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47화 (147/298)

# 147

147. 세르토리우스.

147.

그가 소문의 테세우스라는 건 잘 알겠다. 아주 짧은 전투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지켜본 프레디에는 일신의 무예가 소문대로 대단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강력한 힘을 가진 전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의도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물론 추측되는 점이 없지는 않았다. 게툴리 전사들은 용맹하기로 이름이 높으니 베스티아와 마찬가지로 용병으로 이용하고자 이곳까지 당도한 것일 테지. 하나 이어진 테세우스의 발언은 프레디에의 추측을 두루뭉술한 의문으로 바꿔버렸다. 아니 그보다 테세우스의 발언은 그에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어지간히도 만만히 보였나 보군. 지금 나와 장난을 치자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일신의 그 알량한 무예를 믿고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무예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곳에 당도한 게툴리족 전사는 오백이 넘는다. 홀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무작정 이들을 포위한 것도 아니다. 주변에 숨은 병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한 후에야 테세우스 등을 포위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병력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테세우스의 도움이 될 정도의 거리에 자리한 병력은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니 어딘가 숨겨져 있는 병력을 믿고 허세를 부린다고 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프레디에는 황당함과 분노가 뒤섞인 심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을 꺼냈다.

테세우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프레디에에게 대답했다. 깜깜한 어둠 속이라 정확한 수효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 수가 기백 정도로 보였다. 상식적으로 열댓 명에 불과한 적을 상대로 천 명에 달하는 전사를 이끌고 이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 명도 되지 않는 병력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 글쎄. 일부러 죽어주지 않는 이상, 당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어떤 자기확신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닌 바 무예와 육체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적을 죽이면 기력이 회복되는 기묘한 능력은 테세우스가 아무리 치열한 전장이라 할지라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다는 말과도 동일했다. 천 명, 어쩌면 그 이상이라 할지라도 전투 중 중상만 입지 않는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기백의 전사로 자신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만용에 가까운 위험한 행동이라 볼 수 있겠지만 테세우스는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고 만용을 부리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허언을 뱉지도 않았다. 그가 무기를 들고 적을 죽이려 든다면 제아무리 용맹한 게툴리족이라고 할지라도 혼비백산하여 도망쳐야만 할 것이다.

물론 전투에는 항상 변수가 있으니 테세우스가 당할 수도 있다. 누차 말하지만 그의 육체가 무슨 강철로 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가 말했듯 눈앞의 프레디에는 그의 손에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테세우스가 그를 최우선적으로 노릴 텐데 거리조차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 말을 헛으로 들었군. 뭐 그건 차치하도록 하고.”

그 점을 구태여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테세우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프레디에를 바라봤다.

유목민족은 그게 어떤 족속이든 간에 기마와 전투에 능하며 강인하다.

유목민이 유목민인 이유는 가축을 먹일 풀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기에 유목민이다. 가축이 한 곳의 풀만 뜯어먹으면 그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야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별 수 없이 떠돌아야 하고 가축을 먹일 풀이 없을 경우엔 다른 유목민과 전투도 불사해야 한다. 당연히 그 생활은 한 곳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농경 사회보다 훨씬 더 험난하다.

척박한 땅에서 맹수와도 전투를 치러야 하고 다른 유목민들의 침공내지 필요하다면 약탈도 수행해야 했기에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기마술과 사냥기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기병은 총기 발달과 전차(탱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류사 최강의 병종이라 할 수 있었다. 유목민은 유목민 자체가 기병이지만 농경민은 이런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소모해야 양성이 가능했고 그마저도 유목민에 비하면 미흡한 점이 많았다.

테세우스가 게툴리족을 만나고자 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테세우스는 유목민이었던 칭기스칸의 몽골족이 어떤 역사를 이뤄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숙련되고 훈련된 기병의 위력을 이 시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게툴리족이 몽골족만큼 강력한 유목민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 역시 유목민이었다. 그것도 같은 무어인들조차 꺼려할 정도로 사나운 유목민 말이다.

참고로 칭기스칸이 점령한 영토의 크기는 전성기 로마 제국의 4 배에 달하는 영토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차지한 영토의 2배에 달하는 영토였다. 통치가 어찌했는지는 차치하고 세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땅을 점령한 위인이 바로 칭기스칸이었다. 그 칭기스칸의 주력병이 바로 기병, 보다 정확하게 궁기병이었다.

“베스티아가 원한 병력의 규모가 이 정도였나?”

“그렇다면?”

“무엇을 대가로 받았나? 황금? 아니 그보다는 식량이겠군.”

이집트에 기반을 두고 있던 로마인이다. 로마인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보상은 이집트의 곡식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베스티아가 남긴 문서에서 그런 기록을 얼핏 보기도 했었고 말이다.

프레디에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냐?”

“최소 오천 이상의 게툴리족을 용병으로 부리고 싶다. 가능한가?”

프레디에는 미간을 꿈틀거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최소 오천? 그것을 감당할 수준은 되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에게 보상할 거라곤 눈에 보이지 않는데 뭘 믿고 네게 힘을 보태주지? 이 정도 숫자의 게툴리족을 용병으로 부리는 대가로 베스티아가 지불하기로 약속한 보상이 어떤 것인지나 알고 지껄이는 것이냐?”

테세우스의 주변으로는 13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전부였다. 저들이 무슨 금은보화를 지니고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테세우스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프레디에를 바라봤다.

“순진하군. 그 보상이 뭐든 간에 그걸 다 받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건 아니겠지? 착수금으로 받은 것이 너희가 받을 보상의 전부였다. 완수금을 받지 못한다고 너희들이 이집트를 침공해 로마인을 죽이기라도 할 참이었나? 애초에 의뢰를 완수할 수도 없었겠지만 말이야.”

