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38화 (238/298)

# 238

238. 타협은 없다.

238.

남쪽에 위치한 카페나 성문은 북쪽의 콜리나 성문과 함께 세르비우스 성벽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문이었다. 카페나 성문은 물론 세르비우스 성벽을 타고 아치형의 정교한 수도교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레기온의 복장을 갖춘 지휘관이 나타나 입을 열었다.

“뭐야? 어느 쪽에 문제가 생긴 거야?”

“마르키우스 수도교 쪽인지 아피우스 수도교쪽인지 그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세르비우스 성벽 주변으로 물이 흐른다는데 여태 그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뭣들하고 있는 거냐? 아쿠아리우스는?”

아쿠아리우스는 물병자리를 말했지만 여기서는 수도교의 보수 및 공사를 담당하는 직책을 뜻했다. 로마의 수도기사라고 보면 되었다.

“파악 중에 있습니다. 아쿠아리우스의 말에 의하면 두 수도교 모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제길! 그간 보수를 어떻게 했기에 이 사달이 났단 말이냐? 이곳은 카페나 성문이다. 무엇보다 로마에 식수를 책임지는 수도교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여겨지면 네놈들은 물론이고 나도 무사하지 못해! 서둘러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파악해라! 또한 차후에 어찌된 것인지 세세하게 보고 듣고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서슬퍼런 지휘관의 엄포에 저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눈치를 봤다.

“움직여! 당장 문제부터 찾아내란 말이다!”

센튜리온은 아니고 밀리툼 정도는 되는 지위를 가진 지휘관으로 보였다.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지휘관 뒤편으로 거대한 경기장이 호라티우스의 눈에 들어왔다.

불과 얼마 전 테세우스도 경기를 치렀던 키르쿠스 막시무스(대경기장)였다. 경기장 북동편으로는 팔라티누스 언덕이 원만하게 솟아있었다. 이곳은 부유층과 사회적 출세를 원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개인저택이나 집세가 비싼 인술라가 여기저기서 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카페나 성문으로 이어지는 아피우스 가도 위에서 주변을 살펴보던 호라티우스는 옆에 선 테세우스에게 작게 속삭였다.

“콜리나 성문 내지 이곳 카페나 성문은 반드시 우선 점령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하나 제게 둘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카페나 성문을 택할 겁니다.”

“이유를 듣고 싶군.”

호라티우스가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이미 그렇게 결정하셨기에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신 것 아닙니까?”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죽은 정보에 불과하지. 로마에 대해 알아본다고는 하나 대부분 자료나 책 속에나 존재하는 죽은 정보가 전부다. 유용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내게 필요한 건 살아있는 정보야.”

“저라고 특별히 아는 게 있겠습니까? 로마에 살았다지만 그것도 옛날 일입니다. 돌아와서는 테세우스 님과 쭈욱 함께였고 말입니다.”

“딱히 질책하거나 추궁하지 않을 테니 일단 말해봐.”

호라티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히스파니아와 연결될 수 있는 아우렐리우스 가도나 카시아 가도와 가까운 콜리나 성문을 점령하는 것이 유용해보이긴 하지만 육상으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거리입니다. 또한 콜리나 성문은 앞서 말한 두 가도보다는 살라리아 가도와 노멘툼 가도와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멘툼 가도는 로마의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 노멘툼과 연결된 가도이고 살라리아 가도는 소금도로로 불리는 중요한 가도지만 로마를 점령한다면 일단은 카페나 성문부터 틀어막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살라리아 가도는 언제 건설되었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로마의 가도였다. 아마 이곳은 북동편의 아드리아 해와 연결된 도로로 해안가의 사비네스 족과 교류하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보였다. 건국 신화의 로물루스의 남자들이 납치한 사비네스의 여인들이 바로 이곳 출신이었다.

소금과 해산물을 비롯한 교역에 중요한 도로로 살라리아의 라틴어 뜻이 바로 소금이기도 했다.

