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184. 친구.
184.
테세우스는 악취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크라수스 저택에서 따로 대접을 받은 사비누스와 호라티우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 중 사비누스가 입을 열었다.
“비록 악취가 나긴 하지만 로마가 자랑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크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대하수도)입니다. 타르키니우스 프리스커스의 명에 의해 건설되었고 로마의 일곱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키니우스 수페르부스 시절에 하수도의 지하 작업까지 완공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시 밖 티베르강까지 연결되어 있기에 어지간한 오물은 크로아카 막시마를 통해 배출되는 편입니다.”
크로아카 막시마는 최고의 하수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BC 600년경 건설된 이 하수도는 세계최초의 하수처리시설이라 할 수 있었다. 본래는 에트루스칸(투스코스트 지역의 고대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강력한 문명)인들에 의해 노천운하로 건설된 것을 이후 로마인들이 운하를 덮고 하수도로 사용하게 되었다.
테세우스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테세우스가 악취가 풍기는 하수도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다. 폼페이 자경단을 피해 나디르와 함께 하수도로 몸을 피신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하수도는 폼페이보다 크고 넓을 것이고 그만큼 훨씬 더 많은 오물이 하수도를 타고 흐를 것이다. 누명을 쓰게 만든 폼페이보다도 끔찍한 악취가 로마 아래에 흐르고 있으리라.
“팔라티누스 언덕이 아니라 수부라 지구로 향하는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비누스는 그런 그를 뒤따르다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피톨리누스의 낮은 언덕 주변으로 로마의 가장 호화로운 주택이 자리한다면 사비누스가 언급한 팔라티누스 언덕에는 부유층과 사회적 출세를 원하는 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개인저택이나 집세가 비싼 인술라도 몇 채 자리하고 있었다.
로마에서 영향력을 얻고 싶다면 카피톨리누스나 그도 아니라면 팔라티누스 언덕에 집을 얻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굳이 도무스와 같은 개인 저택은 아니더라도 팔라티누스 언덕에 건축된 비싼 인술라를 임대하여 지내면 저들도 테세우스를 동류라 여기고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해 로마의 어디에서 지내느냐는 어떤 면에서 보면 비공식적인 신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면에서 수부라 지구는 최악의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포룸 로마눔 동쪽, 에스퀼리누스 언덕 옆으로 솟은 오피우스 언덕과 비미날리스 언덕 내리막에 위치한 수부라 지구는 로마시에서 가장 가난하고 또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았기에 쓰는 언어조차도 모두 제각각이었을뿐더러 문화나 사고방식 또한 통합되지 않은 난잡함 그 자체였다.
생각에 잠긴 채 묵묵히 뒤따르던 호라티우스도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수부라 지구는 거주하기 적합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사람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인성 문제를 떠나 저들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도 남습니다. 특별한 적이 없더라도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한 구역인데 데메트리우스라는 자가 그토록 간교하다면 반드시 저들을 통해 야료를 부릴 겁니다.”
사비누스가 호라티우스의 말을 받았다.
“호라티우스의 말이 맞습니다. 도의를 저버리면서까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일을 하는 상인이 칼을 멀리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수부라 지구는 이미 데메트리우스의 영향력 아래 놓인 지역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테세우스 님께서 만나본 크라수스는 저들과 교류할 급이 아니니······. 음?”
사비누스는 말을 꺼내다가 말고 이상한 생각에 말을 멈췄다. 자신이 추측한 사실을 테세우스가 추측하지 못했을 리 없지 않은가? 바로 그래서였다.
테세우스는 그런 그에게 간단하게 대답했다.
“거주하고 말고는 일단 수부라 지구를 둘러보고 결정할 테니 일단 수부라로 이동하도록 하지.”
“흠... 알겠습니다.”
*
테세우스 등은 계속 걸음을 옮겨 포룸 로마눔과 수많은 물산이 쌓여있는 로마의 대시장 역시 지나 쿠페데니스 시장에 다다랐다. 이곳에는 꿀, 과자, 수입과일, 견과류, 향료, 각종 양념, 화환과 화관을 주로 취급하고 있는 시장이라 지나온 대시장보다 향취가 향긋함은 물론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하늘한 스톨라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테세우스는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말없이 그곳을 지나치다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호라티우스는 갑자스레 걸음을 멈춰 세운 테세우스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테세우스 앞 저편에서 색상이 진하지 않은 연한 분홍빛의 스톨라를 걸친 여인을 발견했다. 여인은 화환이라도 고르는 모양인지 꽃집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호라티우스의 얼굴에는 지금껏 심각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묘한 미소가 어렸다. 반한 것이리라. 분명 반한 것이 틀림없었다.
“용기가 없다면 제가 대신 전해 드리겠습니다만 별로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테세우스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호라티우스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뭘? 뭘 전해? 갑자기 무슨 소리냐?”
“마음 말입니다. 마음.”
“마음?”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의 묘한 미소와 함께 이어진 시선을 바라보고 그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호라티우스가 돌아왔군.”
이번에는 호라티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돌아온 지는 벌써 오래되었습니다만?”
“실없는 소리나 하는 걸 보니 완전히 돌아온 모양이야.”
“예?”
그러자 사비누스가 입을 열었다.
