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28화 (228/298)

# 228

228. 씁쓸한 감정.

228.

테세우스는 눈을 돌려 호라티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거론된 날짜가 오늘인가? 아니면 벌써 도착한 건가?”

“사실 오는 길에 사람을 보내 이미 확인해봤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면 채비할 테니 이동하도록 하지.”

호라티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시겠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돌아가는 정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테세우스 님이 확보한 공직자 부패와 세금 및 공공예산 횡령, 법에서 벗어난 집행에 대한 기록 등이 저들의 심기를 크게 상하게 한 모양입니다.”

“확실히 내 예상보다 확보하기 쉬웠지.”

그렇게 말한 테세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니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부패했다고 해야 하나? 완전히 썩은 폐기물 위에 향수를 뿌려봐야 그 썩은 내를 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파면 팔수록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화수분처럼 정무관들의 부패는 도를 넘어섰다. 형식적으로나마 감찰을 담당하던 켄소르(감찰관)와 귀족들을 견제하는 트리뷴(호민관)까지 사라진 상황이라 할 수 있었으니 당금 로마의 부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했다. 그렇다 보니 테세우스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저들의 비리는 봇물 터지듯 연일 터져 나왔다.

귀족들과 정무관들이 부랴부랴 비리를 은폐하고자 부단히 애를 썼지만 손바닥으로 어찌 하늘을 가릴 수 있으랴? 감추는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훨씬 더 많으니 무용한 노력이었다. 이는 테세우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비리를 약점 잡아 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드러난 비리가 워낙 많아 약점으로 삼아도 날카로운 무기가 될 정도였다.

로마는 지금껏 기다린 것이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이곳에 정의를 세울 사람을······. 부정한 이들과 타협하지 않고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옮길 사람을 기다린 것이다. 드디어 총대를 멜 한 사람이 나타나자 로마는 지금껏 담아놓았던 저들의 썩은 비밀을 탈탈 털어 테세우스에게 건네줬다.

이는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흐름이 되어 흘러가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요동치던 물결은 곧 거대한 파도로 변해 자신들을 덮칠 테니 그것을 눈치챈 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호라티우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테세우스의 말에 동의했다.

“너무 많아서 밝혀진 내용이 사소하게 여겨질 정도이니 더 거론할 필요도 없겠지요. 저들의 부정부패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이는 테세우스 님의 본래 계획에서 벗어난 일이 아닙니까?”

테세우스는 명실공히 로마 귀족과 정무관들의 적으로 자리매김했다. 권력을 아는 자들이라면 어리석을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라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 세상일을 혼자 감당할 수 있던가? 대체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른 그 끝은 결국 죽음밖에 없었다. 그러니 테세우스를 어찌 비웃지 않으랴? 호라티우스가 염려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부분이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라티우스에게 말했다.

“일의 흐름이 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나 계획한 일이 예상대로만 흘러간다고 생각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나 그것이 이루어지는 건 하늘에 달려있다. 그러니 사람의 일만 볼 것이 아니라 이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모든 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하여 나 역시 적정선에서 일이 해결되기를 바랬으나······. 흘러가는 흐름이 그렇지 않다면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음.”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뜻이 합치될 때 세상은 그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순리에 따라 대의를 세운 이의 일이 그러하다. 로마 귀족과 정무관들에게 대의가 있는가? 그도 아니면 저들이 순리를 쫓아 살아온 자들인가? 저들의 위협은 사납고 맹렬하나 잠깐 타오르고 말 불꽃에 불과하다.”

“잠깐 타오르는 불길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호라티우스.”

“예. 테세우스 님.”

“말해보라. 내 이름이 무엇인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이십니다.”

“그렇다. 나는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다. 저들의 불길이 나를 상하게 할지라도 나는 내 길을 간다. 내가 가는 길이 순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눈앞의 위협에 굴복하여 저들과 손을 잡지는 않아. 생존을 우선시하긴 하나 나와 내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서까지 생을 부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것은 나의 긍지고 곧 세르토리우스 가문의 아욱토리타스(권위)와 디그니타스(존엄)다. 더 말이 필요한가?”

“생각이 짧았음을 용서하십시오.”

“무슨 의도로 말을 꺼낸 것인지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등을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맡겨주십시오.”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의 충성스러운 눈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혼자라고 했는가? 내게 대의가 있는 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뤄지는 일들이 예상과 다르긴 하지만······. 문제될 건 없다.’

*

테세우스와 호라티우스는 그 길로 시끌벅적한 로마항에 들어섰다. 이제 막 동이 튼 아침일 뿐인데 로마항의 하역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물자를 항구로 나르거나 배에 싣느라 분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많은 일이 산재한 상황이고 칼날 위를 걷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기에 테세우스는 이렇듯 로마항을 거닐만한 여유가 없었다.

로마와의 해상무역을 통해 상업적 이득을 보고 있다고는 하나 이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세인들에게 알려지는 건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라 볼 수 없었기에 그러한 연유로 로마항에 온 것도 아니었다.

티베리스 강을 따라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광경을 얼마간 보았을까? 호라티우스가 물살을 가르며 항구로 들어오는 트라이림 한 척을 보고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테세우스 님! 저 배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테세우스와 호라티우스는 저들이 눈여겨 보고 있던 3단 갤리, 트라이림이 정박하고 가교를 내리자 그 주변으로 이동했다.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서늘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다. 해적 토벌도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니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카이사르는 점점 더 드러나는 로마의 정경을 고무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로마항에 서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우람하고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다. 그 모습에 카이사르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알고 있던 이름을 뱉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카이사르는 곁에 선 나디르에게 말했다.

