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 뭐 이런 놈이?
111. 뭐 이런 놈이?
한니발 바르카에게 대패한 로마는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한 전술과 전략도 수없이 개발하고 그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었다.
한니발의 전략도 전략이지만 그와 상대했던 테렌티우스 바로가 한니발군의 진형이 넓게 포진된 것을 보고 포위는 어려울 것이라 여겨 중앙을 돌파하고자 밀집대형을 취했던 것이 큰 패착이었다.
갑작스런 진형변화로 신병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로마군은 특유의 기동성마저 잃었다. 그 결과 한니발의 양익에 해당하는 기병이 로마군을 완전히 둘러쌌고 곧 참혹한 대살육으로 이어졌다.
한니발군이 포위했어도 로마군의 숫자가 더 많았는데 어찌 그런 대패를 당했느냐고 묻는다면 포위를 당하게 되면 포위당한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된다.
포위한 병사들은 두세 명도 넘는 자들이 한 명을 상대하는 셈이지만 포위당한 자들은 역으로 두세 명을 상대해야 한다. 한니발 군은 넓게 포진한 채로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는 로마군을 하나씩 창을 찔러 죽이면 되는 일이니 포위를 당한 시점에서 전투는 끝이 난 것과 같았다.
로마군의 진형을 재빨리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한 한니발의 천재성도 천재성이지만 그와 맞상대했던 테렌티우스 바로가 전투를 서둘러 끝내고자 무리한 전술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패배했더라도 적어도 5만 명이나 전사하는 그런 최악의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칸나에 전투에 대한 로마인의 충격은 엄청났기에 적어도 로마인이라면, 무엇보다 군을 이끄는 장수라면 반드시 숙지하고 있는 전투였다.
자신들보다 적은 숫자이니 넓게 포진한 것은 제법 괜찮은 진형선택이다. 숫자가 적다고 이런 평지에서 똘똘 뭉친다면 금세 포위를 당하게 될 테니까. 병력도 열세인 상황에서 일단 포위를 당하고 전세가 뒤집히면 그것으로 전투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진형을 좋게 포진했어도 이런 평지를 전장으로 삼은 것부터가 패착이다.”
병력의 숫자가 적다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지형을 택했어야 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마메르코스로 하여금 테세우스를 얕잡아 보게 만들었다.
“밀집대형을 취할 이유도 없고 놈들을 포위할 필요도 없다. 아군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병력의 우위를 고스란히 전세의 우위로 이어지게 만들 전술을 택하면 될 일. 애송이 놈이 어디서 한니발 이야기는 들은 모양인데 그 후에 로마군이 어떤식으로 변모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군. 흥.”
마메르코스는 코웃음을 치며 전 군단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특별한 전술과 전략을 쓸 필요도 없다. 병력의 우위를 가졌을 때는 평범한 전술이 가장 효율적이고 파괴적인 전술이다. 이미 우위를 가지고 있는데 왜 굳이 모험을 펼친단 말인가?
테렌티우스 바로가 그런 짓을 하다가 로마에 최악의 패배를 안긴 졸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가?
*
세르토리우스는 본래 2만의 병력을 자신에게 맡기려고 했다.
카르페타니 연맹은 분열 중이고 그들을 치는 일은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1만의 병력만을 요구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무엇보다 2만의 병력을 대동하고 이동했다면 적의 방심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고 적의 오해를 가속화 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겠지. 그랬다면 적이 성문을 열고 나오는 일 역시 발생하지 않았을 터.’
당연히 1만보다 2만이 더 낫다. 더 많은 병력이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마의 시선이 히스파니아로 향하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히스파니아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2만의 병력을 전부다 바에티카로 밀어넣어서 지난한 공성전을 펼치기보다는 바에티카는 유보하더라도 카르페티니 연맹과 히베리아족을 압박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었다.
물론 바에티카는 최우선적으로 함락되어야 할 곳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바에티카의 손발을 묶어두는 것도 나쁜 전술은 아니라 여겼다.
