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205.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
205.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
나디르는 배를 때리고 부서진 파도의 포말을 얼굴로 맞으며 크게 소리쳤다.
“디에크플러스 전술을 사용한다! 전속력으로 돌진!!”
둥 둥 둥 둥!
그가 천둥처럼 외치자 병사들과 노잡이를 독려하는 북소리 역시 더욱 거세게 울려 퍼졌다. 배의 갑판보를 정통으로 타격하는 페리플러스 전술은 현재 적합한 전술이 아니었다. 해적선은 7척에 달했고 자신은 트라이림 1척에 불과했기에 아선에 무리가 되는 전술은 지양하는 것이 현명했다.
자신들이 도우려는 상선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력 외라고 여기는 것이 외려 마음 편했다. 상선으로 무슨 전투를 하겠고 해봐야 무슨 도움이 될까? 따라서 나디르는 냉정하게 저들을 전력 외로 분류하고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디에크플러스는 적선의 배 한쪽 측면으로 빠르게 빗겨치고 지나감으로 적선의 노잡이들을 몰살시키는 전술이었다. 페리플러스에 비해 위험부담이 상당히 높은 전술이었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었고 무엇보다 나디르의 부하들은 능히 그것을 해낼만한 담력과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좌측면의 노잡이들은 노집어 넣고! 충격에 대비!”
나디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측면의 긴 노들이 삽시간에 배 안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거센 충격이 트라이림을 흔들었다.
콰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크허헉!”
노가 부러지며 목을 베거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는 등 디에크플러스 전술에 당한 해적선의 노잡이들은 전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의 한쪽 노잡이는 물론 노를 완전히 잃었으니 해적선은 기동성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디르의 함선에도 적지않은 충격이 가해졌지만 이미 전투를 대비하고 철저히 준비했기에 배 자체의 내구도가 해적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궁수 사격개시!”
나디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화살을 준비하고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해적선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슈슈슝! 슈슝!
해적들은 습격에 최적화되어 있지 이렇듯 조직화된 해전에는 그리 능숙한 작자들이 되지 못했다. 일례로 숙련된 궁수만 해도 얼마나 많은 노력과 세월이 필요하던가? 다시 그들을 조직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떻고? 해적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방을 향해 이동하라!”
둥 둥 둥 둥!
다시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디르의 함선은 속도를 잃지 않고 빠르게 저들을 벗어났다. 해적들 역시 궁수가 없지는 않았으나 조직화되지 않은 저들로서는 미처 응사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사정거리를 빠르게 벗어나는 나디르의 함선을 바라봐야만 했다.
사실 응사할 여력도 없었다. 돛이나 갑판의 불을 진화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디르는 유유히 저들을 벗어나 동일한 전술을 다시금 사용했다.
콰아아아앙!
또다시 우왕좌왕하는 해적들과 그곳을 유유히 벗어나는 트라이림 한 척, 그렇게 다섯 번을 반복하자 해적들에게 온전한 배는 두 척에 불과했다.
그러자 해적들은 온전한 두 척의 함선을 반파된 자신들의 배 주위로 포진시켰다. 저들 주변으로 자리잡은 기동성을 잃은 배들이 진격로를 막고 있었기에 더이상 디에크플러스 전술로 저들을 상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백병전을 치르고 싶은 모양인데 놈들의 의도대로 놀아날 필요는 없겠지. 다만 혹시 모르니 준비하라!”
“예. 알겠습니다.”
나디르의 명령이 떨어지자 80명에 이르는 전사들이 자신들의 무구를 점검했다. 이들은 레기온 훈련을 받은 히스파니아 등지의 전사들이었다. 스쿠툼과 글라디우스로 무장한 이들은 로마의 정식 레기온과 싸워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담력과 전투기술을 보유한 자들이었다.
