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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114화 (114/298)

# 114

114. 약육강식(弱肉强食).

114. 약육강식(弱肉强食).

풀숲 가운데 몸을 숨기고 있는 녹색의 포식자가 있었다.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는 주변과 동화된 세모꼴에 둥근 눈을 가진 포식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풀거리며 그 주변으로 날아들었다.

낫과 같은 앞다리를 가진 포식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번에 낚아채 버렸다.

콰직

그 가운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비의 몸통이 사마귀의 앞다리에 찍히는 소리가 아마도 이러했으리라.

사마귀는 자신이 잡아챈 먹잇감을 들고 보다 안전한 풀숲으로 몸을 옮겼다.

퍼드득

그러나 사마귀는 애써 잡은 먹이를 맛볼 수 없었다. 어느새 날아온 작고 둥근 새의 짧은 부리가 사마귀의 몸을 사정없이 으스러뜨렸기 때문이다.

황갈색에 갈색과 검은색의 가느다란 얼룩무늬로 뒤덮인 몸과 짧은 날개를 가진 새는 바로 꿩류의 일종인 메추리였다. 메추리는 사마귀와 사마귀가 잡은 나비까지 부리로 콱콱 짚어서 입안으로 쑤셔 넣은 뒤 그대로 다시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푸드드득 푸득

그러나 메추리는 드넓은 창공을 얼마 날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괴롭게 몸을 뒤틀어야 했다. 메추리는 자신의 몸 전체 길이보다 긴 두 부리에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새는 피처럼 붉은 기다란 두 다리와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새의 배 부위는 흰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검은 황새로 불리는 새였다. 황새는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잡식성의 식성을 가진 새였다.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건 가리지 않고 부리로 찍어서 삼켰다.

메추리를 잡은 검은 황새는 육지로 내려와 두 부리에 잡고 있던 메추리를 머리를 젖혀 목젖 뒤로 꿀꺽 삼켰다. 하지만 육지로 내려온 것이 패착이었다.

쐐에에에엑

검은 황새는 바람의 흐름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급히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려 했지만 그 움직임이 날아오는 화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퍼어억

급소를 얻어맞은 검은 황새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저벅 저벅

활을 든 채 풀숲을 가로지르며 다가온 사내가 검은 황새를 집어 들자 함께 걸어오던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검은 황새를 잡아서 어디 쓰려고?”

“어디에 쓰긴? 먹으면 되지.”

“쯔. 모르는 모양이군. 검은 황새는 그다지 맛이 없다. 노린내도 심한 편이고.”

“그건 요리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고.”

“그래서 지금 요리할 사람이 있긴 하고? 일단 나는 할 줄 모른다.”

동료의 질문에 사내는 그제야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황새를 내팽개쳤다.

털썩

검은 황새는 힘없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고꾸라졌다.

“그러고 보니 없군.”

사내는 자신이 잡은 먹잇감에 어떤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배가 고파서 잡은 것이 아니다. 검은 황새의 맛은 어떨까 궁금해서 잡았는데 동료의 말을 들으니 그 호기심마저 달아났다.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 땅바닥에 버릴 뿐이다. 구더기가 파먹든 혹 다른 동물이 와서 살점을 뜯어먹든 뼈를 발라먹든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사내는 그저 검은 황새의 몸통을 꿰뚫었던 화살만 다시 수거했을 뿐이다. 그건 아직 쓸모가 있었으니까.

검은 황새의 피가 손에 묻어 질척거리는 느낌이 싫었던 사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의 풀을 아무렇게나 뜯어 쓱쓱 닦아내며 동료에게 말했다.

“들었나?”

동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그러자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내랄까? 아무튼 그랬다.

“술라. 술라가 죽었어. 한데 로마의 쥐새끼들이 그 망할 놈에게 성대한 장례식은 물론 그 시신을 마르스 광장에 안치했다는군. 우리 위대한 에트루리아 시민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그 땅을 빼앗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에게 말이야.”

에트루리아는 고대 그리스처럼 도시국가의 연합으로 이뤄졌던 곳으로 총 12개 도시들이 연맹을 결성했다. 이들은 금속세공업과 무역이 번성했는데 일바(Ilva, 현재 엘바)의 섬의 풍부한 철과 에트루리아의 구리를 주 자원으로 활용했고 금, 은, 상아 등의 숙련된 세공 기술은 물론 그리스, 이집트, 레반트(가나안, 시리아 등지의 지역을 가리킴), 카르타고와도 활발한 무역을 통해 번창했다.

