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34화 (134/298)

# 134

134. 비극.

134.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도적패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잔혹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꽤나 좋은 말을 타고 있구나. 순순히 말과 함께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마.”

바트로스는 굳은 표정으로 도적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차분한 어조로 바트로스에게 물었다.

“말과 재물을 빼앗고 살려주는 경우가 있긴 하나?”

“살려주긴.. 할 겁니다. 대신 노예로 팔아넘기겠지요.”

사나운 도적들이 출몰하는 지역은 일반 서민들이 훨씬 더 잘 알았다. 당장 자신의 안위와 목숨과 결부된 문제이니 모르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바트로스는 이 지역에서 습격당한 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어본 역사가 없었다. 그건 다시 말해 모두 죽였거나 죽이지 않았다면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뜻이다.

“그렇다는군.”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말을 꺼낸 도적패 대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도 하나 제안하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그러자 도적패 대장이 이죽거리며 테세우스를 비웃었다.

“뭐? 하하하하! 이 미친놈이! 덩치를 보니 어디서 싸움은 좀 한 모양인데. 모래 위에서 말라비틀어져봐야 아 내가 대가리에 칼 맞을 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땐 이미 늦은 걸 어떡하나?”

“하하하하.”

“흐흐흐”

부하들의 호응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무기도 갑옷도 걸치지 않은 놈이 뭐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목숨을 빼앗지 않아? 기가 차지도않는군. 네놈의 혓바닥은 내가 친히 보관하면서 혓바닥을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로 삼도록 해주마.”

“그게 네 대답인가?”

남자는 다시 테세우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새끼야. 이게 내 대답이다.”

그러면서 낫처럼 휘어진 검을 뽑아서 테세우스에게 휘둘러왔다. 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이집트에 사용된 검으로 검의 형태에 따라 사파라(sapara), 코페시(khopesh) 등으로 나뉘나 통칭, 시클 소드(sickle sword, 낫검)로 분류되는 도검류였다.

이집트 도적이 쓰는 낫검이니 코페시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낫검은 S자 형으로 굽은 형태로 간단히 검에 낫이 달린 형태라 보면 되었다. 다만 낫과 달리 날이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달린 외날검이었다.

검은 대개 찌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 낫검은 그렇지 않았다. 찌르기를 포기하고 베는 용도에 치중했기에 검이 아니라 도끼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검이었고 따라서 그 무게도 상당했다. 상당한 위력을 자랑했지만 기존의 검과는 독특한 움직임을 요했기에 숙달된 자가 아니고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검이었다.

부우우웅

실제로 도적이 휘두른 코페시의 파공음은 마치 도끼가 허공을 가르는 것같은 육중한 소음을 일으켰다.

도적 대장의 코페시는 당장에라도 테세우스의 목을 벨 것처럼 날아왔지만 테세우스는 별다른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기겁한 바트로스가 깜짝 놀라 뭐라고 외치려고 했지만 바로 그 순간 테세우스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이더니 기묘한 손놀림으로 도적 대장의 손에서 검을 낚아채 오는 것이 아닌가?

도적 대장, 시카는 검을 휘두르다 말고 검을 도난당한 셈이니 황당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지만 말을 달리는 중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한 셈이라 균형을 잃은 그는 휘청거리는 몸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시카는 치욕스러운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 이 새끼가!”

“이제 내게도 무기가 생긴 것 같군. 생각이 바뀌었으면 지금이라도 말을 해라. 목숨은 살려줄 터이니.”

“뭐라?”

황당한 표정을 다시 짓던 시카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노예고 뭐고 죽여!”

그러면서 자신은 말에 달려있던 또 다른 코페시를 뽑아들었다.

챙 채챙

스무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도적패들이 무기를 뽑아들자 귀를 에일 것 같은 날카로운 소음이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그게 너희의 선택이라면······.”

하나 테세우스는 조금의 요동도 없이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 어.”

바트로스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릴 때 테세우스가 시카에게서 빼앗은 코페시를 들고 말을 달렸다.

코페시의 길이는 50~80cm 가량이고 무게는 1.5~2kg이기 검치고는 묵직한 편이었지만 테세우스에겐 묵직한 편에도 속하지 않았다.

