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224. 돌아온 사냥철.
224. 돌아온 사냥철.
테세우스는 저들의 놀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누군가 이 일에 대해 물어본다면 렉스 호르텐시아와 관련된 자료를 얻으려고 했거나 작년 정무관 거래내역을 얻으려 했다고 하시면 됩니다. 노회한 분들로 보이시니 이 부분은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두 분이 먼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저들이 오해하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어차피 더 묻지도 않을 겁니다. 애초에 두 분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자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테세우스는 말을 멈춘 뒤 페트로니우스와 에우메니우스의 긴장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자 에우메니우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희야 일개 서기일 뿐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염려는 마시지요. 트리뷴의 본의를 오해해서 꺼낸 말이 아닙니다. 다만 사건 뒤에 사건을 숨긴다라······. 그러니까 저희는 떠들썩한 가운데 그의 기록을 은밀히 파악하면 되는 겁니까?”
테세우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페트로니우스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휘휘 살핀 뒤 테세우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살펴볼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사주경계야 테세우스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까? 하나 지금 거론되고 있는 내용은 그만큼 예민한 문제였기에 페트로니우스로서는 당연한 태도였다.
“외람되오나 ‘그’를 특정하는 기록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트리뷴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로마에는 그의 친구들이 많습니다. 혹 과거에 남겨진 기록만으로 그를 도모하시려는 것이라면 그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하기는커녕 도리어 상처를 입으실 수 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는 것인지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도 아니고 설혹 아킬레우스라고 해도 굳이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약점은 흔히 알다시피 발뒤꿈치다. 이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강에 넣을 때 손으로 움켜잡은 발뒤꿈치는 넣지 못해서 약점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신의 축복을 발뒤꿈치에 받았기에 훼손될 경우 신의 축복이 거두어지기에 약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두 이야기 모두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발뒤꿈치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었다. 고로 여기서 테세우스 등이 언급한 발뒤꿈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키는 비유였다.
“발뒤꿈치를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의 약점을 공략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트리뷴께서도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테세우스의 대답에 페트로니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토록 강맹한 자와 싸우려 하면서 약점을 공략하려 하지 않는다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방금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그’를 특정하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부주의한 인물이었다면 애초에 그만한 영향력을 로마에 미치기 어려웠겠지요. 무엇보다 당금 로마에서 부정과 부패를 증명하는 일이 어찌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조금 귀찮은 일에 불과할 뿐이지요.”
“으흠.”
테세우스가 딱히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페트로니우스와 에우메니우스는 테세우스가 누구를 언급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작년 정무관의 거래내역이 위장이라지만 어떤 상관관계도 없는 일을 가져다가 쓰지는 않았을 터, 작년 정무관들과 연계된 사람 중 한 사람이라 특정될만한 사람이 당금 로마에 ‘크라수스’외에 더 있겠는가?
그러니 페트로니우스가 언급한 내용은 결국 크라수스의 부정과 부패를 증명해봐야 그것은 그를 무너뜨리기는커녕 그의 원한만 사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점을 페트로니우스가 언급하자 테세우스는 당금 로마에서 부정부패가 무슨 큰 흉이고 약점이 되냐고 역으로 질문한 것이고 말이다.
침음을 흘리며 입을 다무는 페트로니우스를 뒤로 하고 에우메니우스가 질문을 던졌다.
“저희로서는 기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군요. 이 일 자체가 약점이 될 수 없다고 여기신다면 어째서 불필요한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그와 완전하게 척을 지려 하십니까? 당금 트리뷴의 권한이 모두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꺼내지 않을 수 없군요.”
크라수스와 테세우스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들도 소문 등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나 그때는 데메트리우스를 사이에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라면 지금의 일은 성질이 많이 다르다. 에우메네우스의 말따라 완전하게 척을 지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간에 이 일이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둘 사이는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트리뷴의 권한이 건재하다고 해도 결코 현명하지 않은 선택일진데 누차 언급했다시피 지금은 심지어 그 권한이 말소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어찌 의아해하지 않을 수 있으랴?
페트로니우스가 다시 에우메니우스의 말에 덧붙였다.
“그를 적으로 돌리는 건 트리뷴께 너무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이 일로 얻을 유익보다 손해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 부디 재고해 보시지요.”
테세우스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에우메니우스와 페트로니우스를 바라봤다.
“전쟁을 치르는데 거의 어느 때고 매우 유용한 전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저희가 어찌 전장의 일을 알겠습니까?”
페트로니우스의 말에 테세우스가 강렬한 눈빛을 발하며 답변했다.
“선제타격. 아군의 전력을 온전히 보유한 채로 적의 물자와 병력에 큰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전술이지요.”
테세우스는 다시 두 서기를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두 분의 말씀이 옳습니다. 렉스 호르텐시아, 작년 정무관 거래내역으로도 모자라 ‘크라수스’의 기록이라······. 상세하게는 그의 사람들이 공공사업과 연루된 기록이 되겠지요. 아마도 세네토르까지 연관되어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파헤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니 저를 죽이려는 자들이 아주 아주 많아지겠지요.”
“······.”
테세우스의 의도를 파악조차 할 수 없는 노서기들은 그저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봤다. 일의 위험성과 득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강행한다는 뜻은 뭔가 다른 걸 노리고 있다는 건데 그게 뭔지 페트로니우스와 에우메네우스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전사의 방식인지 모르겠다는 추측만 할 뿐, 하나 자신들은 천상 서기라 전사의 방식은 알지 못한다.
