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 멘시스 유니우스.
167.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섬뜩한 광경이었지만 메텔루스 피우스는 애써 코웃음을 치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놈이 고립될 수 있도록 저들의 전선이 늘어지게끔 계속해서 방진을 구성해라!”
아닌 말이 아니라 테세우스와 게툴리족 기병 사이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물론 테세우스가 뒤따라오는 게툴리족은 아랑곳하지 않고 메텔루스 피우스를 추격하기 위해 달려든 까닭이 크지만 메텔루스군이 테세우스를 차근히 고립시킬 요량으로 그와의 거리가 이격되도록 꾸준히 공작을 가한 이유도 있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저 놈만 사로잡으면 히스파니아에서의 반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행여라도 놈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군의 품안으로 더욱 끌여들여라!”
메텔루스 피우스는 테세우스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야 한다. 맹수를 사냥하려는 자는 도리어 자신이 사냥당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물론 지금은 놈이 맹수고 자신은 사냥꾼이었다.
“놈은 한 마리 맹수다. 맹수를 사냥할 때는 함정이나 덫만 잘 설치해도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 상처입은 맹수가 도망치지 못하게 단번에 급소를 찔러 숨통을 끊어야 한다. 그러니 반드시 고립시켜라!”
“알겠습니다.”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넋이 나가있던 지휘관들은 메텔루스 피우스의 냉정한 발언에 정신을 차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제아무리 강맹한 장수도 홀로 수백 수천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만한 역량이 있더라도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그때를 노리면 된다.
하지만 이들은 알지 못했다. 지닌바 무력도 무력이지만 적을 죽이면 죽일수록 기력이 도리어 회복되는 테세우스의 불가사의함을 말이다.
대관절 그걸 누가 알겠는가? 테세우스가 입을 열어 광고라도 하지 않는 한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테세우스 본인밖에 없다. 아니 말한다고 해도 믿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직접 겪고 있는 테세우스 본인조차 믿기 어려운 현상이거늘.
*
테세우스가 보낸 게툴리족 기병의 전언을 들은 사비누스는 열정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코쿨 아인!”
코콜 아인은 젊은 날 에고르를 구한 적이 있던 투르둘리 연맹 소속의 족장으로 그와의 인연으로 에고르가 그의 아들 아라인을 테세우스의 손에 죽지 않도록 배려했다.
투르둘리는 로마의 속주였던 바에티카에 점령 당했는데 다시 세르토리우스군이 투르둘리 지역을 점령했다. 이때 세르토리우스군은 켈티시 연맹을 격파, 그 지역도 차지했다. 따라서 이 두 연맹의 전력은 다른 곳보다 적을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두 연맹을 합쳐 1천 명의 전사만이 이번 전투에 가담했다. 사실 그마저도 세르토리우스나 테세우스의 영향력이 미미했다면 합류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코쿨 아인은 에고르 등을 통해 전해 들은 말이 있었기에 아들 아라인과 함께 흔쾌히 테세우스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결국 직접 두눈으로 테세우스의 활약을 목격했다.
“예.”
“켈티시, 투르둘리 전사 1천을 이끌고 전장을 우회하여 루시타니아 연맹에 가담하라! 가능하다면 놈들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병력을 이끌도록!”
“알겠습니다.”
“베토네스 연맹의 족장들은 모두 나를 따라 메텔루스 서군의 후미를 친다. 모든 방면을 완벽하게 포위할 필요도 없다. 게툴리족의 기병들이 저들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니! 가자! 테세우스 님께서 전장에 선 이상,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사비누스의 말을 누구도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테세우스의 소문만 들었던 자들도 테세우스가 적을 어떤 식을 작살내는지 목격한 후였으니까. 아니 적아를 막론하고 테세우스가 전사 중의 전사라는 것에 이견을 가지는 자가 없었다.
그 대단한 전사가 아군의 편이니 전황이 불리해도 용기백배할 텐데 전황 자체도 아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자연히 이들은 커다란 함성으로 사비누스의 외침에 화답했다.
“우와와와와!”
이윽고 이들은 루시타니아 연맹과 접전 중인 아틸리우스의 메텔루스 서군의 후미를 맹렬하게 파고들었다.
칼로 메텔루스 병사의 가슴을 찔렀으나 죽음의 순간에도 칼을 놓치않는 집요함에 다른 병사에게 머리가 달아는 경우도 있었고 메텔루스 병사의 등을 찌르려다가 눈치챈 메텔루스 병사가 반격을 가해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서편 전투의 전황은 테세우스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
동편의 전투는 두 배의 병력 차가 있으니 일견하기엔 메텔루스군이 우세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메텔루스군이 포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둘러친 오피다니 연맹은 팔이 잘려나가고 다리가 잘려나가도 끝까지 저들의 공세를 버텨냈다.
