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195. 고래 싸움에.
195.
테세우스는 급히 두 팔의 글라디우스를 들어 디오클레스의 내려치기를 막아냈다.
까아앙 챙강 까드득!
디오클레스의 대검은 교차한 두 글라디우스 중 앞쪽의 글라디우스를 완전히 박살냈고 남은 글라디우스 역시 반쯤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자신의 공격이 막힌 사실에 심기가 상한 디오클레스가 팔에 힘을 줘서 대검을 뒤틀자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검이 막히긴 했으나 거의 곧바로 이뤄진 동작이었기에 외부에서 보기엔 검이 그대로 테세우스의 글라디우스 두 자루를 단번에 박살 낸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뒤틀면서 먼저 부서진 오른팔의 글라디우스를 디오클레스에게 날렸다. 검신의 반 이상이나 깨져 나갔지만 아직 검자루에 붙어있는 날카로운 검신이 일직선으로 곧장 그의 목젖을 향해 쇄도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그 모습은 마치 화살을 강하게 쏘아낸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디오클레스는 무기를 잃은 테세우스를 그대로 양단하려는 듯 바닥을 내리찍은 검을 들어 횡으로 베려다가 급히 몸을 틀어 날아오는 글라디우스를 피해냈다.
하나 그러면서도 왼손으로 검을 옮기며 테세우스가 있던 자리를 훑어냈다.
부우우웅!
테세우스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땅바닥에 낮게 깔렸다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검의 궤적을 피해내며 이번에는 바닥에 떨어진 삼지창을 디오클레스의 몸을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디오클레스는 대검으로 바닥을 훑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가슴이 열린 상황이었다. 테세우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삼지창을 날린 것이었다.
쐐에에에엑!
테세우스의 삼지창은 마치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진노해 던진 것처럼 맹렬하게 허공을 찢었다.
콰직!
“크허허헝!”
디오클레스가 급히 몸을 뒤틀었으나 거리의 간격이 좁은 상황에서 연속해서 틈을 노리고 날아온 연속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던지 삼지창을 완벽하게 피해내지 못했다. 다행히 가슴은 아니었으나 삼지창의 날카로운 창날에 의해 왼팔 상박부 근육이 갈가리 찢어져 버렸다.
그 고통에 한 차례 크게 울부짖었으나 그 고통은 디오클레스에게 더욱 맹렬한 투쟁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을 뿐이었다. 놈에게 상처를 입힌 테세우스 역시 방심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테세우스는 재빨리 다시 바닥에 떨어진 창과 글라디우스를 집어 들었다. 아까처럼 글라디우스 두 자루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무기를 가려서 선택할 여유가 없었다. 디오클레스가 대검을 다시 휘둘렀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디오클레스는 힘도 힘이지만 상당히 민첩했기에 대검을 휘두른다고 해서 일반적인 것처럼 한참 동안 허공을 가른 뒤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했듯이 디오클레스는 커다란 대검을 나뭇가지 휘두르듯이 휘두르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휘두를 때 어떤 식으로 휘두르던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빠르게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따라서 테세우스와 디오클레스의 대결을 지켜보는 자들은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손에 땀을 쥐며 저들의 대결을 지켜봤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모두를 놀라게 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디오클레스도 디오클레스지만 시종일관 그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테세우스는 정말이지 신화 속의 헤르쿨레스나 마르스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헤르쿨레스가 치른 열두 과업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신화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자가 실제로 자신들 앞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로마시민들은 테세우스에게 깊은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자신 역시 좋아하는 연예인이 집앞에 온 셈이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겠고 호감을 품지 않으랴?
정말로 신화의 인물이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진짜 헤르쿨레스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호기심과 같은 욕구를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니 말이다. 게다가 헤르쿨레스는 로마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전설이었기에 그와 동일시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테세우스는 많은 이득을 얻게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디오클레스의 손에 죽어버린다면 이 모든 것이 무용한 일이겠지만 당연하게도 테세우스는 그의 손에 죽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왼손에 쥔 창을 다시금 디오클레스에게 집어 던졌다. 디오클레스는 신경질 난다는 표정으로 쇄도하는 창을 대검의 검면으로 비껴쳤다.
