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150. 무엇이 중한가?
150.
일견하기에 테세우스가 무모해보일지는 몰라도, 지금껏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자신의 제안을 게툴리족이 거부할 이유가 희박했다고 여겼기에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 최악의 경우 곧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첫 번째가 무겁고 단단한 창, 보아디케아를 들고 게툴리족을 만난 것이었고 대안의 두 번째는 테세우스 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저들, 게툴리족 부족장들이었다.
모든 집단은 우두머리가 존재한다. 수평적 사고가 발달한 유목민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이들 또한 지휘집단이 따로 존재한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착민에 비해 유동적인 형태라 정착민의 지휘체계보다는 틈이 많으나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있으니 차치하고 어쨌든 유목민 또한 지휘체계를 잃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간단히 말해 일이 뒤틀릴 경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부족장들을 사살하고 게툴리안을 벗어나거나 피의 통치로 이 지역을 토벌할 생각이었다. 따로 이런 생각을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항우의 통치방식이 이러했으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공포로 적을 함몰시키는 방식은 테세우스의 뼛속 깊이 박힌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테세우스는 우뚝 서서 괴성을 지르며 자신에게 쇄도하는 게툴리족을 바라봤다. 기마민족이라 할 수 있는 저들이 두 발로 땅을 박차며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딱히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는 광경이지만 이 또한 노림수라면 노림수였다.
테세우스는 곧 이어질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보아디케아의 창에 의해 유린당한 게툴리족의 시체와 곳곳에 튄 시뻘건 선혈이 그려지자 테세우스는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
테세우스는 어떤 마음도 품지 않았다. 저들의 선택이었다느니 어쩔 수 없다느니 그런 어쭙잖은 핑계는 살육의 무거움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말과 생각으로 스스로를 어지럽히느니 차라리 혀와 심장을 베어내리라.
테세우스는 하늘을 바라보게끔 들고 있던 창을 달려오는 게툴리족을 향해 내밀었다. 그런 뒤 창대를 잡고 있던 양손을 가볍게 틀어쥐며 힘을 가했다.
꾸우욱
트득
창대가 손아귀에 비틀어지는 비명이 미약하게 울려 퍼졌으나 전장의 소음에 묻혀 없는 것처럼 사라졌다. 그 가운데 테세우스는 어둠 속의 별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짓쳐드는 게툴리족을 주시했다.
후우우웅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번뜩이는 칼날이 자신의 몸을 단번에 양단할 것처럼 날아들었다. 전후좌우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었다.
보보(步步)마다 창칼이 번뜩이고 사위(四圍)에는 사나운 이리 떼들이 살점을 뜯어먹고자 이를 드러내고 있으니 제아무리 대범한 자라도 두렵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조금도 요동치지 않았다. 그는 보아디케아를 횡으로 휘두르며 몸을 반쯤 빙글 돌렸다.
스아아악
서걱 서걱
대여섯 명에 이르는 게툴리족의 육체가 갈라지는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소리 역시 게툴리족의 고통 섞인 비명에 묻혀버렸다.
창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핏물이 튀어 오르고 그 핏물이 미처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테세우스의 보아디케아는 다시금 게툴리족의 육체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는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보아디케아를 쭉 내밀었다. 보아디케아의 창대는 테세우스의 손에서 벗어날 것처럼 앞으로 쭈욱 밀려 나가다가 창미에 다다라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푸우욱 푹
“크아아악!”
“커헉!”
보아디케는 세 명에 이르는 게툴리족 전사를 꼬챙이 끼우듯 단번에 관통해버렸다.
“이 새끼가!”
“죽어라!”
창으로 단번에 세 명이나 관통하다니! 그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본 게툴리족은 크게 놀랐지만 테세우스가 무기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저들은 테세우스의 뒤를 노리고 매섭게 쇄도했다.
