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22화 (122/298)

# 122

122. 사람의 마음.

122.

꼬르르륵

구우우우우웅

물속에 잠기기 무섭게 다시 거센 폭발이 외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음은 물이라는 매질(媒質)로 인해 먹먹한 소음으로 변했다.

촤아악

그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던 테세우스는 물 밖으로 나가기보다 잠수한 채로 이곳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한 손에는 보아디케아가 여전히 들려있었지만 단련된 육체는 갑옷과 모든 무기를 지탱할 만한 부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발을 규칙적으로 놀려서 저 멀리 해적선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물에 잠긴 채 날아오는 화살이나 투창과 같은 투사체를 모두 걷어내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놀라울 정도로 강맹한 육체지만 그 육체가 창칼보다 단단하지는 않았다. 화살과 창이 날아와 몸을 꿰뚫으면 죽는다는 소리다.

‘냉정한 놈들이다. 그래도 아군일 텐데······. 하긴 잠시 손을 잡은 관계에 불과하니.’

해적이든 무뢰배든 배신은 일상에 가까운 일에 불과할 테니 지금의 사태를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그림자회로 보이는 자들은 배에서 폭발이 일어날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해적들이 불화살을 날리기는 했지만 저들이 폭발물을 그림자회가 모르게끔 설치했다고 볼 수도 없다.

‘역시 해적이든 그림자회든 누군가의 계산 아래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내가 출발한 날짜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히스파니아 쪽에도 사람이 있는 모양이고. 게다가 지금의 폭발은 내가 아우렐리우스 코타에게 썼던 전술을 그대로 차용한 전술이다. 이는 나를 조롱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이리라.’

적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몇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이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거나 그렇게 하면 안 되거나 아니면 못 하거나 어쨌든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 하지만 모든 일에는 증거가 남기 마련이다. 네놈들이 누구든 간에 나를 죽이려고 한 이상, 반드시 추적해서 철저하게 갚아주마.’

테세우스는 이를 물고 저 멀리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봤다. 불화살을 쏘기 위해 마련된 화로와 같은 것으로 보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밤이 아니라 낮이었기에 해적선이 어디있는지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지금이 밤이었다면 바다는 그야말로 무저갱처럼 깜깜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슬쩍 바다 밑을 바라봤다. 그 끝을 알 수 없이 늘어지다가 이내 곧 어둠으로 뒤덮인 바닷속을 보니 인간 근원의 두려움이 슬그머니 치밀어 올라왔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에 가깝다. 용기 또한 두려움이 있음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저 깊숙한 곳에 무슨 생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 더욱이 이 시대라면 멸종당하지 않은 종들도 꽤 많겠지.’

흔히 고래가 바닷속 가장 큰 생물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심해, 깊숙한 곳에 그보다 더한 덩치를 가진, 혹 공룡, 즉 수룡이나 그 직계후손에 해당하는 거대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지 누가 알 수 있으랴?

고래만 해도 그 크기를 직접 맞닥뜨리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고래까지 갈 것도 없이 코끼리만 봐도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것이 인간이다.

더 세세하게 비교하자면 가장 큰 고래라 여겨지는 흰수염고래는 길이 33m에, 몸무게는 150~160톤에 달한다. 코끼리는 몸길이 7.5m, 몸무게 6.3톤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물론 망상에 가깝겠지만······.’

테세우스가 처한 상황이 급박하다면 급박한 상황이지만 망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실제로 테세우스는 목숨이 위험하다는 위기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때 테세우스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눈을 아래로 향하자 무언가 저 밑에서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제길. 상어?’

상어다. 사람보다 몸집이 작을지라도 상어는 매우 위험한 포식자다. 한데 지금 다가오는 상어의 크기는 사람의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상어의 문양이 얼룩덜룩한 것을 봐선 상어의 종류는 뱀상어(Tiger Shark)로 보였다. 이 뱀상어는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상어는 흔히 ‘상어’하면 두려움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백상아리보다 사람에게 위험한 종류로 백상아리보다 뱀상어가 사람을 공격한 빈도가 훨씬 더 높았다. 그 포악함에 비해 의외로 사람인 줄 알면 공격하지 않는데 최대 6m까지 자라기에 일단 바다에서 뱀상어가 공격한다면 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뱀상어는 물살을 헤치고 엄청난 속도로 테세우스에게 쇄도했다. 목적은 명확했다. 촘촘히 박힌 그 강력한 이빨로 그를 찢어서 먹으려는 것이 확실했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갑옷이나 무기에 묻은 피가 상어의 식탐을 자극했음을 뒤늦게 눈치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정보는 하등 도움될 것이 없었다.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봐야 바닷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상어보다 빠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저 강력한 이빨이 자신의 육체를 유린하고 말 것이다.

