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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217화 (217/298)

# 217

217. 호민관의 무기.

217.

그 모습에 테세우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며 한 사내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사내는 갈등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다가 이내 곧 소리를 질렀다.

“그만 멈춰!”

“두목까지 죽은 마당에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게다가 네놈들이 먼저 와서 제안한 것으로 아는데 이제 와 그 무슨 개소리야?”

두목이 되고자 하는 도적이 다시 소리를 치자 그는 테세우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처럼 소리치던 네 두목이 죽은 것을 네놈도 눈이 있으면 봤을 것 아닌가? 그리고 저 사내는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챈 사내다. 너희 중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네놈들이 죽고 사는 건 알 바가 아니나 그 결과가 내 목숨과 연결되어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그러니 멈춰라.”

아비투스는 테세우스에게 화살을 날린 장본인이었다. 도적 무리 가운데 활을 쓰는 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은밀하고 정확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실력자는 아무래도 드물기 마련이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화살을 날린 궁수가 군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군인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로마의 군인을 비공식적으로나마 사사로이 부릴 수 있는 권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재물을 대가로 도적들을 부리는 일 역시 마찬가지. 누가 저들을 사주했는지 짐작하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로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일종의 경고성 제안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낸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만한 작자들이었으니까. 물론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방향으로 행하라 지시했겠지. 그 대가로 많은 보상을 내밀었을 테고.

저들의 분란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테세우스는 돌연 아비투스에게 화살을 날렸다.

“이게 무슨?”

아비투스는 대경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바라봤다.

그러나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 이 무슨 개죽음이란 말인가? 그보다 테세우스, 저자의 말에 따라 도적들을 멈추고자 하는 자신을 이제 와 왜 죽이려든단 말인가? 그럴 거면 애초에 그런 말을 지껄이지나 말던가?

“오냐! 죽고 싶다면 죽어야지! 죽여!!”

야심에 찬 도적은 기다렸다는 듯 명령을 내렸고 테세우스가 먼저 공격했다고 여긴 도적들은 분노한 표정으로 자신의 병장기를 붙잡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

“죽여!”

그렇다고 화살을 피하고자 아예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에 그 반동으로 비틀거리던 아비투스는 도적들의 함성을 들으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개자식이 나를 가지고 놀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별개로 테세우스를 향한 불같은 분노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분노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껴야만 했다. 테세우스가 두어 발의 화살을 다시금 자신을 향해 쐈으니 말이다. 아니 방금 전에도 두세 발의 화살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응사할 마음도 품지 못하고 연신 바닥에 몸을 굴렸다. 바닥에 쌓인 차디찬 눈에 의해 서늘하게 몸이 식는 것을 느꼈다. 축축한 느낌이 상당히 짜증났지만 모든 체온이 서늘하게 식어가는 시체가 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쉬이이이익!

피이이잉!

그렇게 몸을 구르던 아비투스는 경황 중에도 의아함을 느꼈다. 도적 두목의 입을 정확히 꿰뚫은 명사수가 어째서 번번히 빗나가게끔 활을 쏘는 것인가? 집중력이 흩어져서?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정도 전투에 두려움을 집어먹고 마음이 흩어질 자라면 지난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비롯해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화살의 궤적이?”

활쏘기라면 자신도 어디가서 뒤처지는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화살의 궤적은 자신이 아니라······. 아비투스는 생각을 하다 말고 섬뜩한 느낌에 급히 몸을 굴렸다.

파바바박!

그가 몸을 피한 자리에는 날카로운 암기가 바닥에 쌓인 눈속으로 파고들었다.

“뭐야?”

아비투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공격한 자들을 바라봤다. 왜 도적놈들이 자신을 공격한단 말인가? 설마 자신을 죽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저놈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준 것이란 말인가? 왜? 어쨌든 자신은 테세우스 저자를 죽이려고 한 장본인이 아닌가?

대체 뭐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비투스는 황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새끼들이!”

테세우스 저자가 공격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허둥지둥 몸을 굴릴 필요가 없었다. 냉정을 되찾은 아비투스는 이미 들고있던 활에 화살을 재어 자신을 죽이려는 놈들에게 날렸다. 화살을 날릴 기회를 테세우스로 인해 번번히 놓쳐서 그렇지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화살을 쏠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까지 고려해서 화살을 날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가자 도적놈들을 멈추고자 한 판단 자체는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갔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일단은 자신을 습격하려고 한 이놈들부터 처리해야겠다.

꾸우우욱

피이이잉!

아비투스가 세 발을 한꺼번에 재어 날린 화살은 놈들을 향해 재빠르게 쇄도했다.

*

경고성 제안, 곧 협박을 하기 위해 보낸 사람을, 심지어 자신을 죽이고자 화살을 날린 자를 구원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테세우스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렇게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다. 일단 저들이 무슨 제안, 그러니까 협박을 할지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아비투스는 자신이 호민관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자들이 보내온 자라면 그를 죽이려는 자들은 대체 어떤 자들이란 말인가?

단순히 호민관에 오를 것은 권유한 자들이 보낸 사람들이라 보기엔 저들의 실력이 생각 외로 출중했다.

자신이 화살을 여러 발 쐈지만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쏜 것이 아니다. 한 발 한 발이 적의 숨통을 단번에 끊을 정도로 매서웠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모든 공격은 적의 다음 움직임까지 예상하고 날린 것이었다.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시간이 있기는 하나 평범한 자라면 그 차이를 느끼지도 못할 터, 제법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이 분명했다.

테세우스는 저들의 움직임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지난 셀레우코스 암살자들이 보인 움직임과 매우 유사했다.

