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101. 기묘한 죽음.
101.
테세우스는 쉴새 없이 팔을 움직여 자신과 말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제거했다. 그와 함께하는 흑마는 테세우스를 믿는 것인지 빗발치는 화살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수풀을 박차고 정체 모를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다그닥 다그닥
“쏴라!”
쉬이이익! 쉬이이익!
날카로운 화살촉이 테세우스를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당연히 섬뜩한 파공음이 귓가에 울려 퍼졌지만 테세우스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재차 화살을 날리려는 적을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말의 돌격력과 더불어 무지막지한 힘에 의해 테세우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전사는 검의 궤적 그대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붉은 피가 사방으로 터져 나오기 무섭게 테세우스의 검이 다시 현란하게 움직여 자신을 공격한 자들의 목숨을 수거했다. 그의 자비심 없는 손속에 녹빛의 숲이 금세 붉게 물들어 버렸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쐐에에엑
그렇게 활을 든 전사들을 유린하던 테세우스는 갑자기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저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묻혀 침묵 가운데 날아온 화살을 급히 막은 테세우스는 자신의 손이 약간 얼얼한 것을 느꼈다. 어찌나 강맹하고 빠른지 테세우스조차 미처 막아내지 못할 뻔했다. 이건 활로 쏜 것이 아니라 쇠뇌로 쏘아진 화살이었다.
쇠뇌(Cross Bow)는 청동기 시대 때 이미 그 원형이 나타났기에 철기 시대인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게 전혀 의아할 것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쇠뇌는 사용되었고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로마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쇠뇌는 활보다 강력하고 부녀자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격과 장전이 용이하다. 화살이 당겨진 채로 조준을 하기에 활에 비해 정확도도 높고 사거리도 긴 편이다. 하지만 활에 비해 장전속도가 느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켈타이인들이 쇠뇌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켈타이인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켈티시, 투르둘리, 카르페타니, 베토네스, 루시타니아 네 곳의 연맹에 걸쳐 그곳에 속한 전사들을 수없이 봤지만 그 가운데 쇠뇌를 사용하는 전사는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손이 얼얼한 것도 얼얼한 것이지만 그보다 갑자기 든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설마 로마? 로마인들이? 벌써 로마인들이 이곳까지 침투했다고?’
오피다니 연맹에서 일어난 일은 이제 막 세르토리우스에게 닿았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놀랄 일인데, 자신을 습격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고? 만약 그렇다면 이들의 정보력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그러나 테세우스는 금세 모든 생각을 털어버리고 전투에 집중했다. 지금은 놈들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무시무시한 기세로 쇠뇌의 볼트가 자신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탕 타탕
“정말 대단한 실력이로군. 이 거리서 쇠뇌를 쳐내? 헛소문이라 여겼는데 확실히 죽여버려야 나중에 일이 편해지겠어.”
이곳에 모인 전사들의 체구가 작은 것도 아니었거늘 과장해서 나머지 전사들이 난쟁이처럼 보일 지경으로 거대한 체구를 가진 전사가 묵직한 도끼를 어깨에 짊어진 채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대략 2미터는 훌쩍 넘겠군. 어디서 저런 자가 나타났지?’
오피다니 부족 소속이 아니라는 건 체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런 자가 있었다면 오피다니 부족장들이 이우리아 해변에 데려오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테세우스는 날아오는 화살을 마저 처리한 다음 저 멀리 자신의 뒤편에서 빠르게 진격해오는 7명의 군단병을 힐끗 바라봤다.
적의 숫자는 그 열 배는 넘어 보였다. 그러니까 70명은 넘는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450명도 홀로 상대한 테세우스가 아닌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단 한 명의 전사만 제외하고 말이다.
“조무래기는 조무래기들끼리 상대하게 두고 네놈이 사내새끼라면 나랑 어디 한 번 어울려보자!”
붕 부붕 붕
저 강력한 공격을 말 위에서 받으면 말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고 여긴 테세우스는 말에서 내린 다음 흑마의 엉덩이를 때렸다.
“가라!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어라.”
