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176. 분열.
176.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문의 사람이다.
카이킬리우스 씨족은 바수스, 덴테르, 메텔루스, 니게르, 핀나, 루푸스 정도로 가계가 구분되는데 이 중 메텔루스가 가장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카이킬리우스 계파는 본디 평민 가문이었는데 BC 284년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덴테르가 집정관 위에 오르면서 위상이 달라졌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로마 최고의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BC 3세기~1세기에 거쳐 수많은 정무관을 배출했을뿐더러 쿠르수스 호노룸(명예로운 경로)을 밟아 로마의 요직을 차지해왔다.
언급한 바 있지만 원로원 계급의 로마인들은 재무관(30세), 조영관(36세), 법무관(39세), 집정관(40세), 감찰관 순으로 올라가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이를 쿠르수스 호노룸이라 한다.
단, 이 나이 제한은 술라 때에 이르러 만들어진 조항이며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시민은 애초에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마리우스가 카이사르를 유피테르의 고위신관, 플라멘 디알레스로 만든 이유.)
더욱이 원로원 계급의 자제는 트리뷰누스 라티클라비우스(넓은띠 대대장)에 임관하기에 사실상 대대장으로부터 명예로운 경력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테세우스가 살해한 메텔루스 피우스는 BC 109년 집정관이었던 메텔루스 누미디쿠스의 독자다. 메텔루스 피우스에겐 아들이 없었지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를 양자로 들인다.(하여 개명: 메텔루스 코르~)
게다가 그의 가문인 메텔루스 가문 역시 여전히 건재하다. 로마의 주요 직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술라의 오른팔이었고 술라는 로마의 독재자였다. 그 영향력이 남아있는 로마에서 메텔루스 가문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테세우스는 그런 가문의 사람을 대놓고 죽인 셈이다. 메텔루스 가문이 로마의 이익을 위해 테세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머잖아 보복할 것은 식견이 어느 정도 있는 자라면 누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정치적 식견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폼페이우스조차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여 그는 테세우스가 로마의 실정을 알지 못해 어리석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따로 귀띔해주지는 않았다. 그 정도도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테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으로 저들과 불화를 일으키면 그 여파를 피하긴 어렵겠지만 그런 세세한 것에 신경쓰기 보다 달마티아의 일리리아 족속을 굴복시키는 것이 먼저라 생각했기에 머릿속에서 그 사실을 금세 털어버렸다.
*
로마의 호화스러운 도무스(거대저택)에서 수수하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흰색 옷을 걸친 여인이 매서운 눈빛으로 젊은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아버지께서 전사했다. 심지어 그를 죽인 야만인이 로마시민권을 받기 위해 로마로 오고 있다더구나.”
튜니카와 비슷하지만 발을 덮을 정도로 긴 스톨라(stola)를 걸친 여인은 메텔루스 피우스의 아내 루키니아 마이노르였다. 그녀가 입은 옷은 주름이 많고 하늘하늘한 천으로 만들어져 여인의 우아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도 시민권을 가진 이상 토가를 입을 수는 있다. 하나 여인이 토가를 입은 건 매우 부정한 의미를 뜻했다. 간통죄를 선고받았거나 매춘부들이 입는 의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여인들은 스톨라 위에 팔라(palla)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직사각형의 숄을 위에 걸쳤다. 이 팔라는 상당히 길었기에 길거리에 나설 때면 머리를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루키니아는 팔라를 머리 위로 두르면서 양자, 메텔루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를 바라봤다. 팔라는 주로 멋을 부리거나 몸을 덮기 위해 사용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집안에서 걸치고 있기엔 다소 거추장스러운 복장이었다.
추운 겨울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은 스톨라를 벗어버려도 시원찮을 무더운 여름이었다. 따라서 루키니아는 나갈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네 친부였다면 벌써 포룸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을 거다. 너는 네 친부와 너무 다르구나.”
스키피오 나시카의 친부는 루키우스 리시니우스 크라수스로 BC 95년 집정관이자 당대 최고의 웅변가 중 한 사람이었다. 후대에 널리 알려진 키케로도 크라수스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하게 정치적 행동을 펼치다가 BC 91년 9월에 병으로 사망한다.