까아아앙!
이번 공격은 디오클레스를 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공격할 기회를 잡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남은 글라디우스로 내밀어진 오른 허벅지를 빠르게 베어냈다.
촤아아아악!
“크허어엉!”
분명 인간이건만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던 디오클레스는 피 흘리는 왼손으로 테세우스의 머리칼을 잡아채려고 내밀었다. 하나 그건 큰 실수였다. 테세우스는 글라디우스를 손 안에서 빙글 돌리며 디오클레스의 왼손목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크어어어어엉!”
손목이 잘린 고통에는 디오클레스도 별수 없었던지 허벅지가 베일 때까지도 꿈쩍하지 않던 그도 몸을 뒤틀면서 괴로워했다. 그 기회를 놓칠 테세우스가 아니지 않은가? 맹수는 죽을 때까지 맹수다. 맹수를 잡을 때는 맹수가 죽는 그 순간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독사는 머리가 잘려도 잘린 머리는 독액을 뿜거나 물 수 있다. 심지어 몇 분 정도가 아니라 몇 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승기를 잡았다고 방심한다면 양패구상 내지 도리어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고자 재차 달려들었다. 디오클레스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죽을 위기에 놓인 디오클레스는 모든 힘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고 어지간한 자들은 품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검에 갈가리 찢겨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하나 지금 디오클레스와 전투를 치르고 있는 자는 바로 테세우스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테세우스는 흉흉한 놈의 대검을 막거나 흘리며 놈의 가슴과 허벅지 다리 등을 착실하게 베어냈다. 무리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하다고는 하나 그 어떤 적보다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할 수 있는 자가 디오클레스였으니 말이다.
디오클레스는 피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투쟁심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약에 취한 광전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누군지 모를 라니스타가 디오클레스를 제어할 수 있던 비밀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디오클레스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고 그 이름이 가진 위명 역시 테세우스라는 이름에 흡수되어 사라질 테니까.
테세우스는 왼주먹으로 디오클레스의 턱을 강하게 가격했다. 투쟁심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지만 이제는 한계였는지 그 공격에 비척거리며 뒤로 연신 물러났다. 테세우스는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리기 위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솜털이 곤두서는 섬뜩함에 급히 뒤로 물러서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그곳에는 투창용 병기들이 일제히 틀어 박혔다.
눈을 들어 저편을 바라보며 어느새 증원된 검투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데메트리우스······.’
테세우스는 단번에 놈의 수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검투사들은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저들이 나섰다는 것은 저들의 주인이 저들에게 싸우기를 종용했다는 소리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검투사로 싸워본 적이 있던 테세우스는 라니스타들이 검투사를 함부로 굴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물론 훈련되지 않은 검투사들은 아무렇지 않게 굴리는 편이나 잘 훈련된 검투사는 그 자체로 훈련소의 가치를 높여준다. 따라서 정말 큰 검투경기가 아니라면 라니스타의 의견에 따라 패배했음에도 목숨을 구함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오늘 키르쿠스 막시무스 대지 위에 선 검투사치고 노련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라니스타들이 아끼는 인력자원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을 알고도 자신과 싸우게 만든다? 별도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는 한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별도의 이익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내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저들의 심정이야 어찌 다 알겠느냐만은 테세우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다시금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의 함성만 봐도 저들의 심정 정도는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남은 검투사 전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데메트리우스는 물론 그 뒤의 메텔루스 가문의 위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리라. 아울러 자신의 손해를 벌충하고도 훨씬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계산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저들을 힐끗 바라본 뒤 다시 디오클레스를 향해 달렸다. 놈의 숨통부터 끊어놓아야 한다. 아니 그 전에 놈에게서 얻을 것이 있었다.
부우우웅!
정신이 혼미하여 전투의지를 상실해도 벌써 했을 디오클레스이건만 끝까지 투쟁심을 잃지 않고 짓쳐 드는 테세우스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콰광!
