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222. 당선 후.
222.
“히스파니아는 여전히 불안한 곳이니 섣불리 토지문제를 거론할 내용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원로원의 여섯 거두 중 하나이자 친 크라수스파인 루푸스 의원이 앞서 거론된 히스파니아 토지 배분 문제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와 마찬가지로 친 크라수스파인 아퀴우스와 스카에볼라 역시 그의 발언을 거들었다.
“세네토르 루푸스의 말이 타당합니다. 토지배분 문제는 히스파니아가 지금보다 안정이 되고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히스파니아 정복은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토지문제를 거론하기엔 아무래도 시기상조라 여겨집니다. 또한 배분이 되더라도 적절한 자들에게 배분되어야겠지요.”
그 말에 친 폼페이우스파인 아티커스 의원이 나섰다. 히스파니아 토지배분 문제를 거론한 이들은 바로 폼페이우스와 연관이 깊은 이들이었다.
“적절한 자들? 히스파니아의 반란군······.”
그러면서 아티커스는 함께 참석하고 있는 테세우스를 힐끗 바라보다가 말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당시 반란군이었던 자들과 피를 흘리며 싸운 사람들이 적절하지 않다면 대체 누가 적절한 자들이라 할 수 있겠소? 무엇보다 불필요한 전쟁없이 로마에 승리를 가져다 준 로마의 장군이 그 자격이 없다면 대체 누구에게 그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단 말이오?”
주요 골자는 이러했다. 폼페이우스와 그 병사들에게 히스파니아 토벌에 대한 보상으로 히스파니아 지역의 땅을 분배할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볼 원로원이 아니었다. 친 크라수스파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키고 있는 칼두스와 하드리아누스 역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글쎄요. 시기상조라는 말에는 저 역시 찬성하는 바입니다.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히스파니아 토벌의 공과를 지금 거론하는 것 역시 시기상조일뿐더러 공을 치하하는 방법이 토지수여밖에 없는 것도 아니지요. 게다가 루푸스 의원의 말대로 히스파니아 지역은 여전히 위험지대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히스파니아 문제는 후일 다시 거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칼두스에 이어 하드리아누스까지 나서서 반대하자 이 안건을 통과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여긴 아티커스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말했다.
“위험지대이니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들에게 땅을 나눠주자 이 말이오.”
스카에볼라가 아티커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병사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이오? 어차피 저들을 상대하는 것은 군대가 해야 하는 일이지 병사 개개인이 어떻게 감당할만한 일이 아니오. 게다가 히스파니아 현지의 상황도 살펴봐야만 하는 일이오.”
“그럼 저들의 공을 이대로 넘겨버리겠다는 소리요?”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부르불리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가투스 폼페이우스는 달마티아 토벌을 수행 중에 있습니다. 달마티아 토벌 후에도 비슷한 안건으로 토의해야 할 듯 하니 이 일에 대한 내용은 그가 달마티아 토벌을 수행하고 온 이후에 상의토록 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히스파니아 토지 문제에 대해 열을 올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리우스가 건재한 시절의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는 많은 법을 입법했지만 그가 시행하고자 했던 두 번째 토지법과 연관이 깊은 내용이기도 했다.
사투르니누스는 BC103~102년 호민관을 연임했고 100년 다시 호민관에 당선된 인사이기도 했다. 다만 세 번째 당선될 때는 민심을 크게 이반시켰고 그 결과 돌로 쳐죽임을 당했는데 간단히 권력을 쫓아다닌 자의 말로라고 할 수 있었다.
아풀레이우스는 곡물법, 반역법, 토지법을 입법시켰는데 토지법은 두 개로 나눠진다. 두 토지법 모두 마리우스 군대에서 싸운 퇴역병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것을 골자로 했음에도 두 개의 토지법으로 갈라진 것은 첫 번째 토지법은 그리스, 마케도니아, 시칠리아, 아프리카 땅을 대상으로 했다면 두 번째 토지법은 히스파니아 등지의 땅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앞서 거론한 땅은 오랜기간 로마가 소유하며 별 쓸모가 없는 지역으로 밝혀진 땅이라면 미확인 지역인 알프스 너머의 히스파니아 등지의 땅은 그렇지 않았다.