피와 살 무엇보다 고통에 근육이 수축 경직되며 창대를 잡고 있으니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무엇보다 창을 뽑을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행동을 한다면 창을 뽑는 것에는 성공할지 모르나 게툴리족의 무기가 테세우스의 육체를 무참하게 유린해버릴 것이다.
창을 놓고 땅에 떨어진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전투 방법이었다. 게툴리족의 뛰어난 전사 몇몇은 테세우스가 그렇게 행할 것을 예측하고 이미 테세우스가 움직일 방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그러나 모두의 예상이 빗나갔다. 테세우스는 세 명이 꿰인 창을 그대로 횡으로 휘둘러 뒤쪽과 측면에서 달려오는 게툴리족의 배와 다리들을 창두로 무참하게 갈라버렸다. 창대에 얻어맞고 갈비뼈나 척추가 부러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크허허헉”
“우아아아악!”
우루루루
마치 게툴리족은 철 구슬을 맞아 힘없이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우루루 쓰러졌다. 그 결과는 사망내지 중상이었다.
창에 꿰어 있던 세 명의 전사는 그 원심력으로 인해 이리저리 날아가 동료 전사들의 몸에 처박혔다.
한 번의 휘두름에 십여 명도 넘는 전사들이 쓰러지자 게툴리족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파악했다.
“이.. 이게 무슨?”
비랄은 눈앞에 일어난 광경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저게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무슨 인간의 힘이 저리도 무지막지하단 말인가?
“이.. 이이익! 계속 쳐라! 놈도 인간인 이상 지칠 것이다!”
회의를 위해 모였기에 막사가 많이 쳐진 곳이라 말을 타고 공격하긴 효율적이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적은 한 명이 아닌가? 비랄의 명령은 합리적인 명령이었다. 그러나 비랄은 차라리 말에 올라 테세우스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테세우스는 자신들의 언어로 고함을 지르는 비랄이라는 자를 바라봤다. 그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부족장들 역시 눈에 들어왔다.
테세우스는 형형한 눈빛으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그렇게 바람처럼 달리며 좌우로 창을 휘둘러 전방과 측면의 게툴리족은 빗자루질 하듯이 쓸어버렸다. 다만 빗자루질이 쓰레기를 치우는 행위라면 테세우스의 빗자루질은 하면 할수록 피와 살점을 지저분하게 땅에 남겼다.
촤아아악 촤아악
“크아아악! 크아악!”
“활을 써라! 이 멍청한 놈들아!”
활과 같은 원거리 무기를 쓸 줄 몰라서 안 썼겠는가? 한 명을 잡자고 무작정 화살을 날린다면 도리어 아군이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에 지양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테세우스의 위용에 화가 난 게툴리족은 도리어 궁수를 탓하기 시작했다.
“활을 써서 막아!”
고작 한명을 막지 못해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족장들은 위기감보다는 아직 분노를 더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아직까진 회의장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좌우로 휘두르던 창을 돌연 갑자기 땅에 박아넣었다. 그리곤 그것을 지렛대 삼아 몸을 띄워 올렸다.
타아앗
그를 향해 날아오던 투사체들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발밑으로 스치고 지나가 도리어 뒤편에서 달려오던 게툴리족의 몸에 틀어박혔다.
“크아아악!”
“으아악!”
“어디다 쏘는 거냐? 이 병신들아!”
“눈깔을 쏙 잡아 빼버릴까 보다!”
게툴리족들끼리 욕설이 오고 갔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테세우스는 허공을 유유히 날아 족장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성큼 이동했다.
