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00화 (100/298)

# 100

100. 기묘한 죽음.

100. 기묘한 죽음.

노파는 눈물을 닦아내고 테세우스에게 입을 열었다.

“제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모두가 잔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흐흐흑.”

일가족 모두가 살해당했다고? 테세우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군. 다만 치스몬타니에도 장로는 존재할 텐데 이걸 왜 내게 고하는 것이오?”

자신은 각 부족의 족장을 죽였을 뿐이다. 그들과 관련된 이들은 차차 처리해야겠지만 어쨌든 그런고로 부족의 장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이 중대한 범죄라면 부족의 장로들에게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런 문제를 자신에게 굳이 또 고하는 연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흐흐흑. 흐흑. 부족의 장로들은 제 아들이 며느리와 손주들을 모두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 맺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들이 그랬을 리가 없습니다! 아들이 살해당한 것도 원통한데 그 아들이 일가족을 죽인 살인마가 되었으니 저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 부디.. 부디 저희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테세우스는 노파의 모습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풀어 헤쳐져 있었고 며칠간 먹지도 자지도 않은 모양인지 얼굴이 창백하고 핼쑥했다.

테세우스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노파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현장을 살펴봐야겠다. 그전에 먹을 것을 건네주어라.”

테세우스가 옆에 선 병사에게 그리 말하자 노파 루기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저 이 일만 해결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큰 충격에도 불구하고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노파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아들이 뒤집어쓴 누명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리라.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하겠지만 아들이 누명을 뒤집어썼다면서 그 누명을 벗기지도 않고 죽을 셈인가? 조금이라도 먹어라. 명령이다.”

테세우스의 말에 루기는 병사가 건네주는 딱딱하고 납작한 빵, 포카치아를 조금 뜯어서 입에 넣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테세우스가 병사에게 다시 명령했다.

“그녀를 말에 태워라.”

“알겠습니다.”

잠시 뒤 병사가 노파를 뒤에 태우자 노파에게 다시 말했다.

“이름이 무엇인가?”

“루기라 하옵니다.”

“현장으로 안내해라.”

“예. 감사.. 흐흑. 감사합니다.”

테세우스는 이 노파가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들을 잃은 충격, 누명을 썼다지만 그 아들이 정말로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주변 사람들의 멸시 등등 그 모든 감정이 소용돌이치듯 노파를 갉아먹고 있었으리라.

자신의 앞을 위험하게 가로막은 것은 근래에 울려 퍼진 테세우스라는 위명 때문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엎드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원통함을 풀어달라고 말했지만 노파의 눈에는 삶의 희망이라곤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에 치여 죽었어도 상관없다는 심정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걸지도 모를 일이다.

테세우스는 말없이 루기의 안내를 따라 이동하며 루기에게 다시 물었다.

“루기.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루이게치라고 합니다. 정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흐흑. 제 아내와 아이들을 그렇게 아꼈던 아들이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죽은 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니 현명한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의 전후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선 별수 없었다. 루기, 그녀가 원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혹 아들과 원한 관계를 맺은 자가 있나? 그러니까 루이게치와 그 가족을 죽일 정도의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냐고 묻는 것이다. 아들이 아니라면 선대에서라도.”

“없습니다. 저는 남편을 일찍 여읜 과부였습니다. 혹 과거에 남편이 원한을 맺었더라도 지금 와서 그런 일을 벌어지기엔 시일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더욱이 루이게치는 마을에서도 인정받는 사내였습니다.”

원한은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는 것들이 아니지만 이미 죽은 자의 아들과 그 일가족을 모두 죽일 정도의 원한이 쌓였다면 그 아내였던 루기가 그것을 모를 확률은 희박하다. 당연히 그런 일을 알고 있다면 지금 언급했을 것이다.

“으흠..”

테세우스는 침음을 흘리다가 루기가 안내하는 곳이 마을과 점점 멀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가족을 살해했다길래 루이게치의 집으로 인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루이게치는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서 살았던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네는 마을에서 살았고 노쇠한 저 역시 아들네와 같이 살았습니다.”

테세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루기에게 질문했다.

“이해하기 어렵군. 살해당한 그 날의 일을 자세하게 말해줘 봐. 같이 살았다면 더 확실히 기억하고 있겠군.”