“저자가 바로 테세우스인가?”

나디르는 반가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카이사르에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내로 보이는군.”

나디르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카이사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단순히 테세우스의 체구를 보고 이르는 말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니 대단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테세우스도 대단하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다른 뜻이라도 담겨있는 건가? 나디르는 카이사르의 중의적인 표현에 정확한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지만 구태여 더 묻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생각이야 어쨌든 자신에게 있어 테세우스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

“테세우스 그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입니까?”

머리가 반쯤 벗겨진 세네토르 루푸스가 주름진 이마를 더욱 구기며 운을 뗐다. 그 앞에는 자신과 같은 의원, 스카에볼라와 아퀴우스는 물론 크라수스도 자리하고 있었다.

스카에볼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푸스의 말을 받았다.

“트리뷴 테세우스는 작년 정무관들의 행적은 물론 사실상 모든 이들의 뒷조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세네토르들까지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딱히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성가신 것도 사실 아닙니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오.”

아퀴우스가 말을 거들자 루푸스가 크라수스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테세우스 그 자가 아는 것으로는 별 위협이 되지 못하겠지만 이 사실이 정적들에게 사용되기 시작한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겁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테세우스, 그를 트리뷴에 추대한 계파의 비리까지 파고 있다는 점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적의 비리를 팔 수 없어서 그간 파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제 얼굴에 침뱉기가 될 테니 정적이라고 해도 눈 감고 넘어간 사실들이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이 자는 이편저편 할 것 없이 눈 감고 덮어놨던 것들을 모조리 파헤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크라수스는 미간을 좁히며 의원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년 정무관들의 비리를 캐고 있지만 테세우스가 그자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 이는 바로 나 크라수스요.”

루푸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크라수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 이자가 노리는 것이 대체 뭐란 말입니까? 미친 개마냥 이곳저곳을 물어뜯어봐야 몽둥이 찜질을 당해 죽을 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같지는 않은 데 말입니다.”

“몽둥이 찜질이라······. 세네토르 루푸스께서는 미친 개를 몽둥이로 때릴 수 있겠습니까?”

크라수스의 질문에 루푸스의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아니 그건?”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어디 그게 자신만 그렇겠는가?

하나 그가 얻은 특별직 호민관의 신성불가침권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턱 하니 걸린다. 그를 제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모든 권한을 잃어버린 호민관을 상대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하나 그를 건드리는 사람이 자신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테세우스를 제거하는데 자신이 앞장 선다면 모든 계파가 자신을 지지할 것이다. 다만 테세우스의 일이 마무리된 후에는 평민들의 원성을 잠재우는 희생물로 삶을 마감해야 할 테지. 만에 하나 죽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정치 경력은 확실하게 끝난다.

그러니 누군가 나서기는 해야 하지만 그게 자신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바로 루푸스의 말문이 막힌 이유였다.

또한 이들이 결백하다면 어찌 그 일에 위기심을 느끼고 조급해하겠는가?

그 모습에 아퀴우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탄식을 뱉었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잔뜩 서려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움직인 놈이라면 실로 영리한 놈이오. 크라수스 님께서 왜 그를 내치나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소.”

“음.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긁어서 부스럼 만들 것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어떻겠소?”

스카에볼라가 입을 열자 크라수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기엔 일이 너무 커졌습니다. 또한 너무 많은 증거와 증인이 그의 편에 서 있지요. 희생물이 타오르기 전에는 쉬이 꺼질 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테세우스 그 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일 겁니다.”

“으흠. 하면 타협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스카에볼라의 말에 아퀴우스가 말을 받았다.

“비리를 무마시키고 넘어가는 대가로 호민관의 권한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제 의도였으나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제놈도 당황했겠지. 권한을 되찾는다면 무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처벌을 논의해야 할 판국이니 말이오.”

그 말에 루푸스가 분을 내며 소리쳤다.

“그러니 어리석은 놈이라는 소리요. 놈은 도를 지나쳤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단 말이오! 당금 로마에 들끓는 불길은 트리뷴 테세우스가 죽거나 완전히 실각해야만 사그라질 것이오. 그래야 평민놈들이 제 주제를 알고 몸을 사리겠지!”

스카에볼라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걸 알기에 오늘 모인 것이 아니오? 문제는 누가 그 일에 앞장 서겠느냐는 점이오.”

“흠.”

잠시 침묵에 잠긴 그때 크라수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비단 저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트리뷴의 권한과 관련된 내용이니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 분 세네토르께서 콘술 프라이오르 부르불리우스와 자리를 마련해주신다면 제가 한 번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근일 내로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계파를 나눌 것 없이 테세우스를 축출 및 제거하는데 의견이 일치된다면 어렵지 않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자신들이 손해보는 일 없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 말이다. 바로 그 일을 위해 크라수스를 찾아온 것이었다. 크라수스의 영향력이라면 자신들을 잠시나마 한데 묶을 수 있을 테니까.

크라수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매를 좁혔다. 이 일을 막지 않을 수 없으니 나서기는 한다만 테세우스. 테세우스 대체 무엇을 노리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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