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91화 (191/298)

# 191

191. 달려라! 내 아우레우스를 위해!

191.

쿠웅! 치이이이익!

속도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 바퀴가 부서졌다고 전차가 전복되는 사태가 발생하진 않았으나 바퀴를 잃어 아래로 비스듬히 쳐진 전차는 지면에 왼쪽 모서리를 처박고 강한 마찰을 일으켰다. 철칠려를 밟은 말이 전차를 극심하게 좌우로 흔들었기에 그 요동치는 힘으로 인해 외려 충격이 상쇄되어 전복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물론 전복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테세우스의 즉각적인 대응에 있었다. 먼저 테세우스는 말고삐를 강하게 잡아채서 고통에 발광하는 말을 힘으로 제압한 뒤 흔들리는 움직임에 맞춰 전차를 변칙적으로 흔들어 오른쪽 바퀴를 향해 날아오는 단창을 피해냈다.

왼쪽 바퀴를 향해 날아오는 단창도 확인했지만 테세우스는 애써 피하지 않고 바퀴를 파괴하게끔 내버려 뒀다.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테세우스는 좌우로 요동치는 전차의 움직임에 맞춰 체중과 힘을 시의적절하게 분배하여 균형을 잡고 있었지만 말은 고통에 의한 패닉상태에 빠졌기에 고삐로만 말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잡아당긴 고삐는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며 가죽이 터져나가는 소음마저 간간이 울려 퍼졌다. 계속 이런 식으로 잡아채다가 고삐가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제멋대로 움직일 말에 의해 결국 전차가 전복될 것이다.

그러나 더 효율적으로 제어를 한답시고 너무 세게 잡아채면 고삐를 통해 전해진 강한 반발력을 이기지 못한 말이 죽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테고 전차와 말의 연결부를 끊어내자니 달리는 중이라 끊어내는 순간 전차가 앞으로 회전하는 사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전차는 왼쪽으로 휘어진 길을 따라 달리고 있었기에 원심력은 오른쪽 밖으로 강하게 작용했다. 말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전차가 흔들릴 때 테세우스가 가장 신경 써서 제어한 방향 역시 오른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른쪽 바퀴가 박살나고 전차 오른쪽 모서리가 지면에 부딪힌 충격, 곧 강한 제동력이 걸린다면 전차는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빙글빙글 허공을 날아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왼쪽 바퀴를 부수게끔 내버려 둔 것은 오른벽의 촘촘하고도 날카로운 쇠못을 향해 빠르게 밀려나는 전차의 움직임에 제동력을 걸면서도 전차를 전복시키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콰드드드드.

실로 긴박한 순간이었건만 그 짧은 순간에 내린 테세우스의 판단은 주효했다. 발광하던 말은 테세우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눈에 띄게 잠잠해졌고 전차는 바닥에 끌려가면서도 전복되지 않았다. 이에 테세우스는 여전히 왼쪽에 체중과 힘을 가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점에 이르러 오른손으로 오른 바퀴 윗부분을 강하게 가격했다.

콰아아앙!

밀려가는 충격에 의해 전차 밑바닥 안쪽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던 바퀴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바로 그 반발력과 땅에 떨어진 충격이 다시 강한 제동력을 가져와 간신히 전차를 정지하게 만들었다. 오른벽의 쇠못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

테세우스가 그렇게 전차를 멈춰 세우는 동안, 단창을 던진 두 기수 중 한 기수가 상당히 긴 검을 꺼내 들고 테세우스를 양단할 것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이제 막 전차를 정지한 시점이었기에 누가 봐도 단칼에 양단될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부우우웅!

하나 테세우스는 마치 중력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사람처럼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왼쪽으로 빙글 몸을 회전시켰다. 결국 기수가 휘두른 검은 회전하며 아래로 휘날리는 테세우스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베어냈을 뿐이었다.

섬뜩한 파공성이 머리칼을 갈랐다. 테세우스는 빙글 돌았다가 다시 반전되는 시야를 눈에 가득 담은 채로 놈의 왼어깨를 오른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어어억! 크하아아악!”

푸우우욱!

달려오던 사내는 긴 검을 든 채로 빠르게 오른벽으로 날아가 쇠못에 박제되었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붉은 핏물은 덤이었다.

