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64화 (164/298)

# 164

164. 멘시스 유니우스.

164. 멘시스 유니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는 아무 저항도 없이 토레툼까지 진격하여 공성전을 앞에 두고 있었다. 전 발렌티아, 현 세르토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곳 토레툼에도 성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순히 오르막길이느냐? 내리막길이느냐?에 따라 전황이 달라지기도 하는 마당에 하잘 것 없는 성벽이라도 수성 측에 막강한 우위를 부여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메텔루스군은 공성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군단은 전투병력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전투 병력이 공병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지만 건축 등을 전담하고 있는 비전투원이 존재했다.

이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공성병기나 진지구축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줬다. 지금 역시 이들의 주도 아래 토레툼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로마군에는 놀랍게도 군의나(입대를 결정한 의사에게는 자동적으로 에퀴테스 계급이 부여되고 로마시민권을 보장했으며 은퇴 후에는 연금과 면세 혜택도 주어졌다.) 의무대 역시 존재했다. 이들은 부상자의 7할 가량을 생존시키고 치명상을 입은 자들마저 치료했다.

하지만 이는 기원전 30년 경에 아우구스투스가 전문적인 의무대를 창설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이후에도 군단 내 부상자나 병자들은 군단장이 해결할 문제였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라는 소리다.

따라서 카이사르처럼 병사들을 아끼는 지휘관들이나 사비를 들여 의사를 고용했을 뿐, 제도적 강제성이 없기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무관심했다.

다만 현재 이곳 메텔루스 군에도 의사가 있었다. 하나 이는 그가 병사들을 아꼈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건강을 염려하여 주치의를 고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으십니다.”

병사들이 공성준비를 해나가는 동안 메텔루스 피우스는 정기 진찰을 받고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옷을 걸치며 밀리툼 시니어(군단 내 6명의 밀리툼 가운데 지휘권을 잡은 자), 아틸리우스에게 말했다. 그러자 메텔루스 피우스의 건강을 검진하던 주치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줬다.

“아틸리우스, 공성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확인해본 결과 성벽 자체가 튼튼하지 않기 때문에 오나거(투석기)로 성벽을 파괴하는 방법을 쓰려고 합니다.”

“발리스타나 스콜피온으로 지원하고 아리에스(파성추)로 성문을 부수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을 생각인가?”

발리스타는 거대한 쇠뇌로 로마군이 포위 공격때 주로 사용했던 무기다. 동물의 내장에서 뽑아 만든 활줄은 탄성이 엄청나 사정거리가 400m나 되었고 90kg이나 되는 돌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한 군단에 60개가량 보유한 홀로 조작이 가능한 스콜피온은 발리스타보다 작은 형태의 쇠뇌로 1분에 4발을 날릴 수 있었으며 사정거리는 80~330m에 달하는 무기였다. 당연히 갑옷이나 방패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관통할 정도의 파괴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리에스는 파성추인데 성벽이나 성문을 타격하는 부분이 숫양의 머리처럼 생겨서 램(ram)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아리에스도 제작을 완료했기에 발리스타나 스콜피온을 실전배치하여 지원 사격 아래 진격하게 하면 됩니다만 적병이 성벽 위에 이미 발리스타와 스콜피온을 배치하여 대비 중에 있기에 상황을 봐서 배치할 생각입니다.”

“성벽 위에서 더 먼 거리를 사정거리로 두고 있으니 일단 오나거로 저들의 성벽과 발리스타 등을 파괴할 생각이다?”

“그렇습니다. 이대로 몰아쳐도 아군이 승리하겠지만 이편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습니다. 성벽의 상태로 봐선 시간을 두고 오나거로 두들기기만 해도 별 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 보입니다. 공성탑을 사용하는 법도 있겠지만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공성탑을 사용할 정도로 성 자체가 튼튼하지 않으니 오나거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겼습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그에게 말했다.

“적절한 판단이군. 계속 그렇게 진행하도록! 단 공세를 견디지 못한 저들이 야습따위를 시도할 수 있으니 그 점만 주의토록 하고.”

“숙지시키겠습니다. 단 놈들이 성문을 열고 나온다면 언제든 그 틈을 파고들 병력을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아틸리우스에게 말했다.

“좋은 판단이야. 혹 내가 더 보고 받아야 할 것이 있나?”

“변동사항 즉, 성벽이 부서지면 다시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틸리우스의 말은 성벽이 부서지는 일 외에는 일어날 변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말에 메텔루스 피우스는 다시 미미한 미소를 띠며 아틸리우스에게 말했다.

