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166. 멘시스 유니우스.
166.
활촉 뒤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 날아가면서 찢어지는 소음을 내는 효시(嚆矢)를 허공에 쏘아낸 테세우스는 활을 다시 말의 등 뒤에 걸쳤다.
그의 양 옆과 뒤로는 1만 게툴리족이 매서운 기세로 그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적을 양분한다. 그것의 반복이다! 알겠나?”
프레디에가 고개를 주억이며 테세우스에게 대답했다.
“명심했습니다!”
테세우스는 이윽고 벼락같이 외쳤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조리 죽여라!”
“우오오오오오오!”
“끼이이이!”
게툴리족은 기괴한 고함과 함께 토레툼을 공략 중인 메텔루스 피우스군의 후방으로 짓쳐들었다. 게툴리족을 발견한 메텔루스군이 허겁지겁 대항하려고 했으니 테세우스의 보아디케아와 그를 따르는 게툴리족의 칼날은 사납게 그들을 찢어발기며 진격에 진격을 거듭했다.
메텔루스 피우스 서편과 동편으로는 사나운 기세를 풍기는 켈타이족들이 나타나 진격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창을 들어 방패와 갑옷째로 병사들을 두동강 낸 후에 프레디에게 외쳤다.
“갈라진다!”
“알겠습니다!”
테세우스의 기마병은 어떤 대비조차 하고 있지 않은 메텔루스군의 살찐 엉덩이를 사정없이 베어먹었다. 메텔루스군은 펄쩍 뛰며 놀라기만 했을 뿐, 테세우스군에게 그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
테세우스군은 노도처럼 밀려들며 미친 질주를 가로막는 모든 자들을 베어내고 베어냈다. 단연 테세우스의 활약을 따라올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보아디케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적을 갈가리 분쇄했다. 그의 앞에 누가 서있든지 테세우스의 일격도 막아내지 못하고 모조리 고혼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두두두두 두두두
사비누스를 긴장케 했던 진동은 메텔루스군이 아니라 테세우스와 그가 이끄는 게툴리족이 그 주인이었다.
*
“아.. 아틸리우스 님! 후방에 저.. 적이?”
“그게 무슨 소리냐? 후방에 적이라니? 무슨 적이 나타났단 말이냐?”
“서편과 동편에 켈타이족이 출몰했습니다.”
“뭐... 뭐라?”
아틸리우스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대관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틸리우스는 경황 중에 자신을 급히 추스렸다. 이럴 때가 아니라 이 소식을 알려할 때였다.
“메텔루스 피우스 님께!”
“이미 왔다.”
급히 갑옷을 걸친 모양인지 제대로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달려온 메텔루스 피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아틸리우스에게 말했다.
“아군의 후방이 기병에게 공격을 당하다니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성을 포위하고도 저들이 성을 벗어나는 것을 포착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메텔루스 피우스는 지금 나타난 병사들이 토레툼 성에서 은밀히 벗어난 병력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아틸리우스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송구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저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병력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일단은! 병력을 추스러서!”
아틸리우스의 말에 미간을 좁히던 메텔루스 피우스가 입을 열었다.
“되었다.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다. 토레툼을 공략하던 병력의 움직임을 멈추고 서편과 동편으로 군을 반으로 나눠라! 어차피 군이 갈라진 상황이니 하나로 합치려고 애를 쓰다가는 이도저도 안 된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정비한 다음, 서쪽이든 동쪽이든 한 곳을 공략해 이곳을 벗어나도록 한다.”
“벗어난단 말입니까?”
아틸리우스가 반문하자 메텔루스 피우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인가?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군은 현재 적에게 포위된 상황이다. 쯔!”
혀를 차던 메텔루스 피우스는 강한 눈빛으로 아틸리우스를 바라봤다.
“아틸리우스!”
“예! 너는 서편의 군단을 통솔하라! 나는 동편의 군단을 통솔할 것이니!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
메텔루스 피우스 등이 회의를 하는 와중에도 테세우스의 1만 기병은 쉴 새 없이 저들의 후방을 유린하며 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1만에 달하는 기병이 짓쳐들었다지만 기본적으로 메텔루스 피우스군은 5만에 달하는 군세를 지닌 군대다.
따라서 무슨 소규모 전투처럼 한 번 진격하고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로 적병을 베어내다가 적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로마군이었다. 경황 중에도 각 센튜리온의 지휘아래 아주 효율적으로 자신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다시 활을 들어 효시를 날렸다.
삐이이이익!