원로원이 첫 번째 토지법과는 다르게 극도로 반대한 연유는 히스파니아 등지에 매장되어 있을지 모르는 광물자원을 탐했기 때문이다. 히스파니아 토지문제가 현재에도 쟁점이 되는 이유는 역시나 동일했다. 미확인 지대에 있을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물론 히스파니아 지역에는 확실히 금광과 은광, 동광 역시 존재한다.
하나 금광과 은광은 히스파니아 북서부 지역에, 동광은 히스파니아 중심부 지역에 자리한다. 현재 로마가 점령한 지역에는 별다른 광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히스파니아의 땅을 폼페이우스 병사들과 폼페이우스에게 배분해도 다량의 광물자원이 당장 저들의 소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득과 결부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땅을 소유함으로 히스파니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폼페이우스와 연관이 있는 이들은 그래서 이곳의 땅을 어떻게든 소유하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것을 막으려고 드는 것이다.
이런저런 고상한 이야기들로 포장을 하지만 결국 제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밥그릇 좀 뺐긴다고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들이 토의하고 상의해야 하는 것은 물자와 부를 어떻게 골고루 그나마 공평하게 분배할 것에 대한 문제여야했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해서야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더욱 극심해질 뿐이다.
아니 이미 충분히, 아니 극도로 극심했다. 로마에 중산층이라고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 살 것이 없으면 이상과 논리도 허상에 불과하다.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는 자의 말이 진리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저들의 의식주를 보장해준다면 이들은 그에게 모든 충성을 다 바칠 것이다. ‘마리우스의 노새’라는 단어가 그것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는 바로 이 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그가 많은 빚을 지더라도 시민들에게 끝없이 베푼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 또 있었다.
평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호민관 위에 오른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말이다. 심지어 테세우스는 호민관 위에 오르기 전부터 로마의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있는 수부라 지구에 기거하며 저들의 필요를 알흠알흠 채워줬다.
모두가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크라수스조차. 이들에게 정치란 권력자들와 결탁하고 있는 자들의 심기를 헤아리는 것이지 없는 자, 언제든 짓밟아버릴 수 있는 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했다.
로마를 전복시킬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호민관에 오를 생각조차 없었던 테세우스다.
하지만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이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것처럼 상황과 환경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더 이상 호랑이 등에 타고 있기 싫다고 뛰어내린다면 지금껏 타고 있던 호랑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의 목덜미를 물어 찢어버릴 것이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이들의 정치를 바라봤다.
근 이천 년 전이나 이천 년 후나 대체 달라진 게 뭐란 말인가?
기술, 지식, 문화, 등등 모든 면에서 발전했지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민들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제 이득만 우선시하는 로마인들이나 현대인들이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최고위 신에게 바쳐진 화려한 신전 안에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뭔가 고상한 것을 대화하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은 결국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만한 힘과 그만한 배경을 가졌으면 조금은 포기하고 조금은 희생해도 되지 않은가? 그런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나를 내어놓으면 둘을, 둘을 내어놓으면 전부를 뜯어갈 작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 그렇다고 할 테지. 틀린 말도 아니야. 정말로 그런 세상이니까.’
아귀다툼이 따로 없었다. 화려한 신전? 고급진 옷? 고상하고 고매한 태도? 모두 구역질 나는 것들을 뒤덮기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은가? 테세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을 모조리 솎아낸다는 것은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소리와 동일하다. 그게 아니면 모두를 죽일 만한 강력한 힘을 갖추거나······.
그게 얼마나 피곤하고 어리석은 일이던가? 그 가운데 내 삶은 없는 거다. 그 위치에 놓인 자가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면 이들과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일 테고 본이 되어야 할 자신이 무너진 이상 모든 이들이 그러한 행태에 당위성을 부여할 테니까.
