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 무엇이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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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라면 테세우스의 말이 허풍처럼 들렸겠지만 그의 말이 더 이상 허풍처럼 들리지 않았다. 전 부족을 통틀어도 테세우스와 같은 신위를 발휘할 수 있는 전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풍이라고 해도 이 같은 신위를 가진 전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테세우스의 손에 족장을 잃기는 했지만 그와 안면이 있던 프레디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테세우스는 게툴리족을 오시하며 말했다.
“나는 이미 말했다. 받아들이거나 저항해라. 단 저항하는 자는 지금처럼 말살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너희가 내게 가져다준 것이나 그 끝은 내 허락이 있어야 끝낼 수 있을 것이야.”
테세우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하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는 하나이고 게툴리족은 다수였으니까.
그 대표적인 부족이 바로 비랄의 부족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그 자리에서 홀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모든 게툴리족 전사를 썰어 버리는 위용을 발휘했다. 그렇게 다시 달려든 게툴리족은 후에 자비를 구해도 무참하게 죽여버리는 냉혹함까지 보여줬다.
이에 결정을 유보하고 있던 게툴리족들은 그가 말한 대로 무기를 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참고로 회의를 위해 모인 전사들의 숫자라고 해봐야 이천 명이 조금 안 되는 숫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전사를 이끌고 한자리에 모이면 분란이 그만큼 발생하고 그 여파로 부족전이 발생할 수 있기에 저들 스스로 그 수를 제약했기 때문이다.
이날 테세우스가 베어버린 전사의 숫자는 정확히 계수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저들의 절반가량을 홀로 베어버렸다.
그러니 용맹한 게툴리족이라 한들 어찌 겁을 집어먹지 않겠는가? 사실 이 일에도 테세우스의 노림수가 있었다. 저들이 모두 한 부족의 전사들이었다면 훨씬 더 험난한 전투가 일어났을 것이고 모두가 죽더라도 굴복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이들은 연합체다. 심지어 언제든 적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자들의 모임 말이다. 명령체계는 일원화되지 않았고 기마 부족이 말을 타지도 않고 테세우스를 상대했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테세우스의 학살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일견하기엔 무모해 보였을지 모르나 테세우스는 자신의 능력에 기초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을 계획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피가 흩뿌려진 이상, 원만한 관계는 일찌감치 물 건너간 셈이었다. 원만한 합의나 거래에 의해 자신에게 협력하는 것이 아니기에 테세우스는 게툴리족에게 약속했던 물자와 식량지원은 일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신 그는 굴복한 게툴리족 전사들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섰다.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결정이었지만 이 전쟁에는 크게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 자신에 대한 공포를 게툴리족에게 각인시키는 효과, 둘째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어쨌든 보상이 뒤따른다는 증거, 셋째로 게툴리족의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지휘체계를 일원화시키고 로마전을 대비케 하는 효과 말이다.
테세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족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했지만 부족으로 돌아간 후에는 적으로 돌아선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그럴 수밖에. 테세우스가 아무리 대단하다지만 그는 이방인이고 동족들을 죽인 원수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부족으로 돌아가 재정비하고 함께 몰아치면 테세우스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약육강식을 원칙으로 하는 부족답게 테세우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말대로 병력을 이끌고 나온 부족도 있었다. 다만 그 수가 최초에는 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다만 그들 가운데는 최초에 테세우스가 만났던 프레디에와 그의 오백 전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존의 족장이 죽자 그가 족장으로 선출되었고 그는 테세우스와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어차피 자신의 부족은 힘이 약해 게툴리안 외곽을 도는 부족에 불과했다. 로마인 베스티아와 거래를 튼 것도 결국 어떻게든 부족을 살려보려는 자구책에 가까웠다. 약탈을 통해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굳이 그런 식의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프레디에는 테세우스에게 부족과 자신의 운명을 걸어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테세우스는 적다면 적은 수라고 할 수 있는 게툴리족을 데리고 정복전쟁을 수행했다. 유목민이라 땅을 점령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정복전쟁은 조금 의미가 달랐다. 정복전이 아니라 학살전이라 봐야했다.
그 일을 완수하는데 세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게툴리안의 황량한 평야에서 게툴리족을 무참하게 베어냈으며 그 가운데 자신을 따르던 게툴리족은 전리품을 두둑하게 챙겼다. 승전을 거듭함에 따라 부족의 안위나 욕심등으로 테세우스에게 가담하는 부족은 점점 많아졌으나 충성을 맹세했다가 배반한 부족은 철저하게 멸족시켜 버렸다.
그 일은 휘하 게툴리족에게 맡겼기에 노예로 팔 자는 팔고 죽일 자는 저들이 알아서 죽였다. 테세우스는 그것에 관여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을 거부하고 게툴리족의 방식을 택했으니 멸망 당하는 것도 게툴리족의 방식대로 당하게 내버려 뒀을 뿐이다.
얼추 정복전을 끝내고 자신에게 대항할 부족이 더는 존재하지 않자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굴복한 부족에게 일정 부분 식량과 물자를 지원해주기로 다시 약속하며 자신을 따라 전쟁에 함께할 것을 종용한다. 전처럼 과한 보상이 아니었음에도 게툴리족은 흔쾌히 테세우스를 따라 나섰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1만에 달하는 기마병을 이끌고 릭서스 아래 위치한 안파로 향했다.
