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178.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178. (참고: 전편 4만, 4만 2천이라 잘못 표기된 것을 5만 2천 내지 5만으로 변경했습니다.)
병사의 보고를 듣고 있던 세네토르(의원), 루푸스가 입을 열어 질문했다.
“그러니까 그라티아누스가 이끄는 폼페이우스군 3만은 펠라트리에 주둔하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에트루리아 지역의 반란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함이고?”
“예. 그렇게 전해왔습니다.”
그러자 함께하고 있던 스카에볼라가 말했다.
“본국은 폼페이우스군의 그런 움직임을 허가한 적이 없소이다. 허가할 생각도 없고.”
아퀴우스 역시 스카에볼라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곧 난색을 표했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지요. 하나 이미 폼페이우스의 달마티아 진군소식이 로마에 퍼졌소이다.”
스카에볼라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말했다.
“으흠. 세네투스의 결정과 별개로 시민들은 폼페이우스의 결단을 지지하겠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오. 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세네투스(원로원)가 폼페이우스군 철퇴를 요구를 하고 혹 그로 인해 달마티아 반란이 제대로 종결되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온전히 세네투스가 뒤집어 쓰게 될 것이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아퀴우스의 말에 루푸스가 말을 받았다.
“또 한 명의 딕타토르가 나타날 수 있게끔 세네투스가 부추기는 꼴밖에 되지 않겠지. 물론 폼페이우스가 어떤 정무관에도 오른 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세네토르, 아퀴우스의 당신의 말대로 현 상황에서 세네투스가 이 일을 반대한다면 결코 좋을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오.”
스카에볼라가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관건은 폼페이우스가 달마티아 반란을 종식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것인데 에트루리아, 히스파니아에서의 전적을 보면 반란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오.”
아퀴우스가 다시 스카에볼라의 말을 받았다.
“히스파니아에서 폼페이우스가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토벌 결과는 대성공이오. 심지어 함께 갔던 메텔루스 피우스의 실책을 발판삼아 성공을 거둔 셈이니 이런 상황에서 자잘한 그의 패배를 거론해봐야 그건 도리어 어리석은 선택이 될 것이오.”
그 말에 스카에볼라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하아. 메텔루스 피우스 그 자가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소? 사실 폼페이우스가 히스파니아로 이동하겠다 통보했을 때 세네투스가 그 일을 넘어간 것은 다름이 아니라 메텔루스 피우스의 독주를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오?”
안 그래도 술라의 오른팔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메텔루스 피우스가 히스파니아 토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 영향력에 쐐기를 박는 일이 될 테니 폼페이우스의 히스파니아 진격을 눈감아줬다.
그리되면 토벌에 성공하더라도 어떤 한 개인의 독주가 아닌 메텔루스 피우스와 폼페이우스가 서로 공을 나누게 될 것이고 그런 둘 사이의 간극을 이용해 세네투스의 권위를 공고히 위한 안배였다.
루푸스가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을 더 거론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소? 게다가 그 일은 로마에서 세네투스의 권위를 굳히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소이다. 폼페이우스의 히스파니아 진군을 인가해주지 않았다면 당금 히스파니아 토벌은 물 건너간 사실이 되었을 것이니 말이오. 그러니 그 일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소. 당면한 시급한 사안은 그게 아니라······.”
폼페이우스가 그대로 로마로 들어와 공을 인정받고 군을 해산했다면 모든 것이 세네투스의 뜻대로 흘러갔을 공산이 컸다. 물론 폼페이우스에 대한 로마시민의 인기는 현재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지만 인기란 결국 거품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면 내부의 규율이 더욱 중시될 수밖에 없다. 규율과 법, 제도 하나 하나가 정적의 행보를 막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 될 테니 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폼페이우스는 법적으로 코르수스 호노룸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쿠에스토르(재무관)에 오를 나이도 아니었다.
이 점을 명시하면 폼페이우스의 정계진출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 그가 정무관 위에 오를 나이가 될 때쯤엔 이미 혼란한 로마의 상황은 권력자들의 손에 재편된 지 오래일 것이다. 당연히 그 권력자는 세네투스가 될 테고 말이다.
또한 에트루리아, 히스파니아에서의 공적은 대단하지만 히스파니아 토벌 가운데 잃은 7만 병력에 대한 부분은 폼페이우스도 피하지 못한다.
