얻어맞거나 가문이 통째로 사라지는 기적을 맞이할 테지. 두렵지 않으면 그게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이미 세부조정은 마친 상황이니 대공사는 당장 오늘부터 실시할 생각입니다. 가도정비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의식주가 제공되며 적절한 임금 역시 지불됩니다. 그러니 참여하십시오. 참여해서 여러분 스스로와 가족을 본인의 손으로 먹여 살리십시오.”

“참여하고 싶습니다!”

“저도 공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북쪽 콜리나 성문과 남쪽 카페나 성문 부근에서 오늘부터 사람들을 모집하니 능력 여하에 따라 적절한 대우를 받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내게 찾아올 것도 없이 그곳으로 찾아가면 될 일입니다. 제게 더 물어볼 것이 있습니까?”

테세우스가 손을 활짝 펼치고 지금껏 자신을 비난하고 야유를 퍼부었던 자들을 바라보자 저들은 테세우스가 해코지할까 눈을 피하며 분분히 자리를 피했다. 테세우스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가 행여라도 유니아 가문에게 말을 전했을 경우가 두려운 것이리라.

‘대외적으로는 공사 비용을 유니아 가문에서 빌린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저들이, 그러니까 크라수스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테세우스가 공무원들과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 혼자서 이 모든 서류를 감당해야 했다면 정말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무관들은 잡무를 처리하는 공무원들을 괄시하고 멸시했지만 실무의 상당수를 그들이 처리했다. 그런 이들이 테세우스를 도왔으니 크라수스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이미 상당한 재산이 회수되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행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가운데 유니아 가문이 대두되었으니 골치 아픈 분쟁건은 알아서 사라지게 될 테고 그로 인해 재산 회수 속도 역시 훨씬 가파르게 이뤄질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유니아 가문이 취하는 이득도 많겠고 사라지는 돈들도 많겠지만 모든 일이 완벽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일로 억울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의 재산이 아니다. 크라수스는 막대한 재산을 쥐어주면 어떻게든 그 무게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 여겼겠지만 막대한 금액이라고 한들 그것에 휘둘릴 테세우스가 아니다. 천하를 움켜쥘 뻔 했던 기억이 있고 실제로 천하를 움켜쥔 것마냥 호령하며 다녔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라수스는 수많은 부류의 사람을 만났지만 테세우스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만난 적이 없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크라수스가 테세우스의 행보를 예상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일단은 아피우스 가도와 카피아 가도지만 공사가 어찌 진척되느냐에 따라 공사 규모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또 다른 가도가 될지 아니면 관련된 도시에 대한 지원이 될지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결정하게 될 겁니다.”

이는 현재 인지도가 아무래도 미흡할 수밖에 없는 카이사르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다만 기이한 것은 역사에서 카이사르는 BC 65년 조영관에 오른 뒤 아피우스가 가도를 자비로 수리하고 검투시합을 개최한다는 점이었다. 테세우스가 그것을 꿰고 있던 것도 아닌데 조금 이른 시일에 더 큰 규모로 카이사르가 그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

상점과 여러 사무소, 법정이 자리하는 셈프로니우스 회당에서 로마눔 광장을 바라보던 카이사르는 고개를 휘휘 저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군이면 더없이 든든한 자. 그가 적이 된다면······.”

잠깐이지만 섬뜩한 빛이 카이사르의 눈에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러니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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