이번의 효시는 서편의 루시타니아 연맹, 동편의 오피다니 연맹 그리고 토레툼의 사비누스군과 베토네스, 투르둘리, 켈티시 연맹의 총공격을 지시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군이 나눠졌다?’
어느 순간부터 저들은 후방에 침투한 자신들을 상대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잡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재정비하는 중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없다. 하지만 군을 하나로 정비하려고 했으면 자연히 후방으로 침투중인 자신들을 막으려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은 길을 터듯이 비켜주며 갈라지면 갈라진 채로 저들끼리 뭉쳤다.
‘오합지졸이라면 지금의 진격으로 뿔뿔히 흩어졌을 텐데······.’
메텔루스군의 병력은 여전히 많다. 그렇게 나눠서 뭉쳐도 지리멸렬할 정도로 적은 병력이 아니라는 소리다. 경험이 풍부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가 내린 명령임이 틀림없다. 또한 아군이 동편과 서편에서 포위하여 공격한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군을 과감하게 반으로 갈라버리는 결단력까지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
얕본 적은 없다. 적을 얕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기민하게 군을 지휘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메텔루스 피우스를 번번이 격퇴했던 세르토리우스의 통솔력과 군재는 또 얼마나 대단했단 말인가?
돌격대장으로서의 능력은 테세우스, 본인을 따라올 자는 누구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의 전체를 보고 다스리는 능력은 항우와 리처드의 기억을 보유한 테세우스조차 배워야 할 점이 많았다.
테세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의 통솔력을 확인하며 자신의 가장 큰 우군이자 조력자였던 세르토리우스를 다시금 떠올렸다.
‘혼란을 유도하여 피해를 키우려고 했는데 흐음.’
후방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진형을 갖춰가고 있고 저들 스스로 진형을 두 개로 가른 것으로 보이니 양자택일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두 마릴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하면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두 진형 중 한 곳은 메텔루스 피우스가 직접 지휘할 것이다.’
다만 그게 어느쪽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다시 현란하게 휘둘러 적병을 무참하게 갈라버렸다.
촤아아아악!
테세우스의 공격에 당하면 단순히 베이거나 찔리는 수준이 아니라 가격당한 그곳이 완전히 절단되기에 피와 살점이 허공에 흩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그렇게 허공에 잘게 나눠진 피가 땅에 가라앉지 않고 피보라를 형성했고 그 피보라는 테세우스의 뒤를 쫒듯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모습은 마치 피구름 위를 달리는 죽음의 신을 연상케 만들었다.
테세우스를 직접 맞닥뜨린 자나 그 모습을 지켜본 자나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테세우스는 저들이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계속해서 보아디케아를 휘두르며 적을 유린했다.
그럼에도 항상 그는 센튜리온이나 프레펙투스와 같은 지휘관을 가장 먼저 참살했다. 로마군의 진형에도 통달했기에 진형의 위치만 봐도 지휘관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고 테세우스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들어 그 주위의 모든 병사를 도륙하곤 했다.
그 뒤를 쫓아오는 게툴리족은 사자가 씹어먹고 남은 것을 탐하는 승냥이떼처럼 로마군을 갈가기를 찢어 먹었다.
‘서편 루시타니아 연맹은 히스파니아 내부에 해당하는 곳이니 메텔루스 피우스는 아마도 동편의 오피다니 연맹을 상대하는 군단을 지휘할 가능성이 높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꾀 많은 토끼는 도망칠 굴을 세 개는 파놓는 법이다. 미물인 토끼도 이러할진데 교활한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전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자신의 활로부터 확보하려고 들 것이다. 자신의 이득과 생존만을 탐하는 그 꾀가 결국 자신을 사지로 밀어넣는지도 모르고 결국 그리로 향할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몰라도 메텔루스 피우스 이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세르토리우스 독살의 원흉이기도 할뿐더러 교활한 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뒤통수를 후려치는 법이다.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심력 등 너무 많은 것들이 소모된다. 무엇보다 확실한 길을 두고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로마와 협상 가능성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혹 협상을 한다치더라도 메텔루스 피우스 이 자는 불필요하다.’
술라파의 대표격인 인물 중 하나인 메텔루스 피우스를 처단한다면 그 반대급부로 술라에게 억하심정이 있던 자들의 호의를 살 수 있다. 로마에 영향력이 지대한 메텔루스 피우스를 죽이면 그 여파를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테세우스는 뒤따르던 게툴리족에게 말했다.
“너는 사비누스에게 달려가 서편의 루시타니아 연맹을 도와 저들을 궤멸시키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런 뒤 다시 다른 자에게 말했다.