“지금은 두 분뿐이나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두 분처럼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들을 말입니다.”
“저희와 같은 공무원을 이르는 말입니까?”
“비단 공무원뿐이겠습니까? 트리뷴의 존재의의가 플레브스를 만나고 그들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해결하는 것에 있음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모두 가져오십시오. 지금껏 꼭꼭 숨겨두었던 슬픔과 억울함, 원한까지도 모두 가져오십시오.”
테세우스의 말에 노서기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타래 하나하나는 끊어지기 쉬우나 한데로 묶으면 질기고 튼튼해지는 법입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일부러 자신을 위험 가운데 던져 거대한 방패가 되어주겠다는 소리다. 일부러 저들이 예민하게 여기는 문제를 건드려 저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평민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다. 그렇게 저들의 견제 아래 뿔뿔이 흩어진 평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소리다.
호르텐시우스 법이 그렇고 작년 정무관의 거래내역, 즉 전·현직 정무관 모두의 경계를 사는 일 역시 그러했으며 마지막으로 술라 사후 영향력이 가장 강한 크라수스를 건드리는 일 역시 그러했다. 심지어 테세우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너무. 너무 위험합니다. 트리뷴. 트리뷴께서는······. 이보다 큰일을 감당하셔야 할 분입니다. 너무······.”
에우메네우스 역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맡은 일도 해내지 못하는 자가 그보다 큰일은 생각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제 제가 두 분에게 진정으로 요구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아시겠습니까?”
페트로니우스는 에우메네우스와 눈을 한차례 마주친 뒤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남은 생을 모두 걸겠습니다.”
“사내라면 언제고 한 번은 가슴을 불태워야 하는 법입니다. 사내로 죽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으니 어찌 달리지 않겠습니까? 맡겨주십시오.”
테세우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두 분에게 남은 일을 부탁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그 길로 타불라리움을 나와 로스트라(대형 연단)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연사로 보이는 로마시민들이 연단에 올라가 시민들에게 열띤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테세우스는 생각에 잠겼다.
‘물론 위험한 일이다. 일이 내 생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 역시 없다. 그러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위험하다고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 지금은 정면으로 맞서야 할 때다.’
신중해야 할 때도 있지만 미친 놈처럼 과감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위험하다. 일례로 두 노서기가 배반할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을 어찌 장담하랴? 당연히 이 일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하나 집밖에 사자가 있을지 아니면 고양이가 있을런지는 결국 집밖을 나서봐야 아는 법이다. 집안에 앉아 집밖에 사자가 있다고 두려워만 한다면 집밖으로 어찌 나갈 수 있으랴?
사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 집밖으로 나선 일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나 모든 위기를 피하고자 모든 기회를 저버린다면 그또한 어리석은 일이리라.
저들이 이 일로 인해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면 더 나은 수가 생긴다. 어차피 저들은 자신이 호민관에 오르기 전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 작자들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살의를 자신의 이로움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 테세우스는 저들이 덥석 물도록 미끼를 던진 것이다. 신성불가침권을 침범하게 만들 탐스러운 미끼를 말이다.
‘미끼를 물지 않는다면 않는 대로 끌고 가면 될 일,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것 외에는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생각을 정리한 테세우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이 전쟁은 너희가 내게 선전포고한 전쟁이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타불라리움을 나와 잠시 지켜보던 로스트라를 향해 말이다.
*
드르르륵. 철컥!
쇠사슬이 거칠게 감기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창 문이 열렸다. 그와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우렁찬 함성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텁텁한 먼지와 녹슨 철창의 불쾌한 냄새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혈향과 광란에 휩싸인 관중은 귀를 멀게 만들었고 광야처럼 메마른 경기장의 대지는 두 눈마저 멀게 만들었다.
“제.. 젠장!”
그와 함께 서 있던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자 뒤편에 서 있던 병사가 그들에게 강경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가!”
당장 나가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기에 겁에 잔뜩 질려있으면서도 저들은 주춤거리며 경기장으로 나섰다.
열댓 명의 비루한 죄수들과 함께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던 데메트리우스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그는 두려움에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이건 아니야. 이건!”
데메트리우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부여잡은 비루한 창을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그 자는 어떻게 그토록 어린나이에 이것보다도 형편없던 무기로 압도적인 몸집을 가진 수사자를 상대했단 말인가?
경기장 밖에서 볼때는 모든 것이 아주 흥미로운 유흥거리였거늘 경기장 안에 서보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공포와 살고자 하는 욕구가 혼재되어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드르르르륵 철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그대로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어떤 죄수는 숨을 쉬다가 그 소리에 사례가 걸려 컥컥거리는 자도 있었다.
“크르르르. 크허허허헝!”
굶주린 사자 한 마리가 사나운 울음과 함께 경기장 위에 서자 다시 관중들의 환호가 빗발쳤다.
이 미친 새끼들아. 사람이 산채로 사자에게 씹어 먹히게 생겼는데 네놈들은 그게 즐거워서 소리를 지르는 거냐? 데메트리우스는 언제 비척거렸나는 듯 바람처럼 뒷걸음치며 원망의 눈초리로 관중을 바라봤다.
본인이 그간 저지른 악행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저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자신의 노예를 기분이 조금 나쁘다는 이유로 곰치 연못에 던지는 상 또라이가 데메트리우스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