바에티카에는 많은 로마인이 거주한다. 그 말인즉, 단순히 전략적인 계산만으로 군을 움직일 수 없다는 소리다. 전략적 이점이 어떠하든지 간에 로마인은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할 것이고 바에티카의 군을 움직이고 있는 마메르코스는 그것을 결단코 무시할 수 없다.
단호한 성품의 소유자도 여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로마의 군대이거늘, 알아본 마메르코스의 성품을 고려하면 그는 결코 바에티카 내 로마인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작자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진격해 포위했다. 포위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저 바에티카를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진지를 구축했을 뿐이다.
굳이 공격을 감행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바에티카 내의 로마인을 압박하기 충분했고 압박을 받은 로마인은 다시 마메르코스를 압박할 테니까. 자연히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도 고려해야 하는 마메르코스는 전략적인 관점으로 세세하게 전투에 임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다시 병력의 숫자가 1만에 불과하고 군을 이끄는 자가 세르토리우스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미되면 마메르코스는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바에티카의 병력은 2만 5천. 물자도 풍부한 곳이다. 그런 곳을 1만의 병력으로 친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의심이다. 1만의 병력으로 바에티카를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이 통설이니 세르토리우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심하게 될 것이다.
그럼 결국 한 가지 결과만 도출된다. 이곳의 전투를 최대한 빠르게 종결짓는 것으로.
당연히 수성을 통해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성밖에 자리 잡고 공격도 하지 않는 놈들을 수성으로 어떻게 빨리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공격이라도 해야 피해를 입혀도 입힐 텐데 아예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대로는 시간만 축낼 뿐이다.
물론 수성을 하는 것이 전략적 관점에서 이득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의 불안은 그 이점을 가져갈 시간을 마메르코스에게 주지 않는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마메르코스가 다 무시하고 전략적 이득을 가져가려고 해도 세르토리우스가 외부에서 압박한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받는 마메르코스가 택할 건 군을 이끌고 성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결과는 같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다. 나오지 않고 버틴다면 마메르코스로서는 아무것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얻을 테니 말이다.
‘조급함. 조급함은 언제나 시야를 좁게 만들지.’
테세우스는 매서운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쉬시시시식
파바바박
화살이 빗발치고 있었다. 테세우스군과 마메르코스군 양 진형을 가리지 않고 화살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직사각형 방패, 스쿠툼을 이용해 별 피해 없이 그것을 받아냈다. 투창인 필룸 역시 오갔지만 비슷한 전술과 전략을 사용하는 군대라 역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제 전투의 결과는 백병전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당연히 그건 병력의 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메르코스가 과감하게 단단한 성벽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테세우스군은 각 군단의 밀리툼과 프레펙투스, 센튜리온의 지휘 아래 마메르코스군과 격돌했다.
쾅
촤아아악
“커거걱!”
“크아아아악!”
병사는 들고 있던 방패로 자신을 찔러오는 적병의 글라디우스를 쳐내고 놈의 목을 단번에 끊어냈다. 그러나 미처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기 전에 옆에서 휘두른 적병의 검에 팔이 잘려 고통에 울부짖었다.
“삐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전열을 교체하라는 신호가 떨어지자 다른 병사가 그를 뒤로 밀어붙이고 앞에 서서 다시 치열한 전투를 재개했다.
마치 기계처럼 착착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밖에서 보기엔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엉겨 붙어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투를 지속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저 멀리서 무심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아군이 정예병이라지만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다. 물론 개개인의 뛰어난 실력으로 비등한 전황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승기는 반드시 마메르코스군에게 넘어간다.
테세우스는 자신 뒤편에 도열한 기병들을 바라봤다. 기병으로는 에고르와 루시타니아 전사들과 오넨구스와 솔리치 전사 오피다니 연맹의 전사들이 그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지금 싸우고 있는 군단병보다 훨씬 더 맹목적으로 테세우스를 따르고 있었다.