“그건 보고할 것도 없네. 이후 절차는 내가 개입을 하든 하지 않든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아틸리우스 역시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메텔루스 피우스나 아틸리우스 모두 승리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방증이었다.

“자네도 전장을 떠나 로마에 입성할 때가 되긴 했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

“명심했습니다.”

“좋아. 그럼 나가보게.”

척.

아틸리우스는 형형한 눈빛으로 메텔루스 피우스를 바라보며 절도있게 군례를 표한 뒤 막사를 떠났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갑옷도 걸치지 않은 가벼운 옷차림 그대로 자신의 침상에 누웠다. 멘시스 유니우스(Mensis Iunius, 유노의 달, 6월)라 그럴까?

“유피테르를 향한 유노의 질투가 슬슬 타오르는 모양이로군. 하지만 유피테르도 별 수 없겠지. 권좌를 유지하려면 어떻게든 씨를 뿌려서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 말이야. 유노도 그것을 아는 것이고, 그렇다고 분노하지는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후후후. 하지만 유노여. 당신의 맹렬한 질투를 피해 잠시 눈을 감고자 하니 부디 유피테르를 향한 진노를 내게 퍼붓지는 말아 주십시오.”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 말과 함께 스르륵 눈을 감았다.

*

공성준비가 완료되자마자 메텔루스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레툼을 공격했다.

쾅! 콰광!!

무거운 돌이 성벽을 강타하자 성벽이 강하게 흔들리며 돌가루를 흩날렸고 어떤 곳에서는 성벽 내부의 버팀목이라든지 구조물이 파괴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메텔루스 군은 총공세를 가하기 전까지 투석기를 통해 성벽을 최대한 약하게 만들고 단번에 몰아쳐 함락시킬 요량으로 보였다.

물론 사비누스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투석기로만 공격을 가하고 총공세를 가하지 않는 다른 이유도 테세우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부 반란을 획책하여 보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자 함을 말이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히르톨레이우스가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회유책을 보내왔다. 당연히 메텔루스는 폼페이우스가 아니지만 이미 폼페이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히르톨레이우스로서는 토벌군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결국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그를 회유하여 토레툼을 정리하고 그 뒤에 히르톨레이우스를 죽인다면 폼페이우스 명예도 훼손시킬 수 있었다.

어쨌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보호해주겠다던 자를 보호하지 못한 셈이 되니까. 물론 폼페이우스는 이름을 빌려줬을 뿐이다. 하나 이름은 곧 사람을 대표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그것을 빌려준다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당연히 메텔루스 피우스는 은밀하게 그 사실을 퍼져나게끔 만들 것이다. 폼페이우스의 지지세력을 약화하고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말이다.

히르톨레이우스가 회유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큰 상관이 없었다. 히르톨레이우스가 두 마음을 품은 이상, 지휘부는 갈라질 수밖에 없다. 어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히르톨레이우스가 병권을 타인에게 넘길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패배할 수 없는 전투이니 메텔루스 피우스로서는 보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싶으리라. 그간 자신의 패배를 모두 덮고도 남을 정도로 완벽한 승리 말이다.

테세우스는 그것을 꿰뚫어봤다. 사비누스 역시 일의 내막을 알게 되었기에 메텔루스 피우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메텔루스 피우스의 계산을 역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동쪽 성벽이 흔들린다! 서둘러 보수해!”

“이쪽도 위험하다! 지지목을 가져와 받쳐! 서둘러라! 투석이 다시 날아올 거다!”

사비누스군 역시 오나거와 발리스타, 스콜피온 등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저지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하지만 사비누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병력을 지휘했다.

“성벽이 무너져도 상관없다. 토레툼이 재가 되어도 상관없다. 놈들의 발을 이곳에 묶어라!”

사비누스는 메텔루스 군의 치열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없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그런 그에게 프레펙투스로 보이는 지휘관이 급히 다가왔다.

“성벽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더 이상 보수로 어떻게 버틸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성벽을 이루는 돌 자체에 금이 간 상황이라 공격을 더 허용한다면 지지목을 아무리 받쳐도 성벽 자체가 깨어져 나갈 겁니다.”

“가장 시급한 성벽은 어느쪽인가?”

