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44화 (144/298)

# 144

144. 삼일 후

144.

테세우스가 이집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이미 로마에서는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히스파니아를 토벌하게 했다.

테세우스가 로마의 진격을 늦추려고 했지만 로마는 그보다 한발 빨랐다. 또한 각종 물자가 풍부해지는 여름과 가을이 다가오는 시기다. 현지조달을 해도 병사들이 굶어 죽지 않을 시기, 따라서 로마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급히 토벌군을 구성해 히스파니아로 보냈다.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히스파니아의 세력이 커지고 그리되면 훨씬 더 큰 위협으로 자라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에서 봉쇄령이 떨어진다면 로마 본국으로서도 식량 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로마군단에 막대한 군량을 계속해서 지급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것이다.

당장은 별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토벌군보다 히스파니아를 근거지로 두고 있는 세르토리우스군이 월등하게 유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분명한 일,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이번 해 겨울만 되도 그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올해가 로마군을 그나마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 할 수 있었다. 올해가 지나면 이집트의 봉쇄령은 다시 풀릴 것이고 군량 문제도 정상화될 것이다.

물론 세르토리우스 등은 테세우스가 얻어낸 이 기회를 아직 알지 못했다. 당연히 토벌군을 이끌고 히스파니아에 당도한 메텔루스 피우스나 로마 본국조차 이 사실을 모르고 있긴 매한가지였다.

어쨌거나 히스파니아에 남아있던 세르토리우스는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양성하여 전략거점 지역에 적절하게 배분했다. 더 징집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현재의 히스파니아로서는 이 정도 병력을 상시 운용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는 병력을 총 세 곳으로 나눴는데 3개 군단에 해당하는 1만 5천은 세르토리우스 본인이, 1개 군단에 해당하는 5천은 사비누스가, 역시 5천은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라는 장수에게 맡겨 히스파니아를 수비하도록 했다.

그러는 사이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던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벤토와 에트루리아인 알카이오스가 패퇴한 군단을 이끌고 히스파니아로 후퇴했다. 레피두스, 헤르미니우스와 함께 폼페이우스와 싸웠지만 대패를 당한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랴부랴 그의 손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숫자는 1개 군단이 조금 넘는 7천 남짓했지만 세르토리우스군에 합류하지는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세르토리우스 휘하의 장수들은 저들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성토했지만 세르토리우스는 일단 내버려 두라고 말했는데 수하 장수들은 당연히 그것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그 불만은 저들의 뒤를 쫓듯이 히스파니아로 쳐들어온 메텔루스 피우스 예하의 막대한 숫자의 토벌군 앞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세르토리우스가 왜 페르페르나 등을 내버려 두라고 했는지 바로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괘씸하기는 해도 페르페르나는 적이 아니라 아군으로 삼아야 할 자들이었다.

메텔루스 피우스가 이끌고 온 토벌군의 숫자는 무려 10만에 달했고 기병들의 숫자는 6천에, 척후병만 2천에 달했으니 세르토리우스가 그간 심혈을 기울여 병력을 양성했다고는 하나 정면대결을 펼쳤다가는 저들의 숫자 아래 그대로 녹아버릴 수 있는 대군이었다.

히스파니아에 당도한 메텔루스 피우스는 먼저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라는 장수에게 3개 군단을 맡겨 히스파니아의 예봉을 꺾으라 명했다. 칼비누스가 향하는 지역은 세르토리우스가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에게 5천의 병사, 즉 1개 군단을 맡겨 수비토록 하게 한 지역이었다.

루키우스 히르톨레이우스가 거점으로 두고 있는 도시는 동편 해안선의 ‘타라코’라는 도시였다. 세르토리우스는 카르페타니 연맹과 루시타니아 연맹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곳에 거점을 두고 있었는데 ‘토레툼’이라는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비상시 루시타니아인들의 조력을 받고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대항했던 카르페타니인들을 무력으로 찍어 누르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보면 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비누스는 바에티카의 가장 큰 도시인 ‘가데스’를 거점을 두고 수비하고 있었다.

