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128. 버리다.
128.
테세우스는 도서관을 나와 아흐모세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이곳의 지리를 꿰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캄바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소란과 더불어 아모시스등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흐모세가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별 수 없이 그의 집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모시스가 말한 모종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도 별도의 장소가 필요했으니 헛걸음이라 볼 수는 없었다.
아흐모세는 항구 주변에 넓게 퍼진 주택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부러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테세우스가 반문하자 캄바가 말했다.
“아무래도 외부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니까요. 외부인과의 접촉이 딱히 이상한 지역도 아니고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테세우스가 캄바를 바라봤다.
“캄바, 당신도 당신의 스승, 아모시스와 동일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인가?”
“글쎄요.”
그렇게 잠시 말을 흐리던 캄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지는 않겠지만 저는 상인입니다.”
그 말을 알아들은 테세우스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캄바에게 되물었다.
“이 일이 자네에게 이득이 되는 바가 없을 텐데?”
“모든 일이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또한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 손해를 봐야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그걸 흔히 투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일로 손해를 본다면 금액을 얼마 손해보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테세우스는 캄바의 노림수를 읽었다.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는 이집트인들의 환심을 산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인이나 그리스인과 같은 타지인들에게 미움을 사는 행위도 아니니 캄바가 이 일에 동참할 동기는 충분해보였다.
무엇보다 성공적으로 일을 마칠 수 있다면 프톨레마이우스로부터 이집트 내에 이뤄지는 상거래에 대해 일정부분 특권을 부여받을 수도 있을 터, 잃는 것은 적고 얻는 것은 많으니 이익을 위해 아모시스의 계획에 동참한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주변을 바라보며 캄바로 자신의 뒤를 슬쩍 이끌었다.
“음?”
캄바가 영문을 알지 못해 테세우스를 바라보는 순간, 골목 곳곳에서 짧은 검을 착용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테세우스는 그 모습에 캄바에게 질문했다.
“혹 경쟁자들이 많소?”
자신을 노리는 것 같지는 않으니 캄바를 노리고 습격하는 자들로 보였다. 일단 자신은 이집트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상인이야 모든 상인들이 경쟁자이지요.”
그때 치아가 누렇게 물들은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물건의 출처를 밝히거나 물건을 내놓으면 죽이지는 않으마.”
캄바는 사내의 물음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제가 아니라 테세우스님이었군요.”
“음.”
그 금속이 문제가 될 줄 알았다. 무스타파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을까하여 지니고 다녔지만 결국 어떤 성과도 얻지 못했다. 하여 분란거리만 될 것이 뻔한 금속을 아예 아모시스에게 넘기고 왔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현재 테세우스의 수중에는 무기가 없었다.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면 캄바의 노력이 있었더라도 도서관에 출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주변을 가득 메우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 흉흉함에 주변의 일반 서민들은 급히 몸을 피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금속은 그게 전부였다. 어쩌다가 얻은 것에 불과하고 무엇보다 내가 그 금속을 가치있게 여겼다면 도서관 측에 기증하고 오지도 않았겠지. 당연히 여분의 금속같은 건 없다. 쓸데없이 싸우고 싶지 않으니 길을 비켜라.”
“하! 이 새끼보소.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아 그렇군.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 알았다. 네 갈길 가라. 이럴 줄 알았냐? 씨발아? 이 새끼가 덩치 좀 크다고 폼 잡는 거 보소. 일단 배때지에 칼이 박히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는지 보자고.”
누런 이의 사내는 그런 뒤 수하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뭐하냐? 쳐.”
챙 채챙 챙
“으음. 이거 별로 좋지 않군요. 보아하니 코브라파인 것 같은데.. 놈들은 악랄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놈들입니다.”
그 모습에 캄바가 매우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캄바에게 테세우스가 말했다.
“아흐모세의 집에 내가 걸칠만한 옷이 있소?”
“그거야 물론 실제로 거주하는 집이니 옷이야 있겠지만 갑자기 옷은 왜?”
“그럼 됐소.”
