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31화 (231/298)

# 23

23. 전설의 시작.

23.

서후는 가슴에 붉게 물든 천을 감은 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다가 자신 앞에 앉아있는 데메트리우스에게 말했다.

“앞으로 볼 일은 없겠군요.”

그 말에 데메트리우스는 서후의 의중을 샅샅이 파악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다가 탁자 위에 묵직한 주머니를 올려놓았다.

철그럭

“여기 자네의 보상일세. 모두 백 아우레우스일세.”

1 아우레우스(Aureus, 금화)는 25 데나리우스(은화)에 해당했다. 그러니 2500 데나리우스나 1만 세스테르티우스에 해당하는 상당한 재물이었다.

이는 노예를 3~8명까지 구매할 수 있는 막대한 금액으로 최상등급 팔레르노 포도주 1리터도 4 세스테르티우스에 불과했다.

서후는 이 시대 물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머니 속의 동전이 금화인 것을 봤기에 상당한 금액이겠거니 추측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서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기억을 잃었다더니 체감이 안 되는 건가?”

“상당한 금액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 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자네는 눈빛이 참으로 평온하군. 표범과 사자를 죽인 사람이라기보다는 사색에 잠긴 학자처럼 보일 지경이야.”

데메트리우스는 단순히 자신의 눈빛이나 평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의도를 분명히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분노를 보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돌려서 묻고 있는 것이었다. 예상할 수 없는 반응은 두려움을 낳으니까.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건 본능에 가까웠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니 구태여 이 자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서후는 데메트리우스를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물에서 건져서 뭍으로 던졌으니 그 점에 대해 유감스러운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은혜와 원한을 상쇄하겠다는 서후에 말에 데메트리우스는 미간을 좁혔다. 인간이란 존재는 은혜는 영원히 잊고 원한은 영원히 기억한다. 이는 신뢰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해보게.”

“로마시민권을 재물로..”

서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메트리우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 뭐? 시민권? 재물로? 하하하 재물로 사겠다고 말하는 건가? 지금?”

그렇게 말한 뒤 데메트리우스는 다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래서였군. 그래서였어. 어차피 내 손에서 사라질 재물이니 별 관심이 없던 거였어. 이것 참. 자네 로마시민권이 얼마인지는 아나?”

‘역시 저것으론 터무니없이 부족한가?’

서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데메트리우스에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정답을 말했군. 로마시민권이 얼마인지는 나도 모르네.”

“그게 무슨?”

그는 해방노예다. 그것도 재물이 아주 많은 해방노예. 그가 군인이었을 리는 만무하니 시민권을 얻었다면 분명 돈을 주고 샀을 것이다. 그런데 모른다고?

“오해하지 말게.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못 알려주는 거네. 윗분들 마음에 달린 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나? 그러니 그저 엄청난 금액이라고 말할 수밖에.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단순히 재물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일세. 아아. 물론 그걸로는 택도 없겠지.”

데메트리우스는 자신이 준 주머니를 가리키며 서후를 비웃었다.

서후가 로마시민권을 얻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유민과 심지어 노예를 위한 법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만 로마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 시민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이라고 할지라도 투표권이 없는 시민들은 로마법을 온전하게 누린다고 볼 수 없었다.

“자네도 로마시민권의 중요함을 아는 걸 보니 머리가 트인 자로군. 좋아. 아주 좋아. 이렇게 함세. 나를 도와주면 나도 자네를 돕겠네. 어떤가? 오늘 보니 자넨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졌더군. 그래서 내 제안도 거침없이 받아들인 거였나? 어쨌든 이번의 내 제안도 자네한테 아주 솔깃한 제안이라 여겨지는데..”

윗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이미 한 번 그런 절차를 밟은 데메트리우스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자신은 어떤 식으로 그들과 접촉하고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놈을 내가 어떻게 믿고?’

썩은 동아줄도 데메트리우스보단 나을 것이다.

‘일단은 자유민이 된 것으로 만족하자.’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앞서 꺼낸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거래 관계로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데메트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게 자네의 선택인가? 아쉽지만 별수 없지. 잘 알겠네.”

