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35화 (135/298)

# 135

135. 비극.

135.

헤르미니우스는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폼페이우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투박한 발이 바닥을 강하게 박찼고 그로 인해 먼지가 피어올랐다.

차아악

바닥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헤르미니우스는 번개처럼 폼페이우스에게 쇄도했다. 폼페이우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헤르미니우스의 돌격에 대비했다.

탁 탁

폼페이우스 지척에 이른 헤르미니우스는 그대로 도약하며 글라디우스를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부우우웅

위에서 아래로 그려지는 검의 궤적에 폼페이우스는 슬쩍 비웃음을 지으며 발을 뒤로 빼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리곤 다시 앞에 놓여있던 발을 빼며 헤르미니우스의 공격을 아슬하게 흘려냈다.

그리고 날카롭게 앞세우고 있던 글라디우스를 헤르미니우스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크흑!”

헤르미니우스는 기겁하며 몸을 뒤틀었지만 복부부분의 갑옷이 찢어지는 것을 면치 못했다.

“이이익!”

헤르미니우스는 분노하며 재차 폼페이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악

채엥

촤아아악

이어지는 두 번의 공격 끝에 헤르미니우스가 얻은 것은 쓰라린 고통과 상처뿐이었다. 폼페이우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그의 글라디우스를 받아내고 그의 팔과 다리에 검상을 남겼다.

“헉 헉”

헤르미니우스는 급격한 체력 소진으로 분노를 토할 여력도 없었다. 예리하게 아려오는 검상은 자신의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폼페이우스는 가볍게 검을 한 번 공중에 휘두른 다음 검을 고쳐잡고 헤르미니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제법. 기술과 힘은 뛰어나지만 결국 그뿐이군. 나를 죽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뭐라? 이이익!”

헤르미니우스는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폼페이우스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기세와 속도는 폼페이우스조차 흠칫할 정도였지만 그가 휘두르는 공격은 폼페이우스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폼페이우스는 차분하게 헤르미니우스의 공격을 파훼하다가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애송아. 저승에 가거든 기억해둬라.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전장에서는 더욱더!”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지른 헤르미니우스의 검을 고개를 까닥여 피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단번에 헤르미니우스의 목젖에 글라디우스를 박아넣었다.

푸우욱

“커.. 커걱.”

헤르미니우스는 목젖을 꿰뚫은 끔찍한 고통 가운데서도 글라디우스로 폼페이우스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이미 힘이 빠진 그의 팔은 흐느적거리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 전에 폼페이우스가 그의 목젖에서 검을 뽑은 뒤 단번에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

촤아아악.

결국 헤르미니우스는 머리를 잃은 시체가 되어 차디찬 전장 위에 쓰러졌다. 그렇게 그의 불타오르는 야망도 허망하게 스러졌다.

폼페이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그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머리칼을 잡아 잘린 헤르미니우스의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곤 우렁찬 목소리로 일갈했다.

“항복해라! 헤르미니우스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짓쳐 드는 도적의 목을 코페시의 움푹 패인 부분으로 걸어서 당겼다.

“커헉!”

말했다시피 안쪽에는 날이 없어서 목이 베이지는 않았지만 테세우스의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그것만으로도 목을 어느 정도 파고들며 피를 새어 나오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강한 타격으로 인해 목뼈가 완전히 탈골되어버렸다.

그 충격에 도적의 눈이 까뒤집히며 게거품까지 물었지만 테세우스는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사지가 경직되어 파르르 떠는 도적을 냅다 집어던졌다. 사실 목뼈가 탈골된 도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퍼어억

“으허허헉!”

테세우스의 왼쪽에서 짓쳐 들던 도적들은 동료가 갑자기 날아들자 당황하며 그를 받아냈지만 테세우스의 힘이 워낙 강맹했기에 동료와 부딪힌 자들은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도적을 코페시에 걸어 집어던진 테세우스는 그대로 말을 달리게 하고 자세를 낮추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코페시를 휘둘렀다.

부우웅

촤아아아악

“크아아악!”

