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 재와 먼지.
132.
레피두스군은 유리한 진형에서 굳건하게 방진을 펼친 채 폼페이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일별한 폼페이우스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돌격!”
폼페이우스가 우렁차게 외치자 밀리툼, 프레펙투스, 센튜리온의 직위를 가진 지휘관들이 일제히 공격명령을 하달했다.
“돌격하라!”
“돌격!”
레피투스와 헤르미니우스의 군대는 구릉지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로마의 군단병이 강병이라지만 사람의 체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오르막길을 달려가면 싸우기도 전에 체력을 소진해버릴 것이다.
다시 말해 폼페이우스가 방금 내린 명령이 현명한 명령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헤르미니우스는 그런 폼페이우스군을 보고 조소하며 조롱하는 말을 뱉었다.
“전술의 기본도 모르는 작자가 마그누스(위대한 사람)라고? 흥! 전술은 조금도 모르는 적들만 상대하며 승리를 거둔 모양이군. 오늘 허명만 잔뜩 얻은 원수 놈의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주겠다. 필룸 준비! 던져!”
훙 후후훙 훙
보통 군단병은 무거운 필룸, 가벼운 필룸 이렇게 두 자루 정도 가지고 다니는데 지금 날리는 필룸은 가벼운 필룸에 해당했다. 당연히 가벼운 필룸은 원거리 투척용이었고 구릉지 위에서 던졌기에 더욱 빠르고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폼페이우스는 전장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이다. 폼페이우스는 저들이 필룸을 던지려는 낌새가 보이자 그 전에 벌써 명령을 내렸다.
“방진을 펼쳐!”
그러자 병사들의 스쿠툼이 빈틈없이 겹쳐지고 겹쳐져 거북이의 등딱지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폼페이우스 주변의 병사뿐만 아니라 휘하 지휘관들의 지휘를 받는 병력들 역시 신속하게 방진을 펼쳤다. 마치 군단 전체가 꿈틀거리는 어떤 거대한 생명체와 같은 느낌이었다.
퉁 투투퉁 퉁
상당히 많은 필룸이 스쿠툼을 두들겼으나 단 한 자루의 필룸도 그 견고한 성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돌격!”
폼페이우스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군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유능한 센튜리온들이 알아서 병사들을 지휘했고 병사들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
레피두스는 눈매를 좁히며 뭔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폼페이우스의 군단이 매우 잘 훈련된 정병으로 보이기는 하나 전투는 여러모로 자신들이 우세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점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폼페이우스가 이리 무모한 전술을 택하는 자였다면 그가 나서는 전장마다 승리를 거두긴 어려웠을 것이다. 승리를 거둬도 아군의 피해가 극심하다면 그건 제대로 된 승리라고 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전투를 치르면 누구보다도 폼페이우스, 본인이 잘 알 것이다. 아군의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전술이라니? 레피두스는 폼페이우스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해 봤지만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람인 이상, 실수할 때도 있는 법. 더욱이 이토록 중요한 전투라면 중압감에 판단력이 흩어졌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레피두스는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다음 지휘관들에게 당부했다.
“궁수대를 이용해 언덕을 올라오기 전까지 적들의 최대한 와해시켜라!”
레피두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활을 든 궁수들이 쉴새없이 활시위를 당기고 놓고를 반복했다.
퉁 투퉁 퉁
“크아아악”
“크헉!”
폼페이우스군은 스쿠툼으로 활을 막아내고 빠르게 전진해왔지만 퍼부어지는 화살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희생자가 속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숨을 잃은 병사는 세상 전부를 잃은 것보다 더한 피해를 입은 셈이지만 지휘관의 관점에서 보자면 미미한 피해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전투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폼페이우스군의 진형에 균열이 생기고 틈이 생겼다. 오르막길이고 화살까지 퍼부어지는 상황이니 제아무리 정병이라고 할지라도 진형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반면 레피두스군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곧 마주하게 될 폼페이우스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적으로도 우세, 진형의 견고함도 우세, 지형요인으로 인한 체력도 우세하니 이대로 맞닥뜨리면 폼페이우스군을 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승리할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우위를 유지하면서 저들을 압박하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레피두스의 말대로 레피두스군은 무리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가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놈들의 스쿠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페르페르나의 명령에 이번에는 무거운 필룸을 폼페이우스군에게 집어 던졌다.