“적의 측면을 돌파한다.”
“우하!”
“우워어어어어!”
그들은 테세우스의 명령에 기괴한 함성으로 답했다.
테세우스는 그 즉시 보아디케아를 들고 마메르코스군의 측면을 향해 쇄도했다. 자신은 총사령관이다. 맞다. 하지만 적의 측면을 붕괴하고 적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의 무력을 보유한 자가 자신보다 적합한 자가 있던가?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흑마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두두두두두
테세우스를 따라 켈타이족의 전사들은 매서운 기세로 마메르코스군을 향해 진격했다. 마메르코스군 역시 켈타이인으로 이뤄진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우레타니아 지역의 사람으로 보이는 자들도 꽤 많이 보였지만 어쨌든 기병은 천기 정도로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수는 테세우스와 함께하는 기병의 숫자와 비등할 정도였다. 그러니 적다고 할 수도 없었다.
후우우웅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투창을 몸을 뒤틀어 피해냈다.
커허어억
자신의 뒤를 따르던 전사가 자신 대신 투창에 맞고 단말마 소리와 함께 낙마하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지만 별 수 없었다. 전장에서 제 목숨을 챙기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그 대신 테세우스는 더욱 빨리 말을 달려 투창을 던진 자의 몸을 말과 함께 그대로 베어냈다.
촤아아악!
“크아아악!”
테세우스의 창에 베어진 전사는 피와 끔찍한 비명만 남기고 절명했다.
챙 채챙
그런 그를 향해 투창과 화살이 집중적으로 쏟아졌지만 테세우스는 신묘한 창술로 그 모든 것을 걷어내며 연신 적의 측면을 향해 진격했다.
테세우스의 뒤를 따르던 기병들 역시 그 기세를 잃지 않고 적을 도살하며 테세우스를 바짝 뒤따랐다.
*
두두두두두
무시무시한 기세로 짓쳐드는 흑마의 모습에 마메르코스군의 군단병은 겁을 한껏 집어먹었지만 스쿠툼을 땅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동료 군단병이 이어서 스쿠툼을 쌓고 쌓아 가파른 경사로를 만들었다.
흑마는 스쿠툼으로 만든 가파른 경사를 올라갈 것이고 다른 병사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 흑마의 발목을 글라디우스로 끊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던 놈도 바닥에 나뒹굴 것이고 그렇게 널브러진 기병의 육체에 날카로운 검을 박아넣으면 끝이다. 얼핏 살펴본 놈의 체구는 그야말로 산처럼 거대했지만 어차피 검에 박히면 죽는 건 매한가지다.
콰드드드득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허망한 계산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강력한 파쇄음이 들리더니 그 파쇄음을 만들게 만든 물결치는 기묘한 문양의 창이 자신의 몸을 두 동강 내버렸기 때문이다.
*
테세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스쿠툼의 벽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아디케아를 휘둘렀다. 일반적이라면 창이든 검이든 혹 육중한 도끼라 할지라도 튕겨 나오거나 방패에 박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보아디케아는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단단한 스쿠툼은 물론 그것을 잡고 있던 군단병의 갑옷과 육체까지 모조리 갈라버렸다.
콰드드득
촤아아아악
실로 가공할만한 힘과 기술이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미 테세우스가 품은 힘은 인간의 힘이라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바.. 방패와 사.. 사람을 같이?”
“괴.. 괴물이다!”
병사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기함을 토하며 몸을 빼려고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보아디케아의 이빨이 저들의 목을 수거해갔다.
테세우스는 거침없이 말을 달리며 보아디케아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냈다. 검으로 보아디케아를 막으면 검이 부러져나갔고 방패로 막으면 방패와 함께 잘려나갔다. 무시무시한 무용을 지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세우스는 뒤에 누가 따라오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말을 달리며 적진을 유린했다.
어이없게도 단 한 사람. 고작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마메르코스군의 진형이 붕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