서후는 그런 그에게 가볍게 인사했을 뿐, 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

서후는 한시도 경기장에 있고 싶지 않아 도크토레 쿠리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폼페이 시내로 들어갔다.

로마인들의 집안에는 부엌이나 물, 화장실이 없다. 부엌이 있어도 무언가를 구울 수 있는 최소한의 설비가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도무스나 인술라 2층에 사는 부자들만 갖추고 있는 시설이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중목욕탕, 공중화장실과 같은 공공편의시설을 이용한다. 식사 역시 포피나(Popina, 음식점)나 테르모폴리움(Thermopolium, 간이식당)을 주로 사용했다. 도시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집인 셈이다.

그렇기에 도시는 늘 북적거렸다. 통상적으로 로마인의 일과는 해가 지기 전에 모두 끝난다. 따라서 폼페이시 역시 해가 지기 전에 일을 마치려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저녁 짓는 냄새와 시내의 활기찬 모습에 서후는 시장기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연회라..’

쿠리오는 곧 연회가 이루어진다며 배라도 채우고 이동하라고 했다. 연회는 밤늦게까지 벌어지고 그 연회에 참석하는 자들의 면면은 어중이떠중이 따위가 아닌 폼페이의 쟁쟁한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단 검투경기에서 승리한 검투사들도 오늘의 연회에는 참석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역이 빠지면 어떻게 하냐고 자신을 추켜세웠지만 그건 여러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관람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동물원의 원숭이가 우리에서 도망치지 않게끔 하는 일 말이다.

‘시민권을 얻으려면 유력가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제길.”

데메트리우스가 유력가들과 친해질 수 있는 법을 노예 코락스를 통해 넌지시 전해줬을 때 상처고 뭐고 나발이고 간에 당장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서후는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눈 딱 감고 오늘 하룻밤만 같이 자면 된다고 했다. 여성들은 로마시민이라 할지라도 투표권이 없다. 그 유력가들이 여성이겠는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는데?

‘씨발. 미친 새끼들이.’

자신이 노예였다면 거부권도 없었다. 만약 오늘 계약이 종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 계약 내용에 적혀있지 않나? 몽둥이로 맞고 쇠사슬로 묶고 불로 지지고 칼로 죽여도 좋다고. 그게 이런 식으로 적용될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거부권이 있는데도 왜 연회에 참석하지 않냐고? 유력가들 아닌가? 쟁쟁한 로마시민권자에 귀족이기까지 한, 저들은 법을 자신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의 심기를 상하게 한다면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이미 상하게 한 셈이지만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는 것보단 낫다.

‘자칫하면 죽여버릴지도 모르겠으니까.’

또한 연회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연회가 끝날 시점이면 이미 깊은 밤이다. 그때는 어디서 묵을 곳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테르모폴리움에서 간단히 먹고 숙소부터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길바닥에서 자야 할 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 서후의 눈에 저 멀리 절도있게 움직이는 소규모 집단을 발견했다. 폼페시의 야경꾼(Vigiles)이었다.

그들은 화재를 진압하고 순찰을 하고 도둑을 잡는 등 소방관과 경찰관의 임무 모두를 수용하는 군대조직 중 하나였다. 총 9명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8명의 훈련병과 1명의 상관으로 이뤄져 있었다.

서후는 저들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을 잡으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시대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때문에 서후는 급히 오밀조밀 늘어선 건물 틈으로 모습을 숨겼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두움비르(duumviri, 자치 집정관)께서 직접 명하신 일이니 반드시 잡아야 한다. 아우레우스를 훔쳤다고 하니 액수가 상당한 만큼 주변을 수소문하면 그걸 쓴 자를 찾아내는 건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야. 게다가 그 주인은 어린 소년이다. 그러니 반드시 찾아라!”

“예! 알겠습니다.”

야경꾼들은 서후가 숨어있던 곳을 지나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탐문 하는 곳은 뻔했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들 말이다.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했고 서후의 몸집이 주변 사람들보다 작았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면 저들과 그대로 맞닥뜨릴 뻔했다.