터엉!

테세우스는 놈이 달리던 전차 위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원래 타고 있던 주인은 대경기장 한편에 잔혹한 장식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그 모습을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기수가 있었다. 테세우스 전차의 왼쪽 바퀴를 파괴한 그 기수 말이다.

“빚은 갚아줘야겠지.”

테세우스는 그 말과 함께 들고 있던 푸지오를 냅다 집어던졌다.

훙훙훙훙!

짧고 넓은 단검은 마치 부메랑처럼 호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이윽고 전차의 왼쪽 바퀴살을 부숴버렸다.

콰아아앙!

“크으윽!”

하나 푸지오만으로는 빠르게 회전하는 바퀴를 부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나마 테세우스였으니까 부순 것이지 다른 자가 던졌다면 도리어 튕겨 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퀴를 부수거나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창과는 달리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전차의 왼쪽 바퀴살이 부서지긴 했으나 아직 버텨내고 있었다. 물론 그 충격으로 전차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기에 기수는 기겁하며 속도를 줄이고 전차를 제어하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조금 전의 기수와 마찬가지로 쇠못에 박제될 판인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나 그런 노력이 무용했다. 어느새 다가온 테세우스가 전차로 놈의 전차를 왼쪽으로 강하게 밀쳤기 때문이었다.

콰과과과광!

“크아아아아악!”

결국 기수의 왼쪽 바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완전히 박살났고 그 여파로 전차는 왼쪽으로 빠르게 회전하다가 예의 벽에 부딪혀 그 춤사위를 멈췄다. 이에 기수와 그가 탄 전차와 말까지 모두 왼쪽 벽을 장식하는 장식품이 되어버렸다. 붉은 핏물과 살점이 허공으로 비산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전차와 부딪친 반동을 이용해 남은 곡선로를 완전히 벗어났다.

“와아아아아아!!”

“미쳤다!”

“와아아아아!”

“테세우스!”

“테세우스!!”

테세우스의 극적인 모습에 매료된 관중들은 일제히 그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그의 이름을 절로 외칠 정도로 짜릿한 광경이었다.

‘이제 남은 전차는 6대!’

하나 테세우스는 이 분위기에 조금도 휩쓸리지 않았고 조금도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고도 냉정한 눈빛으로 경기장 저편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볼 뿐이었다.

콘수아리아를 기념하는 행사로 대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리지만 전쟁과 전투는 군신 마르스의 영역에 속한 것이니 경기행사 자체는 마르스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불길은 아마도 마르스의 시련을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졌다.

후끈한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테세우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채찍을 강하게 휘둘렀다.

“차! 차!”

*

“준비된 것은 대체 언제 시행할 것인지 알기를 원하십니다. 아울러 기수가 그 전에 모두 사라지면 준비한 것이 무용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대단한 놈이었다. 메텔루스 가문에서 따로 노예를 보내 재촉할 정도라니······. 확실히 대단한 놈이긴 하다. 20명의 기수가 모두 그를 노렸거늘, 이제 남은 건 고작 6명이 전부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기수가 전부 죽는다면 경기를 더 진행할 이유도 없어지는 셈이다. 승부가 갈린 셈이니 말이다.

이는 당연히 데메트리우스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진한 웃음을 지으며 노예에게 말했다.

“영웅은 영웅에 걸맞은 죽음이 필요한 법, 그에 걸맞은 죽음은 마련했으니 이제 시작한다 전하거라!”

모호한 말에 노예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가 판단할 부분은 아닌지라 고개를 숙인 뒤 급히 상석으로 이동했다.

테세우스가 뛰어난 사내가 될수록 그에게 죽임을 당한 메텔루스 피우스 죽음도 덜 불명예스러워진다. 데메트리우스가 언급한 영웅은 테세우스가 아니라 바로 메텔루스 피우스를 이르는 말이었다.

“놈이 날뛰면 날뛸수록 나의 가치도 상승하는 법이지. 아니 그렇소?”

“물론입니다. 설마했는데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낼 줄이야. 그러나 놈이 얼마나 뛰어나던지 간에 결국 놈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장렬한 죽음과 함께 저희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주고 말입니다.”