부우우웅
투창기를 사용하는 병사들도 다수 있었기에 무거운 필룸치고 상당히 먼 거리를 날아갔다.
콰직 콰직
무거운 필룸은 말 그대로 무거웠다. 스쿠툼에 박히는 순간 필룸의 창두와 창대가 나눠 지거나 부러졌다. 이는 적들이 던진 필룸을 주워서 다시 사용할 수 없게끔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약하게 만든 것이었다.
또한 필룸의 창두의 끝이 물체에 부딪치는 순간 구부러지게 만들어 방패에 박힌 필룸을 제거하기 어렵게 제작되었다. 당연히 방패에 박힌 필룸은 방패를 무겁게 만들거나 바닥에 끌려 이동조차 어럽게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방패를 버리고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살과 창이 빗발치는 다급한 전장에서 방패에 박힌 필룸을 제거할 여유는 없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전술은 가이우스 마리우스때 확립된 전술이었다.
이에 폼페이우스군 다수의 군인들이 스쿠툼을 잃어버렸다. 물론 폼페이우스군도 들고 있던 필룸을 던져서 적들의 방패를 못 쓰게 만들긴 했으나 진격하는 폼페이우스군과 다르게 레피두스군은 여유가 있었다.
*
폼페이우스군이 스쿠툼을 대거 잃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레피두스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백병전에서 스쿠툼의 역할은 지대하다. 병사를 보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적이 아군의 진형 가운데 마음대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할뿐더러 이를 통해 위압적인 진형으로 적을 압박할 수도 있었다. 집단 백병전에서 스쿠툼과 글라디우스의 조합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폼페이우스군은 바로 그런 스쿠툼을 잃어버린 채 백병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 전투는 질 수 없었다. 폼페이우스가 무엇을 노리고 이 같은 전술을 택했든 오늘의 전투는 자신들의 승리가 확실했다.
헤르미니우스의 동료이자 수하인 알카이오스 역시 이대로라면 압승이라 예상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성큼 앞으로 다가온 폼페이우스군을 살폈다.
“음?”
그 순간, 알카이오스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프린키페스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말한 바 있지만 로마의 군단은 마니풀라르(manipular)로 벨리테스(투창병), 하스타티(주로 신병, 경보병), 프린키페스(주력병, 중보병), 트리아리(고참병, 중창병), 에퀴티(기병)로 이뤄졌다.
기병은 존재했다. 물론 기병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기에 본진의 전투에 묻힌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양옆으로 전개된 양군의 기병이 치열하게 저들의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살펴본 폼페이우스군 가운데 프린키페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게 아니면 오르막길을 예상하고 중보병 역시 경보병화했던가? 하긴 폼페이우스군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면 신병 위주인 하스타티와 비교적 힘이 떨어지는 트리아리만으로 구릉지를 올라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경험부족, 체력부족은 곧 진형의 와해로 이어질 테니까.
허명이라 할지라도 그간 승전을 많이 거둔 폼페이우스가 프린키페스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 그들을 제외하고 돌격을 명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프린키페스가 있거나 말거나 전황은 아군에게 유리했다. 그러니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앞열! 전진!”
더는 대기할 이유가 없었다. 알카이오스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
폼페이우스의 충성된 부하이자 노련한 중년 장교, 그라티아누스가 다소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폼페이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작금의 전황이 폼페이우스군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건 누가봐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혹여..”
“걱정마라. 저들이 내 이름을 허명이라 여길지라도 그 허명도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다. 봐라. 저들은 저들의 보유한 대부분의 병력을 나 폼페이우스를 막기 위해 끌고 나왔다.”
