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174. 분열.
174. 분열.
브루투스의 말에 패전소식이라 여기고 시간을 지체하고자 급히 나섰다. 이는 메텔루스 피우스와 연관된 계파 모두를 몰락시킬 계략을 짜기 위함이었는데 더 듣고보니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패전소식에도 권력 놀음이나 고려하는 놈이 무슨 의원들의 수장이냐고 묻는다면 먼저는 권력을 탐하는 자들의 속성이 그러하고 변방의 패전에 로마가 무너질 리가 없으니 애당초 그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루푸스로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라고 해봐야 마리우스 계열에 속한 자가 아닌가? 마리우스라면 그 잔뿌리까지도 말살시킨 술라다. 세르토리우스 본인도 아니고 그의 아들이 로마에 미칠 영향력이라고 해봐야 미미할 뿐이다.
마리우스의 것도 남아있지 않은 로마에 세르토리우스의 것인들 남아 있겠는가? 테세우스라는 자를 로마시민으로 인정하고 세르토리우스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에 의원들이 아무 반발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더욱이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은 지난 과거에 불과하다. 아닌 말로 현재 원로원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다투는 자들은 마리우스에 속한 자들도 아니었고 모두 같은 술라파였다. 원로원이 꺼리던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조차도 술라파였다.
생각보다 이르긴 하지만 이 일은 아직은 더디 진행되던 분열을 더욱더 가속화시킬 것이다. 루푸스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 의원에게 말했다.
“크라수스에게 이 일을 전하고 만남을 주선해보게나.”
“크라수스 말입니까?”
“그래. 크라수스. 그리고 테세우스라는 자에 대해서도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겠어.”
고개를 끄덕이던 의원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하면 앞으로 폼페이우스는 배제하실 생각이십니까?”
“큰일날 소리를 하는군. 토벌군의 주책임자였던 메텔루스 피우스는 대패해서 군을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폼페이우스는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로마에 유리하도록 극적인 협상을 타결한 장본인이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 일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그가 히스파니아에서 얻은 패배와 불명예는 덮히고도 남고 무엇보다 세인들이 폼페이우스를 달리 보는 계기가 되겠지.”
“하면?”
“앞으로 술라와 마리우스의 자리를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벌써부터 폼페이우스를 배제하는 건 어리석은 판단이다. 다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장점인 무력을 이번에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 다른 종류의 명예는 얻었겠지만 본인의 주력분야는 손상을 입은 셈이지.”
“그래서 크라수스를?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 나를 보고자 할 걸세. 그게 오늘밤이라 해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빨리 전하게나.”
자신의 집에서 오늘밤 연회를 열라는 뜻임을 모르지 않았던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연회로 초대되는 손님 중 루푸스와 크라수스가 빠져선 아니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들이 속삭이는 중에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길게 갈 것도 없이 간단하게 거수투표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투표결과는 만장일치. 콘술 프라이오르, 브루투스는 그대로 안건을 통과시킨 후 회의를 주재한 자신의 이름과 회의 장소, 회의 날짜와 동의안이 통과될 당시의 출석한 상원 의원 수 등을 세밀히 기록했다. 그런 뒤 원로원의 승인을 받은 안건이라는 표시로 대문자 C를 문서 마지막에 선명하게 찍었다. 이제 이 서류는 재무부가 위치한 청사에 보관될 것이다.
쾅!
“이로써 이 안건은 통과요.”
*
테세우스는 흑마를 타고 노바 카르타고 앞에 펼쳐진 해변을 달렸다. 혹시 모를 일이라 보아디케아와 갑주를 갖추고 해안을 한참이나 달리던 그는 말을 멈췄다. 정확하게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워 워.”
약간의 음식과 술을 마련한 채 나디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가 말에서 내리자 나디르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솔직히 소년의 당찬 포부라고만 생각했을 뿐,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커 보이던 시민권이 도리어 작아 보이는군요.”
테세우스는 풀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포도주를 잔에 콸콸 따른 뒤 입에 털어 넣었다.
“말하지 않았나?”