물론 세르토리우스군이 점령한 지역은 이 세 지점만이 아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이베리아인이 점령하고 있던 나르보, 타라코, 발렌티아, 노바 카르타고를 위시로 더 많은 도시들과 마을이 동편 해안선과 남쪽 해안선 아래에도 형성되어 있었고 지금은 모두 세르토리우스군 아래 놓였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군이 주둔하는 지역은 세 지점에 불과했다. 물론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거리까지는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동편 해안선은 물론 세르토리우스군이 주둔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방어에 취약해지거나 충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로마가 쳐들어올 것이 뻔한 시기에 병력을 자잘하게 나눠서 모든 도시에 주둔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순식간에 각개격파를 당하고 모든 도시를 로마에 빼앗기게 될 것이 자명하니 말이다.

참고로 페르페르나 등이 폼페이우스를 피해 도망온 지역은 도시 나르보가 있는 지역이었다.

칼비누스를 위시로 1만 5천의 군대를 타라코로 보낸 메텔루스 피우스는 곧장 세르토리우스가 주둔하고 있는 토레툼 이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그 수는 8만 5천에 달하는 숫자였다. 카르페타니 연맹은 평야지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곳 토레툼은 그렇지 않았다. 루시타니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산세가 험하고 대규모 병력이 활동하기 여의치 않은 지점이었다.

지형적인 요소로 인해 8만 5천이 잘게 나눠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숫자를 어찌 무시하겠느냐만은 대규모 병력을 한번에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곧 유격전을 펼치기에 매우 유용한 전장이라는 소리였다.

당연히 세르토리우스는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세르토리우스 휘하에는 산악 전투로 단련된 루시타니아인들도 대거 있었기 때문에 메텔루스 피우스는 진격을 하다가 번번히 그의 게릴라전에 당해 군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는 이 지역에 이미 수많은 거점 지역과 요새를 만들어놓았고 그것은 지금도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더욱이 세르토리우스군은 결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머물 것처럼 굴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렸기 때문에 히스파니아까지 이동하느라 이미 지친 토벌군으로서는 미처 세르토리우스군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번번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패배는 사기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토벌군의 병사들은 이 끔찍한 산속에서 모두 목숨을 잃을 것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세르토리우스는 로마의 전술이나 병력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켈타이인들과 싸우며 위협을 느꼈거나 유용한 부분을 십분 활용해 메텔루스 피우스군을 유린했고 그 결과 세르토리우스는 저들을 만나는 족족 격파해버렸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술라 아래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수다. 그게 아니라면 술라가 다른 자들을 내버려 두고 구태여 그를 자신과 같이 집정관에 오르게 했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들었고 평화에 익숙해졌다. 반면 세르토리우스는 여전히 젊었고 강했으며그는 계속해서 전투를 치러왔다. 그것을 떠나 그는 예전부터 전투의 최전방에서 병사들과 전투하던 장군이었고 거친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 실전군인이자 유능한 장수였다.

그런 세르토리우스가 계속해서 자신을 갈고 닦았으니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를 당해낼 도리가 없어 번번히 패배를 당해 본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토벌군과 세르토리우스군의 병력이 비등했다면 벌써 승패가 나왔어도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토벌군 내에도 팽배했다. 그럴 정도로 세르토리우스는 메텔루스 피우스를 압도했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는 피곤한 눈으로 포룸 카스트룸 안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었다.

척 척

병사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는 눈을 들어 그곳을 바라봤다.

“어찌되었나?”

“그.. 그게.”

“또 당했단 말이냐?”

“저희가 대응하려고 했을 때 놈들은 이미 저만치 도망쳤습니다. 무작정 저들을 쫓다가는 전처럼 더 극심한 피해를 입을까 하여.”

수풀이 어찌나 울창한지 숲에 들어가면 전방의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저들은 무슨 훈련을 어떻게 한 것인지 귀신같이 아군의 위치를 찾아내고 습격했다. 하긴 저들 가운데 켈타이인으로 보이는 자들도 대거 보였으니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리라.

