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180. 카피톨리누스에서.
180. 카피톨리누스에서.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는 로마시민의 숫자는 30만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시민은 못 해도 한 명 이상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고 가족 단위로 구성하면 그 숫자는 100만은 족히 넘는다. 로마와 거래하기 위해 오가는 타지의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100만 그 이상의 숫자가 로마에서 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려 200만까지 이르렀다고 통계를 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공화정 시대가 아니라 제국 시대 로마의 인구를 거론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고대에 이토록 많은 인구를 보유한 도시는 로마가 거의 유일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19세기까지 서구의 그 어떤 도시들도 로마시의 인구수를 보유하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많으면 문제도 많아진다. 자연히 식량문제, 거주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들이 로마를 뒤덮었지만 아직까지 로마는 거뜬하게 그것을 수용하며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로마가 쇠락하기 전까지는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번영할 것이다. 바로 그 로마니까. 이 이상 더 거론할 필요가 없다.
700명의 비무장 군인들이 로마에 진입했지만 로마 전체에서 보자면 티도 나지 않는 숫자에 불과했다. 물론 700명의 군인 전부가 로마로 진입한 것은 아니다. 테세우스, 사비누스, 호라티우스를 비롯한 가장 뛰어난 레기온이자 지휘관인 7명의 병사 즉 10명만이 로마로 진입했다.
모든 병장기와 갑옷은 로마 외곽을 지키는 부대에 맡긴 상황이고 로마내 단체 행동을 제한했기에 이들은 뿔뿔히 흩어진 채로 로마에 차례차례 입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들 7백 명의 병사를 한데 모으려면 모을 수는 있었다. 시민으로 확인된 자들을 법적 근거도 없이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7백 명의 병사 또한 테세우스의 지시가 떨어지면 지체없이 집결할 것이다. 하나 저들을 집결시켜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무구가 없는 병사는 일반 시민보다 조금 힘이 강한 시민에 불과한 셈이다. 그 수가 수천, 수만도 아니고 고작 7백 명이니 완전무장을 갖춘 레기온에게 순식간에 도살당할 것이다.
맨주먹에 기껏 들어봐야 몽둥이 수준인데 이들이 무슨 테세우스도 아니고 전투경험이 다분한 병사들이라고는 하나 퇴역을 앞둔 노병들이 대부분이라 기력 자체가 젊은이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로마를 점령한다는 건 현실가능성이 없었고 로마를 전복하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호라티우스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무엇을?”
“정녕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저들이 노병이라고는 하나 무수히 많은 군대를 격파한 백전노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던지 큰 도움이 될 자들인데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의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해산하라 명한 7백 명의 병사는 적군으로 가득한 로마에서 유일한 우군이었다. 그런 우군을 스스로 흩어버리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다.
“내 아버지, 세르토리우스 시절부터 충성을 다하던 병사들이다. 삶의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냈고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저들의 뛰어남은 나 역시 인정한다. 하나 이제는 그 수가 7백 명에 불과하다. 삶을 다른 방식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지금껏 충성을 다한 병사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으흠. 하오나! 저들 대부분은 테세우스 님을 따르길 원했습니다!”
“그럴지도······. 하나 저들에겐 다른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다른 삶을 영위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나를 따를 것을 제시한다면 저들의 선택은 당연히 하나밖에 나올 수 없다. 그렇게 살아온 자들이니까.”
사비누스는 수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로마를 전복시킬 생각이 아니셨던 겁니까?”
테세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마가 어떤 왕조국가였다면 그랬겠지. 하나 로마는 아니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모든 시민들과 모든 장군들에게 분노를 사게 될 것인데 그 여파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일뿐더러 그리 할 수 있다고 해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사비누스가 다시 말했다.
“하나 말씀하신대로 저들은 전장밖에 모르던 자들입니다. 재물과 기회를 주셨지만 그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글쎄. 편안함과 안락함을 버려두고 피와 죽음만이 가득한 전장을 그리워하는 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을 내치고자 함이 아니야. 끝까지 충성한 자들로 남을 수 있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
사비누스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어떤 말도 이을 수 없었다.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까지 부하를 생각해주는 상관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사비누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저 사비누스는 끝까지 테세우스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여라도 저를 멀리하려 하시거든 먼저 제 목을 치십시오.”
“무서운 소리를 하는군. 그러지 말게. 나는 내게 충성을 바친 자들이 나 때문에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아. 나를 이용하더라도 살아남길 원하지. 그러니 그런 소리 말게.”
호라티우스도 그제야 어찌된 것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7백 명의 병사들은 로마에 입성하게 되면 이리저리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테세우스를 배신하라고 말이다. 적이 아군을 회유하려는 시도는 어떤 전장에서든 있어왔던 일이 아닌가? 로마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다시 말해 테세우스는 혹여나 저들이 배신하는 일을 겪지 않도록 먼저 놓아준 것이다.
“이런 미친! 정말 미친 것 아닙니까? 제 목숨이 위험한데 배신할 놈들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호라티우스! 말 조심해라!”
사비누스가 외치자 호라티우스가 다시 버럭 소리쳤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건 아닙니다!”
테세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호라티우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정해. 지금부터 내가 싸울 전쟁은 창과 칼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야. 말했지만 나는 나를 따르려는 자들마저 내칠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저들은 지쳤어. 쉼이 필요하지. 그간의 삶을 돌아볼 여유 말이야. 그건 호라티우스 너도 잘 알지 않나?”
테세우스의 눈을 마주보던 호라티우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다물었다. 로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병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다 떠나서 로마시민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저들에게 있다. 그건 자네들도 마찬가지야.”
