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139. 함정.
139. 함정.
쏴아아아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 입항하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항구로 들어오는 입구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기에 정해진 길이 아니고서는 암초에 걸려 좌초당할 수도 있었다. 파도는 그렇게 크고 작은 암초에 부딫쳐 연신 허연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고 선착장과 방파제에도 끊임없이 밀려왔다.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1km 정도 떨어진 파로스 섬 위에 세워진 등대였기에 파로스 등대라고도 불렸다. 이 등대도 대단한 건축물이지만 알렉산드리아와 파로스섬을 잇는 헵타스타디온(Heptastadion)이라는 제방도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제방의 길이가 무려 1260m였다. 섬과 육지를 잇는 제방의 길이가 말이다.
헵타스타디온은 단순히 제방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행을 오갈 수 있는 다리 역할과 파로스섬까지 수로를 이을 수 있게 하는 기반시설이 되어주었다.
어쨌든 알렉산드리아에서 등대까지 가려면 이 상당한 길이의 제방을 건넌 후에야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등대 위에서 주변을 관람하는 건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언급했다시피 이곳은 해군의 기지로도 사용되는 전략거점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알렉산드리아 등대의 팔각형으로 이뤄진 중간지점에서 이 일대를 살피는 자가 있었다. 두 명의 사내가 주변을 살피고 있었는데 복색을 볼 때 각기 이집트인과 로마인처럼 보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는 수많은 배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셀레우코스, 누미디아, 마우레타니아 등은 물론 심지어 내륙 지역의 아르메니아, 흑해의 폰토스, 파르티아의 표식을 한 배들도 눈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지역만 분류했을 때 그런 것일 뿐, 보다 세세하게 나누면 훨씬 더 방대해졌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지중해 영역권의 거의 모든 세력들이 이곳 알렉산드리아와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곳은 로마만큼이나 많은 배들이 오가는 지역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중요한 곳이오.”
탄탄한 체구를 가진 사내, 베스티아가 등대 아래에 펼쳐진 알렉산드리아의 정경을 바라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이집트식 갑옷을 걸치고 있는 사내, 아론이 대답했다.
“히스파니아 일대에서 오는 배의 통행을 막을 수는 없소. 하려고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오. 그 일을 하려면 항구에 정박하기도 전에 모든 배를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소. 그게 효과적이라고 볼 수도 없고. 무엇보다······.”
히스파니아에서 오는 배인지 아닌지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히스파니아 지역에서 통행하는 배만 막는다고 해도 얼마든지 다른 지역의 배처럼 꾸밀 수 있으니 결국 알렉산드리아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배를 일일이 검사해야 한다.
한두 번은 가능할지 모르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통행하는 배들을 무슨 수로? 물론 밤에는 거의 통행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닌 말로 세관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자신이 알렉산드리아 등대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총사령관이기는 하나 감당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다. 저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다가는 머리가 달아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총사령관.”
베스티아의 서늘한 어조에 아론이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론으로서는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곳 총사령관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바로 눈앞의 베스티아였으니까.
“알렉산드로스 무역에도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목숨과도 결부된 일이오. 양해부탁드립니다.”
베스티아는 아론을 가만히 주시하다가 다시 알렉산드리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소. 그 요구는 철회하도록 하지. 총사령관 말대로 그게 실효성이 있는 일인지는 나 역시 의문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들어줘야겠소.”
히스파니아에서 별도의 병력이 도착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희박했다. 따라서 앞서 요청한 사항은 지금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려는 미끼에 가까웠다.
베스티아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아론이 입을 열었다. 이것마저 자신이 거부한다면 앞으로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말씀하십시오.”
“세간에 도는 소문에 대해 알고 계시오?”
베스티아가 입을 여는 순간, 아론은 어떤 소문을 말하는 것인지 즉시 알아차렸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말씀이십니까?”
“그 자를 처리하는데 도움을 줘야겠소.”
아론은 크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지..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테세우스가 범법행위를 저지르거나 이집트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와 상관하지 말라는······.”
베스티아는 눈을 번뜩이며 아론을 압박했다.
“그래서 부탁이라고 하지 않소?”
“그렇다 해도 병력을 지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문으로는 그가 도적들의 굴복을 받아냈다는데 그들을 토벌을 하려면 단순히 몇 백명의 병사 지원이 아니라 이곳의 병력 대부분을 지원해야 할 겁니다. 다만 그런 짓을 감행했다가는!”
“아아아. 내 말을 오해했군.”
“예?”
“이집트 역시 테세우스라는 존재가 껄끄럽긴 마찬가지일 것이오. 아니오?”
“그.. 그건 그렇습니다. 게다가 갑자기 출현한 자라 윗분들도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계십니다.”
“내가 언제 총사령관에게 해가 되는 제안을 하더이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여 매우..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고 도적을 토벌했으면 응당 그 공을 치하해야 왕실의 권위가 살지 않겠소?”
“예? 아!”
아론은 베스티아가 할 부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탄성을 내뱉었다.
“내가 무슨 부탁을 할 것인지 알아차렸소?”
역시 위험한 부탁이다. 하지만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저들 역시 일을 깔끔하게 맺기를 원할 테니까.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빚이 있다. 총사령관의 자리라는 빚이. 그 빚을 청산하려 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베스티아는 아론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세한 내용은 이따 밤에 연회에서 나누도록 하지요.”