아니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내가 아우레우스를 훔쳐?’

-로마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기.- (읽지 않으셔도 본문 내용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시민권의 종류는 세 가지입니다.

1.로마시민권.

완전시민권 참정권, 로마 국가의 보호를 누릴 권리, 의무또한 주어지는 시민권.

2. 라틴 시민권

참정권X. 권리나 의무는 로마시민권과 동일.

3. 동맹시민권.

로마의 동맹국(사실상 로마 질서에 편입된 속국)의 시민들에게 발부되는 시민권.

참정권X, 로마군에게 보호받을 권리X, 감세혜택 등등의 권리X 대신 병역의 의무가 축소되어 로마군의 보조역할만 맡으면 되는 시민권.

*동맹시 전쟁으로 (대표인물: 술라, 마리우스 참전) 로마 외에도 이탈리아 본국 전체로 로마시민권 확대. 고로 이 시기에 속주는 이 본국을 제외한 로마영토를 말하는 것.

로마의 계급구조는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1).로마시민.

1.파트리키(귀족) 원로원 입성 계급.

2.에퀴테스(기사) 말 그대로 말 타는 사람으로 군무 종사자였으나 일정재산과 자격을 구비한 사람을 에퀴테스로 부르게 됨.

3.플레브스(평민)

파트리키와의 결혼은 금지되고, 관직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공화제 초기의 신분투쟁 결과, 호민관직의 설치,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법 ·호르텐시우스법의 공포(公布) 등으로 양자의 정치적 권한의 차는 소멸되고, 플레브스 중 부유한 자는 파트리키와 더불어 신귀족(노빌리타스)을 형성하였다

지금은 공화정 후기므로 평민도 정무관직에 오를 수 있습니다. 민회도 종류가 크게 세 종류입니다만 이건 다음으로 패스하겠습니다.

공화정 국가인데 웬 귀족이고 평민이냐? 라고 물으신다면(일단 저는 그랬습니다.) 왕정국가에서 공화정 체제로 변모했고 거기서 다시 제국 체제인데 이게 또 동양의 중앙집권제랑은 또 다르더군요; 아무튼 그래서 그렇습니다.

2.)

1.자유민 freeborn 자유인으로 태어난 자들.

2.해방노예 freedman, freedwoman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자들.

후에 제국 시대에 무슨 황제인지 지금 기억이 안나는데..(패스하겠습니다.;) 자유민계급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은 제가 알기로 원칙적으로 freeborn 자유민인 경우로 해방노예와 약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해방노예는 시민권을 얻어도 공직에 나가지 못하는 부분과 상통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3.)

1. 공공노예.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노예. 공공 노예는 상원의 사전 허가와 더불어 행정 장관의 선언에 의해 해방될 수 있었음.

2. 사노예.

패스하겠습니다.

본문에도 거론했지만 2.) 3.)에 해당하는 계급은 없는 일단 로마 주류사회에서 아웃 오브 안중이라 보시면 됩니다.

1.)에서 평민 중 무산자 계급이 있는데 이 무산계급은 백명이든 천 명이든 투표권을 한 표만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한표조차 의미를 가진 적이 없는데 로마의 과반수제라 그 한 표가 의미를 갖기 전에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무산계급은 군부화를 촉진시키는 요소 중 하나인데 이건 후에 간단하게 글로써 짚고 갈 일이 있을 듯하니 패스하겠습니다.

당연히 얘들도 주류 사회에서 아웃 오브 안중입니다.

로마시민권 가격은 어딜가나 겁나게 비쌌다.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 그래서 대체 얼마냐? 얼마냐고? 하면서 계속 찾았는데.. 이게 시대별로 상황별로 가격이 변했기에 정해진 가격이 없는 걸로.. 그래서 high price.. high price 이딴 이야기만 하고 있었던 것으로 결론 지었습니다.;;

화수분도 아니고 파면 뭐가 계속 나오네요.; 후우.

로마집정관만 콘술이고 나머지 자치집정관은 그 하위격으로 두움비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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