‘피곤하군.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테세우스가 무심한 눈으로 미미하게 고개를 저을 때 그는 부르불리우스와 눈이 마주쳤다. 부르불리우스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려다가 테세우스를 바라본 순간 생각을 바꿨다.
“다만 히스파니아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들어보지 않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부르불리우스가 누구를 언급한 것인지는 유피테르 신전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테세우스에게 향한 순간 테세우스는 간단하게 말했다.
“당금 트리뷴은 발언권조차 제한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고로 저는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말 속에 뼈가 담겨 있었다. 이에 부르불리우스가 테세우스를 가만히 바라보자 루푸스 의원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오? 트리뷴의 권한을 부활시켜달라는 뜻으로 간주해도 되겠소? 이는 레게스 코르넬리아(코르넬리우스 법)에 의거해 법을 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테세우스는 루푸스의 날선 반응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제 뜻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로마법에 의거하여 레게스 코르넬리아가 부당하다는 것은 세네토르 루푸스도 아시는 내용이 아닙니까?”
테세우스는 자신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루푸스가 호민관의 입법권이 제한된 점을 거론하며 자신을 압박할 것을 잘 알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로마법을 거론했다. 이에 루푸스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머뭇머뭇거릴 뿐 뭐라 토를 달지 못했다.
아니라 한다면 막 호민관이 된 테세우스보다도 로마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 한다면 호민관의 권한을 부활시키는 것에 찬성하는 것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이는 루푸스 의원뿐만 아니라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테세우스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로마의 위대한 콘술께서 먼저 질문하셨으니 발언권 제한을 어긴 것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알고 더 부언하겠습니다. 로마의 최고 신전인 유피테르 신전 안에서 히스파니아 토지분배가 정당하냐 아니냐를 거론하기에 앞서 제정된 법들이 본래 로마법에 정당하냐 아니냐를 따져야 수순이 아니겠습니까? 기준으로 세워진 로마법조차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대체 그 위에 무슨 일을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저는 로마의 시민으로서 로마법이 바로 세워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어찌 비단 트리뷴의 바램이겠습니까? 그것이 어찌 법을 어기는 처사가 되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장 로마법부터 부정해야겠지요. 다만 궁금하군요. 레게스 코르넬리아가 로마법보다 권위가 있는지 말입니다.”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끊고 오연한 시선으로 저들을 바라보다가 말을 맺었다.
“다만 그럼에도 히스파니아 문제에 대해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콘술 프라이오르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이상입니다.”
지금의 발언으로 많은 견제를 사게 될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신중하지 않은 태도라 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적을 만드는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사람의 질시와 견제를 두려워해서 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적을 만들더라도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명확한 명분을 가졌을 때가 그러하다. 오히려 이 일은 적아를 더욱 명확하게 가르게 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자로 남는다.
하나 무엇이라도 하면 실패할지라도 실패라는 성과가 남는다. 그게 죽음일지라도······.
어차피 저들은 자신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테세우스가 무엇을 꺼리겠는가? 지금의 발언으로 저들도 깨달았으리라. 자신을 트리뷴 위에 올린 일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는지를 말이다.
이는 엄밀히 말해 원래 적이었던 자들에 대한 선전포고라기보다는 자신을 호민관에 두고 제어하려 하던 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아마 저들은 자신이 조심스럽게 움직인 것을 두고 오판한 것이리라.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을 꺼린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또한 그때는 사적인 감정으로 저들과 대적하는 형국이었다면 지금은 공적인 일로 저들과 대적하는 형국이다. 상황 자체가 다르다. 여전히 불리하지만 가장 중요한 명분이 테세우스, 자신에게 있었다.
‘걸어오는 싸움이라고 해도 승산이 없다면 피한다. 하나 승산이 충분하다면 피하지 않아. 무엇보다 이런 이들과의 싸움이라면 피하고 싶지 않군.’
할 수만 있다면 저들의 밥그릇을 모조리 깨부숴주리라. 테세우스의 마음 깊은 곳에 작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