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192. 달려라! 내 아우레우스를 위해!
192.
그러나 사자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더욱이 오늘의 일전을 위해 준비한 굶주린 사자들이었다. 테세우스 앞에 자리하고 있던 사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잠시 주춤거렸지만 말 그대로 그건 찰나의 망설임이었을 뿐이었다.
“크허어어어엉!”
사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리며 그 거대한 체구를 테세우스에게 달렸다. 앞발과 함께 커다란 입을 쩍 하니 벌렸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슨 사자를, 그것도 수사자를 맨몸으로 상대하려 하는 미친놈이 다 있단 말인가? 이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황당한 시선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거대한 체구의 수사자가 테세우스를 덮치는 순간, 대부분의 이들이 오늘의 유흥이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대가로 배고픈 사자의 유흥이 시작되겠지만 말이다.
“어딜!”
그러나 테세우스는 지금까지 그랬듯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을 관중들에게 다시금 보여줬다. 그는 몸을 숙이며 수사자의 앞발과 아그작 다무는 이빨을 피해낸 뒤 왼손으로는 사자의 오른 앞발을 잡아채고 오른손으로는 사자의 배를 가격하며 사자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크허허허헝!”
지금의 울음소리는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크르르르릉!”
바닥에 몸을 배배 꼬던 사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재차 달려들자 테세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사자에게 말했다.
“기회를 줄 때 엎드렸어야지.”
사자는 입을 쩍 하니 벌리고 테세우스의 목덜미를 삼키기 위해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당장에라도 살점을 갈가리 찢어먹을 것처럼 사나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터억! 턱!
그러나 그 시도는 이룰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양손으로 사자의 아래턱과 위턱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자의 아가리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우두두두둑!
“커어어엉!”
테세우스의 손에 아가리가 찢긴 수사자는 그 끔찍한 고통에 즉사해버렸고 테세우스의 양손에 잡힌 채로 축 늘어져 버렸다. 25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자를 테세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옆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쿠우우웅!
남은 다른 수사자들이 그 모습에 움찔 놀라며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비단 사자들뿐이랴? 놀라기는 사자들보다 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이 더 놀랐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괴력에 열광하던 관중들마저 할 말을 잃고 테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사나운 기세를 발하며 관중들을 오시하며 소리쳤다.
“들어라! 로마시민들이여! 내가 바로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다!”
“우..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미.. 미친!!!”
“헤.. 헤르쿨레스!!”
“헤르쿨레스의 재래다!”
“테.. 세우스!”
“테세우스!”
“와아아아아아!!”
*
상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크라수스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자를 맨손을 찢어 죽여?”
크라수스는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단순히 사자를 찢어 죽였기 때문에 섬뜩함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인 사실에 크게 놀란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의 섬뜩한 감정은 자신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각에서 오는 섬뜩함이었다.
이를테면 늑대를 피하려다가 사자를 집에 불러들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자는 민중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유리한 정황을 이끌어 올 수 있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콘수아리아 축제기간 동안 여러모로 고무적인 성과를 얻었고 테세우스의 활약으로 오늘의 경기 역시 성공적으로 치러진 셈이기에 기분 좋게 최상등급 팔레르노 포도주를 음미하고 있던 크라수스는 입안의 미각마저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나 크라수스는 자신이 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수부라 지구라고 했던가? 로마의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했다고 했을 때 내심 얼마나 그를 비웃었던가? 대체 저들을 데리고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로마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나? 투표권이 유명무실한 이들에게 정무관에 나아갈 때 지지를 얻을 수나 있나? 그도 아니면 이들에게서 무슨 부를 창출 할 수 있기나 한가? 물론 하층민의 인기야 얻겠지만 참으로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테세우스, 이 자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러니까 평민과 기사계급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시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는 대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크라수스는 더운 여름날인데도 불구하고 팔뚝에 닭살이 돋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날개를 달아준 셈인가?”