테세우스는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도적들의 다리와 복부를 거침없이 베어냈고 그들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피를 뿌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불행하게도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기에 기괴하게 목이 꺾인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허공에 튀어 오른 검을 마저 왼손으로 유려하게 낚아챈 뒤 현란하게 휘두르며 저들의 목숨을 수거했다.

분명 사람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거늘 테세우스의 검은 마치 허공에 휘두르는 것처럼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나아갔다.

다시 말해 그의 검이 휘둘러지는 족족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는 소리다. 그의 검은 말과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주변은 금세 피 안개로 뒤덮였다.

“미.. 미친!”

단숨에 십여 명이 넘는 도적들이 도륙을 당했다. 게다가 저게 과연 사람의 힘이란 말인가? 어떻게 검을 내지르는 족족 사람을 토막 쳐버린단 말인가?

“으으으으!”

시카도 함께 테세우스에게 달려 들었지만 부하들이 당하는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급히 말머리를 뒤틀었다. 말머리를 뒤트는 순간 테세우스의 검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말머리를 틀지 않았다면 땅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저 시체들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질린 시카는 이렇다 할 명령도 없이 가장 먼저 말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살아남은 몇 명의 도적들도 급히 시카를 따라 말머리를 돌려 도망쳤지만 테세우스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사람이 아니었다.

먼저 테세우스는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도적을 향해 들고 있던 검 두 자루를 집어던졌다.

붕 붕 붕 붕

이에 두 자루의 검은 맹렬하게 원을 그리며 허공을 빠르게 가르며 날아갔다.

푸욱

서걱 서걱

한 자루의 검은 예의 도적의 등 뒤에 꽂혔으나 코페시는 마치 부메랑처럼 횡으로 반원을 크게 그리며 날아가더니 단번에 세 명의 목을 끊어내고서야 힘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도망치던 세 명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는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검을 챙겨 말에 오른 바트로스는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테세우스의 살육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이제 남은 건 시카와 두 명의 부하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다른 자들을 도살하는 사이 저들은 테세우스의 공격범위를 훌쩍 벗어나 있었다. 슬링이나 화살이 있다면 말이 달라졌겠지만 현재 테세우스에게는 별다른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저들을 추격한다면 맨손으로도 저들을 격살할 수 있는 테세우스지만 어쩐 일인지 저들을 추격할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테세우스는 말의 목을 몇 번 두들기며 쓰다듬다가 말문을 잃고 자신을 쳐다보는 바트로스를 향해 대뜸 말했다.

“바트로스!”

바트로스는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테세우스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 예. 예.”

이 자는 무슨 전투의 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고작 한 명에게 저 잔혹한 마적들이 손도 못 쓰고 도륙당했고 심지어 겁에 질려 도망까지 쳤다. 이걸 말한들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바트로스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보다 강력한 전사 수백 명을 두고도 홀로 모두를 제압한 전력이 있는 테세우스라는 걸 바트로스가 알 수 있을리 만무하니 그의 놀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줄 일이 하나있다.”

그 말에 바트로스는 급히 마음을 추스르고 테세우스에게 대답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목숨을 바쳐서 수행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바트로스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나는 이곳의 도적들을 토벌할 것이다.”

그 후의 목적이야 어쨌든 시작은 토벌이 맞았다. 테세우스의 말에 바트로스는 안색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목숨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헛되이 목숨을 잃는 게 아니야. 당장 도적 하나도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닌가? 불가능을 요구한다면 목숨을 끊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니 그런 걸 요청하지는 않아. 위험을 알고도 이곳까지 나를 안내한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럼?”

“내 이름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히스파니아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다.”

바트로스는 그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듯 나지막이 다시 읊조렸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그렇게 읊조리는 바트로스를 향해 테세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이집트어에 능하지 못하다. 아니 아예 알지 못한다. 그러니 당신은 사람들에게 가서 나 테세우스가 바로 이곳의 도적을 토벌했다고. 소문을 퍼트려라.”

