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189. 달려라! 내 아우레우스를 위해!
189. 달려라! 내 아우레우스를 위해!
촤라라락!
채찍에 촘촘하게 박힌 철가시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음이 테세우스의 고막을 자극했다. 채찍은 마치 거대한 독사가 먹잇감에 독니를 꽂아 넣을 때처럼 사납게 쇄도했는데 사선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일반적인 채찍이라면 손으로 잡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엄청난 반사신경과 힘을 가진 테세우스는 정확한 타이밍에 그것을 잡아챈 뒤 도리어 잡아당겨 기수를 전차 밖으로 끌려 나오게 만들 수 있었다.
하나 조금 전에도 테세우스가 채찍을 잡아채려다가 급히 손을 뺀 연유가 무엇이던가? 그렇다고 아까처럼 채찍을 피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날아오는 채찍의 궤적을 계산해보니 몸을 피한다면 채찍은 말의 엉덩이를 훑고 지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철가시가 촘촘히 박힌 놈의 채찍은 말 엉덩이 부분의 가죽과 살점까지 뜯어버릴 테고 그 고통에 말들은 펄쩍 뛰며 발광할 테니 이런 말들을 데리고 전차경기를 더는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경기가 문제가 아니라 말이 요동치는 충격으로 큰 부상을 입을 염려부터 해야 할 판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지만 테세우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채찍을 날린 기수는 사납게 웃으며 채찍을 잡은 손잡이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 여파로 채찍은 당장에라도 테세우스의 팔을 뜯어낼 것처럼 현란하게 구불거리며 쇄도했다.
팅 차라락
“크허허헉!”
테세우스의 비명인가? 아니었다. 채찍을 던진 기수의 비명이었다. 테세우스는 채찍을 향해 푸지오를 내밀었다. 폭이 넓고 짧은 검이라 자칫 잘못하면 채찍에 팔목이 감겨 댕강 날아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테세우스는 채찍의 궤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이윽고 채찍이 푸지오를 몇 번 감기 무섭게 그는 강한 힘으로 채찍을 잡고 있던 기수를 잡아당겼고 그 힘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미처 대처하지 못했던 기수는 채찍을 꽉 잡고 있던 자신의 힘과 테세우스의 잡아당기는 힘으로 인해 공중에 붕 떠버렸다.
테세우스는 기수가 날아오름과 동시에 다소 느슨해진 채찍을 푸지오에서 풀어냈다. 정확하게는 채찍이 느슨해지는 시점에 맞춰 푸지오를 옆으로 빼듯이 휘둘렀다.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채찍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전차 밖으로 길게 늘어진 위험한 채찍을 무리하게 잡아채다가 외려 말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노릇이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이윽고 기수는 흙바닥에 위에 형편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대체 무슨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그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채찍을 쥐고 있었다. 달리 보면 채찍을 다루는 데 있어 그만큼 숙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단 이 모습이 아니더라도 모든 기수가 숙련되고 노련한 전사로 보였으니 테세우스라고 해도 방심한다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되리라. 물론 테세우스가 방심할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철푸덕!
“크아아악! 아.. 안돼!!”
자신이 타고 있던 전차는 앞으로 빠르고 달리고 있었고 기수는 공중에 뜬 상황이었기에 그가 땅에 떨어졌을 때는 다행히 전차 뒤편에 떨어졌다. 그 충격에 기수는 고통 섞인 비명을 터트렸으나 그보다는 두려움에 찬 고함이 더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 이유는 뒤편에서 죽음의 전차들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당탕탕탕!
“제.. 젠장!”
땅에 떨어진 기수를 뒤편에서 달려오던 전차가 말발굽과 전차의 바퀴로 완전히 뭉개버렸다. 살이 찢기고 뼈가 바스러지는 끔찍한 충격이 전차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자 그를 깔아뭉갠 전차의 주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가 욕설을 뱉은 이유는 끔찍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땅에 떨어진 멍청한 놈으로 인해 자신의 전차가 전복될뻔했다는 사실이 더 컸다.
땅에 떨어진 기수는 그렇게 뒤따르던 수없이 많은 전차에 밟혀 이리저리 찢겨 나갔다.
콰직 콰직
“와아아아아아아!”
“더 죽여라!”
“이 새끼야! 달려! 더 빨리 달리라고!”
“이런 병신같은 새끼!! 내 돈 돌려내! 이 새끼야!!”
