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234. 바로 법이다.
234.
테세우스는 키케로를 가만히 주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렴 저력이 있어야지요. 크라수스를 비롯한 뭇 귀족들은 물론 폼페이우스와 로마의 저명한 인사들 역시 나의 안위를 위협하는데 그나마 손잡을 동료가 변변치 않아서야 무슨 수로 그것을 버티겠습니까? 당장 키케로, 당신만 해도 내게 호의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해요. 당신에게 어떤 사감은 없습니다. 다만!”
“말이 자꾸 헛돌고 있군요. 내게 사감이 있든 없든 나를 견제하고자 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했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카이사르에게 야심이 있건 없건 대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건!”
“그가 야심이 있고 걸출한 사람이라면 나로서는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내게 쏟아지는 불필요한 적의와 관심을 그가 가져갈 테니까. 게다가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는데 카이사르만 야심이 넘치는 사람입니까?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는? 키케로 당신은? 야망이 없습니까?”
자신의 질문에 키케로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머뭇거리자 테세우스가 다시 일갈했다.
“당금 로마에 야심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 모두가 제 욕망을 이루고자 달려갑니다. 당해의 콘술인 부르불리우스는? 켄소르에 오르고자 하는 브루투스를 비롯한 저명한 로마의 인사들은? 야망이 없습니까?”
“술라와 같은 독재자가 다시금 출현하느니 부패한 공화정이 더 낫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입니까?”
테세우스는 싸늘한 눈빛으로 키케로를 바라봤다.
“당신은! 당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오. 과거 술라에 대항해 로스키우스 사건을 대변하고 데메트리우스 사건도 함께한 이유도, 나를 트리뷴에 올려 견제하려 한 것도, 지금 카이사르에 대해 성토하는 것도 모두 공화정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오. 당신의 의도는 고결할지 모르겠으나 한 명의 독재자보다 부패한 공화정이 낫다라······. 키케로 당신은 당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듣고자 하는 것만 들을 뿐이오.”
“정녕 술라와 같은 독재자가 다시 또 로마에 출현하게끔 내버려 두겠다는 소리요? 야망을 가진 자들이 정점에 이른 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나라면 당신을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카이사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하기는 하나 키케로 당신은 정작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소. 카이사르가 문제가 아니오. 아시겠습니까? 로마의 일곱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키니우스 수페르부스 이후로 공화정이 시작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야 당연히 권력을 어떤 한 사람이 독점하지 못하게 하고자!”
“그 역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지금 그게 제대로 시행되고 있습니까? 아니 공화정의, 나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집행되고 있습니까? 법은 권력자들의 수단이자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 아닙니까? 트리뷴? 공화정이 제대로 시행되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어도 될 관직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트리뷴이라는 관직이 나타난 것은 둘째치고 이제는 그 권한까지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공화정의 의를 무너뜨려놓고 이제 와 이런 공화정 체제에서 권력의 독점을 막겠다? 그게 가능할 것이라 보는 것이오?”
“······.”
키케로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권좌를 마련해 놓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까지 제 손으로 모두 치운 후에 그 자리에 앉으면 아니된다고 말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법을 어겨도 징치를 받지 않는다면 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도적이 법을 지킬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리우스, 술라,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그리고 카이사르? 그 후에는 또 어떤 자들이 비어있는 권좌를 차지하기 위해 달려갈 것 같소? 키케로, 당신이 그 권좌를 앉을 수 있다면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다면? 그때에도 공화정을 위해서 마다할 것이오? 키케로 당신이 앉지 않는다면 어차피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공화정을 무너뜨릴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
키케로는 여전히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독재자의 손에 제거를 당하느니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독재의 자리에 그만큼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으음.”
“한 명의 독재자보다 부패한 공화정이 낫다고 했소이까? 그건 당신이 부패한 공화정, 곧 귀족이기에 할 수 있는 소리에 불과하오. 당신이 평민이라면? 당장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지부터 의문인 상황이라면 그때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차악과 최악의 문제에 불과할 테니 무엇이 낫다 말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발언일 테지만 권력을 지닌 절대 다수가 부패를 지지하고 자정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이라면 독재자의 출현 역시 순리에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지요.”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말했다.
“당신이 정말 공화정, 아니 지금과 같은 귀족정이라도 유지하고 싶다면 법과 제도부터 정비해야 할 것이오. 문제의 원인은 내버려 두고 결과만 쫓아다녀서야 그 무슨 성과가 있겠습니까?”
잠시 테세우스의 집무실에 정적이 흐른 뒤 키케로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 켄소르 부활과 트리뷴 부활은 혹 그것을 위해?”
“당신처럼 거창한 대의같은 건 내게 없습니다. 앞으로도 딱히 내세울 생각도 없고. 하나 당장 이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만 눈여겨 보시오. 지금은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이라 그나마 덜한 것입니다. 내가 키케로, 당신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저들의 마음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조금 나눠주면 되는 일이니까. 이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키케로는 굳은 표정으로 어떤 말도 뱉지 못하고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배를 곯는 저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독재자가 더 나은 인물이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것도 주지않고 빼앗기만 하는 공화정이 저들에게 훌륭한 체제겠습니까? 키케로, 당신이 염려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독재. 그로 인한 부패야 작금의 공화정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게 비극이고.”