프레디에가 인상을 찌푸리며 테세우스를 쳐다봤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착수금을 받고도 의뢰를 수행하지 않게끔 해줬으니 괜히 헛걸음한 것도 아닌 셈이지. 그걸 계산했기에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아닌가? 아울러 나의 신분을 재차 확인해 본 것 역시, 앞으로 거래 상대가 될만한 배경을 지닌 자가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고 아닌가?”

“으흠.”

프레디에가 침음을 흘리자 테세우스가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네가 말했듯이 나는 히스파니아의 테세우스다. 네가 내 이름을 들먹거린 것은 아스칼리스의 익티다르와 파드와를 죽였기 때문도 아니고 내 무위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도 아니야. 그건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일 뿐이지. 정작 네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최근 카다스 해협 근방으로 일어나는 해상무역의 주인공이 맞는지였겠지. 아닌가?”

테세우스는 말을 멈춘 뒤 차분한 눈빛으로 게툴리족을 둘러봤다.

농경민의 재산은 집이나 땅과 같은 부동산이라면 유목민의 재산은 그렇지 않다. 항상 옮겨다녀야 하는 이들에게 땅이나 집은 재산이 될 수 없다. 이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농경민은 수직적 사고가 발달할 수밖에 없고 유목민은 수평적 사고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정착 사회에선 내 땅과 하늘만 보면 된다. 내 땅이 잘되면 타인의 땅을 넘볼 이유도 없고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반면 유목 사회에선 내 땅만 본다고 끝이 아니다. 적이 많으면 죽고 동료가 많으면 산다. 지금 차지하고 있는 땅이 얼마나 풍요롭던지, 내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많든지, 지금 기거하고 있는 집이 얼마나 호화스럽든지 그건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사라질 것들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정작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베풀 아군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나 농경 사회에 비해 개방적인 사고관 즉, 문화, 종교, 인종을 막론하고 한 무리로 받아들이는 사고가 발달한 것도 이러한 배경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 물질적인 이득을 얻지 못하더라도 떠오르는 유력가와 인연을 맺는 일에 인색할 이들이 아니라는 소리다. 당연히 여기서 그 유력가는 테세우스 본인을 뜻하는 말이었다.

테세우스는 형형한 눈빛으로 프레디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족속은 로마를 두려워해도 너희는 아니다. 그렇지 않나?”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하지만 그건 너희의 세력이 로마보다 강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가 게툴리족을 토벌할 이유도 없고 그러고자 해도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

미간을 좁히던 프레디에가 테세우스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로마가 히스파니아를 점령하고 지금보다도 더 막강한 영향력을 마우레타니아와 누미디아에 가질 때에도 너희가 지금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 그때에도 너희가 로마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음.”

“한 가지 적당한 제안을 하도록 하지.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을 말이야.”

뭔가 끌려가는 느낌을 지워낼 수 없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프레디에는 테세우스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해봐라.”

“나와 함께 로마와 싸운다면 너희에게 경제적 이득을 보장해주겠다.”

“경제적 이득? 전사를 사고 팔라는 뜻이더냐?”

“일차적으로는 그렇지만 히스파니아가 안정된다면 너희도 나도 보다 넓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네가 이해했든 못했든 어쨌든 손해 볼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가서 너희 각 부족에게 전해라. 이제 곧 풍요로운 시기가 다가오니 지금은 전투를 치를 필요가 없겠지만 풀이 마를 시기가 오면 어차피 너희끼리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것 아닌가? 내가 전쟁 원인을 해소해주고 그 전쟁을 수행할 병력을 사겠다는 말이다. 너희가 내 우방이 되어주면 나 역시 너희의 우방이 되어주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기병은 최소 오천.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안파(Anfa, AD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카사블랑카로 변경)로 와라. 제안을 받아들인 족속에겐 일정 부분 물자와 식량을 지원해주지. 세운 공에 따라 전리품을 배분받을 수 있음은 당연한 소리고. 너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안을 받아들일 게툴리족이 있을 것이다.”

안파는 릭서스 아래 위치한 도시로 게툴리족이나 여러 인종들이 모여 형성된 항구 도시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마우레타니아 왕국에 속한 곳은 아니었다. 이곳은 기원전 7세기경 무어인들(베르베르인)이 세운 도시로 비옥한 땅으로 인해 대서양 연안에서 상당히 번영한 도시라 할 수 있었다.

프레디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같아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고 싶었지만 이 문제는 혼자 결정해서 내릴 부분이 아니었다. 오늘의 아군이 적이 되고 내일의 적이 아군이 되는 게툴리족이지만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는 족속이 바로 게툴리족이었다. 불확실하기는 하나 테세우스는 게툴리족이 상생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겠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죽이고 로마에 보상을 받아도 될 일 아닌가?”

“네가 그럴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로마에서 내 위치는 너와 다를 것이 없다. 보상? 글쎄. 내 아버지라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한들 너희에게 로마가 보상해 줄지는 모르겠군.”

“실로 자신만만하군.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나와 함께 부족을 탐방하여 네가 직접 부족장들에게 말하면 될 일 아닌가? 어떤가? 대신 너 혼자 말이다.”

프레디에의 도발성 발언에도 테세우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세우스로서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받아들이지. 너희들은 왔던 길로 돌아가 준비된 배를 타고 히스파니아로 복귀해라.”

그 말에 테세우스의 병사들은 물론이고 말을 꺼낸 프레디에마저 황당한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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