“으아아아! 내 돈! 내 돈!!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으하하하하! 달려라! 그래! 더 달려!”
이리저리 찢겨나간 살점과 붉디붉은 피가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대지 위에 흩뿌려지자 관중들은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을 터트렸다.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동정심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각 기수에 돈을 건 관중들은 자신의 얻을 이득과 손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고 보다 잔인한 광경이 벌어지길 원하는 자들은 더 많은 피가 경기장에 흩뿌려지길 기대할 뿐이었다.
결국 지독한 탐욕과 더 큰 쾌락을 원하는 잔혹하고 저열한 말초적인 욕망만이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넓은 대지에 들끓고 있을 뿐이었다. 자비는 둘째치고 하다못해 콘수아리아 축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콘수스에 대한 신심을 가진 자 역시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는 로마인과 신의 관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줬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전차와 전차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을 냈지만 사전에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모양인지 이들은 서로 다투지 않고 테세우스의 전차를 주시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노련하게 말고삐를 잡아채며 좁은길을 빠르게 주파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전차들은 더욱 빠르게 따라붙었고 그의 앞에서 달리는 전차들은 속도를 줄이며 그와의 거리를 서서히 좁히고 있었다.
좁은길이 끝나는 지점을 바라보자 오르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나무판자 등으로 길을 만든 모양인데 결코 안전해 보이는 시설물은 아니었다.
투두둥 투두둥
속이 빈 구조물 위에 말과 전차가 올라서자 더욱 요란한 소음이 대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하나 그 소음은 관중들의 흥분을 더욱 배가시켰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피이이이잉! 피이잉!
테세우스는 오르막길을 타고 오르다가 내리막에 이르는 순간 양옆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파공성에 급히 몸을 뒤틀었다. 그러자 두 발의 볼트가 순식간에 자신의 몸 앞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앞서간 기수들은 겪지 않은 일이었다.
하나 날아온 궤적을 감안해 보면 기수들이 날린 것도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시설물 사이에 빼꼼히 삐져나와 있는 날카로운 볼트촉을 발견했다.
크로스보우(쇠뇌)가 분명했다. 발리스타, 스콜피온도 운용하는 마당에 크로스보우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크로스보우를 소지한 군단병도 상당히 많았으니 딱히 의아할 것도 없다. 이들이 자신만 공격한 이유는 더더욱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었고.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수 중에도 크로스보우를 소지하고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전차의 이동속도로 인해 빠르게 스쳐가는 측면과 전방을 거의 동시에 확인했다.
오르막길에 오르긴 했으나 여전히 길목은 좁은 상황이었다. 더욱이 양옆으로는 어떤 안전장치도 없는 상황, 테세우스가 볼트를 피하느라 전차의 제어력을 잠시 잃은 틈을 타서 그의 양옆을 밀고 들어오는 전차 두 대가 있었다. 한 대는 전방에서, 한 대는 후방에서 엇갈리게 테세우스의 측면을 장악했다.
콰아아앙!
후미에 있던 전차가 테세우스의 전차 옆부분을 들이받았다. 테세우스는 그 충격이 기우뚱했지만 이내 곧 중심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고 했으나 다시금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볼트의 파공성에 급히 몸을 뒤틀 수밖에 없었다.
끼리리리릭!
그 여파로 테세우스의 전차는 오른쪽 바퀴가 들린 채로 위태롭게 질주하고 있었다. 이대로 왼쪽으로 후려친다면 오른쪽 바퀴가 들린 테세우스의 전차는 균형을 잃고 전복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전복되는 것은 둘째치고 말과 전차 모두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위험한 순간이었다.
쾅!
그러나 전차의 밑바닥을 강타하는 소리와 함께 테세우스의 전차는 다시금 원상 복귀되었다. 찰나의 순간, 테세우스가 바닥을 오른발로 차며 체중을 실은 것이다. 실로 시의적절한 상황판단이자 놀라운 균형감각이었다.
“치잇!”
테세우스를 제거하는 것에 거의 성공할뻔했던 기수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달렸다.
그때 테세우스 전방의 왼 측면을 파고든 기수가 전차를 테세우스의 말 쪽으로 가까이 붙였다.
두두두두!
상대적으로 뒤에 있던 테세우스는 놈의 전차 안에서 햇살에 번뜩이는 물체를 확인하곤 급히 말머리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이는 놈이 말을 상하게 할 의도로 다가왔음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히이이이잉!”