선상 전투는 배의 한계로 인해 그 숫자가 정해져 있기에 이들 센튜리아(켄튜리아, 백인대)라면 능히 저들을 분쇄하고 남았다. 해적들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백병전을 치르고자 하는 것이고 말이다.
승산은 충분했지만 굳이 저들과 백병전을 치를 이유가 없었다. 더 확실한 전술이 있는데 왜 구태여 저들을 상대한단 말인가?
따라서 나디르는 남은 두 척은 함선은 내버려 두고 진격로 앞을 가로막은 함선 주위를 유유히 돌며 불화살 등의 원거리 공격으로 저들을 차근히 궤멸시키는 전술을 구사했다.
*
카이사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감탄했다.
“군선의 지휘관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실로 해전에 능숙한 자가 아닌가?”
당장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싶을 만큼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다섯 번의 디에크플러스 전술을 사용하는 동안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었고 그 모든 전술은 자로 재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뤄졌다.
게다가 해적이 디에크플러스 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수를 쓰자 무리하지 않고 차근하게 위협을 줄여가는 모습에 카이사르는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카이사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짐을 내버리고 배를 가볍게 하여 해적들의 추격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나디르가 해적을 상대하기 쉽도록 미끼 역할까지 자처했기 때문이다.
나디르와 카이사르의 연합 전선 아래 해적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때 선장이 급히 카이사르를 호명했다.
“카이사르 님! 측.. 측면으로!”
나디르가 반파된 해적들을 살해하는 전술로 뒤바꾸자 온전한 해적선 중 한 척이 빠르게 상선을 향해 짓쳐들고 있었다.
카이사르 역시 그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 어디서도 긴장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태연한 표정으로 선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도망쳐봐야 상선으로는 해적선의 추격을 피할 수 없었다.
“아군의 군선을 향해 전력으로 항해하라!”
“예?”
선장이 반문한 연유는 그리되면 지금 자신들을 향해 짓쳐드는 해적선과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다.
“항해하라는 말. 못 들었나?”
“아닙니다. 아.. 알겠습니다.”
하나 이어진 카이사르의 서늘한 말에 선장은 급히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분을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지금껏 살아남은 것도 카이사르의 명령에 따랐기 때문이니 감히 항명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끝까지 항명하던 상인 한 명의 목을 손수 쳐버린 냉철한 사내가 아닌가? 더 반문했다가는 붉게 물든 글라디우스의 검날이 자신의 목 역시 훑고 지나갈 것이 분명했다.
*
그 사이 2척의 해적선을 완전히 궤멸시킨 나디르는 다시금 기동성을 잃고 헤매는 3척의 해적선을 마저 처리하려다가 온전한 해적선 두척 중 한척이 상선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디르 님!”
이것이 전쟁이라면 내버려 두는 것이 옳다. 적의 술책에 휘말리지 않고 차근히 적을 줄이며 유리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전략적인 태도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나 지금 자신은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출작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해적선 전부를 궤멸시키더라도 상선을 타고 있는 카이사르라는 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작전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해적들로서는 아마 이대로는 답이 없으니 먹잇감을 얼른 챙긴 뒤 후퇴할 생각으로 상선을 노린 모양인데 나디르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셈이 되었다.
나디르는 미간을 좁히며 해적선의 진격을 바라보다가 별수 없다는 듯 명령을 내렸다.
“뱃머리를 돌려라! 상선이 공격당하게끔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물론 해적들이 그 전에도 상선을 노리긴 했지만 보다 위협적인 군선인 나디르의 함선에 더 집중했었다.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상선의 움직임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상선이 멀리 도망칠 수 있으니 해적들은 계속해서 상선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카이사르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저들의 포위망을 흔들었고 나디르 역시 카이사르가 만들어준 기회를 결단코 놓치지 않았다. 만약 해적이 상선만 집중적으로 노렸다면, 마찬가지로 나디르의 적절한 견제가 없었다면 상선은 벌써 전에 해적들에게 점령당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해적선이 집중적으로 상선을 노리는 상황에서 나디르가 견제하지 않는다면 해적의 손에 상선이 홀라당 넘어가버린다. 단순히 그뿐이라면 여유가 있겠지만 상선의 물자를 수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 카이사르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그 가운데 카이사르가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나디르는 뱃머리를 돌리는 가운데 상선이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발견했다. 상선을 향해 진격하는 해적선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 남아있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아선과의 거리뿐만아니라 해적선과의 거리도 좁히는 결과를 낳는다.
