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 세르토리우스.
148.
헤르미니우스는 폼페이우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사르데냐 섬으로 피신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피신 중 병을 얻은 레피두스는 병마에 의해 결국 사망하고 만다. 페르페르나와 잔당들 역시 히스파니아로 도망쳤으니 반란은 종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로마의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에게 군을 해산하고 일반 시민으로 돌아가라 명령한다. 폼페이우스가 군을 이끄는 것 자체가 로마법에 위반하는 사항이었으니 원로원의 명령은 적법한 명령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로 도망친 반란군의 잔당을 정리하고 세르토리우스 토벌을 돕겠다는 명목 하에 원로원의 명령을 거부한다.
이 사태만 봐도 당금 원로원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폼페이우스는 갈리아 지역의 트란살핀(Transalpine) 지역을 통과하여 진군했는데 그 지역의 갈리아 부족과의 전투가 불가피했다. 사나운 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나가는 로마군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메텔루스 피우스 때는 병력의 규모가 대단했기에 몸을 사렸지만 폼페이우스가 이끄는 병력은 3만 정도에 달했다. 무엇보다 트란살핀 지역의 갈리아인들은 레피두스와 모종의 협약도 맺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협약을 폼페이우스가 박살낸 셈이니 사나운 갈리아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갈리아인들의 파상공격(波狀攻擊)이 이어졌고 폼페이우스의 군단은 자연히 진군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군을 이끄는 자는 폼페이우스였다. 그는 사나운 갈리아인들을 상대로도 연전연승을 거두며 히스파니아로 빠르게 진군했다. 당연히 그 소식은 로마는 물론 히스파니아 지역에도 퍼졌다. 마치 폼페이우스가 그것을 노리기라도 한 것 마냥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에 히스파니아에서 연패를 당하다 못해 도리어 후퇴까지 한 메텔루스 피우스와 비교하는 목소리도 높아져 갔다. 자연히 폼페이우스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나날이 높아졌다.
아군에게는 찬사를 일으키게 만들었고 폼페이우스의 적들에게는 극심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물론 히스파니아의 세르토리우스군은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를 피해 히스파니아까지 도망친 페르페르나군은 말이 달랐다. 병사들은 극심한 두려움을 느꼈고 휘하 지휘관들 역시 두려움에 떨기는 마찬가지였다.
세르토리우스군에 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대두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세르토리우스군에게 가담하지 않는다면 페르페르나를 버리고 세르토리우스군에 가담하겠다는 말까지 거론되었다.
사실 세르토리우스군에 가담해야 한다는 주장은 히스파니아 후퇴 초기부터 나왔던 소리지만 페르페르나의 강경한 반대에 의해 잠잠해진 상황이었는데 폼페이우스의 위세등등한 진군 소식은 페르페르나의 권위까지 무시하게 만들었다.
테세우스가 이집트로 떠난 뒤 한달쯤 되는 시점. 페르페르나는 세르토리우스를 만나고 있었다. 그 한달 동안 세르토리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를 상대로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세 배 이상이나 되는 메텔루스 피우스 군을 토페트 지역에서 몰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페르페르나의 지휘관들은 모두 존경 어린 눈빛으로 세르토리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일궈내는 것은 병사들도 병사들이나 지휘관의 역량이 받춰주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례로 자신들의 지휘관 페르페르나는 전투를 치르는 족족 연패를 면치 못했고 심지어 승산이 충분한 전투 역시 패배했으니 세르토리우스를 보는 심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시오.”
세르토리우스는 합류한 페르페르나를 따뜻한 음성으로 맞이했다. 세르토리우스는 그를 환대했지만 세르토리우스 휘하 지휘관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페르페르나 이 자가 히스파니아로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폼페이우스 역시 히스파니아 토벌을 감행하기 한층 더 어려웠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명성이 자자한 폼페이우스는 사실 세르토리우스의 지휘관들로서도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페르페르나가 이곳으로 후퇴하지 않았더라도 폼페이우스가 히스파니아 토벌에 가담했을지 모르나 어쨌든 페르페르나가 히스파니아로 후퇴했고 그 여파로 폼페이우스까지 가담한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페르페르나를 보는 눈길이 고울 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부족한 저희를 환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기쁜 날이니 연회라도 벌여야 마땅하지만 적들이 기세등등하게 몰려오는 상황이니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합시다. 일단 나르보에서 후퇴하여 아군에 가담한 것은 잘한 일이오.”