메텔루스 동군 내부에서는 테세우스와 게툴리족의 기병들이 계속해서 질주하며 군의 진형을 흩어놓고 있었기에 병력 수는 2 배 그 이상이었지만 그 이점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메텔루스 서군의 패색이 짙어진다면 그때는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전장에서의 경험으로 그걸 바로 알아차렸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테세우스의 추격을 피해 아군 깊숙한 내부로 피신하면서 인간 같지도 않은 테세우스의 무력을 바라보고 인상을 굳혔다.
어디서 저런 미친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전술과 전략과 심지어 병력 차이마저 무용하게 느껴질 정도의 무위라니······. 이건 숫제 일인군단이나 다름없는 놈이 아닌가? 놈이 벤 병사의 숫자만 벌써 기백은 넘어갈 것이다. 지금도 서너 명의 병사가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흉흉한 놈의 창에 의해 잘려나갔다.
단순히 목숨을 잃은 수준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시신이 쪼개졌다는 말이었다. 수많은 전장에 서왔지만 저런 무지막지한 놈은 메텔루스 피우스로서도 처음이었다. 자신도 그럴진데 휘하 병사들이 느낄 충격과 공포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강력한 무위와 힘은 그렇다쳐도 어찌된 놈이 지칠 생각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도리어 처음봤을 때보다 더욱 기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광란의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전장의 흐름조차 놈으로 인해 뒤틀렸음을 느꼈다. 놈이 더 날뛰게 둔다면 이 흐름이 완전히 굳어져 버린다. 하여 그는 표정을 굳히며 지휘관들에게 말했다.
“놈이 더 날뛰게 둘 수 없다! 아쉬운대로 기병들과 놈을 분리시키고 놈을 사냥한다!”
“알겠습니다!”
*
“죽어라!”
“주.. 죽어!”
공포에 찬 시선으로 자신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군단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보아디케아를 휘들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의 창대를 잘라냈다.
퉁 투퉁 퉁
내질러진 창대를 잘라내려면 일단 창을 쥐고 있는 병사들의 악력이 그것을 버틸만큼 강해야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정확한 타격점을 찾기 어려우니 창대가 잘려나가기보다는 튕겨나가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나무로 이뤄진 창대라고는 하나 단번에 잘려나갈 정도로 약한 재질의 나무로 제조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먼저 창을 쥐고 있는 병사들의 악력이 그렇게까지 셀 리가 없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창을 후려치는 순간만큼은 그 방향 그대로 밀려가며 타격점을 뒤틀리게 했을 테니 내질러진 창대를 자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다시 말해 창을 후려친 타격력이 창대를 타고 병사에 손에 이르기도 전에 창대를 베어냈다는 소리였다.
이에 병사들은 테세우스가 보아디케아를 사선으로 휘둘러 창두와 창대가 분리시켰음에도 찌르던 기세 그대로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의 움직임을 반전시켜 그렇게 사정거리에 들어온 병사들의 육체를 단번에 절단내버렸다.
촤아아아악!
예의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테세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메텔루스 피우스가 있는 곳으로 파고 들었다.
‘금적금왕이라······. 하나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겠지.’
테세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자신을 미끼로 진형 깊숙이 유인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테세우스 역시 자신을 미끼로 메텔루스 피우스가 도망치지 않고 정면대결을 펼치도록 판을 짜고 있었다.
‘흘려야 한다면 주저없이 흘리겠으나 피는 적게 흘리면 흘릴수록 좋은 법. 네 목숨을 끊음으로 여기서 전쟁을 끝마치겠다.’
말을 달리던 테세우스는 어느 지점에 이른 순간 저들의 진형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먼저 자신의 후미를 차단한 후 측면과 전방을 빠르게 좁혀왔다.
척 척 척 척
스쿠툼의 벽 뒤에 숨어 다가오던 군단병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저들도 봤다. 자신이 보아디케아로 스쿠툼은 물론 갑옷째로 병사를 베어내는 모습을.
진형을 좁혀 소모전을 통해 자신을 죽일 생각이라면 실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이곳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은 자신 혼자만이 아니었다. 가까이는 자신을 따르던 게툴리족이 있었고 오피다니 켈타이전사들도 이들과 전투 중이었다.
게툴리족도 켈타이족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로마에 뒤떨어지는 것이지 사람 자체가 로마인보다 멍청한 게 아니다. 더욱이 전투에 한해서는 로마보다 탁월한 부분도 많다. 그런 저들이 테세우스 자신만 죽이려는 로마군의 빈틈을 파고들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기민한 판단을 내렸던 메텔루스 피우스가 내린 명령이라 보기엔 석연찮은 점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그 의문은 하늘을 수놓은 그물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촤르르륵! 촤르르륵!