테세우스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자 각 족장을 호위하던 정예병력들이 일제히 무기를 휘둘러 테세우스를 베려고 했다. 그러나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휘두른 보아디케아에 의해 도리어 저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십여 명도 넘는 자들의 머리가 허공으로 한꺼번에 솟구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제야 족장들은 테세우스에 대한 소문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신이 칼을 뽑아들은 후에는 목숨을 수거하기 전엔 그 칼을 집어넣지 않는 법이다. 물론 테세우스가 사신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 그는 족장들 전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먼저는 테세우스 본인이 손해라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유리한 조건을(일단 로마를 무찌른 후에 벌충할 요량이었기에 그가 약속한 물자, 식량지원은 일반적인 보상을 훌쩍 넘어선 지원이었음.) 게툴리족에게 보장했고 잘못된 선택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건만 저들은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믿을 수 없는 자들은 베어버린다. 사람을 고쳐 쓴다? 스스로의 작은 행실도 바꾸기 어려워하는 것이 사람이거늘, 누가 누구를 고쳐 쓴단 말인가? 극도로 오만한 자의 어리석은 판단일 뿐이다.
신뢰, 곧 믿음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요소다. 믿을 수 없는 자들과는 무엇도 함께할 수 없다. 그게 동료든 친구든 연인이든 간에 믿음은 관계의 주춧돌이 되는 요소다. 믿음이 없다면 모든 것은 모래성처럼 삽시간에 무너져내린다. 고로 믿을 수 없는 자와는 애초에 함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테세우스는 땅에 착지하자마자 혈풍을 일으키며 족장들에게 쇄도했다. 그의 호위 병력들이 급히 그를 막으려 들었으나 자신의 피만 허공에 흩뿌리고 차디찬 바닥에 누울 뿐이었다.
“막! 막아라!”
챙 채챙
족장들은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도망치기 보다는 저마다 무기를 뽑고 테세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든 대외적으로든 족장의 지위와 권한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니 저들은 이를 악물고 테세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무력으로 족장에 오른 이들이 많은 만큼, 저들의 검은 제법 사나웠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무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현란하게 휘둘러 자신을 죽이려고 작당했던 족장들의 육체를 분시해버렸다.
촤아아악
“커허허헉!”
“크아아악!”
그의 창이 내질러지는 곳에는 반드시 피와 죽음이 피어올랐다. 테세우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들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푸욱
바닥에 꿈틀거리는 족장의 목에 창미를 박아넣어 절명시킨 테세우스는 비랄을 바라봤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정예 전사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한 후였다. 테세우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꿈틀거리는 자는 모조리 창으로 베거나 찍어서 죽여버렸다.
자비심이라곤 전혀 없는 손속에 게툴리족은 완전히 얼어붙어서 그를 공격하는 것도 잊고 비랄을 바라봤다. 테세우스가 족장들 전부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살아남은 족장들 중 가장 영향력이 강한 족장이 바로 비랄이었기 때문이다.
“으으. 죽여! 놈을 죽여!!”
비랄이 악에 박친 목소리로 외쳤지만 섣불리 움직이는 전사들이 없었다. 족장을 지키던 정예전사들도 순식간에 몰살당한 마당에 무슨 담력이 있어서 그에게 달려들겠는가? 족장이 죽은 부족은 죽었기에 족장이 살아있는 부족은 족장이 살아있기에 비랄의 명령을 무시했다. 남은 건 비랄의 부족이었는데 비랄의 정예전사들은 가장 먼저 테세우스에게 달려들었고 그 결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비랄의 명령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테세우스는 비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에게 말했다.
“나를 인질로 삼는다고 하지 않았나? 네가 직접 해라.”
테세우스가 비랄에게 말하자 비랄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네. 네놈이!”
뭐라 말할 건더기도 없었던 비랄은 그저 그렇게 외친 후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비랄의 검이 자신의 정수리로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테세우스는 몸을 슬쩍 뒤틀며 보아디케아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부우웅
촤아아아악
철푸덕
그것이 끝이었다. 비랄은 보아디케아에 의해 반으로 갈라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은 형편없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수많은 게툴리족이 남아 있었지만 전장의 소음은 물론이거니와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적막이 이곳에 찾아왔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게툴리족에게 말했다.
“나를 죽이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날 죽여야 할 거다. 히스파니아의 로마군을 정벌한 뒤 군대를 이끌고 다시 이곳을 찾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