“북문과 서문 사이에 위치한 성벽입니다. 그곳이 무너지면 덩달아 성문까지 타격을 입어서 상당히 넓은 구역을 적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의 군은 성안에 갇혀있는 상황이고 적들은 포위하여 공격하는 상황이니 그런 상황에 몰리면 아군으로서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구간을 경계하는 병사들을 물린다면 저들은 성벽을 부술 것도 없이 그곳으로 아리에스나 사다리를 들고 직접 공략할 겁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사실 가장 시급한 구역이 이 지역일 뿐, 모든 성벽이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토레툼 지역의 성은 2차 포에니 전쟁 후 히스파니아 점령을 위해 진군한 로마군이 이 지역에 임시로 쌓은 성에 불과했고 로마군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다시 켈타이족이 이 지역에 기거하며 성을 관리하긴 했지만 건축술이 부족한 그들로서는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나마 그런 곳을 세르토리우스와 사비누스 등이 보수했기에 이제껏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한니발이 활약했던 2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18~202년까지 일어난 전쟁으로 2차 포에니 전쟁 후 BC 200년을 기준으로 잡아도 현 BC 77년과 120년 이상의 공백이 있다. 그런 성이, 심지어 임시로 쌓은 성이 극심한 투석에도 지금껏 무너지지 않고 버틴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사비누스는 잠시 고심하더니 이윽고 프레펙투스를 바라봤다. 과장하여 말하는 자가 아니었기에 사비누스는 성벽의 상황이 투석 한두 발이면 무너질 정도로 위태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벽을 버린다.”

“하오나!”

“어차피 네 말대로라면 성벽은 무너진다. 성벽이 무너지면 혼전이 일어나게 될 터, 병력을 온전히 보전하고 혼전에 미리 대비케하는 것이 낫다. 아울러 다른 성벽의 병력 역시 수성 병기를 다룰 수 있는 최소한 병력만 남기고 철수시켜라. 성벽이 어느 한곳이라도 무너진다면 성벽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흠. 그리 전하겠습니다. 다만 성벽이 무너진 후에는 어찌합니까? 북쪽 성문을 열고 진격이라도 합니까?”

말을 꺼내는 프레펙투스의 안색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미 성벽이 무너질 때를 상정하고 대비를 완료했을 테니 말이다. 아군의 피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발생하리라.

사비누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프레펙투스에게 말했다.

“그건 성벽이 무너진 후에 알아서 명령을 내릴 것이니 지시한 명령이나 잘 이행하라!”

“알겠습니다.”

사비누스의 준엄한 질책에 프레펙투스는 자세를 바로하며 사비누스에게 대답한 후 급히 명을 이행하러 사라졌다. 사비누스는 그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상보다 이르긴 하지만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아직 얻지 못한 승전에 대한 기쁨으로 마음이 느슨해졌고 아군은 그것을 이용해 시간을 벌었다. 이제 남은 건 적의 숨통을 끊어놓을 한 발의 화살이다.”

사비누스는 강렬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외쳤다.

“버텨라! 그러면 테세우스 님께서 승리를 이끌고 오실 것이다.”

“와아!!”

“테세우스!”

“테세우스!!”

*

아틸리우스는 토레툼 성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을 들었다. 당연히 그뿐만 아니라 곧 이어질 전투를 위해 대기하던 토벌군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테세우스? 어디 백날 불러봐라! 이름 따위가 승리를 가져다 주던가? 군신 마르스를 부르짖어도 오늘의 승패를 뒤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테세우스라는 이름 따위가 무슨!”

쿠르르릉! 콰르릉!

아틸리우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 순간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비누스의 프레펙투스가 보고하던 바로 그 성벽이었다.

투석이 성벽에 부딪치는 순간, 거미줄처럼 갈라지던 성벽이 또 다시 투석 한방에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그 모습은 토벌군으로 하여금 호쾌함을 불러일으켰다.

“와아아아아!”

“성벽이 무너졌다!”

“성이 무너졌다!!”

아틸리우스가 이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오늘 빅토리아(Victoria, 니케, 승리의 여신)께서 아군 위에 날개를 펼치고 계신다. 그 손 위에 놓인 월계수의 영광을 누가 취하겠느냐? 가라!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약탈하라! 다 너희의 전리품으로 삼아라!”

“와아아아아!”

“가자!!!”

“으아아아!!!”

성벽이 무너지길 기다렸던 토벌군은 아틸리우스의 명이 떨어지게 무섭기 광기어린 표정으로 무너진 성벽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저들의 발걸음에 지축이 흔들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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