테세우스는 토벌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도적떼들이건만 테세우스에겐 안중에도 없다는 방증이리라. 어쩌면 광오한 발언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바트로스는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 알겠습니다.”

이집트인이니 이집트어는 당연히 능통할 것이고 자신과 대화할 수 있으니 라틴어에도 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가 전에 호쌈의 죽음에 감사하고자 찾아온 이들의 대표자로 입을 열었던 것도 그가 꽤 유창하게 라틴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것으로 보였다.

“한 가지 더,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 가서 나디르라는 사람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다만 뭐라고 말할까요?”

“동일하게 전하라. 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가 도적떼를 토벌했다라고. 그렇게 전하면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만······. 주제넘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야겠습니다. 너무 위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다못해 테세우스님께서는 변변찮은 무기도 하나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을 모아서 토벌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도적떼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데 그들을 무슨 수로 홀로 토벌한단 말인가?

“왜 사람들에게 허풍을 친 사람이 될까 두려운 것인가?”

“그..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제 눈으로 직접 당신의 무용을 봤는데 어찌 그것을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당신 눈에 무모해 보인다고 내게도 무모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 말은 여기까지. 목숨이 위험할 줄 알면서도 이곳까지 안내한 것만으로 당신의 역할은 충분했다. 그러니 내 말에 따르고 안 따르고는 당신 뜻대로 해라.”

테세우스는 그 말을 남긴 뒤 곧바로 말을 달려 시카 등의 발자국 쫓아 추격하기 시작했다. 바트로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테세우스의 뒤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목숨을 걸고 마적들과 싸우라 해도 따랐을 텐데 소문을 퍼트리는 일이야 뭐 어렵겠소? 내가 염려가 되는 것은 내가 허풍쟁이가 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걸출한 영웅인 테세우스, 당신이 잘못될까 두려운 것이라는 말은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원한을 갚아주고 누구도 하지 않은 도적떼들을 처리해주기 위해 제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는 테세우스에게 해가 될 말은 한 터럭도 꺼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어떤 이유에서 그가 호쌈을 죽였고 도적을 토벌하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가 무슨 상관이랴?

“목청이 터지도록 외칠 것이오. 테세우스 당신이 도적떼들을 토벌했다고.”

*

타는 듯한 햇볕이 테세우스와 그가 타고 있는 갈색말을 뜨겁게 달궜다. 입안의 침마저 바짝바짝 마를 정도의 열기였다. 봄이라 할 수 있는 시기인데도 햇볕의 열기가 가히 대단했다.

“워. 워.”

테세우스는 말을 멈춰 세우며 암석으로 이뤄진 메메른 땅을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햇볕은 자신과 말뿐만 아니라 이 땅을 모두 달구고 있었다. 아지랑이와 같은 뜨거운 열기가 쉴 새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광경이었다.

테세우스는 시카와 그 부하들이 남긴 흔적들을 차근히 추격하고 있었다. 추적술은 세르토리우스 휘하에 있을 때 호라티우스 등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사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흔적을 숨길 생각도 없이 정신이 도망친 시카 등의 흔적을 쫓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실 테세우스는 고민 중에 있었다.

도적패들을 흡수하여 병력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토벌하고 명성을 높여 저들이 악수를 두게끔 유도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전자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지만 멀리보면 그렇지도 않다. 도적패들을 흡수한다는 건 그 악명도 이어받는다는 소리였으니까.

‘흡수하는 일도 저들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에는 무용한 일이니 일단은 토벌한다.’

도적은 도적이다. 그 이유야 어쨌든 간에 도적이라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테세우스는 그것을 묵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을 묵과한다면 자신의 군대가 도적떼처럼 변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효율을 위해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타협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하여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고 잠시나마 고심에 잠겼다.

푸르르륵 푸륵

“헥 헥.”

말이 투레질 소리와 함께 혀를 내밀고 다소 힘들어하는 소리에 테세우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그래. 너도 좀 쉬어야겠구나.”

테세우스는 고삐를 잡아채며 말을 그늘진 곳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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