페르페르나는 세르토리우스의 말에 눈빛이 살짝 변했지만 이내 곧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이렇게 합시다. 페르페르나 당신은 군을 이끌고 타라코의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와 합류하시오. 그렇게 타라코의 병력이 보강되면 혹시 모를 폼페이우스의 진격을 막아설 수도 있고 발렌티아를 거점으로 삼은 메텔루스 피우스를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소.”
“으흠.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다음 사안으로는······.”
*
폼페이우스가 합류하고 다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테세우스와 함께한 나디르는 가데스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테세우스는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히스파니아에 복귀하지 않았다.
세르토리우스는 그 점이 조금 불안했지만 테세우스의 신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알았기에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폼페이우스는 과연 폼페이우스였다. 거침없이 진격하며 나르보는 물론 타라코를 점령해갔다. 메텔루스 피우스의 수하이자 두 배는 더 되는 군을 이끌고 침공했던 칼비누스를 무찔렀던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 역시 폼페이우스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후퇴를 해야 했고 페르페르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폼페이우스의 거침없는 공격에 힘을 얻은 메텔루스 피우스 군 역시 그것에 동조하여 공세를 펼쳤기에 매 순간의 전투가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세르토리우스는 자신이 나선 전투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그가 패배한 전투는 모두 그의 지휘관들이나 수하들이 패배한 전투였다. 타라코에서의 전투 역시 그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의 수하 히르톨레이우스가 패배한 것이었다.
하지만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폼페이우스가 연전연승을 거두며 진군하자 세르토리우스군에 굴복했던 도시들이 폼페이우스에게 굴복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라우론이라는 도시였다. 초창기에는 별 수 없었지만 이 사태를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었던 세르토리우스는 라우론을 토벌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나섰다. 이탈하는 도시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아군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세르토리우스를 격파하기 위해 벼르고 벼렀던 폼페이우스 역시 군을 이끌고 자신들에게 가담한 라우론시를 구원하기 위해 진군했다. 폼페이우스는 열세에 처한 세르토리우스군이 버틸 수 있는 근간이 세르토리우스라는 걸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따라서 그를 패배시킬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우론시 주변에는 가파른 언덕이 있었는데 이 언덕은 라우론을 공략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전략지점이었다. 이에 세르토리우스군은 물론 폼페이우스군 역시 그곳을 공략하기 위해 빠르게 진군했다. 다행히 산악전에 익숙한 세르토리우스군이 먼저 언덕을 점령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늦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프레펙투스의 보고에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다가 오히려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도리어 잘 되었다. 군에게 알려 내 말을 따라 외치라 전하라.”
“예? 예. 알겠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그 길로 막사를 벗어나 병사들 앞에 섰다. 그리곤 큰 목소리로 외쳤다.
“라우론의 시민이여! 너희를 포위했던 적들이 오히려 포위당해 섬멸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라!”
폼페이우스의 병사들은 지체없이 그를 따라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과연 폼페이우스의 말대로 라우론을 포위하고자 둘러싼 세르토리우스군은 아군에게 포위된 형국에 처해버렸다. 이에 병사들은 크게 웃으면서 세르토리우스군을 조롱했다.
이윽고 저들은 세르토리우스군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사나운 기세로 진형을 좁히고 들었다.
*
저들이 외치는 소리와 진형 변화를 보고 들은 세르토리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의 전투로 술라의 어린 제자에게 눈앞의 적보다 등 뒤의 적이 무섭다는 것을 손수 알려주리라.”
세르토리우스가 손을 들자 이윽고 트럼펫 소리와 함께 깃발이 올라갔다.
그러자 폼페이우스 뒤 편에서 6천에 달하는 세르토리우스군이 모습을 드러내 세르토리우스군을 포위하려던 폼페이우스군을 다시 포위해버렸다.
폼페이우스도 그 모습을 발견했지만 세르토리우스의 함정에 완벽하게 걸린 셈이라 폼페이우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눈앞의 세르토리우스를 공격하자니 등 뒤의 세르토리우스군이 걸리고 등 뒤의 세르토리우스군을 공격하고자 군을 돌리면 라우론시는 그 사이에 함락당하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외통수에 빠진 격이었다. 지금껏 폼페이우스는 이런 무력한 상황에 빠진 적이 없었기에 허망한 눈으로 세르토리우스군이 라우론 시의 성벽을 공격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는 것이 옳은 상황이지만 눈앞의 우방을 버리고 후퇴하는 건 장군으로서 부끄러운 행위였다. 따라서 폼페이우스는 어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차마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참담한 표정으로 라우론시를 바라보던 프레펙투스 중 한 명이 그런 폼페이우스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레.. 레가투스. 어.. 어떻게 합니까?”