로마에도 에트루리아인 왕조가 들어섰고 향후 100년간 로마를 다스렸는데 이때 로마의 간선도로, 비아 사크라(Via Sacra, 신성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리스 문자를 참고해 에트루리아 문자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다시 로마 문자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아치형 건축물이나 검투사 같은 문화 역시 에트루리아인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들로 이들은 로마에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이탈리아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족속이었으나 로마의 세가 강성해짐에 따라 차례차례 로마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로마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라 구분하는 것이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이지만 엄연히 다른 문화 체계를 가진 곳이었다.

그만큼 자신들의 문화와 과거에 대해 나름 긍지가 높은 자들이기도 했다. 그것이 지난 술라의 치세 동안 처참하게 무너졌다. 술라는 자신을 위해 싸운 군단병에게 보상하기 위해 에트루리아인을 무참하게 수탈했다.

이에 술라는 말할 것도 없고 로마에 대한 분노가 쌓일 대로 쌓인 상황, 술라의 위세가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분을 삭이고 있었지만 그가 죽은 이상,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어쩔 생각인가? 헤르미니우스.”

알카이오스는 헤르미니우스의 의중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질문은 서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알카이오스. 때가 되었다. 로마를 전복할 때가! 로마는 우리 에르투리아를 수탈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반드시!”

술라가 그 원흉이었지만 어미 술라의 부리에서 에트루리아의 약탈물을 날름날름 받아 처먹은 새끼들은 바로 로마인이었다.

로마인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로마를 전복하고 자랑스런 에트루리아인의 기상을 세울 절호의 기회. 아니 그것은 핑계다. 다시금 왕조를 건립할 수 있는, 바로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술라는 홀로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었다. 그런 그도 결국엔 죽었지만 술라는 독재의 불씨를 세상에 남겼다. 그는 바라고 바랬지만 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던 금기를 과감하게 깨뜨려버렸다. 그런 술라라는 선례가 있는 한, 그의 위세를 기억하는 자들이 남아있는 한 그 불은 결단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결단코.

*

거대한 불길이 로마 전체를 불태우는 것 같았다. 사방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태양으로 인해 달아오른 새하얀 대리석 바닥은 두꺼운 신발 밑창마저 뚫고 그 열기를 발바닥에 전해줬다.

건물의 그늘 속에서 세밀한 세공과 화려한 색조가 들어간 대리석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내는 손을 들어 눈을 슬쩍 가린 채 태양을 바라봤다.

“덥군.”

더울 수밖에. 토가를 멋들어지게 걸쳤지만 주름이 질 정도로 치렁치렁한 천은 아무리 얇아도 걸치지 않은 것보다 나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천도 그리 얇은 재질이 아니었다. 얇은 재질의 천은 이렇듯 멋들어진 주름을 잡아내지 못하니까.

이렇게 더운 날엔 도무스(호화주택)에서 낮잠이나 즐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도무스 안에 형성된 시원한 목욕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여느 때와 같은 시기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술라가 죽기 전이라면 그래도 별문제가 없었을 테지. 술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을 강제하는 위엄을 확보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광장을 달구고 그로 인한 아지랑이가 끝없이 피어오르듯 작금의 상황은 도가니 속의 쇠붙이와 같았다. 어영부영 시간이나 축내고 있을 때가 아니란 소리였다. 그런 자들은 도태될 뿐이다. 그리고 그 도태는 아마도 죽음과 직결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여기 계셨군요.”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주름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사내가 대리석 기둥에 기대고 있는 크라수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크라수스와 마찬가지로 더운 여름날임에도 토가를 걸치고 있었다.

“아 루푸스님. 어서 오시지요.”

“본의 아니게 크라수스님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당금의 원로원은 죄다 술라파에 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술라 정책 자체가 원로원의 권한을 강화하는데 치중되어 있었고 이미 그 전에 반술라파에 속하는 자들을 모조리 솎아냈으니 당금 원로원에 남아있는 의원들은 모두 술라파일 수밖에 없었다. 술라가 사망한 지금도 술라파일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그랬다.

루푸스 역시 의원으로 원로원에서 입김이 제법 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크라수스나 폼페이우스에 비할 바랴? 둘 모두 나이가 어려 아직 별다른 공직에 나서지 않았지만 술라 사후에 영향력을 강한 사람을 뽑으라면 이 두 사람을 빼놓을 수 없었다.

