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24화 (124/298)

# 124

124. 대도서관.

124.

잠시 뒤 테세우스는 캄바의 노예가 말 두 필을 이끌고 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차를 준비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도시 내에서 프톨레마이우스 왕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자들은 전차를 함부로 몰 수 없습니다.”

캄바의 말에 테세우스는 말이 이끄는 바퀴 두 개 달린 전차를 떠올렸다. 현대의 철갑전차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니 말이다. 테세우스는 적색 빛이 도는 갈기를 가진 말의 목을 쓰다듬으며 캄바에게 말했다.

“말은 괜찮은 것이오?”

“사실 말도 함부로 탈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상인들에게는 짐말 사용이 허가되어 있기에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넘어가는 편입니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캄바가 시종의 도움을 받아 말 위에 오르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대도서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나디르에게는 우스갯소리로 관광이 목적이라 말하기는 했지만 그게 주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물론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기회나 여유가 없었다. 히스파니아에 산재한 일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부족했기에 당연히 알렉산드라아 대도서관의 유래 같은 건 알지 못했다.

테세우스는 훌쩍 말 위에 올라타며 캄바에게 대답했다.

“괜찮다면 그 유래를 들어보고 싶군.”

그러자 캄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도서관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니 그 이야기를 전해드리면 되겠습니다.”

테세우스가 말에 오른 것을 확인한 캄바는 출발시켰고 테세우스 역시 말의 배를 가볍게 차서 걸음을 옮기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리아가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명령으로 세워졌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 대제는 이곳 이집트뿐만 아니라 자신이 점령한 세계 곳곳에 대제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축했지요. 일설에 의하면 그 수가 70여 개나 된다고 합니다만 흔히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면 바로 이곳 나일강 서쪽에 위치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떠올립니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캄바에게 말했다.

“알렉산드리아가 그렇게나 많았다니 미처 몰랐던 사실이오.”

그러자 캄바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 도시 모두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음. 한데 묻지 않을 수 없군. 어째서 이곳만 그토록 유명한지 말이오. 무엇보다 이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내게 말을 꺼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닌가?”

“역시 예리하시군요. 다만 먼저 이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곳의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를 개창한 시조는 본디 알렉산드로스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도 능했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제처럼 문화와 문명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제와 함께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사사받기도 했지요.”

캄바가 언급하는 이는 프톨레마이우스 1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현재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는 인물은 프톨레마이우스 12세다. 다만 1세니 2세니 하는 번호는 후대의 역사가들이 구분하기 편하게 붙인 것으로 이 당시에는 왕을 수식하는 어구나 별명 등으로 저들을 구분했다.

사실 따로 구분할 이유도 없었다. 과거야 어쨌든 현시대에 존재하는 프톨레마이우스는 결국 한 명이었고 현시대에 존재하는 프톨레마이우스 역시 선대가 쌓은 위업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서라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로마 역시 이는 마찬가지, 가문의 이름이 자신의 대표 이름이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리라.

캄바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 안장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문화적 호기심과 제국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원 건립을 결심하고 시행했는데 이것이 무세이온(Mouseion)의 기원입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연 리케이온 같은 학당이 있었지만 프톨레마이우스는 그것마저 뛰어넘는 대학술원을 세우길 원했고 결국 그의 원대로 이뤄졌습니다.”

“으흠.”

테세우스가 침음을 삼키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자 캄바가 다시 자부심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에우클레이데스,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 칼리마코스 등의 대학자들도 모두 무세이온의 출신이며 흔히 널리 알려진 대도서관 역시 무세이온의 일부입니다.”

기하학 원론을 집필한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 BC450~380),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BC287?~212),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BC273~192), 문헌학자 칼리마코스(BC305?~240) 그 모두가 무세이온 출신이었다.

언급되지 않은 수많은 학자들, 처음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BC310?~230?) 등을 비롯해 기원후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더욱 많아지니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대학술원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참고로 이 무세이온은 후에 미술관과 박물관을 의미하는 뮤지엄(Museum)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테세우스도 다는 알지 못했지만 아는 인물이 없지는 않았다.

‘아르키메데스? 그 유레카? 유레카?’

그런 그의 모습에 캄바가 질문을 던졌다.

“혹 알고 계셨습니까?”

“다는 알지 못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 그는 대단한 인물이지요. 그는 기하학에도 능했지만 시라쿠사(시칠리아) 히에론 왕의 금관을 감정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고 로마가 시라쿠사를 공격하자 당시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 각종 투석기, 기중기 등 지렛대를 응용한 신형무기를 만들어내 로마군을 크게 괴롭히기도 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캄바 이제보니 당신, 무세이온 출신이었군.”

테세우스는 캄바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그의 말을 끊어냈다. 과거의 인물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위인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으냐를 늘어놓자면 현대의 기억이 있는 자신이 캄바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제가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어쨌든 맞습니다. 무세이온에 소속되어 미미하게나마 학문을 사사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상인의 길로 향하게 되었지만 뭐 제 수준에서는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것과 관련해서 말인데 제가 테세우스님에 대해 제가 학문을 사사받은 선생님께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무세이온이라는 곳이 무슨 학문의 전당에 가까운 곳이라면 사람을 잘 썰어대는 이야기를 즐겨듣지는 않을 텐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냈단 말인가?

“그 자유무역협정 말입니다.”

“음?”

