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33화 (233/298)

# 233

233. 바로 법이다.

233. 바로 법이다.

나라가 망하기 전 제일 먼저 무너지는 것이 있다.

근간이 되는 법이 무너진다.

법이 유명무실해지며 공정하게 집행되지도 않는다. 있는 자는 부당한 일을 해도 처벌받지 아니하고 없는 자는 부당할 정도로 과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누구도 법을 인정하지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 더 가지고 더 취하려는 탐욕만이 나라 안팎으로 들끓는다. 법은 지켜서 뭐하겠는가?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은 재물과 권력을 가지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지키는 놈이 병신이지.

난세? 법이 법의 권한과 권위를 상실하고 모든 이들이 자기가 법이라고 말하는 그때가 바로 난세다.

그 난세를 종식하는 자는 모두가 제 이득만을 좇을 때 대의, 곧 법을 지키고 법을 올바로 집행하려는 뜻을 가지고 행하는 자다.

세계는 우후죽순 일어난 비루한 나뭇가지들 중 그나마 건실한 나뭇가지 하나를 택해서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워진 나뭇가지는 얼마간 살을 붙이고 싹을 틔우다가 다시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다. 왜냐고? 말했다시피 우후죽순 일어난 가지 중에서 그나마 건실한 나뭇가지였을 뿐이다. 또한 탐욕스러운 인간이 내세울 유토피아란 결국 그게 전부다.

종국엔 비루할지언정 내세울 나뭇가지 하나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이득만을 내세우는 것이 최고인 세계.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면 어디랴?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세상을 탓할 것도 없다. 세상을 탓하는 본인조차도 타인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배 채우기만을 궁리하고 있으니까. 배가 채워진 뒤에는? 역시 제 살만 뒤룩뒤룩 찌우겠지. 그저 저들이 누리는 부를 자신이 누리지 못함을 시기할 뿐이니 누가 누구를 비난한단 말인가?

테세우스는 차디찬 밤바람에 연회장에서 카이사르와 함께 마신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 것을 느꼈다.

‘나 역시 내 안위와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저들의 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 게 당연한 세상이니까. 무려 수천 년 뒤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만 걷는다. 태어난 자가 죽고 새로이 건립된 나라가 멸망하듯 결국 세계도 멸망한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예정된 멸망을 잠시 거닐다 갈 뿐이니 실로 허망하고 가련할 뿐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배부르다. 더 많은 재산은 가져서 뭐하겠고 더 많은 권력은 가져서 무엇하겠는가? 내 한목숨 부지하기에는 충분하니 스러져 없어질 헛된 야욕 따위를 위해 안 그래도 가련한 인생을 갈아 넣을 이유가 없다. 그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다 버리고 떠나면 될 일이다. 이 시대 어디에서도 로마만큼 발전된 문명을 가진 곳을 찾아보기 어렵겠지만 한목숨 부지하는 일은 벌써 전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내 배를 채우고자 달려온 그 길 위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달려온 이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가 채워졌다고 이제 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다면 남은 이들은 어쩌면 비탄 가운데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건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태도였다.

자신은 테세우스지만 동시에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고 로마의 트리뷴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대개 과정이 결과를 도출하는 법이지만 간혹 결과가 과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크라수스 및 로마의 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일? 자신의 안위와 무관하게 위험을 자초한 일? 법을 세우기 위해?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겠지만 결국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었다.

사실 이 모든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의 살길 정도는 열어놓고 가야만 마음에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 수부라 지구에서만 하더라도 자신을 붙잡고 눈물로 간청하며 하소연하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저들의 눈물이 마음을 바꿔 먹게 만들었다. 저들로서는 바라고 바래도 닿을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면 작금의 자신에게는 다소 위험할지언정 저들의 바램을 이뤄줄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였다. 자신의 안위보다도 로마의 개혁을 우선한 것은. 결과는 자신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카이사르는 건실한 나뭇가지다. 그의 야망이 그를 망칠 수도 있겠지만 잡음 없이 하나의 기준으로 삼기에 그보다 적절한 사람도 로마에 드물다.

먼저 그는 로마의 가장 오래된 가문 유니아 가문의 사람이자 민중파의 거두인 가이우스 마리우스 처조카이자 킨나의 사위다. 귀족과 평민 두 파벌 모두에 발을 담근 신분이니 양측 모두를 규합할 수 있는 매우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 플라멘 디알레스(유피테르 고위신관)였음에도 소아시아에서 트리부누스 라티클라비우스(넓은띠 대대장)를 지냄으로 매우 특수하고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관과 군관이 가져다줄 이득을 모두 취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앞으로 있을 폰티펙스 막시무스(최고위 제사장)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는 로마의 정치에 아주 밀접하게 관여할 수 있게 된다.

로마의 정치는 종교와 결부된 부분이 많았기에 결정을 내리기 미묘한 문제들은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한다. 종교적 절차가 필요한 부분을 그의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사실 정치문제 중 미묘한 문제가 어디 한둘이던가?

여기서 호민관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게 될 자신의 지지 선언이 이어진다면? 바야흐로 카이사르의 시대가 열린다. 그쯤 되면 그와 비교될 대상은 폼페이우스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크라수스는 어떻게든 그 전에 몰락하게 만들 생각이지만 어쨌든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를, 자신은 카이사르를 지지하는 구도로 이어지리라.