코페시를 휘둘러본 기억은 없지만 곡도인 삼쉬르라던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종류의 병기를 다뤄본 기억이 있는 테세우스는 시카가 코페시를 휘두르는 모습만으로도 코페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짓쳐드는 도적이 머리를 노리고 검을 휘두르자 코페시를 들어 막아내며 검을 옆으로 누운 U자 형태로 스스럼없이 움직여 그 자의 허리를 반토막처버렸다.

콰드드득

안그래도 베기에 특화된 검인데 테세우스의 무지막지한 힘까지 더해지자 사내의 허리는 곤충의 허리가 끊어져나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나눠져버렸다.

그 결과 허리가 나눠진 남자의 상반신은 그대로 허공에 떠 버렸고 말 위에 탄 하반신은 말과 함께 저만치 멀리 이동해버렸다. 피가 뜨거운 모래 위에 사정없이 흩뿌려졌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적들은 그 모습에 매우 놀랐지만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고 테세우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낫검의 안쪽 부분으로 성큼 다가온 도적의 어깨를 걸고 잡아당겼다. 낫의 안쪽 부분에는 날이 없기에 베이거나 어떤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예의 테세우스의 강력한 힘에 의해 어깨가 걸린 사내는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함께 낙마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렇게 낙마할쯤에서야 허리가 나눠진 도적의 상체가 모래 바닥에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그만큼 테세우스의 행동이 신속했다는 말이었다.

“으아아악!”

퍼어억

히이이잉

낙마하던 사내 역시 불행을 면치 못했다.

안타깝게도 그 사내는 낙마하여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옆에서 달려오던 동료의 말에 부딪쳐 피를 뿜으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즉사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다시 전투에 참여할 수 없으리란 것은 확실했다.

당연히 그와 충돌한 말 역시 성치 못했는데 그 충격에 깜짝 놀란 말은 옆으로 쓰러졌고 말 위에 타고 있던 도적은 미처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하고 말에 깔리는 불상사를 당하고 말았다. 못해도 300kg은 넘는데 그런 육중한 말의 체중에 강하게 짓눌리면 살아남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말에 깔린 사내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죽여라!”

시카는 순식간에 서너 명에 달하는 수하들이 죽임을 당하자 고래고래를 소리를 지르며 자신 역시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테세우스는 코페시를 처음 사용한 사람답지 않게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며 도적들을 유린했다.

검 두세 자루를 낫의 움푹 패인 곳으로 받아낸 다음 검을 뒤틀어 검을 쥐고 있는 저들의 손목을 같이 비틀었다. 검을 세게 잡고 있던 자들은 손목이 뒤틀렸고 약하게 잡고 있던 자들은 검을 놓치고 말았다. 어떻게 되든 그 결과는 같았다.

테세우스는 공격수단을 잃어버린 도적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저들의 목이나 가슴 등을 베어 목숨을 앗아갔다.

퍼어억

촤아아악

둔탁한 소음과 함께 흩뿌려지는 피는 뜨겁고 메마른 모래 바닥을 질척하게 만들었다. 그 위로는 누군가의 신체의 일부였을 것 분명한 육편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바트로스는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활약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상반신만 남은 채 모래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도적은 두눈을 부릅뜬 채 죽어있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일반적인 형태를 가진 검이 쥐어져 있었다. 마치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끔찍한 모습이지만 동정심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저들의 손에 죽은 무수히 많은 희생자들이 저들에 의해 모래 아래 파묻혔을 테니까. 바트로스는 정신을 가다듬고 급히 사내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아 들었다.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발목을 잡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말을 구할 때 왜 무기를 같이 구하지 않았냐는 점이었지만 그런 건 지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레피두스는 물론 헤르미니우스 역시 눈에 불을 켜고 폼페이우스군을 압박했다. 그로 인해 폼페이우스군의 피해가 계속해서 누적되었으나 전열이 흩트러지거나 무너지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열세라는 것은 전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일했으나 불리한 상황에 피해가 꾸준히 발생함에도 폼페이우스군은 결코 요동치지 않았고 결국 구릉지 아래까지 후퇴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폼페이우스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구릉지 아래 준비되었던 필룸과 원거리 무기등으로 밀고 오는 레피두스군을 요격했기 때문이다. 역시 스쿠툼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히기는 어려웠지만 레피두스군은 미처 대비하지 못했기에 가까이 위치한 뒷 열의 병사들이 꽤 많이 죽었다.