“당시 저는 상당히 감명 깊게 그 이야기를 들었고 돌아와 선생님께 테세우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혹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면······.”

자신이 노예상으로 가장하고 알렉산드리아에 당도한 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딱히. 그렇지는 않소만 훗날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여지를 줄이기 위해 숨긴 것이니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오.”

“아 그럼······. 알겠습..”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대도서관이라는 곳이 외인이 함부로 발을 디딜 수 없는 모양인데 그런 편의를 제공한 사람의 부탁을 고작 번거로움을 피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다만 당신의 스승이 실망할까봐 걱정이로군. 하니 너무 기대는 마시라 전해주시오. 나는 무슨 학자의 축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이니······.”

자유무역협정? 그건 어떻게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다가 어쩌다 얻어걸린 것에 불과하다. 그 개념을 자신이 확립한 것도 아니고 그 결과에 대해 어떤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시행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앞으로 어찌 될지 예측하기도 어렵고.

보아하니 무슨 획기적인 발상을 한 선구자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신은 그럴 주제가 못 되었다. 그냥 도용했을 뿐이다. 물론 이 시점에선 도용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글쎄요. 테세우스님께서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알렉산드로스, 프톨레마이우스 모두 당대의 뛰어난 전사이자 장군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결코 학문을 등한시하지 않는 자들이었지요. 한데 여기 그런 분이 한 분 더 계시는군요.”

“음. 마음은 고맙게 받겠지만 괜한 소리는 마시오.”

알렉산드로스는 말할 것도 없고 프톨레마이우스 역시 이집트에서 신성시되는 인물이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뭐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후에 문제가 될 여지가 다분한 발언이었다.

“제가 너무 나갔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캄바는 조금도 미안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테세우스는 그 모습에 그저 쓰게 웃으며 전방을 바라봤다. 이 시대의 도시라고 여기기 어려울 정도로 정돈된 모습이었다. 계획도시의 표본이나 다름없었다.

따각 따각

말발굽 소리가 알렉산드리아의 넓은 도로 위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당금 헬레니즘 문화권의 문화와 경제를 주도하는 곳을 꼽으라면 이곳 알렉산드리아를 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언급했다시피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고. 하지만 이곳이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는 건 얼핏 들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했다.

지중해와의 접근성과 수많은 나라들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상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프톨레마이우스 왕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기하학, 천문학, 지리학, 물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 역시 꽃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파생된 기술과 직업군은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테세우스가 이 시대의 일반 주민이었다면 전문화된 지식을 가진 저들과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겠지만 그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집중된 현대인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저 시대의 지식인 계층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지식을 적어도 한 개 이상은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 것을 이용해 명성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또한 이 시대에서 지식인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어떤 학파의 누구에게 사사 받았는지 등이 될 것이다. 대외적으로 나는 그런 관계 속에 전혀 놓여있지 않으니 저들 모두가 놀랄만한 획기적인 무언가를 내세우기 전에는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들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그렇게 한들,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돌아오는 이득이 거의 없다. 그렇게 명성을 얻는다고 지식인들이 자신을 쫓아 히스파니아로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득보다 실이 크다. 오히려 내외부의 적들로 하여금 경각심만 불러일으킬 테니까.

외부는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히스파니아? 뿌리를 뽑을 때가 아니라 두고 있을 뿐이지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들이 이미 저마다의 이익을 좇아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이집트행을 결정하며 자신이 세운 작은 목표들을 재차 상기해봤다.

첫째, 이집트의 경제력과 정세를 파악한다. 둘째, 이집트 왕조의 왕국장악력을 가늠하고 반란군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접촉한다. 셋째, 이집트 내에 존재하는 주요 로마인들을 암살한다. 단 저들이 암살된 이유는 반드시 이집트와 연관되어 있어야 하며 양측 모두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서는 안 된다. 넷째, 분란을 일으키든 어떻게든 로마로 향하는 곡물 출하량을 줄여서 전쟁억지력을 조금이라도 부여한다. 다섯째, 숙련된 기술자를 확보하도록 노력한다. 학자들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여섯째, 무스타파나 지중해에서 자신의 습격을 주도한 놈들에 대해 알아본다.

‘자잘한 내용을 생략하면 대략 이 정도인가? 사실 조금 막막하군.’

이를 모두 행할 수 있을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그 모든 계획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이룬다고 한들, 그것이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 역시 없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이 이집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최대로 길어야 1년 남짓, 더 머무르려고 한다면 머무르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쯤이면 히스파니아에 대한 로마의 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돌아가야 한다.

‘외부인에게 왕국 내부와 관련된 상세한 정보는 내어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나마 가장 빠르게 정세나 경제력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지식과 문서가 집중되는 대도서관이다. 한데 캄바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도서관에 출입하는 일부터 상당히 번거로워졌겠군.’

관광차 대도서관에 들리는 이들도 꽤 많을 것이기에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막대한 금액과 더불어 보다 제한된 형태로 도서관을 이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긴 테세우스에게 더 이상 말을 않고 도서관 주변까지 안내한 캄바가 다시 말을 건넸다.

“이곳입니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말을 타고 진입할 수 없습니다.”

테세우스는 눈앞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대도서관을 바라봤다. 대도서관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잘 단련된 것으로 보이는 경비병들의 시선 역시 느꼈다.

테세우스가 캄바를 따라 대도서관에 들어가려고 하자 이집트인 병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자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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