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82화 (182/298)

# 182

182. 카피톨리누스에서.

182.

하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던 크라수스 금세 냉정을 되찾고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비킨티 우누스(21일)에 콘수아리아 축제가 열리는 건 맞습니다. 1년 내내 지하에 닫혀있던 콘수스 신전이 유일하게 개방되는 날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콘수아리아 축제와 제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콘수스도 콘수스지만 마르스 또한 이날 기념되지 않습니까?”

“마르스? 음?”

크라수스는 여전히 영문모를 표정이었지만 일단 장단에 맞췄다.

“그도 그렇습니다만?”

“제가 듣기로 콘수아리아 축제는 로물루스 시절 때 주변 도시였던 사비네스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축제를 연 것이 기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콘수아리아 축제의 기원은 왜 거론한단 말인가? 하지만 크라수스는 인내심이 제법 강한 사내였다. 따라서 눈매를 좁히긴 했지만 순순히 테세우스의 말을 받아줬다.

“그 축제기간 동안 로물루스의 남자들은 사비네스의 여인들을 납치하여 신부로 삼았고 이에 광분한 사비네스 족속은 주변 족속을 규합하여 로마와 전쟁을 벌였지요. 물론 신부로 삼았던 여인들이 나서서 중재함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전해지지만······. 도무지 맥을 잡기 어렵군요. 이런 이야기나 나누고자 나를 찾아왔을 리는 만무하고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폼페이우스가 달마티아 정벌에 성공하고 돌아온다면 당금 로마에서 폼페이우스의 아성을 넘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크라수스가 눈매를 좁히자 테세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 일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결과야 어쨌든 로물루스 시절의 로마는 지금도 남아있지만 사비네스와 그 도시들은?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크라수스는 가노가 가져온 올리브 열매 두어 알을 입에 넣은 뒤 씹다가 뱉었다. 올리브 열매의 고소하지만 풍미가 가득한 향이 입 안을 감돌다가 이내 곧 사라졌다.

“그러니까 그 말인즉 로마에서 내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콘수아리아 축제를 후원하라? 아니 아니지 마르스를 거론했으니 축제 당일,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Maximus)에서 열리는 경기와 더 밀접한 연관이 있겠어. 내 말이 맞습니까?”

테세우스가 고개를 주억이자 크라수스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재산이 많은 편입니다. 하나 내 개인의 부라고 해봐야 로마 전체의 부에 비하면 반딧불에 불과하지요. 어둠 가운데 반딧불이 반짝이면 사람들이 감탄할지 모르나 낮이 밝은 뒤에 반딧불이 아무리 빛을 내봐야 사람들은 그걸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태양이 떴으니까. 아시겠습니까? 내 재산 전부를 바쳐서 시민들을 즐겁게 해봐야 태양이 뜨면 없던 일처럼 사라져버릴 것에 불과한데 왜 내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말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적개심마저 살짝 어렸다.

“태양 아래에서 빛을 밝히나 밝히지 않나 결국 반딧불은 죽습니다.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지만 밝히면 누군가는 반딧불의 존재를 기억하겠지요.”

크라수스는 테세우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포도주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궤변이로군요. 그걸 아시오? 투자보다 돌아오는 수익이 더 커야 차후에도 다시 투자를 할 수 있는 법이오. 뭐 한두 번은 감수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체 무엇을 위해? 결국 그 한두 번 감수한 것도 더 크게 돌아올 수익을 위해 감수하는 것이지 길거리에 아우레우스를 쏟아붓는들 그 금화를 주운 이들 가운데 정작 내게 도움이 될 자들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테세우스는 크라수스가 건넨 포도주를 단번에 들이켜서 타는 갈증을 해소했다. 이곳 로마는 뜨겁고 숨이 막히는 곳이다. 단순히 날씨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랬다.

빈 잔을 내려놓은 테세우스는 크라수스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직접 보시니 어떻습니까?”

“음?”

“저 말입니다.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크라수스는 경계어린 눈빛으로 침묵을 지킨 채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모습과 다른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군요.”

“메텔루스 가문이 당신에게 제공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그들이 무엇을 제공하든 그들이 제공할 것은 당신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닙니까?”

크라수스는 포도를 향해 뻗던 손을 멈추고 테세우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때마침 가노들이 음식을 가지고 정원에 들어섰으나 크라수스는 손짓으로 그들 전부를 물렸다.

“이거 참 흥미롭군요. 그 말은 마치 저들은 제공할 수 없는 무언가를 당신은 제공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달마티아 정벌. 누가 그의 보급을 지원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으흠?”

폼페이우스의 재산은 많지 않았다. 단순히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충당한 물자로 달마티아 토벌을 수행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면 눈앞의 이 자 테세우스가 보급해주고 있다는 말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한 일을 거론한다면 당사자 외에 또 누가 있을까? 하나 메텔루스 가문도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순히 부를 제공하는 일이라면 지금처럼 메텔루스 가문과 손을 잡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었다. 현실적인 발언이다. 히스파니아에서 온 왠 촌놈하고 친하게 지내고자 로마의 명문가인 메텔루스 가문과 척을 진다? 당금 로마에서 이같은 결정을 누가 현명하다고 하겠는가?