“······.”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던 폼페이우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후퇴한다.”
그제야 폼페이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그간 무능해서 세르토리우스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는 그가 늙었고 전장에 설 수 없을 정도로 나태해져서 패배했다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직접 상대해본 세르토리우스 이 자는 전장의 상황을 완전히 꿰고 있었다. 언덕을 점령하고자 군을 통솔한 일도 그렇고 적의 심리까지도 꿰고 있었다.
변명할 여지도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폼페이우스는 결국 동맹시가 눈앞에서 완전히 불타는 것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는 항복하는 라우론 시의 사람들은 살려두었지만 성은 완전히 파괴시켜버렸다. 위대하다던 폼페이우스가 자신 앞에 얼마나 무력했는지 그리고 자신을 배반한 시가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기 위함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이 일로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승리에 조급해진 폼페이우스는 무리한 전술을 택하다가 수크로 강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까지 수세에 몰렸다. 수크로 강 유역에서 세르토리우스는 좌익의 아프라니우스라는 지휘관과 대치했지만 우익의 군대가 폼페이우스에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맹렬히 돌격해 폼페이우스군을 무찔렀다. 폼페이우스군은 세르토리우스군의 맹렬한 기세에 메뚜기떼처럼 흩어졌고 폼페이우스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만약 폼페이우스의 말이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지 않았고 그가 말을 버리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폼페이우스는 세르토리우스에게 사로잡혔거나 마사에실리족 용병들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황금에 눈이 팔린 용병들이 도주하는 폼페이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부터 사로잡으려 했기에 가까스로 기지를 발휘해 도주할 수 있었다.
투리아 시 부근에서는 폼페이우스와 메텔루스 피우스 둘을 상대로 대등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여기서도 세르토리우스가 승리를 거뒀다. 그야말로 전술의 귀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전연승을 거두는 것은 세르토리우스의 직속군에 불과했다. 따라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전황은 여전히 열세였다.
그럼에도 토벌군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세르토리우스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낀 토벌군의 지휘관들은 패배를 면하기 위해 성에 틀어박혀 수성을 일삼았다. 설상가상으로 로마 본국으로부터 오는 식량이 감소됨으로 인해 군량 확보에도 어려움을 입게 되었다.
세르토리우스는 전장의 흐름이 급격하게 아군에 쏠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저들의 움직임이 더욱 신중하게 변한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는 아군과의 전투 자체를 꺼리고 있었다.
세르토리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더 많은 병력을 일으켰다. 켈타이인들의 지원은 물론 가용한 모든 병력을 일으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이건 세르토리우스로서도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연히 그 어느 때보다 테세우스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직감적으로 세르토리우스는 지금의 호기를 테세우스가 이끌어낸 것을 알았다. 또한 지금도 테세우스는 전투를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다시금 가져올 희소식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호기를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던 세르토리우스는 그렇게 모은 2만의 병력을 더해 총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이 실패하면 무너지는 건 토벌군이 아니라 세르토리우스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사비누스로부터 나디르가 많은 배를 가지고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배가 필요할 까닭이 무엇일까? 실패하더라도 테세우스가 있었다. 그 믿음은 세르토리우스가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먼저 세르토리우스는 성에 틀어박힌 저들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런 다음 보급로를 다시금 확보하기 위해 성에서 나오는 로마군을 각개격파해버렸다. 삽시간에 빼앗긴 히스파니아를 회복한 세르토리우스는 토벌군의 해상 보급로까지 장악했다.
오히려 이 점은 히스파니아 내의 육상보급로를 끊는 것보다 훨씬 더 수월했다. 테세우스가 확보한 자유무역지대에 속한 세력들이 그 일을 암암리에 도와줬기에 훨씬 더 수월하게 해상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많지만 육로로도 해상으로도 보급을 받을 수 없게 된 메텔루스 피우스와 폼페이우스는 결국 자신들이 진격해왔던 피레네 산맥 쪽으로 군을 급히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수한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병력의 숫자는 여전히 9만에 달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고 세르토리우스군에 비하면 여전히 배나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히스파니아 내에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기반을 모조리 잃었다.
세르토리우스는 당금 로마에서 인정받는 두 명의 장군,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처참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히스파니아를 토벌하고자 저들이 당도한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