테세우스는 그렇게 말한 뒤 조금씩 반경을 좁혀오는 저들을 향해 쇄도했다. 수중에 무기가 없어도 무뢰배들을 상대하는 건 식은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어쭈? 겁이 없다 이건데?”
무뢰배는 테세우스의 배를 향해 짧은 검을 길게 찔러왔다.
턱
우두두둑
“크아아아악!”
그러나 그 공격은 테세우스 근처에 오기도 전에 분쇄되었다. 아울러 검을 내지른 사내의 팔도 그대로 아작나버렸다. 테세우스가 그의 팔을 잡고 분지른 뒤 그 손에 있던 검을 낚아챘기 때문이다.
맨손으로 상대해도 충분하다고 여겼지만 무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무기가 존재함으로 전투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더 많아진다. 적을 위압할 수 있는 효과, 적의 무기를 막을 수 있는 효과 등등 짧은 검이라고 할지라도 무기가 주는 이점은 상당하다. 그러니 테세우스는 맨손으로 적을 상대한답시고 괜한 헛짓거리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짧은 검을 손 안에서 두어 번 돌린 다음, 저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무정하다고 말하지 마라. 너희가 선택한 것이다. 또한 나는 후환을 일부러 남겨두는 사람이 아니야.”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뭐해. 새끼들아! 죽여! 뒈질 때 뒈지더라도 등이든 다리든 발이든 칼이라도 하나 박고 뒈지란 말이다.”
코브라파의 두목 호쌈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자 독기를 품은 수하들이 일제히 테세우스에게 달려 들었다.
“와아아아!”
테세우스는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도약한 뒤 공중 뒤돌려차기로 달려오는 무뢰배들의 머리를 가격했다. 총 두 번의 발길질이 이어졌는데 최초의 뒤돌려차기는 머리를 가격했고 다시 이어지는 뒷발은 창처럼 달려오는 사내의 목을 가격했다.
맞은 부위는 달랐지만 그 결과는 동일했다. 둘 다 즉사였다. 사인은 목뼈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발에서 느껴지는 충격만으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는 느낌은 언제나 섬뜩한 느낌이다. 그건 마치 너도 이런 식으로 죽을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예고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테세우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땅에 착지한 테세우스는 손에 들고 있는 검을 휘둘러 양 옆에서 검을 찔러오는 적들의 팔을 끊어냈다.
어찌나 강맹하고 빠른지 짧은 검에 베였음에도 팔이 단번에 잘려서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잘려서 튀어오르는 팔 하나를 잡고 그대로 뒤로 던졌다.
검을 쥔 채로 뒤로 날아간 팔은 테세우스 등뒤를 습격하려는 사내의 얼굴에 처박혔다. 불행하게도 그 팔은 여전히 검을 꽉 쥐고 있었고 그 검은 사내의 얼굴을 붉은 피로 물들였다.
테세우스는 주인을 잃고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검들 중 하나를 마저 낚아챈 다음 양손에 검을 하나씩 나눠들었다. 이 모든 것이 거의 한 동작으로 보일 정도로 신속하고 빠르게 이뤄졌다.
테세우스는 다시 땅을 박차고 저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테세우스의 위용에 깜짝 놀란 저들이지만 테세우스의 진가를 알아보기엔 아직 그가 흘린 피가 부족했다. 아직까지는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따라서 저들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테세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테세우스는 달려오는 두 명의 사내에게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부우우웅 부웅
두 자루의 검은 순식간에 저들의 면상에 틀어박혔다. 검이 날아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저들은 무엇에 얻어맞아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했다.
얼굴에 검이 틀어박혔지만 검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 속도는 타격력보다는 관통력에 더 많은 이점을 부여했다. 하여 저들이 훽 뒤로 나자빠지지는 않았다. 물론 저들이 앞으로 달려오던 관성력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따라서 저들은 검을 얻어맞고도 잠시 정시된 화면처럼 천천히 쓰러졌다.
앞으로 달려가던 테세우스는 저들의 얼굴에서 칼을 뽑아내며 양손을 교차하며 자신을 머리를 찍으려는 사내의 목을 베어냈다.