게툴리안에 내에 테세우스의 이름이 공포로 군림하는 데는 2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가장 먼저 적을 베었으며 마지막까지 적을 베는 무시무시한 전사로 저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졌다. 그 와중에 소문이 부풀려지고 신화처럼 변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단 석 달 반 만에 게툴리안을 테세우스라는 이름으로 일시적으로 통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그게 게툴리안에서 시간이 지체된 이유였다.
배에 오르는 게툴리족을 바라보던 나디르가 경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테세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대체······. 게툴리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게다가 이토록 많은 기병은 대체······.”
단순히 계약관계가 아니라 게툴리족 전사는 테세우스에게 절대적인 충성과 존경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켈타이족이 테세우스에게 보이는 눈빛과 매우 흡사해보였기에 나디르는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
피레네 산맥 어딘가.
구불구불하고 푸석푸석한 금발을 가진 사내가 숲속의 한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거미가 거미줄을 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 나쁜 파리가 날아가다가 거미줄에 걸리자 재빠르게 거미줄을 건너서 배에서 실을 뽑아내 삽시간에 감아버렸다.
이빨을 박아넣어서 바로 체액을 빨아먹을 줄 알았는데 배가 부른 모양인지 감아놓기만 하고 다시 거미줄 중앙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푸른 눈을 가진 폼페이우스는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거미줄에 걸린 파리의 모습이 말이다.
“무엇을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는가?”
그런 폼페이우스에게 말을 건네는 로마 장군이 있었다. 메텔루스 피우스임을 확인한 폼페이우스는 다른 말을 뱉었다.
“아군의 상황이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과 다를 바가 없군요.”
거미줄이 쳐져 있는 줄도 모르고 기세 좋게 날아가다가 먹잇감이 되어버린 파리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의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자네 아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술라께서도 자네 나이 때는 광대와 어울려 다니며 세상을 한탄하기 바쁘셨다는 걸 말이야.”
“으음.”
“젊은 시절엔 조금 패배해도 괜찮네. 게다가 자네는 나아갈 길이 창창한 젊은이지. 그보다 더한 명성을 쌓기도 했고.”
자신을 위로하는 말에 폼페이우스는 어느 정도 위안을 얻고 메텔루스 피우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저물어가는 해일세. 이번 패배는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거야.”
틀린 말이 아니다. 이번 토벌의 주역도 폼페이우스가 아니라 메텔루스 피우스였기에 패배에 대한 책임 역시 그에게 대부분 몰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겠지.
“으흠.”
폼페이우스가 침음을 흘리자 메텔루스 피우스가 말했다.
“승리하길 원하는가?”
“그야..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하지만 현재 아군의 상황은 저들이 전투를 치르자고 해도 피해야할 상황입니다. 군량만 해도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이대로 군을 해산해야할 판입니다. 본국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군량을!”
“하하하. 그토록 자신만만 해하던 자네가 이리도 어려워하는 걸 보니 세르토리우스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군.”
세르토리우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폼페이우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는 곧 결의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토리우스는 반드시 제가 쓰러뜨릴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 말대로 아군은 싸울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무슨 수로? 그렇다고 다음을 기약하자니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원로원이 다시 자네에게 세르토리우스 토벌을 맡길지 모르는 상황이지. 물론 한 번의 패배로 원로원이 자네를 중용하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자네도 알지 않은가? 자네의 상황이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지를 말이야.”
폼페이우스가 대놓고 법을 어기고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금껏 승리했기 때문이다. 히스파니아에서의 패배는 작은 패배가 아니다. 그 패배는 폼페이우스의 적들에게 그를 물고 뜯을 수 있는 명분을 줄 것이고 그런 그를 전장에 세운 원로원 역시 그 화살을 피해 가지 못할 터, 메텔루스 피우스의 말따라 다음번에는 토벌은커녕 명성을 회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었다.
“자네에게도 내게도 결국 많은 것이 걸려있는 전쟁이지. 물론 자네는 나보다 상황이 낫지. 하지만 다시 자네에게 기회가 온다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
폼페이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이 관찰하던 거미줄을 군화로 짓이겨버렸다. 자신이 파리라면 거미의 상징이 누구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폼페이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신세 한탄이나 하자고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런 자였다면 술라가 중용하지도 않았을 터, 따라서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폼페이우스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한 메텔루스 피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승리를 얻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책이 있지. 세르토리우스가 자네를 일컬어 술라의 제자라고 했다지? 그런 자네라면 술라께서 어떤 식으로 적을 상대했는지 고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감히 자신을 훈계하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폼페이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메텔루스 피우스는 다시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 정치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 그게 좋겠어.”
폼페이우스는 침묵을 지키며 메텔루스 피우스를 바라봤다.
“폼페이우스. 자네 이름을 한 번만 빌리겠네. 자세한 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게 무슨?”
폼페이우스가 반발하려고 하자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의 팔뚝을 세게 잡으며 강하고 서늘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번 전쟁에서 질 수 없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나? 질 수 없단 말이다.”
폼페이우스는 그의 눈빛에 담긴 진정성과 광기를 읽고는 눈을 좁히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제야 그의 팔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는가? 자네가 술라의 제자라면 나 메텔루스 피우스는 술라의 심복일세. 세르토리우스는 그건 간과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폼페이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가진 절박함이라면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방책 마련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게 무엇이든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