시민권과 신분을 그리 수월하게 인정하면 아니 되었다. 로마의 모두가 속은 것이다. 테세우스 이자에게 말이다.
“폼페이우스!”
폼페이우스. 그를 정치적으로 아둔하다고만 여겼는데 테세우스를 경계한 것이 그래서였던가? 아둔하다고 생각했던 이가 가장 현명했고 현명한 판단이라 여겼던 것이 실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테세우스와 척을 진 자가 데메트리우스, 데메트리우스라고 했던가? 크라수스는 눈매를 좁히며 관중의 환호를 한몸에 받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들고 있던 포도주를 모두 들이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달콤하던 포도주가 그렇게 시고 쓸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 최고급 팔레르노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최하급 술이나 마시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
데메트리우스 역시 지금까지의 느긋한 표정을 지우고 바티아투스에게 말했다.
“놈! 놈을 죽일 수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이오?”
바티아투스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지만 이내 곧 미미한 미소를 띠며 데메트리우스에게 말했다.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힘이 센 검투사 역시 준비되어 있고 힘이 세다고 전투에서 살아남는 것 역시 아니니 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던 데메트리우스는 바티아투스가 허풍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아까 전처럼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사자를 찢어 죽이는 용력을 가진 사내를 죽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자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믿지 못해서 하는 일이 아니오. 하나 이 일이 성공했을 때의 달콤함이 깊을수록 실패했을 때 쓴맛 역시 깊다는 것 역시 간과하지 말길 바라오.”
바티아투스 역시 데메트리우스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유수의 가문들은 저절로 그 위치에 올라간 것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문이라면 로마 최고의 가문 중 하나였다.
“물론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헤르쿨레스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 장담했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좋소.”
데메트리우스는 테세우스를 내려다 봤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 자신의 검투사 노릇이나 하던 놈이 언제 이리도 번듯한 신분을 얻었단 말인가? 해방노예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은 데메트리우스는 속에서 지독한 분노와 시기가 불일듯이 타올랐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광기가 데메트리우스와 같은 이들에겐 존재했다. 그 광기가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기에 그것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광기가 테세우스의 목숨을 원했다. 자신도 원한다. 놈의 치욕스러운 모습을 지켜보길 절실히 원한다. 그러니 죽이리라. 반드시 죽이리라! 반드시!
*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열린 경기의 우승자가 누구일지는 이제 누구도 궁금해하지도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테세우스, 그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으랴? 남은 것은 테세우스가 자신의 두 발로 결승점에 도달하는 일만 남았다.
하나 모형 숲 지대에 다다르자 그를 막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완전무장을 갖춘 검투사들이었다. 카푸아의 검투사를 대거 고용하고도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드디어 이 자리에서 밝혀졌다.
메텔루스 가문은 데메트리우스를 통해 바티아투스와 같은 라니스타가 운용하는 훈련소 10곳을 고용했다. 이에 각 라니스타는 각기 노련하고 뛰어난 검투사 50명씩을 데리고 로마에 도착했다.
이들은 백전으로 단련된 살인병기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잘 죽일까를 연구하고 훈련하는 이들이니 전투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정예병보다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이들, 검투사의 삶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이다. 강자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단련된 괴물들이었다.
따라서 저마다 병장기를 손에 들고 다가오는 검투사의 모습에서 테세우스는 어떤 두려움도 읽을 수 없었다. 그 수가 무려 수백은 되어 보였다. 이들 하나하나가 방금 상대한 사자보다 위협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완전무장한 노련한 검투사가 맹수를 이기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맹수의 두꺼운 가죽도 날카로운 쇠붙이를 막을 수 없었고 이빨이나 발톱 역시 쇠붙이를 뚫을 수 없었으니 노련한 검투사는 능히 그 이점을 이용해 맹수를 거뜬하게 잡아냈다.