스키피오 나시카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떠올렸다. 로마시민들은 그를 위대한 웅변가였다고 주저하지 않고 추켜세우나 스키피오는 그것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아버지가 활동할 당시 자신은 어렸고 아버지의 빈 자리가 커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는 영원히 그 자리를 비워버렸다.
“세네투스에서 결정한 일이고 더욱이 가문의 어른들께서 용납하기로 한 일을 제가 무어라고 나서겠습니까?”
“어리석은! 이제 네가 메텔루스다! 메텔루스 가문은 남아있을지라도 내 남편 메텔루스 피우스의 뒤를 잇는 건 이제 너란 말이다. 모르겠느냐?”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직은 아닙니다.”
“흥!”
“크라우스의 연회에 참석하려 하십니까?”
“그럴 셈이다. 너는 언제까지 곰팡이 냄새나는 서적이나 들고 집에 처박혀 있을 참이냐?”
스키피오 나시카는 자신의 양어머니, 루키니아 마이노르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양부를 잃은 분노와 두려움이 그녀를 옥죄고 있는 것이리라. 하여 그녀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스키피오는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그 모습에 루키니아는 더욱 성을 내며 소리쳤다.
“너는 네 아버지의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냐?”
하지만 이런 말에도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침묵을 지킨다면 긍정한다는 소리가 되니까.
“어머니.”
스키피오의 낮은 목소리에 루키니아가 성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정하시고 제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크라수스 연회에 참석하려는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시기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메텔루스 가문의 사람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가문의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굳이 그 자리에 참석하실 연유가 없습니다.”
“뭣이라?”
“히스파니아의 주권을 넘기는 대가로 과거의 일을 모두 뒤로 하기로 약조했습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죽음을 묻고자 하신다면 세인들의 비웃음만 살 뿐입니다. 도리어 아버지의 죽음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그걸 모르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루키니아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스키피오를 노려보다가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럼 어찌. 어찌하란 말이냐? 내 남편이 죽었는데도 죽은 듯이 가만히 있기라도 하란 말이냐?”
“······.”
스키피오 나시카는 말없이 루키니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줬다. 메텔루스 가문은 이 일을 통해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양부의 일이 가문에 끼칠 손해와 이득을 철저히 계산하고 이미 세네토르들과 합의를 마쳤을 것이다.
당연히 이 일에 대한 보복이 이뤄지는 시점은 저들이 원한 이득을 모두 취한 후에야 이뤄질 것이다. 서로 이득을 보려는 자리에 재를 뿌리면 저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설혹 남편을 잃은 미망인, 루키니아라고 할지라도.
게다가 양부, 메텔루스 피우스는 승전한 후에 전사한 것이 아니라 패전한 후에 전사했다. 저들이 연회장에서 그의 죽음을 조롱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아니 정적이 많았던 양부인만큼 이미 조롱당하고 있겠지. 스키피오는 저들의 행태가 눈에 선연하게 그려졌다. 집밖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 아직 나설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루키니아를 다독이던 스키피오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게 주어진 메텔루스의 이름은 결단코 이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
히스파니아의 소식을 들은 크라수스는 거의 매일밤 돈을 로마 유력자들에게 뿌리듯이 연회를 열었다. 물론 메텔루스 피우스 집에도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는 말과 함께 재물을 보냈다. 하나 이는 정말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행여라도 있을 잡음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러라고 있는 재물이니 크라수스로서는 아낄 이유가 없었다.
크라수스가 그렇게 매일밤 돈을 뿌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쓰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았다. 그러니 이건 부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크라수스가 그렇게 연회를 벌이는 일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지지자들을 얻느냐가 향후 로마 권력의 향배(向背)를 결정지을 테니 말이다.