테세우스가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은 테세우스의 강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기에 전차는 똑바로 내려가고 있었고 말들만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리막길이었기에 이대로 지면에 도달하면 연결부에 강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었다.
이에 테세우스는 다시 왼쪽으로 말머리를 틀었다. 그러자 전차의 뒷부분이 출렁이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테세우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체중을 실어 후미의 오른편에서 달려오는 전차를 부딪쳤다. 바퀴나 전차에 무리가 갈 정도로 강하게 부딪친 것은 아니었지만 안전장치도 없이 오른쪽 가로 달리던 전차는 그대로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절벽 위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약간 높은 지대에서 떨어진 정도로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과 전차가 연결된 상황이고 빠르게 달리던 상황이니 전차가 부서지는 일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콰아아앙! 콰지직!
“히이이잉!”
“으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전차는 바퀴가 몸통과 분리된 채로 부서졌다. 하나 오히려 이건 양호한 편이었다. 운이 없던 기수는 떨어져 내린 말에게 짓눌려 압사당했다. 밑에 깔린 기수나 기수를 깔아뭉갠 말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부서진 잔해가 다시 그 위를 덮쳐 저들의 살점과 피를 키르쿠스 막시무스 대지 위에 흩뿌렸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씨발! 내 돈!!!”
“달려! 달려라!”
끔찍한 광경에 흥분한 관중들은 더욱 고함을 질러댔다.
어쨌거나 테세우스는 그 여파로 전차를 원래 궤도로 복원시켰고 이에 다시 채찍을 후려쳐 말을 질주를 독려했다.
이윽고 테세우스는 왼 측면에 자리한 전차 옆을 나란히 질주했고 그러자 전차의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창과 비슷한 형태의 무기를 내질렀다. 아마도 용이하게 전차에 숨겨놓기 위해 일반적인 창의 창대를 자른 형태로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우우우우우!”
푸지오만 허락된 기수에게 단창은 철가시가 박힌 채찍과 마찬가지로 규칙과 위배된 행동이었다. 따라서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지만 기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향해 세차게 단창을 찔러왔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누군가? 수천수만의 정예병으로도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인 자가 테세우스가 아니던가? 제법 노련한 전사로 보이지만 이 정도 공격에 당할 테세우스가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몸을 슬쩍 뒤틀며 단창의 창대를 왼손으로 잡아챘고 그대로 단창을 빼앗았다.
테세우스의 강력한 힘에도 기수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단창을 꽉 붙잡았고 그로 인해 몸이 일정 부분 테세우스 쪽으로 쏠렸다.
콰과과과곽
마찬가지로 그 여파로 인해 서로의 전차 바퀴가 요란하게 부딪쳤다. 이대로 계속 둔다면 두 전차 모두 바퀴가 망가지게 될 터, 테세우스는 재빨리 끌려 나온 기수의 팔을 오른손의 푸지오로 베어냈다.
싹둑!
“크아아아아아!”
결국 오른 팔목이 푸지오에 의해 잘려나간 기수는 왼손으로 잘려나간 오른팔을 붙잡은 채 처절하게 비명을 터트렸다. 팔이 잘린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전차 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팔 잃은 기수의 말은 제어력을 잃었고 결국 그 전차 역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아까보다는 낮은 지대에서 떨어진 상황이라는 점인데 드러난 광경을 볼 때는 피차일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에 반파된 전차의 주인 역시 즉사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아!”
또 다른 죽음 앞에 다시금 로마시민들의 격렬한 환호가 울려 퍼졌다.
피이잉!
관중이 열광하는 그 순간, 테세우스는 뒤편에서 다시금 볼트가 쇄도하는 것을 느꼈으나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들고 있던 단창으로 그것을 걷어냈다.
그런 뒤 앞에서 뒤통수를 보이고 달리던 기수에게 가차 없이 단창을 집어던졌다.
쐐에에에엑!
푸우우욱!
테세우스의 단창은 기수의 뒤통수 뼈를 그대로 빠개고 그의 왼 눈알을 뚫은 것은 물론 그 궤적 그대로 앞에서 달리던 말의 엉덩이까지 꿰뚫었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히이이이잉!”
말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창상에 몸부림치며 발광했다. 단창에 머리가 관통당한 기수가 즉사했음은 물론이거니와 발광하던 말은 결국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두 전차까지 전복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