정확도는 전보다 뒤떨어졌지만 막강한 육체에서 비롯되는 힘은 여전했다. 대검이 땅을 후려치며 발생한 진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조차 테세우스의 노림수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검을 움켜쥔 놈의 오른 손목을 글라디우스로 잘라냈다.
하나 디오클레스는 대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으며 급히 손을 뒤로 뺐다. 그리하여 공연히 테세우스의 글라디우스는 공연히 허공을 갈랐다.
검신이 짧은 만큼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거리를 좁혀야 했고 당연히 그런 만큼 공격의도를 읽기 쉽다고는 해도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디오클레스가 빈사상태에 빠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다.
이에 디오클레스는 비척거리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테세우스를 후려칠 수 있는 기회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랬다가는 조금 전에 잘릴 뻔한 오른손이 정말로 잘려나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디오클레스를 힐끗 바라보며 스르륵 넘어가는 대검을 잡아챘다. 디오클레스는 그가 대검을 잡자 더욱 뒤로 물러섰는데 대신 주변으로 쇄도하던 검투사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디오클레스 주변으로 검투사들이 몰려 들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상처를 입고 전투력을 거의 상실한 셈이라고는 하나 그간의 악명이 있는데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스쿠툼의 벽을 만들어 그를 포위할 생각이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들은 지금껏 테세우스가 디오클레스와 싸우던 모습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테세우스는 디오클레스가 그랬듯이 그의 대검을 너무나 간단하게 휘둘렀다.
콰지지직
“크아아악!”
“으아아아악!”
스쿠툼을 믿고 달려오는 검투사들은 스쿠툼과 함께 박살나버렸다. 보아디케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충격은 견뎌낼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 검이었기에 테세우스는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지직!
그때 자신이 베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솟구쳤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검투사 두어 명이 마치 포탄 쏘아지듯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디오클레스의 짓이었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날아오는 검투사들을 양단해 버렸고 이들의 육신은 이리저리 갈라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쿵 쿵 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투사를 집어던진 디오클레스는 악귀같은 표정을 지은 채로 한 손에 삼지창을 들고 테세우스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잠시 시야가 가려졌던 지라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테세우스는 땅의 진동만으로도 놈의 진격을 알아차렸기에 검투사를 베어내자 마자 다시 검을 휘들러 삼지창의 창대를 베어내고 아울러 놈의 남은 오른손을 마저 베어냈다.
“크허허헝!”
놈은 오른손이 잘리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테세우스에게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대검을 휘둘러 놈을 베기에는 너무 근접한 상황, 테세우스는 대검을 즉시 놓음과 동시에 주먹으로 놈의 배와 얼굴을 가격했다.
쿵! 쿠궁!
피륙이 부딪치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테세우스의 강력한 힘에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디오클레스는 그순간에도 투쟁심을 잃지 않았다. 입은 물론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악귀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나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서늘한 눈빛으로 디오클레스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놈의 눈알을 터르린 뒤 양손으로 놈의 머리를 잡아 뒤틀어 뽑아버렸다.
으드드드득 추아아악!
이에 척추와 같이 연결된 신경 부분이 일정부분 딸려나왔는데 그 모습은 매우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테세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고 놈의 육중한 머리통을 바닥에 던져버린 뒤 바닥의 대검의 검면을 발로 차서 공중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투웅! 차악!
떠오른 대검의 손잡이를 왼손으로 움켜쥔 테세우스는 반원을 그리며 이를 악물고 다가서는 검투사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으아악!”
“크아아아악!”
테세우스는 얼음처럼 굳은 검투사들과 관중들을 향해 일갈했다.
“내가 바로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다. 누가 또 나를 막아설 것이냐?”
수많은 사람들이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적막함만이 흐르는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주변을 오시하던 테세우스는 대검을 바닥에 버리고 결승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검투사들은 비무장 상태로 옆을 지나가는 테세우스를 경직된 표정으로 바라만 볼 뿐,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더 이상의 경기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자리한 모두가 알았다. 결승점을 통과하지 않아도 테세우스가 승리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