“당신의 뜻을 거스르고자 말을 꺼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아무리 귀한 물고기도 제때 먹지 못하면 비린내가 나고 부패합니다.”
“켈타이족이나 게툴리족의 충성심이 낮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참으로 고상하게도 하는군.”
아예 포도주를 들고 마시던 테세우스는 입가로 흐르던 포도주를 팔로 스윽 닦아냈다. 그 모습에 나디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저들에 대해선 어떤 말도 안 했습니다만?”
테세우스는 다시 포도주를 마신 후 나디르에게 입을 열었다.
“성공적인 거래를 통해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배가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폭풍우가 치기 시작하는 거야. 배에 실은 물자는 물론 애써 취한 금은보화라 할지라도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하지 않으면 침몰할 정도로 심한 폭풍우를 맞이한 거다. 네가 선장이라면 어찌할 텐가?”
나디르가 피식 웃으며 테세우스로부터 포도주를 건네받았다.
“뭘 어떻게 합니까? 버려야죠. 아까워도 어쩌겠습니까? 버리지 않으면 침몰할 판인데.”
“잘 아는군.”
나디르는 포도주를 마신 후에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 상인은 앞으로 어떻게 했답니까? 고향엔 무사히 도착했답니까?”
테세우스는 나디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아쉬운가?”
“아쉽습니다. 로마까지 갈 것도 없이 히스파니아의 왕의 되어서 저들과 협상해도 될 일 아닙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진작 좀 알려주지 그랬나?”
능청스러운 테세우스의 답변에 나디르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테세우스 님은 아쉽지 않은 겁니까? 어쩌면 이곳에서 이룩한 모든 것들이 거품처럼 변할 텐데 조금도 아쉽지 않은 겁니까?”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한 가지. 내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일 하나뿐이다. 그것 외에는 없다.”
테세우스의 씁쓸함이 느껴져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나디르는 한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앞으로 정말 어찌하실 계획입니까?”
“살아남은 빈털터리 상인이 뭘 하겠는가? 다시 돈을 벌어야지.”
그 말에 나디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시 말입니까?”
“그래 다시.”
짤막하게 답한 테세우스는 저 멀리 달려오는 기병을 바라봤다.
“떠날 때가 되었군. 로마로.”
“부디 보중하십시오.”
테세우스는 그런 나디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되도록이면 한 몫 챙겨서 떠나도록 해.”
“글쎄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제 한 몫은 좀 커서 말입니다.”
테세우스는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다가 나디르에게 말했다.
“이제 와 말인데..”
“에. 왜 이러십니까? 소년 하나 받고 백 아우레우스라면 누구라도 받았을 겁니다. 여러모로 생각해도 참 현명한 선택이었죠.”
테세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조심하도록. 바다에는 폭풍우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디르는 말없이 팔을 내밀었고 테세우스 역시 그의 팔을 맞잡았다.
*
전령이 가져온 소식은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테세우스는 폼페이우스를 만나고 있었다. 2만 레기온을 폼페이우스에게 인계하고 또 로마로 향할 병사들과 함께 로마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폼페이우스도 군을 이끌고 로마로 향할 테니 아예 그와 동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판단이라 여겨 그에게 합류하고자 타라코에 도착했다.
테세우스가 이끌고 온 병력은 2만 2천명. 그 중 2만 명은 포로로 사로잡힌 메텔루스 군이었고 나머지 2천은 본디 레기온이었던 자들과 로마로 향할 병사들을 합친 숫자였다. 이 가운데는 당연히 사비누스와 호라티우스도 함께였다. 나디르는 가데스 지역에 남아 테세우스의 재산을 불리고자 했다.
테세우스가 자신을 빈털터리 상인에 비유했지만 히스파니아 지역을 점령했던 사람이다. 패전하여 재산을 몰수당한 것도 아닌데 그 재산이 어찌 적겠는가? 일개인이 품기엔 상당히 많은 재산이 그의 수중에 남아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흐음. 호의를 받아들이겠소.”
테세우스는 보급품과 더불어 꽤 많은 양의 재물을 폼페이우스에게 안겼다. 폼페이우스로 인해 이번 협상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진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테세우스가 판단하기에 폼페이우스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여겼다.