전략적인 판단과 담력이 없이는 이같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상선에는 사실상 해적과 싸울 수 있는 별도의 병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헤아린 나디르는 테세우스가 왜 카이사르에 관심을 두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나디르의 감탄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의 감탄을 이미 가져가버린 사람이 마음속에 바위처럼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콰아아아앙!
안타깝게도 나디르의 함선보다 해적선이 먼저 상선에 당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배 위에 오를 준비를 마친 해적들이 상선의 갑판 위로 갈고리 등을 던져 힘차게 잡아당겼다.
“모조리 죽여라! 죽이고 약탈물을 챙겨와라!”
“모조리 죽여라!”
악한 욕망에도 보상이 뒤따른다. 표면적으로는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달콤한 보상이 말이다. 그렇기에 해적들은 자신이 취하게 될 재물과 그를 통한 쾌락에 눈이 벌게진 채로 소리쳤다. 살인? 약탈? 범죄?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나만 즐거우면 되는 거다. 나만 즐거우면 장땡인데 그딴 건 뭐한다고 생각할까? 게다가 저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없는 양떼와 같은 무리에 불과했다.
해적들은 사나운 기세로 상선에 올랐다. 아니 오르려고 했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풍덩! 풍덩!
그러나 조잡하지만 내질러진 창에 의해 상선의 갑판으로 오르려던 해적들은 끔찍한 비명과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내질러! 못하겠거든 집어 던지기라도 해라! 내 말을 따르면 모두 살 것이고 따르지 않으면 죽게 되리라.”
로리카 하마타를 걸친 카이사르가 준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상선 위에 타고 있던 사내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명령하는대로 움직였다.
귀티가 흐르는 얼굴에 번쩍이는 갑옷을 걸치고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니 상선 위에 모든 이들이 카이사르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게다가 그는 저 로마의 위대한 가문 중 하나인 율리아 가문의 사람이었다. 카이사르가 누군지 몰랐어도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고 따르기에 충분한 모습과 배경이 되었다.
다시 말해 카이사르의 모습과 배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해적의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사상자가 발생하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 단합력이지만 카이사르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그러나 노련한 해적들의 손에서 저들이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는가? 곧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해적들이 갑판 위로 속속들이 오르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최전방에서 글라디우스로 해적 두 놈의 목과 배를 갈라버린 뒤 측면을 힐끗 바라보고 크게 소리쳤다.
“충격에 대비하라!”
전투에 압도당해 주변을 살펴보지 못한 자들은 갑자기 충격에 대비하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카이사르로부터 그런 명령이 떨어졌을 때 어찌 행동하라는 지령을 이미 들었기에 지체없이 몸을 낮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력한 충격이 상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아앙!
갑판 위에 서 있던 해적들은 그 충격에 날아가 바다 위에 떨어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바로 나디르의 함선이 해적선을 들이받는 충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카이사르가 다시 외쳤다.
“집결해라!”
카이사르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의 명령을 다시금 떠올리고 이내 곧 빠르게 한 곳으로 집결했다. 물론 집결하지 못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하나 군인도 아닌 일반인들이 보이기엔 매우 신속하고 전술적인 움직임이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뒤편으로 집결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적선 저편을 바라봤다. 자신의 예상대로 백병전을 치르기 위해 해적선 위로 올라타는 전사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카이사르는 그 모습에 잠시 놀람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레기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