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63화 (163/298)

# 163

163. 능구렁이.

163.

전투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요소는 기세, 지세, 용병술, 전투력 이렇게 크게 네 가지로 축약된다. 당연히 병법 역시 지형, 자원, 병력의 숫자와, 군사력 등에 의해 그 모습을 달리한다.

군대의 위용과 사기는 지휘관의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사기가 높은 군대는 불리한 전투에서도 승리한다.

길이 좁고 험한 지형은 백만 대군이 무용하다. 월등하게 적은 군사로도 적을 패퇴시킬 수 있으니 ‘성’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지형요소를 우위로 가져오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휘관의 덕목을 갖춘 이가 부대를 잘 통솔하게 되면 손실없이 병력과 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다. 적재적소에 병력을 배치하니 이 같은 지휘관은 전투에서 크게 이익을 보고 적게 손해를 본다.

마지막으로 정예병력으로 구성된 군대 역시 승패를 좌우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한다.

이것들을 미리 파악하고 아군에게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끔 변화시키는 방법이 곧 병법이다. 고로 나를 알고 적을 안다는 것은 병법의 기초 중의 기초다. 이것이 확립되지 않은 자가 병법을 사용한다면 그건 병법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망연한 기대를 품고 전쟁에 나가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승전하고 싶은 자라면 미리 승리한 채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 망연히 ‘나는 승리할거야’ 라는 어떤 근거없는 자기확신 따위가 아니라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스스로 선 후에 나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승전에 대한 확신조차 없이 전쟁에 나아간다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때 주저앉고 그렇게 무너져버린다. 그렇기에 승전할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전쟁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무엇이 첫째고 마지막인지는 상황마다 달라지기에 이것은 중하고 저것은 중하지 않다 말할 수 없다. 하나 군대를 이끄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뽑으라면 단연 지휘관의 역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예병력에 지형적인 우위를 가졌더라도 지휘관이 군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다면 그 전쟁은 패할 수밖에 없다. 일치단결하여 적보다 먼저 승전의 요소를 취할 수 있으냐가 관건이었다. 지휘관이 바로서지 않거나 명령체계가 흩어지면 정예병력도 오합지졸이 되어버린다. 이런 군대는 결코 승전할 수 없다.

테세우스에 대한 병사들의 신뢰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아군의 상황을 감추고 메텔루스 피우스가 오판하게끔 유도했으며 지형적인 요소마저 아군에게 유리한 곳을 전장으로 삼았다.

테세우스의 명령이라면 끓는 물과 타오르는 불 속에도 뛰어들 충성스러운 전사들이 좌우에 매복해 있었고 무엇보다 테세우스가 이끄는 바람처럼 날렵한 기병들이 저들의 뒤를 잡아 분쇄하기 위해 큰 반경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을 가진 흑마를 마음껏 질주하게 하던 테세우스는 세찬 바람을 마주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뒤와 양 옆으로는 게툴리족 전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나르보와 혹 타라코 도시 근방까지 적의 손에 넘어가겠지만 호라티우스라면 충분히 세르토 지역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세르토(전 발렌티아) 이남 지역으로는 더 진격할 수 없을 터.’

토레툼의 전투에 대한 생각은 이미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투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테세우스는 승전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 전투 후에는 아군이나 토벌군 역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급문제도 문제지만 테세우스군은 세르토리우스 죽음으로 인해 흩어진 명령체계를 일원화하고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었고 토벌군 역시 보급이나 예상치 못한 패배로 군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리되면 전쟁은 자연히 소강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경계선은 나르보나 타라코 지역이 될 터, 모르긴 몰라도 타라코는 교전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공격적인 성향을 지녔다면 타라코를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

테세우스는 쓰러진 나무를 발견하고 흑마를 뛰어오르게 한 뒤 타넘게 했다. 흑마는 깃털처럼 가볍게 그것을 뛰어넘으며 다시금 전방을 향해 질주했다.

‘토벌군의 보급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몰아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금도 무리하여 군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쟁만 치르고 말 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무 많은 물자를 소모해버리면 승전하더라도 자멸하고 말 것이다.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해야 한다면 단기간 안에 작은 규모로 끝내버리는 것이 차선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군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더욱이 교전 지역이 아군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히스파니아인 이상, 전쟁이 장기화되면 남는 것은 폐허와 황무지밖에 없다. 결국은 패전하고 말 것이고 승전하더라도 재기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올해 겨울이 지나기 전에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메텔루스 피우스와 그의 군대가 테세우스에게 패배한다면 토벌군은 더욱 신중하게 테세우스군을 상대할 것이다. 로마는 무서운 적이다. 단순히 토벌하는 차원이 아니라 히스파니아를 쓸어버리겠다고 작정한다면 그때는 매우 험난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테세우스가 켈타이족을 동원했듯 로마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아군과 함께하는 켈타이족보다 함께 하지 않는 켈타이족이 더 많다. 그뿐이랴? 테세우스군에 협조적인 우방에도 손을 뻗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단순 역량 비교해도 테세우스군은 로마에 비빌 깜냥이 되지 못한다. 테세우스군보다 로마가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소리다. 그렇게 저들 모두가 적으로 변모한다면 테세우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의 공세를 근근이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그의 무력과 지략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해도 형편없이 밀릴 것 같지는 않지만 테세우스는 몸이 하나다. 모든 전장에 설 수 없고 전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더 그렇다.