흑마는 두어 번 테세우스의 주변을 맴돌다가 쏜살같이 전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시선은 거한의 전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테세우스의 신장도 180cm를 훌쩍 넘었고 아직 더 자라는 중이긴 하나 어쨌든 거한 앞에 서니 왜소해 보일 지경이었다. 단순히 신장만 큰 것이 아니라 몸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 전체가 바위 같은 근육으로 들어차 있었다.
“네놈은 누구지? 로마인 같지는 않은데.”
어딜 봐도 로마인처럼 생기지 않았다. 로마인도 아니라면 왜 자신을 습격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다. 밟아 죽일 벌레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자가 있나?”
퉁
테세우스는 손방패를 바닥에 버리고 왼손에 검을 마저 뽑아 들었다.
스르릉
“하긴 밟아 죽일 벌레의 이름을 알 필요는 없겠지.”
테세우스의 담담한 말에 거한, 무스타파는 쌍심지를 켜고 그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 나 무스타파가 손수 죽일 만한 사내라 할 수 있겠지.”
‘무스타파? 이집트식 이름으로 보인다. 이집트 사람인가? 하지만 이집트 사람이 왜 여기까지?’
테세우스는 그 모든 생각을 뒤로 하고 대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적보다도 강적이라는 것을 몸으로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 네놈이 450명의 조무래기를 상대로 재미 좀 봤다고 들었다. 그러니 오늘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을 기대하마.”
테세우스는 그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일단 목숨은 살려두겠다. 들을 것이 있으니.”
“크하하하하. 오냐! 할 수 있다면 그리 해보거라!”
둘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테세우스의 콘투베르니움과 무스타파와 함께하는 전사들이 이미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퉁 투퉁
“찔러!”
“하!”
“크아아악!”
방패를 앞세우고 차근하게 전사들을 제거해가는 군단병이 모습에 무스타파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곧바로 테세우스에게 쇄도했다.
쿵쿵
육중한 체중으로 인해 땅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으랴아아!”
부우우우웅
육중한 파공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힘과 체중이 실린 도끼가 위에서 아래로 테세우스를 찍어버렸다.
당연히 이런 공격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따라서 무스타파는 왼손은 내리쳐지는 도끼의 방향을 유지하고 오른손은 헐겁게 하여 도망치는 테세우스의 팔이나 몸을 잡아챌 생각이었다. 그런 후 산채로 반으로 찢어 죽일 마음이었다. 오만하던 적이 공포에 질린 채 울부짖는 광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으니까. 그런데 웬걸? 피하기는커녕 제자리에서 자신의 공격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힘으로 눌러 죽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니까 상관없었다. 무스타파는 히죽 웃음을 지으며 양손 모두에 힘을 강하게 줬다. 단번에 반으로 갈라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의 공격을 막다가 두 팔이 부러져도 재밌는 일이라 생각했다.
콰아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무스타파는 만면에 지었던 웃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심지어 두 개의 검도 아니고 하나의 검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저런 체구에서 저만한 힘이라니.
무엇보다 테세우스는 어떤 충격조차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의 공격은 자신이 정면으로 막았어도 충격이 막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멀쩡해? 무스타파는 황당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도끼를 막은 오른손의 검을 위로 쳐냈다.
까아앙
그로 인해 무스타파의 도끼가 하늘로 치솟았고 무스타파는 그로 인해 균형이 흐트러져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무스타파가 체구에 걸맞지 않은 흔히 물 근육이라 불리는 근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무스타파의 근육은 말 그대로 바위같이 단단하고 세밀한 근섬유를 가진 근육이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은 적을 양손으로 찢어 버리게 만들 정도로 강력했다.
다시 말해 이건 무스타파의 힘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테세우스가 지닌 힘이 기이할 정도로 강력하기에 일어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테세우스는 오른팔에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충격이 꽤 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후우웅
“그게 네가 가진 힘의 전부인가? 별거 없군.”
받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여서 받아냈다. 강력해 보이긴 했지만 별로 위험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이 새끼가!”