물론 엄밀히 말해 메텔루스 피우스의 과실이라 할 수 있지만 히스파니아 토벌에 대한 공(功)을 모두 가져간 폼페이우스는 그것에 대한 과(過)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메텔루스 가문이 상대 지휘관, 곧 메텔루스 피우스를 잃은 일에 대해 철저하게 캐물을 것이다. 저들은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다. 이미 그 일과 관련해서도 메텔루스 가문과 벌써 여러 번 밀담이 오갔는데 본국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달마티아 토벌이라니.
루푸스는 멈췄던 말을 다시 이어서 말했다.
“만약 폼페이우스가 달마티아 토벌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지금껏 짜여진 판은 모조리 깨지는 것과 같을 겁니다. 메텔루스 가문과의 은밀한 약조도 어쩌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폼페이우스 토벌에 협조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스카에볼라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아진 폼페이우스의 이름이 우리를 겁박하려 들겠지요.”
시민들이 두려워서라도 그런 행위는 할 수 없었다. 그걸 떠나 달마티아 정벌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꺼져가는 반란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당연히 그건 원로원도 바라지 않은 결과였다.
아퀴우스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매만지다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현실적으로 막으려고 해도 막을 명분이 없소이다. 임페리움을 인가해준 이상 폼페이우스가 로마를 적대하지 않는 이상, 군에 대한 통솔권은 온전히 그에게 있소이다. 로마의 경계선 안으로 그가 들어왔다면 또 모를까? 심지어 그의 밀리툼인 그라티아누스조차 로마의 경계선 밖 에트루리아 지역에서 남은 군을 주둔시키고 있지 않소이까? 군대와 더불어 로마 시민의 인기를 업은 그에게 명분마저 쥐게 한다면 그건 너무 위험한 결과를 낳게 할 겁니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달마티아 진군 건에 대해서 세네투스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스카에볼라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콘술 프라이오르, 데키무스 주니우스 브루투스와 손을 잡는 건 어떻겠소? 메텔루스 피우스는 물론 메텔루스 가문과 가까운 자였고 현재 로마의 콘술이기도 하니 그는 물론 메텔루스 가문과 연계하여······.”
아퀴우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브루투스는 폼페이우스에 비할 인물이 아니오. 게다가 벌써 멘시스 세스틸리스(8월)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소. 달마티아 토벌전이 올해 끝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이오.”
집정관의 임기는 1년이고 브루투스의 남은 임기는 이제 4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을 상기한 스카에볼라는 침음을 삼키다가 입을 열었다.
“크라수스가 내년 프라에토르(법무관)에 오르는 방향밖에는 없는 건가?”
그것조차도 불명확해졌다. 크라수스는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인물이다. 공공사업을 벌리며 평판이 조금 나아졌지만 폼페이우스가 승전하고 로마로 돌아오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묻혀버리고 악명만이 크라수스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친 크라수스 파에 속한 스카에볼라, 자신조차 이대로 크라수스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슬며시 의심이 피어올랐다.
참고로 원로원의 여섯 거두는 모두 표면적으로 중립을 표방한다. 하지만 세밀하게는 완전한 중립, 친 크라수스, 친 폼페이우스 정도로 갈린다. 오늘 루푸스 집에 모인 이 세 명의 원로원 의원은 친 크라수스에 속한 의원들이었다. 물론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기에 파벌을 달리 할 수 있는 관계였으니 중립이라 볼수도 있었다.
다만 말했듯이 로마 공화정 사회는 파트로누스(보호자) 클리엔스(피호민)로 구성되었다. 이를 클리엔테스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인정받는 체계는 아니나 강력한 명예와 원칙을 기반으로 했기에 죽도록 증오하던 관계라도 클리엔테스를 맺으면 클리엔스는 파트로누스에게 모든 충성을 바쳐야 했다.