그러니 로마 입장에선 간단하게 한 번 패하고 여러 번 승리하는 전략을 수행하면 된다. 그것도 아니면 슬슬 피해 다니며 히스파니아의 근간 자체를 황폐화시키면 테세우스군은 버틸 도리가 없다. 일단 전황이 로마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불리해진다.

테세우스가 토레툼 전투에서 승전할 것을 확신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이유였다. 부러진 뼈와 터진 살점, 그 가운데 흐르는 붉은 피만이 앞길을 장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테세우스는 세르토리우스의 부재를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세르토리우스가 건재했다면 히스파니아의 근간이 잡히는 것을 물론 로마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본디 세르토리우스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휘하의 사람이었지만 킨나와 마리우스가 손을 잡았기에 대외적으로 마리우스파라 여겨졌고 더욱이 술라의 손에 마리우스파의 거물들이 모두 제거되었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마리우스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술라가 사라진 시점에서 로마에 대한 영향력이 증대될 수밖에 없었고 잘하면 이를 통해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세르토리우스는 이제 없다.

“후우······.”

테세우스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하나 이내 곧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번 전투에 집중한다. 토레툼 전투의 승전 없이는 모두 망상에 불과할테니까.’

테세우스는 모든 생각을 털어내려는 듯 크게 외쳤다.

“서둘러라! 적들이 알아채기 전에 중간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테세우스가 이끄는 기병들은 그가 지정한 목표지점을 향해 숲길을 평지처럼 달렸다.

*

폼페이우스는 전령의 보고에 크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메텔루스 군이 그대로 남하해?”

페르페르나가 지키던 발렌티아가 순식간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남하를 결정했다고? 폼페이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이미 한참이나 남하한 상황이니 폼페이우스군이 그 뒤를 쫓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물론 뭔가 복안이 있어서 남하했을 것이다. 전공을 독식하기 위한 계책의 일부로 남하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폼페이우스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 이대로 남하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을 폼페이우스는 은연중에 예감하고 있었다.

“확실히 토레툼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면 적의 보급품을 빼앗음과 동시에 아군의 보급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승전할 수만 있다면 적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투가 될 것이다.”

그 말에 폼페이우스의 트리부누스 밀리툼(대대장)중 하나이자 심복인 그라티아누스가 폼페이우스에게 말했다.

“하면 아군도 메텔루스군의 움직임에 맞춰서 진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폼페이우스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첫째 메텔루스 피우스의 계획대로 토레툼전에서 승전한다면 아군은 메텔루스군의 뒤치다꺼리나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승전할 수만 있다면야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메텔루스군은 5만에, 아군은 4만에 이른다. 9만에 이르는 병력이 한꺼번에 한 전장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효율적인 병력 운용이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탁자 놓인 물로 목을 축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메텔루스 피우스가 그간 세르토리우스에게 연패했지만 승패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대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노련하다는 소리다. 그런 그가 지금처럼 무리한 결정을 내렸을 때는 승전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그럼 더더욱 남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폼페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남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메텔루스 피우스를 따라 남하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패전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무작정 남하하다가 메텔루스 피우스가 패전하기라도 한다면 아군은 보급물자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악명을 쌓는 것이 낫다.”

폼페이우스의 말에 그라티아누스가 눈을 번뜩이며 되물었다.

“그 말씀은?”

“맞아. 상황이 달라진 이상 종전의 계획과 다르게 나르보를 무력 점령하여 부족한 물자를 징수하고 타라코로 진격, 상황을 봐서 발렌티아 공략도 실시한다. 메텔루스군이 토레툼 점령에 성공한다면 그 움직임에 발맞춰 더 남하하면 될 일이고 혹 패전한다면 나르보를 거점 삼아 지키면서 타라코 근방을 전선으로 삼는다.”

메텔루스 피우스가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차근히 저들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겠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메텔루스 피우스는 진격로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약탈하면서 진격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에 히스파니아 도시들이 반란군에 합류하고자 한다고 해도 토벌군의 공세가 시작된 상황이니 당장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 여유를 주느니 선제타격하는 것이 현명했다.

그라티아누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폼페이우스에게 반문했다.

“패전을 자꾸 언급하시는 것은 메텔루스군이 패전할 것이라 보시기 때문입니까?”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세르토리우스의 죽음으로 적의 체계가 무너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2만에서 3만은 될 것인데 너무 섣부르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메텔루스군은 5만에 달하니 허망하게 패배하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세르토리우스의 죽음은 메텔루스 피우스의 계책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계책이 아군의 불리한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메텔루스 피우스는 능구렁이같은 작자다.

하지만 노련한 사자도 방심하면 먹잇감에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해 굶어죽는 지경에 처할 수 있다. 더욱이 상대는 상처입은 사냥감이다. 테세우스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남하라니? 폼페이우스는 성급하다는 생각을 지워낼 수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크라티아누스에게 말했다.

“말했다시피 승전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니 아군은 메텔루스군이 패전할 것을 상정하고 대비토록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폼페이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건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다.

“전공을 독식할 생각으로 군을 움직인 것으로 보이니 차라리 그의 생각대로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만에 하나라도 메텔루스 피우스가 패전한다면 사그라져가던 세르토리우스의 영향력은 다시 불타오를 것이다. 테세우스라는 자에게 승계되어 세르토리우스의 복수를 이유 삼아 어쩌면 예전보다도 더 맹렬하게 타오를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물잔에 남은 물을 모두 들이켰다. 허튼 생각이 모두 씻겨나가도록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