폼페이우스는 기꺼운 표정으로 테세우스가 전하는 선물을 받았지만 모두 뒤로 물리고 테세우스에게 대뜸 말했다.
“협상이 타결되었다지만 2만 명의 포로를 2천 명의 병사로 인솔해 오다니.. 게다가 2만 포로는 마치 본래 당신의 병사였던 것처럼 지시에 따르더군. 대단한 통솔력이오.”
“과찬이오.”
“그래서 말인데 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이번 기회에 좀 풀고자 하오. 다음엔 이런 기회가 없을 듯도 싶고.”
번뜩이는 폼페이우스의 눈빛에 테세우스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토레툼전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테세우스 당신을 가리켜 일인군단이라고 하더군. 대체 무위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인지 무장으로서 매우 궁금해.”
테세우스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대련하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알지만 자리가 좋지 않소. 각 진형의 사령관이었던 자들이 대련을 벌인다면 그 소식만으로도 별로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소.”
폼페이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천상 무인으로 보이는데 말하는 것을 들으면 무슨 학자처럼 여겨진단 말이야. 좋아. 그런건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소식을 들어서 알겠지만 본국에서는 당신의 모든 요청을 수락했소. 그런데 왜 내게 이런 선물을 안기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군.”
“폼페이우스, 당신은 로마의 세네투스를 믿을 수 있소?”
폼페이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오? 협상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한가?”
“그랬다면 2만 포로를 이렇게 인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오. 전쟁을 치르기 전에 적군의 병력을 보강해주는 머저리가 아닌 바에야.”
“으흠. 그도 그렇군.”
“내 질문은 말 그대로요. 세네투스. 로마의 세네토르들을 믿을 수 있냐는 뜻 말이오.”
폼페이우스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려다가 로마의 치부를 자신의 입으로 밝히는 것같아 인상을 찌푸리며 테세우스에게 질문했다.
“뻔한 질문을 하는 용의가 무엇이오?”
“노련한 저들은 나 테세우스에게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울 것이오. 본래 들어주기로 했던 협상 내용을 미끼로 나를 어르고 달래겠지.”
“으흠. 그러니까 나보고 그것을 막아달라?”
테세우스는 폼페이우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소. 당신의 입지가 예전만큼 탄탄하지도 않을뿐더러 로마로 돌아가면 세네투스는 당장 지휘권부터 회수하려고 들 테니 말이오.”
폼페이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상황을 핑계로 나를 조롱하려는 건가?”
“그럴 리가? 그게 내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나는 당신에게 제안하는 것이오. 나를 도우면 나도 당신을 돕겠소.”
폼페이우스는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히스파니아를 로마에 내어준 그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자신을 돕는단 말인가?
“뭔가 착각을 하는 것 아닌가? 협상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나 본데 히스파니아의 주권은 이제 로마에게 주어졌소.”
“맞는 말이오. 하나 이제 나는 로마의 시민이오. 히스파니아에 많은 재산을 보유한 로마의 시민 말이오. 물론 로마의 법정에서 그것을 인정한 후에 효력을 얻겠지만 협상이 이행되고 있으니 결국 같은 말이겠지. 나의 재산을 함부로 건든다면 그건 곧 내가 로마시민이 아니라고 시인하는 꼴이 될 테니 말이오.”
“뭐?”
“당신이 뛰어난 장군이고 로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군이라는 건 나 테세우스도 잘 아는 사실이오. 하나 금력이 부족하지. 당신이 나를 돕는다면 부족하게나마 내가 그것을 채워주겠소. 당신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그 도움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겠지. 그것을 폼페이우스 당신도 원하지 않을 것이오.”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노련한 구렁이들이 어떤 술책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나로서도 신뢰할 수 있는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오. 아닌 말로 이리저리 이용만 당하다가 팽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적어도 폼페이우스 당신은 그러지 않을 것 아니오? 그러니 어찌하시겠소?”
폼페이우스는 테세우스의 제안에 우렁찬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정말. 정말이지 놀라운 사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