“괜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그나저나 아름답지 않소이까?”

루푸스에게 말을 꺼내긴 했지만 크라수스의 시선은 카피툴리누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로마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카피툴리누스 언덕 위에 세워진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의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루푸스는 이마의 땀을 왼팔에 감고 있는 토가로 슬쩍 훔쳐낸 다음, 대답했다.

“물론. 물론입니다. 그 어떤 도시도 이곳 로마처럼 번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글쎄. 그건 너무 섣부른 확신 아니오? 이집트만 해도 이곳 로마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니.”

“하하하. 이집트. 이집트는 화려한 곳이지요. 그곳의 피라미드는 저도 한 번 꼭 구경해보고 싶습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세계의 중심은 이제 로마입니다. 그런 로마보다 위대한 도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부심 넘치는 루푸스의 대답에 크라수스는 별말하지 않고 주제를 돌렸다.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굳이 반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로마인인 이상 동감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긴히 상의할 것이 있다고?”

그러자 루푸스가 눈매를 좁히며 크라수스에게 말했다.

“카이사르를 아십니까?”

“카이사르? 술라의 명을 정면으로 거스른 율리우스 가문의 그 맹랑한 꼬마 놈을 말하는 거요? 내가 알기로 그자는 아시아 지역으로 도망쳤을 텐데?”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호오?”

크라수스는 눈을 빛내며 탄성을 뱉었다. 보라. 벌써부터 바람이 불지 않는가? 술라라는 걸출한 절대강자가 사라지자 새 시대의 바람이. 약한 자는 모조리 도태되고 삼켜지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하고 있었다.

맹랑한 꼬맹이지만 크라수스는 술라가 카이사르를 크게 경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카이사르가 로마에 입성했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루푸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 앞에서 저희 원로원 의원들을 성토하고 있습니다. 알아본 바로는 변호사 개업도 준비한다고 하더군요. 실로 맹랑한 놈입니다.”

시민들 앞에서 성토할 것이 없다면 성토할 수도 없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원로원의 의원들은 먼지가 아니라 바위가 몸에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위인들이다. 그간 자신에게 받아 처먹은 것만도 얼마던가?

크라수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율리우스 가문. 물론 대단한 가문이다. 로마의 두 기원 중 하나인 아이네아스의 아들 율루스의 후손을 자칭하는 집안이었으니 율리우스 가문의 기원은 로마의 시작과도 맞닿아 있다. 파트리키 가문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가문이니 로마인들 중 누구도 율리우스 가문을 무시할 수 없다.

아울러 포풀라레스(민중파)의 거두이자 반술라파의 상징인 마리우스의 처조카이기까지 한 카이사르를 어찌 기억하지 못할까? 그러나 그래 봐야 아직은 애송이다. 게다가 이러한 시점에 카이사르나 언급하고 있으니 크라수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버려 두시지요.”

“예? 하지만!”

“술라께서 살아계셨을 때는 그 여파를 술라께서 안으셨겠지요. 길게 말할 것 없이 일단 나 크라수스는 그 여파를 감당할 주제가 못 되오. 루푸스님께서 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크라수스의 은근한 눈빛에 루푸스는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재물이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기는 하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크라수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에게 해를 끼친다고? 그건 술라니까 할 수 있었던 거다. 술라가 생존해 있다면 또 모를까 이제 카이사르는 그런 식으로 다가갈 대상이 아니다. 감당하지 못할 문제를 자신에게 넘기려는 루푸스의 의도로 파악하지 못할 크라수스가 아니었다.

더욱이 원로원의 의원이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든 말든 자신이 알게 뭐란 말인가? 아직까지는 필요하니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저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지만 곧 쓸모를 다할 자들에 불과하다. 그래. 이들의 가치는 겨우 그 정도였다.

“대답이 없으신 걸 보니 넘어가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그것을 염려하실 때가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니라 에트루리아 지역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들이 로마에 반기를 들 조짐이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으니 당장 그들을 어찌 다뤄야 할지 고심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루푸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크라수스에게 질문했다.

“그 점은 원로원도 파악하고 있소. 다만 지금 크라수스님의 말씀은 출병을 해야 한다는 소리요?”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군요. 아무래도. 당장 원로원의 여러 의원님들만 해도······.”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에트루리아에게 깊은 원한을 사고 있는 자들이 원로원만 해도 한두 명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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