무스타파가 분노를 터트렸지만 테세우스는 냉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집트식 이름에 라틴어를 쓰는데 그렇다고 로마인 같지도 않아. 대체 네놈은 뭐지?”
테세우스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한 무스타파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계획한 일을 제멋대로 부숴버리는 놈이 있어서 처리하려고 모습을 드러냈는데 자신의 예상보다 더 대단한 놈이었다.
“제법. 제법이로군.”
무스타파는 마음에서 방심을 지워내고 양손으로 도끼의 자루를 꽉 잡았다.
꽈드득
테세우스는 양손에 든 검을 힐끗 바라봤다. 나쁘지 않지만 역시 아쉽다. 자신의 폭발적인 힘을 담아내기엔 무기의 역량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보아디케아’라면 조금 더 낫지만 사실 그 역시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보아디케아도 수중에 없는 판국에 아쉬움을 토로해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테세우스는 상념을 지워내고 양손의 검을 붕붕 가볍게 돌리다가 대뜸 말했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좀 처맞자.”
“뭐라? 으드득. 죽여주마!”
무스타파가 격분하며 다시 도끼를 휘둘러왔다.
육중한 도끼를 무슨 가벼운 검처럼 휘두르는 모습에 테세우스의 군단병들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무스타파라는 거한의 도끼를 방패로 막아내면 방패째로 자신들을 갈라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도끼를 한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막아낸 테세우스였다. 그런 테세우스가 자신들의 상관이었다. 따라서 두려움보다는 자긍심이 저들의 마음을 가득 메웠다. 이에 병사들은 일당백의 기세로 적들을 마주해갔다.
챙 채챙
테세우스는 무스타파의 도끼를 오른손으로 빗겨 친 다음 왼손의 검으로 무스타파의 왼쪽 견정혈 쪽을 찔러넣었다.
쐐에에엑
무스타파는 거대한 체구답지 않게 매우 날렵하게 테세우스의 공격을 피해냈다. 맹수처럼 날렵한 움직임에 테세우스는 그간 타성에 젖어있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지금껏 자신의 공격을 피한 적이 몇이나 있었던가? 지금의 공격도 일반 병사라면 결코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적은 일반 병사가 아니었다. 맹수가 도끼를 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상, 방심해선 곤란했다.
몸을 뒤틀어 테세우스의 공격을 피해낸 무스타파는 몸을 뒤튼 자세 그대로 오른손으로 옮겨두었던 자신의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까아앙
테세우스는 왼손의 검을 수직으로 내세워 그것을 받아 냈지만 균형이 흔들린 상태라 그 충격으로 옆으로 밀려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무스타파는 밀려나는 테세우스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며 재차 도끼를 왼쪽에서 오른쪽 사선으로 휘둘렀다.
충격에 의해 허공에 잠시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던 테세우스는 찰나의 순간 왼발로 땅을 박차 뒤로 이동했다.
후우웅
그로 인해 무스타파의 도끼는 거의 종잇장 간격 수준으로 테세우스의 앞을 가르고 지나갔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우연히 운 좋게 그런 광경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테세우스의 계산 아래에 있었다.
조금 전에는 자신이 실수했지만 훈련할 때 언제나 가상의 적으로 놓고 싸우는 자들은 항우와 리처드다. 그걸 생각하면 이 정도 살벌함은 살벌함도 아니었다.
뒤로 잠시 물러났던 테세우스는 오른발로 바닥을 앞으로 박차며 그 추진력을 이용해 무스타파에게 성큼 다가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반원을 그리듯 휘둘렀다.
촤아아악
“크으으윽!”
도끼를 휘두르느라 가슴이 열렸던 무스타파는 가슴에 검상을 입고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테세우스가 더 다가올 것이 두려웠던 무스타파는 테세우스가 쇄도할 공간에 다시 도끼를 올려 쳤다.
후우웅
하지만 뻔한 루트로 공격해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테세우스는 몸을 사선 옆으로 이동한 지 오래였다. 이에 무스타파의 도끼는 또다시 공연히 허공을 갈랐다.
후웅
그 순간 테세우스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