다행히 자신의 손에는 보아디케아가 쥐어져 있었다. 테세우스는 상어가 쇄도하는 정면을 바라봤다.

쿠르르르륵

놈이 크게 입을 벌리며 사납게 자신의 앞에 왔을 때 테세우스는 섬뜩한 기세를 발하며 보아디케아를 휘둘렀다.

후르르륵

물의 저항으로 인해 보아디케아가 나아가는 속도가 전보다 현저하게 느려졌지만 테세우스의 강력한 힘은 그것마저 상쇄했다.

콰직

당장에라도 테세우스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쇄도하던 뱀상어는 머리와 몸통이 비스듬히 갈라진 채 바닷속으로 하염없이 가라앉았다. 붉은 피가 상어의 절단면에서 끝없이 흘러나와 아지랑이처럼 바닷속에 퍼져나갔다.

‘해안가에 어쩌다 출몰한 상어도 아니고 깊은 바다인 만큼 이놈이 한 놈이 아닐 것이다. 설마 이것까지 감안한 것인가? 설마?’

이 시대에 상어 출현지역까지 파악하고 계략을 수립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이게 계획에 포함된 것이었다면 피를 바다에 간간이 흩뿌려 상어를 불러모았을 수는 있다.

‘그림자회는 더 볼 것이 없다. 이들이 그림자회든 아니든 이들은 그저 광신도에 불과해. 하지만 불화살을 쏘도록 지시한 해적 두목이라면 뭘 알아도 좀 더 알겠지.’

잠시 물 밖으로 얼굴만 슬쩍 내밀어 숨을 크게 들이쉰 테세우스는 해적선을 향해 더욱 빠르게 헤엄쳐갔다.

*

샤파트는 두 자루의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나디르를 압박했다. 나디르 역시 삼쉬르 형태의 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르며 그와 검을 나눴다.

나디르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날아오는 도끼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섬뜩한 파공음을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도끼가 빗겨나갔다.

후우웅

“제법!”

샤파트는 그렇게 소리친 뒤 잔혹한 웃음과 함께 재차 공격을 시도했다. 끝없이 몰아치는 샤파트의 현란한 공격에 나디르는 정신없이 그의 도끼를 받아쳤다.

그 주변으로 테세우스의 정예병들과 해적들이 맞붙고 있었다. 당연히 테세우스의 병력이 해적들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숫자는 단연 해적들이 더 많았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딴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냐?”

“허튼소리! 사주? 나 샤파트가 누구의 사주 따위를 받고 움직이는 자로 보이는 것이냐?”

챙 채챙

나디르는 눈을 빛내며 샤파트의 가슴을 향해 길게 검을 내질렀다.

샤아아악

샤파트는 흠칫 놀라며 급히 뒤로 물러서며 왼손의 손도끼를 휘둘러 그것을 걷어내려 했다. 그 순간 나디르의 검이 슬쩍 사선으로 내려가더니 그대로 샤파트의 허벅지를 베었다.

하지만 샤파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급히 다리를 빼며 다시 오른손의 도끼로 나디르의 머리를 찍었다.

자세가 무너진 나디르는 급히 몸을 뒤틀었지만 그의 도끼가 갑옷의 일부를 찢어버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짜아아악

“흥!”

샤파트는 코웃음을 치며 그를 다시 밀어붙였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공격은 마치 테세우스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디르는 심적으로 지치고 육체적으로도 열세에 처했지만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나디르는 차분하게 그의 도끼를 받아내며 다시 반격의 때를 기다렸다.

챙 채챙

샤파트는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나디르의 모습에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분명 이쯤이면 쓰러질 때가 되었는데 쓰러지지 않는 모습에 샤파트는 더 강하고 거칠게 나디르를 몰아붙이기로 작정했다.

“놈! 이번에도 네가 내 공격을 막아낼 수 있나 보자! 으랴아!”

샤파트는 나디르를 향해 도끼를 다시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나디르가 도끼를 막기 위해 검을 뻗는 것을 확인한 샤파트는 순간적으로 더 강한 힘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나디르가 목적이 아니라 나디르의 무기가 목적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나디르의 검이 무너지면 남은 도끼로 그의 육체를 찍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디르는 자신이 샤파트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힘이 약한데 힘 싸움을 한다면 그건 미련한 짓거리다.