“딱히 실없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비누스까지 왜 이래?”
테세우스가 미간을 좁히며 말하자 사비누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린 다음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호라티우스의 말대로 여인 때문이 아니라면 무슨 연유로 갑자기 걸음을 멈추신 겁니까?”
테세우스는 사비누스의 말에 쓴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친구를 잘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폼페이우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친구를 잘못 둔 관계로 자신의 명예마저 어느 정도 실추되게 생겼으니 폼페이우스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생각이긴 했다.
하나 테세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데메트리우스 말이야.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데메트리우스를 너무 얕잡아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군.”
“글쎄요. 일이 테세우스 님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명분은 테세우스 님께서 가져가는 것이니 더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테세우스가 고개를 주억이다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은 증거가 없단 말이야. 사실관계를 입증해줄 증거가 말이야. 있다면 증인 정도인데 글쎄. 크라수스가 거기까지 도움을 주지는 않을 테고.”
듣고 있던 호라티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전차 경기를 치르는 일에 증인이 왜 필요하고 증거가 왜 필요합니까? 소문만 잘 퍼지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역시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잠겼던 사비누스가 말했다.
“인기와 명분을 동시에 얻을 생각이셨군요.”
“맞아. 데메트리우스와 원한 관계를 맺었다고는 하나 재판도 없이 로마시민을 함부로 대한다면 이는 내게 큰 약점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놈에게 그런 식으로 보복하고 싶진 않군.”
그냥 죽이는 것도 상관없겠지만 테세우스는 데메트리우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게 진정한 복수라면 복수였다.
호라티우스도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어떻게 일이 흘러가는지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전차경기에서 승리하고 시민의 인기를 등에 업은 뒤에 누명사건에 대해 재판을 벌일 생각이셨던 겁니까?”
사비누스나 호라티우스 모두 테세우스가 경기에서 패배한다는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테세우스가 전차를 다뤄보지 않았다는 건 두 사람도 잘 안다. 하나 그게 무엇이든 전쟁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테세우스가 패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테세우스는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크라수스는 이번 콘수아리아 축제 이후로 자신과 손을 잡을 이유가 사라진다. 아니 나중에는 잡더라도 그 이상 자신을 도울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폼페이우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의 이름이 로마에서 더 이상 거론되지 않게 막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이룬 셈이다.
메텔루스 가문과 데메트리우스와 척을 지는 것도 거기까지다.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선을 완전히 넘는 행위가 될 텐데 크라수스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테세우스는 크라수스의 이름으로 전차경기를 치러 폼페이우스의 이름을 실추시켰으니 어쩔 수 없이 폼페이우스와의 관계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그런 자를 강력한 적을 만들면서까지 도울 이유가 무엇일까? 도움을 준다면 클리엔테스 관계를 맺은 후에 도움을 줄 것이나 사실 그마저도 희박하다.
크라수스로서는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여길 테니까.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그 반작용으로 메텔루스 가문이 폼페이우스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 한 명을 위해서 크라수스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닌 말로 재판이 성립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다시 손을 써서 시민권 문제나 신분 문제를 얼마간 동결할 수도 있는 노릇이야. 물론 내가 이번 축제를 통해 시민의 인기를 등에 업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겠지만 로마의 하수도는 깊고 넓으며 그 지류 역시 방대하지. 전혀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야. 어렵군. 매우 어려워. 그래서 차근히 하나씩 풀어갈 생각이었는데 상황 자체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한데 데메트리우스 이 자의 수완도 보통이 넘을 거라는 걸 간과했어. 돌파구라 생각했던 수가 자충수가 된 셈인가? 하나 로마시민의 지지는 현재 가장 듬직한 지원군이다. 그러니 이를 얻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야. 대중의 인기 따위가 현재 가장 듬직한 지원군이라니······.’
“확실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군.”
사비누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무엇을 염려하시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테세우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라면 크라수스에게만 좋은 일을 하고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어차피 크라수스의 도움은 바랄 수 없다. 그가 메텔루스 가문도 돕지 않겠다고 약조한 내용이나 지키길 바라는 수밖에. 사비누스 등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야. 대중의 인기도 인기지만 현 상황에선 변수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그래서는 결국 끌려다닐 뿐이지. 이 일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원래 계획했던 대로 간다.’
“심각하게 고려할 부분은 아니야. 하지만 아무래도 수부라 지구에 머물러야겠군.”
호라티우스가 그 말에 반문했다.
“확인해 보신 후에 결정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들이 습격하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 되겠지. 아니 이런 상황이라면 도리어 습격을 해줬으면 좋겠군.”
“으음?”
“흠.”
“신나게 잔치할 준비나 해 두도록. 크라수스가 무엇이든 내어준다고 장담했으니 사용해야지. 주인이 아까워하지 않는 재물은 마음껏 써도 탈이 없는 법이니까.”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을 크라수스다. 더욱이 수부라 지구다. 크라수스는 물론 로마 인사들의 방심을 사기에 너무나 유용한 지역이다. 가장 적은 재물로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비록 정계에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그건 더 두고 보면 알겠지.
테세우스는 머뭇거리던 망설임을 단번에 털어내고 다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실패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어차피 호랑이 등 위에 탄 상황이니 지금은 신중을 기할 때가 아니라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