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235. 바로 법이다.
235.
트란스티베림은 물류창고와 숙소가 몰려있는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뱃사람들과 짐꾼, 그 일과 관련된 공무원들이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거친 뱃사람들이 몰린 곳이니만큼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고 그만큼 선술집도 많은 곳이었다.
오늘 밤 역시 이곳 트란스티베림에는 시끌벅적한 선원들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였나?”
“꼬우면 덤벼!”
“그래!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덩치가 크고 험상궂은 사내 둘이 잠깐 말다툼을 하더니 이내 곧 치고받기 시작했다. 주먹이나 몸을 놀리는 모양새가 비틀비틀거리는 것은 물론 둘 다 얼굴이 붉고 술냄새가 가득한 것으로 봐선 술에 완전히 취한 모양이었다.
턱! 콰아앙!
“으하하하! 더 싸워라!”
“으하하하하!”
선원들은 저들의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술집 안의 기물이 두 사내의 거친 싸움으로 인해 파손되었지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만 울상을 찌푸릴 뿐, 하나 덩치 큰 두 사내의 싸움을 말리고 들 담력과 강단은 없는 모양인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선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쿠당탕탕탕!
그러자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강하게 얻어맞은 탓에 균형을 잃은 선원이 거칠게 덮쳐들었다. 당혹할만한 광경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호라티우스였다.
호라티우스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사내를 슬쩍 밀어내 문 옆으로 나뒹굴게 만든 뒤 술집 안을 두루 살펴보았다.
쿠당당탕!
“너 이 새끼 뭐야?”
“감히!”
저들끼리 싸울 때는 아랑곳하지 않다가 호라티우스가 슬쩍 밀어낸 손길에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선원들이었다. 저들의 거친 기색에도 호라티우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레노스. 어디 있냐?”
“뭐하는 놈이야?”
“다시 한 번 묻겠다. 가레노스. 어디 있냐?”
“선장은 왜 찾아?”
“일단 족쳐!”
“허허허. 이 새끼들이 귀엽게 노는구만.”
호라티우스는 머리를 좌우로 움직인 뒤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선원의 면상에 커다란 주먹을 꽂아 넣었다. 테세우스에 비하면 작은 덩치지만 호라티우스도 어디서 꿀리는 덩치를 가진 사내는 아니었다. 게다가 백전, 그 이상의 전투를 치른 호라티우스가 아닌가?
호라티우스의 주먹은 호쾌하게 선원의 얼굴에 가격 되었고 주먹에 얻어맞은 선원은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쿠당탕탕!
호라티우스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향해 짓쳐 든 선원 두어 명 역시 순식간에 때려 눕혔다.
그러자 한 사내가 살벌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죽여!”
선원들은 그 사내의 말에 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들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호라티우스는 도리어 싸늘한 표정으로 선원들에게 경고했다.
“그거 집어넣는 게 좋을 거다. 무기를 들고 달려들면 말이 달라져.”
“지랄!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우릴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뭐해! 쳐!”
“그래. 알았다.”
호라티우스 역시 품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당연히 글라디우스는 아니고 그보다 짧고 폭이 넓은 푸지오였다.
가볍게 몇 번 손 안에서 검을 돌리다가 검자루를 꽉 쥔 호라티우스는 검을 들고 짓쳐 드는 선원의 배를 단번에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크허헉!”
호라티우스를 향해 짓쳐 들던 선원은 피와 함께 내장을 밖으로 쏟아내며 절명했다.
“죽여!!”
하지만 선원들도 일반인들은 아닌 모양인지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호라티우스를 압박했다.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호라티우스는 저들을 이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가끔 대련하는 괴물이 하나 있는데 말이다. 그 괴물때문인지 어지간한 전투는 어린얘들 장난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네놈들 인생이 가여워서 내가 혓바닥을 길게 늘어놓을 때 그만두는 게 좋을 거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새끼가!”
호라티우스는 한숨을 내쉬며 단검을 내지르는 선원의 품으로 파고든 다음 그의 목을 푸지오로 갈랐다.
푸아아아악!
무기가 짧은 대신 초근접전을 펼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피가 많이 튈 수밖에 없는 상황, 호라티우스는 얼굴을 뒤덮는 뜨거운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무정한 게 아니라 네놈들이 병신짓을 했다는 것만 알아둬라.”
허망한 표정으로 쓰러지는 선원의 손에 검을 빼앗은 호라티우스는 양손에 단검을 들고 선원들과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술집주인은 몸을 낮춘 채 벌벌 떨며 얼른 이 끔찍한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 올라선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발목을 가르려는 선원의 검을 피해 몸을 빙글 돌리며 바닥에 내려섰다.
“커헉!”
하나 호라티우스의 머리가 바닥으로 향했을 때 양손에 쥔 검 역시 놀고 있던 것은 아니기에 그렇게 휘두른 검에 의해 또 다시 누군가 죽음을 맞이했다.
때문에 그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누군가 쓰러지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척된 이상, 선원들도 호라티우스도 멈출 수 없었다. 한쪽이 완전히 전의를 잃거나 생명을 잃을 때까지 전투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호라티우스는 아주 노련하게 저들의 신체를 절단했고 그로 인해 넓지 않던 술집은 선원들의 피로 뒤덮일 수밖에 없었다.
쿵!
“커헉!”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포박된 한 사내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쯔. 시간을 끌라고 했더니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었군.”
호라티우스는 뒤를 바라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탓을 하려면 저 새끼들 탓을 해라. 그리고 너라고 달랐을 거 같냐?”