샤파트가 전과 달리 자신의 무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순간,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줬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디르는 검을 빠르게 회수하며 샤파트의 배를 베어냈다.

촤아아악

“크허헉!”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샤파트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남은 손의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나디르는 샤파트가 자신의 공격에 당해 멈칫하는 그 순간, 이미 몸을 빼고 있었다. 오히려 샤파트의 섣부른 공격은 나디르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다.

사선으로 몸을 뺀 나디르는 꿈틀거리는 그의 등 근육을 베었다. 정확하게는 그의 양어깨를 지탱하는 근육들을 단번에 베어냈다.

촤아아악

“크허허헉”

그럼에도 샤파트는 광전사처럼 쓰러지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나디르에게 달려들었다. 상처 입은 맹수는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나디르는 그것을 전장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냉정한 표정으로 그의 도끼를 피하며 이번에는 그의 허벅지를 베어냈다.

촤아아악

그리곤 다시 뒤로 물러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이. 쥐새끼 같은!”

잠깐의 실수에 몸의 이곳저곳에 검상을 입은 샤파트는 분노에 찬 어투로 나디르를 바라봤다.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더 이상 전투를 치르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상처를 입었어도 적을 죽이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샤파트는 결코 전의를 잃지 않았다.

그때 나디르의 표정에 기쁨이 서리는 것을 확인했다. 벌써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냐? 흥! 섣불리 승리를 자신하다가 내 손에 죽은 자가 여럿이다. 네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샤파트는 그것을 기회로 여기고 성난 호랑이처럼 나디르에게 짓쳐 들었다.

그러나 샤파트는 등골이 서늘한 감각에 급히 걸음을 멈춰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콰직

파르르르르

발걸음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면 갑판에 박혀 파르르 떨고 있는 저 창은 자신의 몸을 꿰뚫고 요사스럽게 몸을 떨고 있었을 것이다.

샤파트는 분노한 표정으로 급히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엔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우람한 체구의 사내가 물에 흠뻑 젖은 몰골로 배 위에 올라와 있었다. 샤파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노렸다?”

“설마 테세우스?”

그가 테세우스라는 소리는 수많은 적과 폭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어 떼까지 뚫고 이곳까지 왔다는 소리가 아닌가? 따라서 샤파트는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테세우스다.”

테세우스는 그 말과 함께 샤파트에게 달려들었다.

샤파트는 그 모습에 흠칫 놀랐지만 테세우스의 양손에 어떤 무기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양손의 도끼를 휘둘렀다.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고 하나 아직 도끼를 휘두를 여력은 충분했다. 놈은 자신을 너무 얕잡아봤다. 단번에 놈의 가슴과 머리통을 으깨버릴 것이다.

하지만 얕잡아본 것은 테세우스가 아니라 샤파트 본인이라는 걸 아는 걸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뚝

자신의 양손은 비호같이 쇄도한 테세우스의 양손에 잡혀 있었다. 샤파트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힘에서 누구에게 밀려본 기억이 거의 없거늘, 어떤 미동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익!”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샤파트를 바라보던 테세우스는 냉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일단 살려두기는 하마.”

우두두둑

“크아아아악!”

샤파트는 양팔이 어깨에서 빠져버리는 고통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갑판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다시 무심하게 바라보던 테세우스가 주변을 향해 일갈했다.

“무기를 버리고 꿇어라. 아니면 모조리 죽여주마.”

이미 테세우스 병사들의 전투력에 겁을 집어먹고 있던 찰나에 두목이 별 힘도 못 쓰고 당하자 해적들은 더 싸울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털썩. 털썩.

“나디르!”

“예.”

“놈들을 제압해라. 이참에 노예상으로 가장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나디르는 테세우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질문할 것이 있었다.

“도망친 놈들은 어떻게 합니까?”

해적은 여러 척의 배로 나눠타고 있었기에 아군을 돕고자 이곳을 향하다가 배를 돌려 도망치는 해적들도 꽤 많았다. 바로 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내버려 둬.”

그런 뒤 테세우스는 아직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샤파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게 이 일을 지시한 자가 누구냐?”

“내가 그것을..”

퍼억

테세우스는 그를 걷어차 엎드리게 한 뒤 그의 머리를 발로 밟으면서 말했다.

“크으으으으”

“말해. 그 비밀이 네 목숨보다 중하지는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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