그러자 호라티우스와 사비누스를 제외한 다른 7 명의 병사들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말했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비록 로마가 고향인지는 모르나 끝까지 우리를 생각해 준 사람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당신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따르겠으니 부디 내치지만 말아주십시오.”
“그렇습니다. 끝까지 따를 겁니다.”
“내치시려거든 사비누스 님의 목만 벨 것이 아니라 제 목도 베십시오.”
테세우스와 함께한 이들은 7인의 센튜리온(백인장)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히스파니아에서 이들의 직위는 그보다 높았지만 로마로 귀환한 7백 명의 레기온은 이들과 연관점을 맺고 있었고 그만큼 존경받는 상관들이기도 했다.
테세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다가 입을 열었다.
“마음은 충분히 알았다. 그러니 명을 내리겠다.”
“하명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
테세우스는 저들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흩어져라.”
그 말에 불복종하는 표정으로 저들 중 한 센튜리온이 외쳤다.
“레가투스!”
테세우스는 단호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레가투스가 아니다. 로마로부터 임페리움을 받은 적도 없고 받았다고 해도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그 점을 명심해라. 다시 말하겠다. 흩어져라. 흩어져서 로마에 스며들어라.”
저들이 다시 반발하려고 했으나 사비누스가 더 빨랐다.
“로마에 스며들라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양이 높게 떴다고 어둠이 없는 건 아니지. 따스한 볕 가운데서 몸을 녹이고 있어도 되는 법이고.”
“음?”
“으흠.”
테세우스의 의뭉스런 대답에 그의 의도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을 내치고자 함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기에 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따르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테세우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사비누스에게 말했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집이 어딘지 알고 있나?”
“크라수스라면······. 잠깐 크라수스라고 하셨습니까?”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은 상황에서 크라수스와 접촉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비누스는 머릿속이 혼란해졌지만 테세우스의 긍정에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로마를 떠난 지 벌써 몇 년이던가? 게다가 자신이 로마에 거할 때만 해도 크라수스의 이름이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을 때였다. 예전에 그의 집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모른다는 대답이 정확한 대답이었다.
“뭐 크라수스의 집을 모르는 로마시민은 드물 것이니 물어보면 되겠지.”
테세우스는 북적거리는 로마의 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바라보며 사비누스는 혼란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7백 명의 병사는 스스로 흩어버렸고 폼페이우스의 정적인 크라수스를 만나러 이동한다라? 대체 심중에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나 언제는 그의 모든 생각을 알고 따랐던가? 사비누스는 호라티우스와 눈을 마주하다가 이내 곧 그의 뒤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
테세우스가 세르비우스 성벽의 성문을 지나 아르겐타리우스 언덕길을 올라 로마시의 중심 시가지로 진입하자 종합극장으로 보이는 건물과 신전으로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은 헤리쿨레스 무사룸으로 헤르쿨레스와 아홉 무사의 신전이었다.
꺾어지는 길목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동하자 또 다른 신전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유노 쿠리티스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바로 옆으로는 페로니아(노예해방의 신) 신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그 옆으로 라레스 페르마리니(항해의 수호신) 신전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구역에 신전에 꽤나 많은 것으로 보였다.
테세우스는 고대 로마의 화려함에 말없이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다채롭게 조각된 석조들과 화려한 색상은 로마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잠시 걸음을 멈춘 테세우스는 몸을 돌려 뒤편을 바라보자 포룸 로마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룸을 오가고 있었고 어린 소년들이 길거리의 선생들에게서 라틴어를 배우는 광경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인종과 사람들이 제각각 목적을 가지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현대인들의 모습을 연상케 만들었다. 커다란 신장과 체구 때문에 힐끗힐끗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누구도 자신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얼마전까지 히스파니아를 통치했던 주역이었건만 로마에서 자신은 그저 특이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사비누스는 테세우스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낭패감을 느꼈다. 테세우스가 성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은 일찌감치 저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누구도 테세우스를 환대하거나 응대하러 나오지 않았다.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을 보내 맞이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던가? 히스파니아의 주권을 쥐고 있던 당사자인데 말이다.
따라서 저들의 차가운 의도를 사비누스도 알 수 있었다. 테세우스 너라는 개인은 로마에서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을 인지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비누스는 불편한 마음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그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은 뒤 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테세우스 님은 로마가 처음이겠군요.”
완전한 처음은 아니다. 태서후는 로마에 여행왔다가 테러범의 폭파에 휘말려 죽임을 당했으니까. 이제 와 말인데 태서후가 과거로 온 것이 아니라 항우, 리처드, 태서후의 기억 등을 현재 테세우스라 명명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이 시대의 고대인, 즉 본인이 어떻게 얻게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하곤 했다.
육체상 어린 나이였고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가장 선명한 태서후의 기억으로 인해 본인이 태서후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라는 추측 말이다. 항우와 리처드의 기억을 태서후의 기억을 가지고 겪었으니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현대인이 과거로 온 것보다야 그게 더 설득력있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하나 결국 모두 근거없는 황당무계한 추측일 뿐이다.
어쨌거나 처음은 처음이었기에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비누스에게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번영한 도시로군.”
이 시대에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인종들이 한데 모여 도시를 이루고 있으니 마치 태서후 기억의 뉴욕의 거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언급했다시피 로마가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태서후도 뉴욕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테세우스는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아낸 뒤 사비누스에게 말했다.
“카피톨리누스 언덕이 이쪽인가?”
“남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서 올라가면 됩니다.”
“그렇군.”
테세우스는 저 멀리 우똑 솟아 있는 유피테르의 신전이 눈에 들어왔다. 수소문한 크라수스는 현재 유피테르 신전에 있다고 했다.
‘크라수스는 어떤 자일지 궁금하군.’
테세우스는 눈을 빛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