“아.. 알겠습니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
테세우스는 나디르와 몇 명의 사람들만 대동하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이집트 왕실에서 자신의 공을 치하한다고 소문이 퍼졌기에 그것을 확인코자 이곳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그 몇 명의 사람들은 도적들이 아니라 바로 나디르가 테세우스를 만나기 위해 이동할 때 호위 병력으로 데리고 갔던 병사들이었다.
어스름한 저녁에서야 알렉산드리아에 다다른 나디르가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스스로 적의 소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입니다. 아시겠지만 좋은 뜻으로 테세우스님을 초청했을 리가 없습니다. 본래 테세우스님의 계획대로 몰래 침입해서 베스티아와 그 일당들을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테세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다. 암살에 성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미 저들은 이집트의 보호 아래 거하고 있을 것이다. 암살에 실패한다면 대대적으로 그 일을 여론화시킬 것이다. 병사들을 잃은 이집트로서는 나를 칠 명분이 생기는 셈이니 도리어 저들은 암살자를 보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들 가운데 일부러 누군가를 죽이고 그 죄를 내게 뒤집어씌울 수도 있겠지. 초청을 거부한다면 거부하는대로 이집트 왕실을 무시하는 행위가 되니 현 구도를 깨버리는 결과를 낳을거다. 상당히 잘 짜여진 각본이야.”
나디르는 표정을 굳히며 침음만 뱉었다.
“으흠.”
“하여 혹여나 싶어서 서둘러 제거하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군. 하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적을 상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게다가 나디르, 네 말대로 소문이 성공적으로 퍼졌다면 이집트의 유명인사들도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오게 될 터, 오히려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살아남았을 때의 일이 아닙니까? 이집트 내에 테세우스님은 물론이거니와 세르토리우스님에게도 우호적인 감정을 지닌 자가 거의 없습니다. 적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영향력을 얻어봐야 얼마나 얻겠습니까?”
“물론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어차피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다. 저들은 내가 저들의 제안을 거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쓸 수 있는 패가 급격하게 줄어드니까. 일단 저들은 도적토벌의 공을 치하하겠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쏟아진 민심을 왕실로 일정부분 돌리게 된다. 위험한 것은 맞지만 굳이 위험도를 따지면 이 길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길이다. 내가 선택하기 쉬운 길에는 이미 갖가지 함정을 마련해 두었을 테니 말이야.”
“글쎄요. 함정이나 계책을 논하는 거라면 테세우스님께서도 이미 준비해두시지 않았습니까?”
“덫을 아무리 많이 놓더라도 사냥감이 걸리지 않는다면 그 덫은 무용지물이다. 또한 사냥감이 원하지 않는 미끼는 아무리 던져봐야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아.”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나디르에게 말했다.
“이 일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이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은 현재, 나디르 너밖에 없어.”
나디르는 미간을 좁히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뜻에 따르겠습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물론.”
*
토가가 아닌 아마포를 걸친 테세우스를 만난 프톨레마이우스, 그러니까 프톨레마이우스 12세는 나른한 표정으로 누워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토가가 아니군.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라더니 로마인이 아닌 건가?”
로마인이라면 대개 토가를 걸치고 자신 앞에 모습을 보였는데 테세우스는 장식된 아마포이기는 하나 이집트 복색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프톨레마이우스는 그 점이 의아했다.
프톨레마이우스와 테세우스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또한 그 주변으로 중무장한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태세를 취하며 테세우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주변을 살펴보다가 프톨레마이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공을 치하한다고는 했지만 프톨레마이우스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테세우스는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대왕께서 묻거늘!”
테세우스만큼이나 커다란 덩치를 지닌 프톨레마이우스의 호위장이 호통을 치자 프톨레마이우스는 손짓으로 그를 물러서게 한 뒤 입을 열었다.
“말해보라.”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그것에 제 이름입니다. 폐하.”
테세우스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끔 프톨레마이우스에게 예를 표했다.
“히스파니아의 세르토리우스가 네 아버지가 맞더냐?”
“예. 그렇습니다.”
양아들이니 친아들이니 하는 부분은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뭐.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니.”
그렇게 답변하며 테세우스의 담담한 모습을 눈여겨보던 프톨레마이우스는 비스듬이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상 위에 놓인 술로 입술을 축였다. 그런 뒤 날카로운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다시 말했다.
“네가 누구든 간에 이집트에서 아주 재미난 일을 벌이고 있더군.”
“······.”
테세우스는 묵묵하게 침묵을 지켰다.
그런 그의 모습에 프톨레마이우스 12세의 호위장, 임호텝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아까처럼 나서지 않았다. 그가 잠잠히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례한 행동임에도 프톨레마이우스에게서 불쾌한 기색을 조금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이 궁금할 테지. 네가 어떻게 지금 나와 만날 수 있는지부터. 모든 것이 말이야. 아닌가?”
‘짐작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프톨레마이우스에 대해 내가 잘못 평가하고 있었군. 아니 그를 둘러싼 환경 자체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테세우스는 그 생각을 하며 자신이 프톨레마이우스를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을 다시 상기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