얼굴에서 검이 뽑힌 자들의 얼굴에서 피가 솟구침과 동시에 다시 전방에서는 한 명의 사내의 머리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머리가 완전히 잘려나가며 동맥이 잘린 모양인지 피가 마치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물론 무슨 피가 폭포수처럼 솟아올랐겠냐만은 목에서 피가 치솟는 광경은 그보다 더한 충격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 이이익!”
테세우스가 일으킨 피의 향연에 겁에 질린 사내가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러왔지만 테세우스는 슬쩍 피하며 내지른 그의 팔뚝의 안쪽을 왼손의 검을 역수로 잡아 위로 올려쳐 끊어내고 오른 손의 검은 그의 배를 횡으로 베어냈다.
촤아아악
뱃가죽이 완전히 찢어짐에 따라 내부장기 쏟아져나왔는데 이미 잘려진 장기도 다수 섞여있었다.
“크아아악!”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남자의 정수리에 검을 박아넣었다. 테세우스가 베푸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배가 잘린 채로 죽는 건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니까. 그 전에 목숨을 끊어준 것이다.
“죽여! 죽이란 말이다.”
코브라파의 두목 호쌈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건 숫제 전투의 신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제 아무리 뛰어난 자도 이토록 근거리에서 전투를 치르면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한데 저자는 검에 긁힌 상처하나 없었다. 게다가 저 짧은 검으로 무슨 사람의 몸을 저리도 쉽게 토막을 친단 말인가? 대체 지닌 힘이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호쌈은 두려움을 숨기고자 더 큰 소리로 부하들을 독려했다.
“죽여라! 놈은 하나뿐이다.”
테세우스를 맞이했던 적들이 계속 했던 소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혼(孤魂)이 된지 오래였다.
챙캉
검의 질이 나쁜 모양인지 정수리에 박아넣은 검이 부러졌다. 테세우스는 미련없이 검자루에 손을 떼며 무릎을 꿇고 사망한 사내를 발로 걷어찼다.
퍼어억
그렇게 날아간 시체는 테세우스 앞으로 짓쳐드는 무뢰배들에게 날아가 그들을 덮쳤다.
“으허허헉”
“크헉!”
세 명의 사내가 그 충격으로 비틀거릴 때 테세우스는 어둠 속 그림자처럼 저들을 스쳐가며 저들의 급소를 베어냈다.
털썩 털썩
일이 이쯤되자 이들 역시 자신들이 어떤 사람을 건드린 것인지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 자는 죽일 수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죽일 수 없다. 지지치도 않고 적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살육의 신이다. 테세우스에 대한 두려움이 저들의 마음을 잠식하자 저들은 더 이상 테세우스를 마주보고 있는 것도 두려워졌다.
전장에서 삶을 보낸 항우와 리처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테세우스가 그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테세우스는 때가 되었다는 듯 지금도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는 적의 두목에게 쇄도했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들은 테세우스의 무정한 손속에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크아아악!”
“으허허허헉”
비명소리가 점점 더 자신 가까이에게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호쌈은 전에 없이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호쌈은 덜덜 거리며 떨리는 자신의 두 발에 강하게 힘을 주고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테세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죽어라! 이 새끼야!”
호쌈은 수하를 베느라 몸을 뒤튼 테세우스를 향해 도약하며 검을 내리쳤다.
되었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놈이 피한다면 부하의 검에 상처를 입을 것이고 피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검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래저래 완벽한 습격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호쌈은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자신을 덮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강력한 충격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흐으윽”
미친. 자신을 덮친 희끄무레한 물체는 목이 꺾인 자신의 수하였다. 그 짧은 순간 수하의 목을 손으로 분지른 것도 대단한데 한 손으로 수하를 자신에게 집어던졌다고?
그 생각도 잠시, 호쌈은 급히 수하를 옆으로 치우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우두두둑
“크아아악!”
그러나 자신의 팔을 역으로 꺾어버린 잔혹한 발길질에 호쌈은 도망은커녕 끔찍한 비명만 내질러야 했다.
“어떤 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