폼페이우스군은 진형이 무너진 레피두스군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앞 열을 밀어붙였고 그로 인해 숫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레피두스군 등을 잠시나마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레피두스와 헤르미니우스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었다. 구릉지 밑에서 더 이상 후퇴하지 않는 폼페이우스군을 확인한 저들은 폼페이우스군을 빠르게 포위했다. 수적 우위를 지닌 상황에서 포위를 통한 전술적 이점까지 확립하면 적을 궤멸시키는 일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포위! 포위해라!”

“포위!”

폼페이우스군은 저들의 포위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레피두스군이 포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레피두스는 포위 진형을 갖추었음에 안심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재차 명령을 하달했다.

“진형을 유지하고 놈들을 몰아붙여라!”

두두두두두

그때 구릉지 뒤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피두스군과 폼페이우스군 모두 구릉지 아래에 위치했기에 그것이 말발굽 소리인 줄 알았지만 정작 그 소리의 주인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비교적 낮은 구릉지라지만 구릉지는 구릉지였으니까.

레피두스는 깜짝 놀라 뒤편을 바라봤다. 그러자 구릉지 위쪽으로 말을 탄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 누미디아 투창기병.”

레피두스는 저들이 누미디아 투창기병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폼페이우스가 누미디아로 도망친 도미티우스와 결탁한 히아르바스를 토벌하며 동부는 히엠프살 2세, 서부는 마시니사 2세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더 깊이 생각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포위를 풀어라! 이대로라면!”

레피두스는 이대로 지체한다면 모조리 전멸당할 것이라는 낭패감에 휩싸여 급히 병력들을 추스르려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에트루리아인을 이끄는 헤르미니우스는 생각이 달랐다. 후퇴하기엔 너무 늦었다. 어쩌다 전황이 이런 식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면 적장 폼페이우스를 사로잡거나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으드득. 폼페이우스! 이대로 당하지 않는다. 이대로! 몰아붙여라!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나를 따르라!”

그러는 사이 카툴루스가 이끄는 누미디아 기병대가 미친 듯이 구릉지 아래로 내달렸다.

두두두두.

레피두스와 헤르미니우스가 가진 병력은 4만에서 5만에 달하는 대군이었으니 내리막길을 따라 내달리는 기병대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아니 피하려고 해도 지금껏 포위하고 있던 1만 5천 가량의 폼페이우스군이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레피두스는 후퇴를 결정했고 헤르미니우스는 폼페이우스 공략을 결정했다. 일치된 결정을 내려도 어려운 상황이거늘, 이런 긴급한 상황에 상반되는 결정을 내렸으니 휘하 병사들은 더욱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헤르미니우스는 말을 달려 자신을 가로막는 폼페이우스 레기온을 베어내며 내달렸다.

“폼페이우스!”

그라티아누스가 아군의 진형을 유린하는 헤르미니우스를 바라보고 폼페이우스에게 말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나를 부르지 않나? 내가 직접 처리하지.”

폼페이우스는 그라티아누스가 말릴 새도 없이 헤르미니우스에게 달려갔다. 그는 헤르미니우스처럼 말 위에 타고 있지도 않았다. 이에 그라티아누스는 표정을 굳히며 급히 그를 뒤따랐다.

폼페이우스는 땅에 떨어져 있는 필룸을 집어 들고 달리면서 말을 타고 날뛰고 있는 헤르미니우스를 겨냥했다. 정확하게는 그가 타고 있는 말이 목표였다. 폼페이우스는 말을 겨냥함과 동시에 필룸을 투창했다.

쐐에에엑

퍼어어억

폼페이우스가 날린 필룸은 정확하게 헤르미니우스가 타고 있는 백마의 머리에 박혔고 백마는 휘청거리며 순식간에 옆으로 넘어갔다. 그 찰나의 순간, 헤르미니우스는 급히 말의 등을 박차고 날아올랐기에 다행히 낙마로 인한 극심한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닥을 구르며 흙먼지와 피를 뒤집어쓴 헤르미니우스는 광기 어린 눈으로 자신의 말을 죽인 장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네놈이 바로!”

“그래 내가 바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다.”

“나 헤르미니우스가 네놈의 목을 베어 누가 위대한 사람인지 세인들에게 알려주리라!”

“나를 죽이려던 자들은 많았다. 기회를 줄 터이니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거라.”

폼페이우스는 글라디우스를 검집에서 뽑아 들자 헤르미니우스는 움츠렸던 몸을 번개같이 펴며 폼페이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공교롭게도 헤르미니우스가 들고 있는 무기도 글라디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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