“뭐. 나라면 깔끔하게 서너 명을 죽인 뒤에 시작했겠지.”
포박된 사내에 이어 문에 들어선 사내는 바로 나디르였다.
“어련하겠어.”
호라티우스는 코웃음을 치다가 살아남은 몇몇의 선원들에게 살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계속하시겠다?”
챙그랑!
“아.. 아닙니다.”
“그.. 그만 하겠습니다.”
선원들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자 호라티우스는 거침없이 저들에게 다가간 뒤 발과 주먹으로 꿇어앉은 저들을 후드려팼다.
“그러니까!”
퍼억!
“컥!”
“이 새끼들아!”
“크헉!”
“생각 좀 하고!”
“으아악!”
“살아라!”
우두두둑!
“크아아악!”
호라티우스는 저들의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부러뜨려버렸다. 호라티우스는 피가 튄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낸 뒤 나디르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 새끼가 가레노스인가?”
“일단은.”
“일단은?”
“보다 확실한 건 족쳐보면 알겠지.”
나디르의 말에 호라티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아니면 엄한 놈들만 때려잡은 건가?”
“엄한 놈? 큭. 괜한 소리를 하는군. 무고한 인생 따위가 어디있다고.”
“하긴. 적어도 로마 내에서 칼을 들고 설칠 생각은 못했겠지.”
호라티우스는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포박된 사내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이 새끼야. 대가리 뒤룩뒤룩 굴리지마라. 네가 가레노스이든 아니든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토해내야 할거야. 그러지 않으면 네 내장을 하나씩 하나씩 토해내게 될 거다. 알았냐?”
“아.. 알겠다.”
“알겠다?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호라티우스는 스산하게 웃은 다음 사정없이 가레노스로 보이는 사내를 두들겨 팼다.
“크허허헉!”
나디르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쯔. 깔끔하게 새끼손가락부터 자르고 시작하면 될 것을.”
*
호라티우스와 나디르가 가레노스로 여겨지는 사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각, 테세우스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방문을 받아야만 했다.
“나와 그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만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크라수스······.’
테세우스를 찾아온 온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였다. 그가 테세우스에 무슨 볼 일이 있어 이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그의 말따라 그와 테세우스의 관계는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인데 말이다.
테세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크라수스에게 말했다.
“앉으시지요.”
“나를 말려죽이려는 사람치고는 호의적이로군요.”
크라수스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테세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람들은 보통 본인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는 기억하지 않고 본인이 당하게 된 일만 기억하더군요. 참으로 편리한 기억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하하하하”
크라수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크라수스도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런 나를 문전박대하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한 트리뷴의 너그러움이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테세우스가 표정을 굳히고 크라수스를 바라보자 크라수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말하지요. 급한 건 트리뷴이 아니라 나 크라수스이니까.”
잠시 말을 멈춘 크라수스가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프라에토르(법무관).”
“무슨 뜻입니까?”
“작년은 물론 올해의 프라에토르 숫자는 6명이었습니다. 내년 역시 6명으로 확정된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런 것에 집중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그랬군요. 한데 내년 프라에토르의 숫자를 8명으로 증원할 생각입니다. 필요에 따라 8명까지 선출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예외적인 상황도 아니지요.”
“그걸 왜 내게? 음?”
테세우스는 다시 미간을 좁히며 반문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트리뷴의 내년 프라에토르 선거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겠지요.”
현재 트리뷴(호민관)의 정무관 진출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바로 술라의 코르넬리우스 법으로 인해 말이다. 트리뷴의 정무관 진출이 가능하더라도 쿠에스토르(재무관)부터 시작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다시 말해 크라수스의 발언은 트리뷴 부활을 기본으로 인정하고 아울러 예외적으로 법무관부터 정무관에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쓰겠다는 소리였다.
“나를 매수할 생각이라면!”
“트리뷴 부활은 켄소르에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당선된 이상 확정된 일이니 나의 지지와 무관하게 이뤄질 일입니다. 아울러 나를 말살시키고 얻은 명예라면 프라에토르 역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것들로 테세우스 당신을 매수하려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겁니다.”
“······.”
“재산의 절반! 내 재산의 절반을 당신의 손에 맡길 것이오.”
크라수스를 서둘러 몰락시키려고 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그가 가진 금력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금력에 대해 천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지만 테세우스는 금력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크라수스에 대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그가 가진 금력의 규모에 대해 기함을 터트리길 몇 번이던가? 그런 그의 재산의 절반이라면 가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산일 것이다.
“트리뷴. 아니 테세우스. 당신이라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여겨지는군요. 또한 내가 지금 헛소리나 지껄이고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 재산 전부를 사용해서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테세우스 당신을 몰락시키는 것에 사용할 것이오. 당신은 상처뿐인 영광만 얻게 되겠지.”
“······.”
“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를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을 모르지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자. 재물에 미친 자. 맞는 말입니다. 하나 그렇지 않은 로마인도 있더이까? 당신은 결국 또 다른 크라수스에 의해 삶이 피폐해지게 될 겁니다. 사실 그 방법이야 무궁무진하지요.”
테세우스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방문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잠시 혼란을 느꼈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는 냉철한 눈으로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하나 내가 그런 어려움도 예상하지 못하고 당신을 도모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했기에 말을 꺼낸 것이 아니오. 하지만 당신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니오? 아니 그렇습니까?”
“나는 당신이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을 것이라 여겼습니다만······.”
“아. 아 폼페이우스. 이제 트리뷴께서 저와 대화할 마음이 생긴 것 같군요.”
크라수스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테세우스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