그러니 사자 한 마리를 죽인 일이 이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테세우스처럼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이는 일은 결코 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죽인다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더욱이 이들이 상대해야 할 적은 맹수처럼 어떤 무기나 방어구도 걸치지 않은 자가 아닌가? 언제는 자신들이 맹수보다 힘이 세고 날렵해서 맹수를 죽일 수 있었던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 200명의 검투사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더 많은 검투사들이 길목 길목을 점거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테세우스는 드물게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죽음의 코스가 아닌가? 누가 홀로 이 길을 뚫고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마 살아남은 기수들은 자신이 죽거나 포기하는 것을 기점으로 모두 경기를 포기할 것이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죽을 테고 포기한다면 명예와 명분을 잃게 된다. 역시나 간교한 놈이다. 데메트리우스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포기할 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주 화려한 입성식이 되겠구나. 그러니 마련해준 무대를 마다해서는 곤란하겠지.”
죽고 죽이는 전사의 삶에서 적에 대한 동정은 사치다. 검투사들에게 별다른 사감(私感)은 없지만 저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듯 자신도 저들을 죽일 뿐이다. 그뿐이다.
무르밀로와 세크토르, 레티아리, 삼니테, 트라케스 등 각양각색의 검투사 병종이 한데 어울려 있었다. 그 모습은 체계화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틈을 보인다면 언제고 등이나 허벅지 드러난 모든 곳에 가차없이 무기를 박아넣을 사나운 놈들이다. 팔다리가 잘려도 입으로라도 살점을 물어뜯을 독한 자들이다. 이는 어떻게든 눈에 들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권력자든 라니스타든 관중이든 말이다.
무르밀로(물고기 모양의 투구를 쓴 검투사)들이 스쿠툼과 글라디우스를 들고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히자 이에 무르밀로와 비슷한 무기 종류를 사용하는 세크토르(둥근 투구를 쓴 검투사) 역시 그 움직임에 맞춰 스쿠툼을 앞세우고 천천히 테세우스를 향해 다가왔다.
테세우스는 팔을 늘어뜨린 자세로 저들을 향해 일갈했다.
“내 앞에서 비켜서라! 오늘 로마의 누구도, 심지어 너희의 라니스타들도 오늘 너희의 행동을 책잡지 못할 것이니!”
“오만한 놈! 방어구 하나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네놈이 오늘 이곳을 살아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건가?”
“네놈이 살아남을 방법은 한 가지다.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라!”
“흐흐흐흐! 별 잡스런 소리를 다하는구나.”
검투사들이 그를 크게 비웃었으나 테세우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을 박차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무르밀로들을 향해 달려갔을 뿐이었다.
그때 무르밀로 뒤편에서 쇠그물이 던져졌다. 그 그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바로 레티아리들이 던진 그물이었다. 테세우스가 그물에 갇히면 무르밀로와 세크토르들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 들고 있는 글라디우스로 테세우스의 몸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찔러 넣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하늘을 뒤덮는 그물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급박한 광경과 전혀 동떨어진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망회회소이불실이라······.’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레티아리들이 던진 쇠그물은 어디로 피할 수도 없게끔 거의 완벽하게 방위를 점거한 채 날아오고 있었다. 그 방위를 벗어난 곳에는 무르밀로와 세크토르 등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어디에도 생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그랬기에 그런 생각을 품은 것이란 말인가? 하나 테세우스에게 그 단어는 그저 하늘을 뒤덮은 그물의 모습에서 떠오른 일종의 잡생각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몸을 낮춰서 무르밀로 앞에까지 다다랐다. 그물은 어찌 피할 수 있었지만 무르밀로의 날카로운 글라디우스는 피할 수 없게된 상황, 자신 앞에 다가온 테세우스를 무르밀로는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찍었다.
콰직!
“크아아악!”
하나 언제나 그렇듯 비명을 지른 이는 테세우스가 아니라 그를 공격한 적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