사실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위 로마인이라는 작자가. 아니 로마의 장군이었던 자가 일반적인 로마의 전술은 내팽겨치고 야만인들의 전술을 답습하는 꼴이라니. 메텔루스 피우스는 세르토리우스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의 경력이 이미 심하게 훼손되었고 지금도 훼손되고 있었다. 세 배가 넘는 병력으로 얻은 것이 패배라는 오명뿐이니 부아가 날만도 했다.

이들을 내버려 두고 바에티카의 코르두바를 치러 이동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어차피 이들을 토벌하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세 배나 되는 병력으로 적이 공격하기를 기다린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자신의 정치인생은 물론 군 경력도 그것으로 끝장이라 봐야했다.

“세르토리우스. 세르토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는 증오를 담아 세르토리우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세르토리우스? 안중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어디서 개뼉다귀 같은 놈이 나타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히스파니아 토벌만 완수하면 자신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게다가 질 수 없는 전쟁이다. 10만대 3만이 아닌가? 게다가 저들 3만은 정규훈련을 받은 로마군도 아니었다. 이런 치욕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던 메텔루스 피우스는 여전히 자신 앞에 병사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러가라!”

“하.. 한데······.”

메텔루스 피우스는 짜증스러운 어조로 병사에게 말했다.

“뭐냐?”

“세르토리우스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전령이?”

쌍심지를 켜고 병사를 바라보던 메텔루스 피우스가 말했다.

“들라하라.”

상관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병사는 급히 군례를 표하고 포룸 카스트룸을 떠났다. 잠시 뒤 세르토리우스의 전령이 메텔루스 피우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무엇을 전할 생각이냐? 항복이라도 하겠다고 하더냐?”

세르토리우스의 전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말했다.

“레가투스께서는 이리 전하라 하셨습니다. 로마인이 로마인에게 레가투스가 레가투스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라고 말입니다.”

메텔루스 피우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라?”

“레가투스께서는 레가투스께 결투를 요청하셨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익.”

메텔루스 피우스는 세르토리우스가 우직한 장수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정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간교한 놈이다. 실로 간교한 놈이 아닌가?

병력의 세 배를 지니고 있는 장군이 일대일 대결에 응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정말로 대결을 성사시킬 요량으로 제안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웃은 것이다. 늙고 지친 자신을, 그리고 어줍잖은 논리로 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세르토리우스의 노림수를 읽었지만 그럼에도 메텔루스 피우스는 이에 대항할 계책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껏 그에게 승리해왔다면 별 허접스러운 이야기를 다한다고 웃으며 넘길 것에 불과하지만 연속된 패배로 인해 아군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은 아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적의 레가투스는 실로 사내다운 장군인데 자신들을 이끄는 레가투스는 세 배가 넘는 병력으로도 패배를 당하고 일대일 대결에도 응하지 못하는 겁쟁이라 여길 수 있으니 말이다. 응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메텔루스 피우스, 자신에 대한 경멸감을 조금씩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대결을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어불성설 아닌가? 잃을 것만 도사리는 대결에 뭐하러 나선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거리였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피해만 입게 되었으니 메텔루스 피우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흥! 검투사는 검투사처럼! 장군은 장군처럼 죽어야 한다고 네 레가투스에게 전해라.”

“거절이란 말씀이십니까?”

건방지게 다시 확인하는 전령을 메텔루스 피우스는 말없이 노려봤다. 이에 전령은 가볍게 예를 표한 다음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말했다.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상을 찌푸린 채 전령과 모든 병사들이 포룸 카스트룸을 벗어날 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메텔루스 피우스는 증오서린 음성으로 다시 한 번 적의 이름을 되뇌었다.

“세르토리우스. 네놈이 감히······.”

*

프톨레마이우스에게 축객령을 들은 지 삼일 후, 테세우스는 어디론가 이동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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