바티아투스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다가 이내 곧 비릿한 웃음으로 표정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좀 번거롭긴 했지만 윗분들도 기꺼워하겠지. 실리와 명예까지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더는 기다리지 못할 것처럼 재촉을 하니 뭐 더는 두고 볼 필요도 없겠군. 이쯤이면 얻을 건 다 얻은 셈이야. 그러니 기수들에게 신호를 보내시오.”

데메트리우스의 말에 바티아투스는 웃음을 거두며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

‘음?’

테세우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이미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저들이 갑자기 적의나 살의를 거둘 이유가 없을 텐데 자신을 선두로 보내고 저들은 자신의 뒤를 따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들이 자신에게 겁을 집어먹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지금 자신의 손에 살아남더라도 저들에게 의뢰한 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것을 뻔히 하는 이들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온다?

‘그랬군. 일종의 에피타이저라 이 말인가? 그럼 어디 어울려주지.’

목적이 있어 선두로 내세웠든 아니면 두려워서 자신을 멀리하든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테세우스는 오늘의 경기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것으로 보였다. 이미 경기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지 않는 시민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하나 이 모든 영광과 호의도 죽음 앞에는 차디찬 얼음처럼 굳어버리고 결국 미약한 먼지처럼 변해버릴 것이다. 그것이 세인들이 말하는 영광이고 성공이고 명예였다. 항우도 그랬고 리처드도 그랬다. 저들이 얻은 모든 영광과 명예는 서후에게 오늘 먹을 라면 하나보다도 못했다. 우와! 대단했구나. 물론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결국 그게 전부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무슨 영광과 명예를 얻든 오늘 이곳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소리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명예를 얻어서 어디에 쓰겠고 죽은 자가 산 자의 영광을 얻어서 어디에 쓰겠으며 죽은 자가 산 자의 성공을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죽은 자는 그저 부는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처럼 잊혀질 뿐이다. 조금 늦고 빠르고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결국 저들은 자신에게 전리품을 몰아주고 후에 죽임으로 자신이 취한 전리품을 날름 집어삼킬 속셈이리라. 죽은 자는 산 자의 것을 탐할 필요도, 탐할 수도 없을 테니까.

테세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는데 너희는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어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거라. 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가 어떤 자인지를! 누구를 적으로 삼았는지를 말이다!’

테세우스는 거침없이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내달렸다. 두 마리의 물고기 모양이 종이 내려앉으며 두 바퀴 째를 알리고 다시 출발점에 돌아오는 순간, 테세우스는 전차의 속도를 줄이고 전차에서 내렸다. 마지막 바퀴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오늘 경기의 규칙이었으니까. 621m, 폭 118m이니 근 1500m에 달하는 거리가 1바퀴에 해당하는 거리가 될 것이다.

하나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이 단순히 마라톤을 위해 이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게 만들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그런 경기를 열광하며 볼 로마시민도 아니지 않은가? 남은 마지막 바퀴 역시 단순히 마라톤 경기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테세우스가 전차를 버리고 가볍게 경기장을 뛰자 철창 소리와 함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심한 노린내가 풍겨났다.

‘데메트리우스.’

테세우스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바로 데메트리우스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갈색 갈기를 가진 사자 여섯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테세우스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자는 두터운 가죽과 발톱, 그리고 이빨을 가졌지만 테세우스는 수중에 아무것도 없었다. 먼지와 핏물이 묻은 튜니카 한 벌이 전부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이런 미친! 수사자를 여섯 마리나 풀었어?”

“대체 오늘의 경기를 기획한 미친놈이 누구야? 승리자가 나오지 않게 기획한 건가?”

“미친!! 이건 무효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경기에 돈을 받다니!! 무효야!”

“죽여라! 내 돈을 날린 저 새끼를 찢어 죽여버려!”

“으하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으하하하!”

관중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수용하는 편이었다. 아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던 테세우스가 갈가리 찢어나갈 모습이 연상되자 그것도 상당히 흥미롭게 여겨졌다. 테세우스는 여섯 명의 기수가 왜 자신의 뒤로 빠졌는지 확실히 알았다.

잠시 걸음을 멈춘 테세우스는 바닥의 모래를 한 움큼 쥐어 손바닥에 가볍게 비비며 나지막이 말했다.

“뭐든 간에 내 앞을 가로막으면 죽인다. 그러니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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