“프레디에에게 전하라. 서편 루시타니아 연맹을 도와 토벌군을 궤멸시키라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루시타니아 5천, 프레디에의 게툴리족 5천, 켈티시, 투르둘리 1천에 베토네스 5천, 사비누스 5천 그간 전투의 피해를 감안해도 대략 총 2만에 달하는 병력이 메텔루스의 서군과 상대하게 된다. 전장의 흐름 자체를 아군이 가져온 상황이니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다만 동쪽은 테세우스 5천, 오피다니 5천, 1만의 군세로 메텔루스의 동군을 상대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 테세우스가 이끄는 기병이었다.
테세우스는 지체없이 동편으로 말머리를 틀며 굳건하게 방진을 세우고 있는 메텔루스군을 향해 질주했다. 메텔루스군은 방진을 튼튼히하여 테세우스의 기병들이 일단 쉬운 길을 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이라면 그편이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혹시 모를 변수에 막혀 공세를 잃지 않기 위해 스쿠툼으로 방벽을 굳건히 세운 곳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을 공략하겠지만 테세우스는 달랐다.
도리어 굳건하게 방진을 형성한 메텔루스군을 향해 달리며 보아디케아를 휘둘렀다.
테세우스 앞에 굳한 방벽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스쿠툼은 보아디케아의 강맹함 아래 종이짝처럼 찢어졌고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군단병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쇄기 진형 선두에서 거침없이 방진을 부수며 전진하는 테세우스의 뒤를 따라 게툴리족이 노도처럼 밀려들어 저들을 베고 또 베었다.
*
메텔루스 피우스는 광전사처럼 날뛰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 미친 작자는 뭐하는 놈이냐?”
“세르토리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라고 합니다.”
“테세우스? 저자가 테세우스란 말이냐?”
메텔루스 피우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전한 자에게 반문했다.
“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란군들이 저자를 보고 분명 테세우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두려움이 섞인 눈초리로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답하는 센튜리온의 갑옷에는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갑옷과 방패마저도 무처럼 썰어버리는 강맹한 놈의 창에 휘하 병사 대부분을 잃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분노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치밀어올랐다. 그 정도로 무시무시한 작자였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저 기세라면 금세 자신이 있는 곳까지 짓쳐 들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라! 앞을 가로막는 켈타이족을 서둘러 처리하고 활로를 열라는 말이다!”
어디로 도망갈 구석도 없다. 이미 전후좌우 모두 적병으로 뒤덮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일단 동쪽으로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갑주를 입은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날이 더워지는 시점이긴 했지만 지금의 후끈함은 날이 덥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텔루스 피우스는 나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도리어 고함을 쳤다.
“제길. 유노! 그대의 질투는 유피테르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란 말이오!”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러면서도 주변 병력들을 차분히 준비시켰다. 테세우스라는 맹수를 맞이할 준비를 말이다. 그의 눈은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
메텔루스 피우스가 있는 곳을 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확신한 테세우스는 그때부터는 자신을 따르던 게툴리족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달려 미친 듯이 적병을 베어넘기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무기를 횡으로 휘둘러 모조리 걷어내고 그대로 저들의 목을 베어냈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아아아악!”
“이런 미친! 이..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라면! 크허허헉!”
테세우스는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보아디케아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창두를 따라 이어진 피의 선이 어지럽게 허공을 그렸고 그 주변으로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 등이 계속해서 튀어 올랐다.
어찌나 사납고 광포하게 날뛰는지 그 뒤를 따르던 게툴리족 기병들마저 기가 질린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볼 지경이었다. 그러니 테세우스와 적을 마주한 메텔루스군의 병사들이야 어떻겠는가?
방패째로, 갑옷째로 베어버리는 이 미친 놈을 상대로는 어떤 전술이나 전략도 먹히지 않았다. 테세우스를 상대하는 모든 이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의 광란에 찬 무위를 바라봤다. 군신 마르스가 내려와 창을 휘둘러도 저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현란하고 잔혹한 살인기예였다.
이윽고 메텔루스 피우스로 보이는 자가 테세우스의 눈에 들어왔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창을 옆구리끼고 몸을 튕겨 도리어 창을 든 자들이 허공에 튀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런 뒤 한 손으로 든 보아디케아로 저들을 허공에서 참해버렸다. 통짜쇠로 만들어진 보아디케아인데 테세우스의 손에서는 무슨 여리여리한 나뭇가지처럼 휘둘러졌다.
다시금 피와 살점이 허공에서 흩뿌렸고 테세우스는 그 피를 몸으로 받으며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쳤다.
“메텔루스 피우스! 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가 오늘 널 반드시 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