검투사 중에 그물과 삼지창, 단검으로 싸우는 레티아리(Retiarii, 그물투사)라는 검투사 병종이 있다. 어부를 흉내낸 검투사로 그물을 던져 상대를 옭아맨 후 삼지창으로 찔러 죽이는 필승의 전투법으로 검투사 병종 중에 가장 많은 생존률과 승률을 보유한 검투사 병과다.
메텔루스 피우스가 전장에 나서며 레티아리가 쓰는 것같은 형태의 그물을 왜 챙겨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테세우스를 향해 수많은 그물이 날아왔다. 심지어 간간이 쇠로 이뤄진 그물도 눈에 들어왔다.
테세우스는 눈을 번뜩이며 대부분의 그물을 쳐내거나 베어냈지만 그물의 크기 자체가 컸기에 잘려진 부위가 말과 그의 몸을 덮었고 이어서 날아온 그물들을 역시 테세우스의 온몸을 옭아맬 것처럼 차곡차곡 덮였다. 흐물거리는 그물의 특성상 쳐낸다고 해도 날아오던 힘 그대로 구부러져 창을 덮었고 그렇게 잠시나마 테세우스의 움직임이 굼뜨게 되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물의 끝을 잡아당겼다.
“잡아! 놈을 옭아매!”
“계속 던져!!”
“크아아악!”
그물에 정신이 팔려 너무 가까이 다가온 병사는 테세우스의 악력에 의해 팔이 으스러지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떨어져! 떨어져서 그물만 같이 잡아! 정말 괴물같은 놈이다!”
“서둘러라! 놈의 기병들이 놈을 구하기 위해 이곳으로 곧 몰려올 거다!”
*
테세우스의 위기에 메텔루스 피우스는 호위 병력과 함께 테세우스에게 다가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세르토리우스도 그의 아들 테세우스도 무시무시한 놈들었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는 오늘도 자신이다.
“히스파니아의 맹수나 진귀한 동물을 전리품 삼아 가져가려고 챙겨온 그물이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생각해보지 못했군.”
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지금의 이 공격은 어찌할 방법이 없으리라. 거대한 곰이나 코끼리라고 해도 끊을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그물을 챙겨왔으니까. 이에 메텔루스의 부하들이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맞장구쳤다.
“저만한 장수의 머리라면 그 어떤 전리품보다 대단한 전리품이 될 것입니다.”
메텔루스 피우스도 그 말에 동의했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헤르쿨레스라고 해도 오늘날의 잘 짜여진 전술 앞에는 무용한 법이다. 후후후 어리석..”
그렇게 말을 뱉던 메텔루스 피우스는 미처 말을 다 맺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두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
테세우스는 허공이 그물에 뒤덮이는 순간,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미 날아오고 있는 그물을 모두 피해낼 재간은 그 역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놈이 움직이지 못한다!”
“뭐해! 창으로 찔러!”
“놈을 죽여!”
절체절명의 순간, 그물 속에서 테세우스는 고함을 지르며 보아디케아를 붕붕 휘둘렀다. 그러자 그물은 휘도는 보아디케아에 휘감겨 이리저리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으라아!”
“어! 어! 어!!”
분명 움직일 수 없게끔 수십 명의 병사도 더 되는 인원이 그물을 잡고 있었거늘 저들은 그물의 움직임에 따라 끌려가더니 종국엔 땅위에 내팽겨쳐짐을 당하거나 그물을 놓치고 말았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테세우스의 몸을 덮고 있던 그물이 한 순간에 걷어졌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보아디케아를 다시 크게 휘둘러 자신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목숨을 모조리 수거하며 발로는 말의 배를 슬쩍 걷어차 다시 달리게 만들었다. 그 달려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리려고 했으나 기본적으로 말은 앞으로만 달려가는 동물이다. 고도로 훈련된 말은 옆걸음으나 뒷걸음을 치기도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 속도는 결코 빠를 수 없다.
더욱이 테세우스의 흑마는 주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순식간에 가속해서 메텔루스 피우스와의 거리를 훌쩍 좁혔다.
이에 메텔루스 피우스 호위병들이 기겁하며 테세우스를 마주했지만 보아디케아의 창날이 번뜩임과 동시에 모두 육편이 되어 전장에 흩뿌려졌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뜨거운 붉은 핏물이 자신의 얼굴에 뒤덮이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덥더라니······. 지랄맞게도 덥고 찝찝한 멘시스 유니우스로군.”
테세우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는 메텔루스 피우스를 별 말도 없이 보아디케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으로 쪼개버렸다. 심지어 그가 탄 말조차 반으로 갈라버렸다.
콰드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