테세우스는 포도의 포도알을 몇 개를 입에 털어넣어 오물오물 씹다가 씨앗을 밖으로 뱉어냈다. 아까 크라수스가 손을 뻗던 그 포도였다.

“설마 당신도 히스파니아 토벌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폼페이우스의 수완이 좋아서라고 여기고 있는 겁니까? 생각보다 폼페이우스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군요. 아니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를 예전부터 상당히 얕잡아보고 있었던가.”

“음? 그게 무슨 말이오?”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표현에 크라수스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고 의문은 의문이었다.

“제가 메텔루스 가문과 원한 관계를 맺은 연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제야 크라수스는 눈앞의 이 남자가 메텔루스 피우스가 이끄는 5만 레기온을 무찌른 사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죽은 이의 흔적은 금세 사라지는 법이다. 하여 당시의 충격이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하나 크라수스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능력없는 사내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내라면 애초에 술라에게 중용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메텔루스 피우스의 군대를 처참하게 대패시킨 사내가 바로 눈앞의 테세우스였다.

마찬가지로 폼페이우스의 성정은 크라수스도 잘 알았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장군이었지만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다.

게다가 직접 만나본 테세우스는 어리숙한 술수에 놀아날 위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히스파니아의 항복은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폼페이우스가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테세우스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메텔루스 피우스를 죽인 것도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살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눈앞의 테세우스는 본래부터 거대했지만 그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폼페이우스는 정벌에 필요한 ‘물자’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부족하게나마 제공했습니다.”

테세우스의 말에 담긴 저의를 크라수스는 모르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몸집이 거대한 사람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 그만큼 제 몫이 줄어드는 법이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테세우스는 포도의 포도알을 한손으로 뭉개듯이 움켜쥐어 입 안에 털어넣었다.

지금 이 말과 행동이 메텔루스 가문에 빗대어 한 말임을 크라수스가 왜 모르겠는가? 메텔루스 가문과 손을 잡으면 훗날 권력의 중추가 되어서도 여러 가지로 간섭받을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씨앗을 아무렇게나 뱉어내고 있는 테세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크라수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세력보다 단 한 사람이 더 무서울 때도 있는 법이지요.”

대표적으로 술라가 그랬고 현재는 폼페이우스가 그랬다. 메텔루스 가문 전체보다 폼페이우스 한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지금이야 네가 로마에서 보잘 것 없지만 훗날, 메텔루스 가문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한 사람이 될지 누가 아냐고 묻는 말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럴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되게끔 내버려 두실 겁니까?”

“하하하하.”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제 것을 지키지도 못하고 빼앗긴다면 애초에 그는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소리로 들렸기에 크라수스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로마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히스파니아 지역을 다스리던 인물이다. 시민권과 신분이라······. 메텔루스 가문의 행사에 협조하지 않는 건 손해가 분명하지만 이 경우엔 손해가 아니라 투자라 봐도 무방하다고 여겨졌다. 무력과 화려한 전적을 가진 인사인 건 확실했으니까.

“좋습니다. 저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이긴 자에게 축하 선물을 보내면 될 일이니······.”

메텔루스 가문을 도와 너를 핍박하지 않겠지만 너와 관계를 맺고자 메텔루스 가문과 척을 지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크라수스가 자신을 적대하는 움직임만 보이지 않아도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니 충분하다. 이는 현재 자신이 크라수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전부라 할 수 있었다.

“다만 폼페이우스의 물자 공급을 끊거나 내게 맡긴다면······.”

이번 일에 대해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이리라.

하나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한다면 큰 약점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기본 가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곧 모든 것을 대신하는 대명사가 되어 버릴 테고 그렇게 근간이 무너지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약조는 약조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긴다면 크라수스, 당신인들 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찾아온 일과 별개로 그 일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크라수스도 눈을 빛내며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뿐이다. 제안을 한다면 어떤 자인지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이니 말이다. 이렇게 알아낸 사람에 대한 성향은 그 어떤 소문보다도 정확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크라수스는 이번 투자도 꽤 성공적인 투자가 될 것같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과 별개로 크라수스는 의문점이 하나 생겨났다.

“그나저나 이제 당신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알겠지만 굳이 콘수아리아 축제를 언급한 연유는 아직도 모르겠군요.”

그저 나의 관심을 이끌고자 꺼낸 말이냐고 묻는 표현도 섞여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평가가 절하 되겠지만 테세우스는 단순히 관심이나 끌고자 이번 축제를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이 일은 차차 기회를 봐서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만······. 폼페이우스의 친구들은 이번에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군요.”

“이번에도?”

크라수스는 뭔가 즐거운 일이 생길 것같은 예감에 테세우스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며 서둘러 말했다.

“이거 참. 기다리기 어렵군요. 무슨 사연이 얽혀있는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을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성공적으로 알리면 알릴수록 크라수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결과를 크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

“당금 대적불가한 폼페이우스의 명성에 조금이나마 금을 갈 수 있게 하는 법이라면 솔깃해지시겠습니까?”

크라수스는 두눈을 크게 뜨고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그런 방법이 있기나 하단 말인가? 당금 폼페이우스를 잘못 건드렸다간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폼페이우스의 인기가 대단했다.

“폼페이우스에 대한 인기를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그 일과 축제에 내가 후원하는 일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제 말을 마저 듣고나면 아마 충분히 이해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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