물론 이들이 크라수스와 완전한 클리엔테스 관계를 맺은 건 아니지만 이들 세 명의 의원은 크라수스의 클리엔스에 가까웠다. 이는 크라수스와 관계가 있는 의원들의 관계만 그러할 뿐, 친 폼페이우스 파에 속한 의원들은 폼페이우스와 어떤 클리엔테스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그렇다보니 이들은 폼페이우스의 득세에 다른 의원들보다 더 촉각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루푸스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릴없이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기엔 정세가 너무 급변하고 있소이다. 본인도 그러하지만 두분 역시 크라수스가 실각하고 폼페이우스가 득세한다고 해서 폼페이우스 쪽에 줄을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소이까?”
완전한 클리엔테스 관계는 아니지만 그의 후원을 꾸준히 받던 이들 세 명의 의원으로서는 명예가 달린 부분이다. 크라수스를 떠나 폼페이우스에게 붙는다면 디그니타스(존엄, 로마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완전히 내다버리는 행위가 될 터인데 그 끝은 결국 불명예와 파멸뿐이다.
이렇듯 무언가를 받으면 결국 줘야하는 것이 세상이치이니 무턱대고 받는 것을 즐기는 자는 그 즐기는 것으로 인해 멸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스카에볼라와 아퀴우스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스카에볼라가 말했다.
“으흠. 무슨 방도라도 있소이까?”
아퀴우스 역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달마티아 진군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결론난 상황이니 에트루리아에 주둔 중인 폼페이우스군을 걸고 넘어갈 생각이오? 하나 그것도 부족하게나마 명분이 선 상황이오. 또한 달마티아 정벌은 인가하면서 에트루리아 지역 안정화를 거부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오? 게다가 포로되었던 메텔루스군 2만을 로마로 송환시켰으니 지금 그걸 걸고 넘어가는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도리어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것이오.”
루푸스는 아퀴우스를 힐끗 바라본 뒤 동의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퀴우스의 말이 맞았다. 루푸스조차 이 일로 인해 폼페이우스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을 정도로 깔끔한 계책이었다.
“맞는 말이오. 그 일은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일이오. 그러니 그 일을 가지고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소.”
그럼 대체 무슨 방도가 있단 말인가? 스카에볼라의 말대로 크라수스를 정계로 진출시키고 그 영향력을 어떻게든 강화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퀴우스는 의문서린 눈빛으로 루푸스를 바라봤다. 이에 루푸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방도랄 것까지는 아니고 테세우스 그 자를 좀 이용해야겠소.”
“테세우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그 자 말이오?”
스카에볼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자 아퀴우스 역시 말했다.
“하나 이미 그 자의 신변과 관련해서는 메텔루스 가문과 상의된 일이 아니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소이까? 그럼 방법도 달리 해야지. 아니 그렇소?”
“흠..”
“으흠.”
아퀴우스와 함께 침음을 터트리던 스카에볼라가 다시 말했다.
“일단 들어봅시다.”
*
사비누스가 감회어린 눈빛으로 카시아 가도 위에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로마를 바라봤다.
“비아 카시아 위에서 이렇듯 로마를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카시아 가도의 건설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BC 187년 당대의 콘술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보노니아와 아레티움을 연결하면서 건설된 가도라 볼 수 있었다. 그건 사비누스뿐만 아니라 테세우스와 함께 이동하던 7백여 명의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르토리우스와 함께 로마에서부터 히스파니아까지 그리고 다시 이곳 로마에 이른 오랜 병사들이었다. 벌써부터 눈물을 글썽이는 병사들도 여럿 있었다.
“제가 이곳에 남아 주둔하고 있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언제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겠습니다.”
사비누스의 결연한 어조에 테세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없다. 누구보다 로마로 달려가고 싶은 사람을 막는다면 그것도 못할 짓이지.”
“로마를 이렇게나마 눈으로 담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말에 호라티우스가 나섰다.
“제가 남은 병력과 함께 이곳에 주둔하고 있겠습니다.”
7백 명을 제외하고는 1천 3백명은 마우레타니아와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모집한 병사들로 테세우스를 따르고자 혹은 로마의 시민이 되고자 이 먼 타지까지 달려온 자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오래된 병사 7백 명의 레기온과 다르게 저들 대부분은 모두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대다수였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했다.
“내 말을 오해했군. 무엇보다 호라티우스. 당신은 로마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테세우스는 말을 꺼내려던 호라티우스의 말을 멈추게 하고 저 멀리 말을 달리는 로마군을 바라봤다. 로마에서부터 달려온 전령으로 보이는 병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