함께 언급한 노멘툼 가도는 현재는 제법 중요하지만 노멘툼 도시 자체가 쇠락하면서 훗날 살라리아 가도와 합쳐진다.

테세우스는 아피우스 가도와 연결된 트리움팔리스 가도를 따라 팔라티누스 언덕 주변으로 오르며 호라티우스에게 되물었다.

“더 듣고 싶군.”

호라티우스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테세우스가 모를 것이라 여기진 않지만 긴말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아군이 로마를 점령한다는 선택 자체가 미친 짓이니 콜리나 성문이든 카페나 성문이든 어디를 점령하든 위험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하나 성공적으로 로마를 점령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주둔지가 적은 북쪽을 비우고 남쪽을 방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아······. 솔직히 말해서 이조차 비관적입니다. 어디를 점령하든 의미 없는 것으로 보이니.”

어디를 점령하든 아군은 소수이고 적군은 다수이니 다른 성문을 열고 지원군을 받으면 될 일이다. 따라서 호라티우스는 콜리나 성문이든 카페나 성문이든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하나 테세우스는 그런 호라티우스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북쪽 저편으로는 코스코니우스와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달마티아 정벌 중이니까?”

“예······. 아무래도 북쪽에 위치한 병력의 숫자나 경계가 느슨할 테니 우선적으로 남쪽부터 틀어막아야 합니다. 아피우스 가도는 남부 내륙을 가르는 날카로운 검과 같은 길이라 이곳을 틀어막지 못한다면 설혹 로마를 점령한다고 해도 막대한 대군의 재빠른 진격 앞에 토벌당하는 꼴을 면치 못할 테니 말입니다. 로마의 부가 아무래도 에트루리아 등과 가까운 북쪽보다는 남부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하오나······.”

“계속 말해보게.”

“이건 어디까지나 어느 성문을 점령하든지 간에 세르비우스 성벽의 다른 성문 역시 점령하고 완벽히 로마를 전복시켰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저희의 병사들이 용맹하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로마를 수복하는 건 테세우스 님이라고 해도 어렵습니다. 로마 주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들이닥치기 전에 세르비우스 성벽을 장악해야 승산이 있는데 지원군은 반드시 그 전에 로마 내에 진입하고 말 겁니다. 테세우스 님도 잘 아시겠지만 로마의 레기온은 결코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그러니 카페나든 콜리나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폼페이우스를 거론하는 건가?”

“예. 로마를 전복하려면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돌아오기 전에 해야 합니다.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로마 북쪽에 주둔한 이후에 전복한다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만약 그의 군대가 귀환하기 전에 로마를 전복한다면 백전으로 단련된 군대를 이끌고 폼페이우스가 로마로 진격할 것이라는 점이겠지요.”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라티우스에게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현재 아군의 병력과 상황으로는 로마 점령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고 점령 후 이어질 파상공세를 버티는 것은 더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급도 받기 어려울 겁니다.”

“수도교도 있고 티베리스 강이나 보급창고, 물류창고에 쌓인 수많은 물자들이 있지 않나?”

“로마로 연결된 수도교는 파괴할 것도 없이 잠시 막아놓으면 될 일이고 티베리스 강이 있기는 하나 로마를 전복하려고 드는 순간, 로마 내부에서의 시가전부터 각오해야 합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물자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할 병력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적은 다수고 아군은 소수입니다. 복잡한 시내의 지형 등으로 인해 병력이 더 흩어진다면······. 후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로마 점령은 필패입니다.”

“정확하군.”

“음? 설마 저를 떠보신 겁니까?”

“아군과 적군의 전력을 냉철하게 비교하고 전투에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지휘관이 해야 할 일이니까.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병사들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 중 한 사람이니까.”

“최악의 상황······. 말입니까? 음. 그렇군요.”

어둡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호라티우스는 돌연 기이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대안이 있으신 겁니까?”

“몇 가지 방법이 없지는 않지. 하나 호라티우스 네가 말한 것이 아군의 현실이라면 그때는 한 가지 방책밖에는 없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호라티우스의 눈을 마주하며 짧게 말을 맺었다.