키케로는 온몸에 진이 빠지는 것같은 느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테세우스의 날카로운 검이 자신의 모든 것이 낱낱이 해부해버리는 것같은 충격을 받았다. 공화정을 위해서라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기존 기득권층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그러니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으랴? 그의 말이 맞았다. 아직 대두되지도 않은 카이사르가 문제가 아니었다. 카이사르가 사라지면? 제이 제삼의 카이사르, 아니 술라가 나타날 것이다. 그 흐름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테세우스를 설득하고자 준비해온 모든 말들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스러져버렸다.
머릿속이 멍하니 비어버린 키케로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하여 한 가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왜 카이사르입니까?”
“음? 혹 왜 크라수스나 폼페이우스가 아니냐고 묻는 것이라면······.”
키케로는 고개를 저으며 이번에는 강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다시 질문했다.
“왜 당신이 아니고 카이사르입니까?”
테세우스는 키케로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잠시 멈칫했다가 쓰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키케로 당신은 나를 너무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적임자입니다. 저는 카이사르가 될 수 없고 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독재가 현 시대의 흐름이라면! 독재의 자리를 원치 않는 자가 그 자리에 앉는 것도 차악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나 한 가지 간과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원하는 자에게 그만한 능력이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원하지도 않는 자에게 원하지 않는 일에 대한 탁월한 능력이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마련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리라 사료되는군요.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므로 오늘의 대화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요.”
“트리뷴의 권한 부활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마음이 강합니다만 켄소르 부활에 대해선 내심 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한 말 중 하나를 취소하도록 하지요.”
다시 서류를 뒤적거리려던 테세우스가 자신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키케로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을 트리뷴에 추천한 일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그 발언. 취소해야겠습니다.”
“음?”
“켄소르 부활은 이미 확정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트리뷴의 권한 부활을 지지할 생각입니다. 당신이 카이사르와 어떤 약조를 맺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지켜본 당신의 성향을 생각할 때 기준을 벗어날 정도의 약조를 맺지는 않았을 테고 법과 제도를 운운한 당신이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이뤄갈지도 궁금해지는군요.”
테세우스가 침묵을 지킨 채 자신을 바라보자 키케로는 품에서 둘둘말린 서류를 꺼내 테세우스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탁!
미약한 소음이 울려 퍼지자 테세우스는 서류를 힐끗 바라본 뒤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키케로르를 다시 바라봤다.
“크라수스와 연관된 자료입니다.”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크라수스를 칭찬하는 자료는 아니지 않겠는가?
“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이걸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콘술로서 그리 현명한 처사는 아닐 텐데요?”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부르불리우스의 사주라 생각한 테세우스의 발언이었다. 키케로는 현재 그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이지요. 크라수스와 연관된 자가 어찌 콘술뿐이겠습니까? 테세우스 당신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당신이 하는 일 그 자체를 기꺼워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테세우스 당신 말대로 현재 어떤 권력기반도 갖추지 않은 카이사르를 경계한 것 역시 이 일들과 아예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키케로의 발언에 테세우스는 그가 내려놓은 서신에 다시금 눈길을 주었다.
“크라수스를 휘청거리게 할 서류들인 모양이군요.”
“세상이 넓은데 눈과 귀가 없었겠습니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린들 가리는 것은 내 눈일 뿐이지요. 다만 그와 척을 질 사람이 없었을 뿐. 그런데 나타났군요.”
‘보복의 부담을 질 필요없이 흠집을 낼 수 있는 기회이니······.’
테세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키케로에게 말했다.
“출처는 묻지 않겠습니다.”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크라수스와 관련된 자료이긴 합니다만 서류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별다른 연관점이 없는 이상 서류만으로는 크라수스는 물론 테세우스 당신도 누가 이 자료를 건네줬는지 알 길이 없을 겁니다. 물론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할 생각이 없습니다.”
“으음.”
테세우스는 침음을 뱉으며 키케로를 바라봤다. 그럼 공신력이 그만큼 미미해진다는 소리인데 이런 증거는 자잘한 증거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키케로가 그런 서류를 중요한 것처럼 가져왔을 리는 만무했으니 테세우스는 다시 키케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류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소리겠군요.”
“타불라리움에 보관되어 있던 자료입니다. 대부분은 크라수스의 손에 의해 처리되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지요.”
타불라리움이라면 로마의 공식 기록 문서와 법령 보관소다. 그런 곳의 문서를 어떤 관직도 없는 크라수스가 훼손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하겠지만 아마도 그런 종류의 증거는 아닐 것이다. 크라수스가 그렇게 허술한 위인은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이 문서가 무엇과 관련된 문서인지 거의 즉시 알아차렸다. 지금과 같은 권력을 구축하기 이전의 문서라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토지문서와 저택문서로군요.”
테세우스의 말에 키케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글쎄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제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오늘 처리해야 할 모든 서류보다 중요한 서류를 가져오신 분을 홀대했으니.”
“뭐 이걸로 저희 관계는 회복된 겁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언제 또 틀어질지 모르는 게 모순이겠지만 말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하는 테세우스의 말에 키케로 역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 바닥이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지켜보지요. 트리뷴 테세우스.”
테세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키케로가 내민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