술라는 기득권층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나이를 제한했다. 저 폼페이우스도 쿠에스토르(재무관)에 나서려면 내년은 되어야 가능했다. 뭐 양보해서 올해 재무관에 오른다고 해도 아이딜레스(조영관)에 오르려면 다시 6년은 기다려야 한다. 프라에토르(법무관)나 콘술은 뭐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반면 자신은 내년이면 서른아홉이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조금 무리한다면 올해라고 해도 가능하다. 당연히 그 세월이면 폼페이우스의 영향력을 지워내고 자신의 이름을 로마 시민에게 각인시키고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폼페이우스 그 자는 기본적으로 성품이 오만했고 무뚝뚝했기에 사교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미 법을 어기고 군권을 얻은 폼페이우스이니 천둥벌거숭이가 아닌 이상 술라의 나이제한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크라수스는 앓던 이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를 패배시키고 이번 제안을 요청한 자가 테세우스라고 했던가? 로마장군과 로마병사를 죽인 사람이지만 크라수스는 그에게 어떤 악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아닌 말로 히스파니아를 메텔루스 피우스와 폼페이우스가 성공적으로 장악했다면 자신의 입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좁아졌을 것이다.
세르토리우스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갑작스런 죽음 뒤에는 분명 능구렁이같던 메텔루스 피우스가 뒤에 있었을 것이다. 메텔루스 피우스의 죽음 소식도 달가웠고 폼페이우스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도 무척이나 달콤했다.
“축하드립니다.”
원로원의 주요한 여섯 계파의 수장 중 하나인 루푸스가 크라수스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물론 이 자리에는 루푸스만 자리한 것이 아니라 여섯 계파의 다른 수장들 칼두스, 스카에볼라, 아퀴우스, 아티커스, 하드리아누스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모습만 봐도 당금 크라수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속으로는 크게 기뻤지만 크라수스는 미미한 미소만 지은 채 대답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크라수스 님도 슬슬 코르수스 호노룸을 밟으셔야지요.”
크라수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된답니까?”
이들 원로원의 노물들, 곧 대부분의 기득권층은 자신을 지지한다.
하지만 크라수스는 잘 알았다. 로마시민들이 지지하는 자는 크라수스 자신이 아니라 폼페이우스라는 것을. 재물을 얻기 위해 쌓은 악명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지금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만 꽤나 성가신 문제였다.
그 말에 스카에볼라가 말했다.
“메텔루스 가문의 원조도 얻은 셈이니 안될 것도 없지요. 쿠에스토르나 아이딜레스는 따놓은 당상 아니겠습니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크라수스도 그 말에 동의했다. 콘술까지는 어려워도 쿠에스토르와 아이딜레스에 당선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자 아퀴우스가 스카에볼라와 루푸스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은 뒤 크라수스에게 말했다.
“코르수스 호노룸이 명예로운 길이기는 하나 돌아갈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내년에 바로 프라에토르 선거에 나서는 게 어떻겠습니까? 크라수스 님이라면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크라수스는 아퀴우스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콘술을 노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라면 아퀴우스의 말따라 돌아갈 필요없이 바로 프라에토르에 나서도 될 일이다. 코르수스 호노룸이 명예로운 길인 건 맞지만 그건 경력과 그에 따른 영향력을 쌓기 위해 밟아가는 절차가 그래서 그런 것이고 꼭 쿠에스토르나 아이딜레스를 거쳐야만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퀴우스의 말에 또 다른 수장 하드리아누스는 미간을 좁히며 작게 혀를 찼다. 그런 모습에서 뭔가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낼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이내 곧 금세 표정을 지웠다.
그때 급히 크라수스 쪽으로 사람이 다가왔다. 게다가 그는 어떤 노예 따위가 아니라 갑옷을 걸친 레기온이었다.
척 척
크라수스는 군인이 자신에게 보고하고자 다가온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돈이야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표면적으로 자신은 일개 시민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보고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에 칼두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꼭 지금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인가?”
“프레펙투스께서 서둘러 보고하는 것이 옳다 판단하셨고 저는 그 명에 따를 뿐입니다.”
“쯔. 무슨 보고인데 그러나?”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께서 로마의 반란군을 마저 처리하기 위해 달마티아로 향한다는 전령을 보내오셨습니다.”
크라수스는 병사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