“전면 후퇴.”

“음. 역시······. 육상으로는 아무래도 불가능하니 그 후퇴는 해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배를 준비해야겠군요. 혹시 그래서?”

그래서 밀무역하는 자들의 배를 습격하여 저들의 재산과 배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의 일을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하니 그마저도 없다면 그때는······.”

“애초에 무력점령할 일이 없는 것이 상책이겠군요.”

“맞아. 그럴 일이 없어야겠지.”

“그런 것치고는 로마의 권력자들을 너무 자극하시는 것 아닙니까?”

“호라티우스 네 식견은 군사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없지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현재 나는 히스파니아의 반란군이 아니다.”

“음?”

“내가 로마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나와 함께하는 이들은 결코 이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마인이 아닌 채로 싸울 것도 아니며 로마의 점령자가 아니라 수호자로 싸우게 될 것이다.”

“먼저 이기고 전투에 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팔라티누스 언덕 위에서 카페나 성문을 바라봤다.

“그것을 위해 호라티우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그 정도까지 일이 심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악의 상황을 미리 대비해야겠지.”

“혹 그 일이 수호자로 싸운다는 말씀과 연관된 일이라면 맡겨주십시오. 당장에라도 저들의 부정한 재산을 탈취하여······.”

“아니. 그런 식은 곤란해. 부정하든 아니든 법으로 인정된 사유재산을 저들의 이목 아래에서 건드려서야 될 일도 안 되지. 아직 뱀을 잡을 생각도 없는데 뱀 주변의 풀을 건드려서야 독만 잔뜩 오르게 만들 뿐이다.”

“하면?”

“지금까지 압수한 배를 이끌고 시칠리아로 가라. 자원하는 병사들에 한 해 말이다.”

“그저 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한데 시칠리아는 갑자기 왜?”

그렇게 반문하던 호라티우스는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그로 인해 테세우스의 의도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라티푼디움(거대 농장)!”

“사비누스는 이 폭풍이 지나가기 전까지 로마로 귀국하지 않을 것이다. 냉철하게 적의 허실을 파악하고 병력을 분배하고 은밀히 사람을 규합하되 때를 기다려라. 말했지만 무력은 최후의 최후에 사용하게 될 수단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검을 뽑으면 피를 흩뿌리기 마련이다. 그 피가 나의 것이든 적의 것이든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터!”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알았고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로마의 점령자가 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믿는다.”

테세우스 단호한 신뢰에 호라티우스는 뜨거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아니었군요. 저희가 쓸 전술이 아니었습니다. 저곳 카페나 역시······. 그래서 미리 살펴보신거군요. 대체 어디까지 보고 계십니까?”

테세우스는 화창한 하늘 위에 떠있는 흐릿한 구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들을 수 있는 데까지 듣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행할 뿐이다. 그저 하늘이 내게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행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가지 않기를 바랄 뿐.”

호라티우스는 말없이 그런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절도있게 군례를 취하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혹 그럴지라도 당신 곁에서 죽음을 바라볼 것입니다.”

“······. 안다.”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미안하다. 지금껏 이어진 혈로가 어느날 갑자기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뼛속 깊숙한 곳까지 느낄 수 있기에. 사무치도록 두렵기에.

하나 테세우스는 뒷말은 굳이 뱉지 않았다. 호라티우스를 비롯한 자신과 함께 하는 자들에 대한 모욕이 될지도 모르는 말이었으니까. 이런 종류의 사과는 섣불리 뱉을 수도 뱉어서도 아니되는 말이니까. 그저 눈으로 삼켰다.

“그러면 명하시면 될 일입니다.”

호라티우스의 담담하고 묵직한 말에 테세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시칠리아로 가라. 가서 내 명령을 기다려라.”

“명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호라티우스는 강하게 심장을 주먹으로 두들긴 후 테세우스에게 내밀었다. 나를 알고 나를 믿어주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비록 그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 긍지가 비루한 내 삶을 그나마 빛나게 할 테니까.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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