영리한 자였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자신을 지지할 것을 요청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친우 관계를 맺었으니 실로 영리한 자가 아닌가? 과연 카이사르라고 해야 하나? 의도야 어쨌든 그는 자신의 호의를 사는 데 성공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폼페이우스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카이사르가 소아시아에서 활약하고 킬리키아 해적을 토벌하는 군공을 세우긴 했으나 술라 시절부터 숱한 군공을 세웠고 히스파니아, 에트루리아, 달마티아 세 지역의 토벌을 완수하는 군공을 세운 폼페이우스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신분 자체가 평민 계급이다.’

크라수스를 비롯한 수많은 귀족 계급도 그와 함께할 것이니 향후 누가 권력을 잡을 지는 테세우스로서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일단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으로서는 켄소르가 켄소르의 일을 충실히 하게끔 고삐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뇌리를 번뜩이며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저들의 탐욕을 이용하면 될 일이다.’

테세우스는 켄소르 선거를 치를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어찌 다룰 것인지에 대해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울러 폼페이우스의 득세를 저지하는 유용한 패로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

석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켄소르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1년 임기인 다른 정무직과 다르게 켄소르직은 임기가 5년이었고 지금껏 켄소르 선거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다른 선거와 별개로 멘시스 마이우스(5월, 여신 마이아의 달) 두오데위긴티(18일)에 켄소르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테세우스의 호민관 사무실은 언제나 그렇듯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지는 5월의 어느 날 아침,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사람이 테세우스를 찾아왔다. 그는 바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였다.

“오랜만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레무리아가 한창일 텐데 이 복잡한 곳을 찾아오시다니 의외로군요. 이곳이 악령을 쫓는 신전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레무리아는 9, 11, 13일 이렇게 삼일동안 거행되는 행사로 죽은 사람들이나 사악하고 무서운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다. 이날은 레무리아가 거행되는 첫날로 곧 9일날 아침이었다.

키케로는 말없이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당신을 트리뷴에 추천한 일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던 건 확실합니다.”

“지금 사과하는 겁니까?”

“사과한다면 받아주시겠습니까?”

키케로의 말에 테세우스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주변의 서기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저들은 키케로를 힐끗 바라본 뒤 테세우스의 집무실에서 나갔다.

주변이 다소 조용해지자 테세우스가 키케로를 바라봤다.

“보다시피 길게 대화를 나눌만한 상황이 아닌지라 용건만 간단히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누가 봐도 내게 사과하고자 찾아온 것같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키케로 역시 테세우스를 마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이사르, 그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켄소르 선거에 나설 사람은 카이사르가 아니라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입니다만?”

테세우스가 모른척 넘어가려고 하자 키케로가 다시 말했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보다 나이가 어리고 어떤 관직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루투스 뒤에 카이사르가 있다는 것 역시 모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카이사르 그는 위험한 자입니다.”

“이상하군요. 카이사르가 위험하든 아니든 그 이야기를 제게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음.”

키케로의 침음에 테세우스는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려 펄럭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정말 위험한 자들은 지금껏 로마를 좀 먹는 이 사람들이겠지요. 할 말이 그것뿐이라면 이만 저는 트리뷴의 일을 해야겠습니다.”

“카이사르, 그는 공화정을 무너뜨릴 자입니다! 당신도 로마의 트리뷴이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겠지요.”

“그것 참. 이상하군요. 공화정이 언제는 무너지지 않고 있었습니까? 공화정이 무너진다면 그건 카이사르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할 정도로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리고 공화정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세네투스가 무너지는 것이라 해야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군요.”

“부패한 이들을 쳐내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하나 그 일은 그 일로 그쳐야 할 문제입니다. 그 일을 자신의 야심을 위해 사용한다면 부패한 이들과 대체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키케로. 그 누구도. 그 누구도 무상으로 봉사하지 않습니다. 데메트리우스 사건을 당신에게 가져갔을 때 정의를 부르짖은 당신만 해도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는 키케로 당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조차 당신에게 어떤 보상이 있을 것을 알고 나서야 데메트리우스 사건에 함께하지 않았습니까?”

“······.”

“부패를 척결하고 그로 인한 이득은 취해서는 아니 된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이자 현실에서 벗어난 주장이란 말입니까? 위험을 감수한 일에 대해 어떤 보상도 없다면 대체 누가 나서서 그 위험을 감수하겠습니까? 켄소르 부활을 주장한 건 그 누구도 아니라 카이사르였습니다. 그러니 그 과실을 맛보는 것 역시 카이사르가 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말을 잠시 멈춘 테세우스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키케로를 바라봤다.

“게다가 신기한 일이군요. 당금의 카이사르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딱히 위협적인 행동을 한 일이 없을 텐데요? 세인들의 평가 역시······.”

“당신이 카이사르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굳이 신경 쓸 일도 없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득세해봐야 폼페이우스의 귀환 아래 묻혀버릴 테니까.”

“으흠. 그 말은 여전히 나를 경계한다는 소리로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제 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테세우스, 당신은 두려운 사람이오. 물론 일련의 일을 겪으며 당신에게 야심이 없다는 걸 확인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입니다.”

“글쎄요. 저 역시 딱히 두려울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당신은 당신이 벌일 일들이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 모두 예측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요? 모두라니? 저를 너무 크게 보시는 것 같군요.”

“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로마의 힘을 한데 모아 카이사르에게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 작자는 자신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이 키케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신의 그 같은 행동은 어쩌면 로마를 반으로 쪼갤 지도 모릅니다!”

“음.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나 카이사르를 그토록 경계하는 이유를 저는 아직도 짐작하기 어렵군요.”

“정녕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까? 카이사르 그자는 술라 그 이상의 저력을 가진 자요. 나도 알아본 그의 야심을 당신을 몰랐다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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