“죽어!”

테세우스는 도적이 찔러오는 검을 슬쩍 피해낸 뒤 도축용 단검으로 그의 팔을 끊어버렸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기에 검을 쥔 도적의 팔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크아아아악!”

테세우스는 그렇게 치솟아오른 팔을 뒤돌아차기로 후려찼다.

타아악!

도적의 팔은 검을 쥔 채로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가 달려오던 또 다른 도적의 목에 검을 꽃아넣고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테세우스는 몸을 낮추며 도축용 단검으로 자신 앞에까지 다가선 자들의 팔과 다리를 쉴 새 없이 베어냈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으아아아악!”

“크허허헉!”

테세우스의 단검은 면면부절 조금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적을 베어냈고 그렇게 피로 이어진 문양을 새하얀 눈밭 위에 흩뿌렸다.

“이.. 이!”

일반인을 습격해서 재물을 뺏어본 도적들이 테세우스처럼 강력한 무예를 지닌 자를 뭐 얼마나 만나봤겠는가? 순식간에 대여섯 명도 넘는 이가 목숨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자 도적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개중에는 슬금슬금 몸을 빼며 달아날 준비를 하는 자도 있었다.

이들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들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테세우스는 굳이 저들을 추격하거나 상대하지 않고 도축용 단검을 버린 뒤 바닥에서 두 자루의 검을 들어 양손에 나눠쥐었다.

테세우스는 양손의 검을 가볍게 휘휘 돌리며 생사의 위기에 몰린 아비투스를 바라봤다. 생각 외로 잘 싸우고 있었다. 아니 잘 버티고 있었다. 제법 뛰어난 활솜씨를 지녔기에 그나마 그것이 목숨을 부지하게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를 도와주려고 걸음을 옮기려던 테세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이들은 미끼였나? 아니면 예상치 못한 자들이 개입이라도 한 건가?’

하나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사방에서 화살이 쏟아부어졌기 때문이다.

쉬쉬시시시식!

쉬시시시식!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주변에서 우왕좌왕하던 도적들은 사방에서 짖쳐드는 화살의 표적지가 되어 처참한 비명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변변찮은 방어구나 방패 하나 갖추지 않고 있던 도적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테세우스는 두 자루의 검을 유려하게 회전시키며 자신의 몸을 파고들려는 검을 모조리 쳐냈다.

팅 티팅 팅!

검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다니? 놀라운 기예였지만 그것에 감탄할 청중은 이미 주변에 없었고 당사자 역시 그 사실에 무심했다.

한차례 화살 폭품이 지나간 후 남은 것은 도적들의 시체와 간간이 치명상을 입고 꿈틀거리는 도적들이 전부였다.

테세우스는 아비투스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그 역시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헐떡이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숨이 끊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들어봐야겠지만 그보다는 정체불명의 이들이 먼저였다.

“내가 아무래도 너무 요란하게 흔적을 남겼나 보군. 어중이떠중이 다 몰려온 것을 보니······.”

눈이 쌓인 들판과 숲속을 별도의 조치도 하지 않고 달렸으니 별다른 추적술이 없는 자라도 추적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그러니 고도의 추적술을 지닌 자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활과 각종 무기로 무장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테세우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뭐하는 놈들이냐?”

테세우스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저들 가운데 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어떤 말도 뱉지 않고 테세우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이들은 다시 화살을 재어 그에게 날렸다.

쐐에에에엑!

좀 더 거리를 좁힌 상황이니 종전처럼 원만한 곡사가 아니라 직사의 형태로 날아오게 될 터, 물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나 저들이 들고 있는 무기 중에는 쇠뇌도 있었다. 쇠뇌는 이 시대의 갑옷을 가뿐히 관통하고도 남았다.

테세우스가 다마스쿠스로 만든 판금 갑옷은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판금 갑옷은 여전히 대장간에 있었다. 그러니 쇠뇌에 적중된다면 테세우스의 두터운 근육과 뼈도 갈가리 찢어지고 부서지고 말 것이다.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테세우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두 자루의 검을 휘둘러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화살 등을 모조리 후려쳤다.

팅! 티티팅!

저들로 포위가 된 상황이었기에 전후좌우 사방팔방에서 화살이 짓쳐 들었음에도 마치 검으로 방패를 만들 듯이 회전하며 그 모든 투사체를 차단했다.

물론 테세우스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한 자리에 서서 투사체를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었으니까.

고로 테세우스는 적의 화살을 쳐내며 이들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이리되면 대장쪽에 서 있지 않은 자들의 사격은 상대적으로 뜸해질 수밖에 없다. 아군이 얻어맞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무리의 대장이 포함된 아군이니 말이다.

이들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껏 간간히 자신을 습격하던 집단의 하수인이라는 것쯤은 추측할 수 있었다. 히스파니아에서 죽인 무스타파와 연관된 이들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설마 내가 로마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 건가?’

대체 이들은 뭐란 말인가? 은밀히 움직이는 자들인 건 분명한 이들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리처드와 서후의 기억 어디에서도 이러한 존재를 기록한 사실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자신을 자꾸 죽이려고 드는 것이란 말인가? 무스타파를 죽였기 때문에? 그가 들고 있던 금속이 무슨 전설의 아다만티움이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되지만 심지어 그가 들고 있던 금속은 아다만티움도 아니었고 그냥 좀 특이한 금속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테세우스는 이들의 목적과 의도와 집요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그의 손은 연신 움직이며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저들의 살의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말하지 않겠다면 말하게끔 만들면 되는 일이겠지.”

테세우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들 무리의 대장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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