“하지만 저들은 아군의 수효를 월등히 뛰어넘었습니다. 작전이 성공한다고 해도 저들이 크게 동요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레피두스의 군단병들은 요동이 없겠지. 하지만 에트루리아의 병사들은? 반드시 무너진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들의 반란을 빠르게 진압하지 못한다면 마른 들판에 불이 붙듯 온 사방으로 반란의 기미가 퍼져나가게 될 터, 반드시 조기에 진압해야 한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폼페이우스님을 믿지 못함이 아닙니다. 다만······.”
“그래서 프린키페스를 그에게 쥐어 주지 않았는가? 참고 기다려라. 아군이 승기를 잡을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그라티아누스는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워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레가투스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이윽고 레피두스군과 폼페이우스군이 격돌했다.
검과 검이 창과 창이 오가며 서로의 목숨을 끝없이 탐했고 그들이 흘린 피는 완만한 구릉지대를 흥건하게 물들였다.
“와아아아!”
“죽어라!”
푸우욱
레피두스병사의 글라디우스가 폼페이우스 병사의 목을 찌르자 옆에서 나타난 자가 그의 복부를 글라디우스로 찔러넣었다. 상당한 패널티를 안고 전투를 전개한 폼페이우스군이지만 레피두스군을 맞서 비등하게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그라티아누스의 결의와는 무색하게 폼페이우스군은 레피두스군에게 완연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병력의 수나 모든 것이 열세였다. 이대로라면 기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대패를 낳고 말 것이다.
그라티아누스는 저 멀리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폼페이우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
캄바는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만나고 있었다.
“송구합니다. 그런 식으로 테세우스님을 대할 줄은······.”
테세우스는 이 일에 대해 캄바가 알고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상인이고 상인은 결국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 그가 자신을 직접 적대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한 자신 역시 얻을 것을 얻어내면 그뿐이다. 그와의 관계는 거기까지다.
오늘 처음만난 바트로스와의 관계보다도 못한 것이 바로 캄바와의 관계였다.
“말 두필이 필요하오.”
테세우스가 그 점에 대해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이자 캄바는 미소를 띄우며 그에게 서둘러 대답했다.
“얼마든지 내드리겠습니다.”
캄바는 곧바로 자신의 하인에게 말 두필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테세우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뜸 캄바에게 말했다.
“호쌈의 재산 배분에 대해 말을 들었나?”
“예. 사람을 통해 전해들었습니다.”
“호쌈의 재산은 여전히 내게 권리가 있나?”
“그야 물론입니다. 다만 정녕 그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니까 호쌈에게 당한 자들에게 보상해주는 일 말입니다. 테세우스님께서 그러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호쌈에게 당한 것이지 테세우스님께 당한 것도 아닌 바에야.”
그 모습에 바트로스가 눈을 크게 뜨고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처음엔 당황하는 눈빛이었지만 잠시 뒤에는 절절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번복하지 않는다. 그 일을 행하고 남는 재산에서 이득을 보는 것까지는 관여치 않겠지만 이익을 남기고자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면······.”
“그..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 점은 심려마십시오. 아시겠지만 저는 테세우스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테세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캄바의 하인들이 가져온 날렵한 몸매에 갈색털을 가진 말 위에 올랐다.
“두고 보면 알겠지.”
바트로스는 말에 타는 것이 어색했지만 다행히 말을 타본 경험이 아예 없던 자가 아니라 그 역시 어렵지 않게 말을 탔다.
“바트로스.”
“예.”
“안내하도록.”
“알겠습니다.”
말을 얻은 이유는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왕도였기에 당연히 이 주변에는 테세우스가 말한 도적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선 외곽 지역으로 벗어나야 하는데 도보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따라서 이동수단을 얻고 캄바에게 자신이 아흐모세를 통해 언급한 일에 대해 확인하고 경고하기 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캄바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고로 테세우스와 바트로스는 곧 말을 타고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 그들이 탄 말이 질주하자 그들 뒤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캄바는 그런 테세우스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흙먼지가 아니라 피보라를 몰고 올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괜한 생각이라 여기고 급히 생각을 털어버렸다. 불길한 생각은 아니 할수록 좋은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