“물론입니다. 루이게치는 사냥 중에 왼쪽 다리를 다쳐서 족장과 함께 이우리아 해변에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지요. 따라서 며느리 네우스가 숲에서 먹을 것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집에 먹을 것이 없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 아들은 제법 뛰어난 사냥꾼이라 먹을 것이 풍족하진 않아도 가족을 굶기진 않았습니다. 네우스는 간단한 과일이나 채소를 채집해오는 수준 정도였습니다. 그날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손주들과 함께 간단히 요기할 채소를 채집하러 숲에 들어갔는데 해가 질 무렵까지도 네우스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루이게치가 다친 몸을 이끌고 그들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섰고 이어진 결과는 흐흑. 제가 가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값싼 위로는 하지 않았다. 무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로되 누명이 맞다면 누명을 벗기는 것이 그나마 위안을 주는 길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숲에서 일가족 모두 차디찬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말인가?”

루기의 말만 보자면 어디서도 루이게치가 아내 네우스와 자녀들을 살해할 동기가 없었다.

“장로들이 뭐라고 결론지었다고?”

“앞날을 너무 비관한 나머지 아내와 자식을 모두 죽이고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흐흐흑.”

“비관? 루이게치가 입은 상처가 중했나?”

“그게.. 예. 바티즈가 이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왼쪽 다리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말한 바 있지만 바티즈는 드루이드의 업무를 대변하는 위치에 놓인 자들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주술사 내지 간단한 의사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으흠..”

확실히 이런 시대에 다리를 잃는다면 그 여파는 현대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결단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테세우스가 침음을 삼키자 그것을 들은 루기가 강하게 반박했다.

“다리를 잃는다 하더라도 루이게치는 그렇게 나약한 사내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육체가 단단하기 전에 마음부터 단단해진 아이입니다. 여인 홀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제 삶을 통해, 그렇게 제 아들을 키워냄으로써 증명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란 제 아들이 그토록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리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들을 믿고 있었지만 강하게 부인하는 모습에서 테세우스는 그녀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일말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아들이 정말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말이다. 아들을 믿지만 마을의 장로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리라.

“······.”

루기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테세우스 침묵을 지켰다. 무엇이 맞는지는 직접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건은 언제쯤 발생한 건가?”

“사흘? 아니 정확하게는 나흘 정도 되었습니다.”

이런 후덥지근한 날씨에 나흘이면 시신이 남아있어도 심하게 부패했을 확률이 높다.

‘증거가 너무 없군. 무엇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장례는?”

“저들이 멋대로 시신을 가져다가 화장해버렸습니다. 흐흐흑.”

“유일한 가족에게 보이지도 않고 장례를 치러버렸다고? 그리고 나온 결론은 살해 후 자살이다? 흐음. 그럼 증거가 없는 셈인데 우리를 데려가는 장소는 시신을 발견한 장소인가? 혹 현장을 직접 확인한 건가?”

눈물로 붉어진 눈을 한 루기가 다시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했는데 아들 내외의 시신을 발견한 자들이 와서 몰골이 너무 참혹해서 그 자리에서 합장했다고 들었습니다.”

냄새가 났다. 심하게 부패한 냄새가 온 사방에서 진동했다.

테세우스는 확신에 찬 눈으로 루기에게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철저하게 파악할 것이니 그 점에 대해선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 순간 테세우스는 루기를 향해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포착했다. 햇살을 받아 번쩍인 그것은 분명 화살촉이었다. 테세우스는 급히 손을 내밀어 그것을 쳐내려고 했지만 루기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행히 테세우스가 집어던진 검이 화살의 뒷부분을 쳐내서 방향을 뒤틀었지만 결국 루기는 화살에 어깨를 얻어맞고 말았다. 검으로 방향을 뒤틀지 않았다면 화살은 정확하게 루기의 뒷목에 박혔을 것이고 당연히 그녀는 즉사했을 것이다.

푸우욱

쿨럭

루기가 입에서 피를 쏟으며 말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급히 낚아챈 테세우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습격이다! 방패 들어!”

말에서 내려서 방진을 형성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수없이 많은 화살들이 퍼부어졌기 때문이다.

더 볼 것도 없이 함정에 빠졌다. 노파, 루기가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가 겪은 일은 거짓 따위가 아니었다. 또한 자신이 화살의 방향을 뒤틀지 않았다면 그녀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루기의 일을 아는 누군가가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고 보는 게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놈들을 족치면 뭐라도 나올 테지.’

상황을 볼 때 어차피 루기가 안내하는 현장마저 루기의 아들 내외와 그 자녀까지 죽인 자들이 꾸민 거짓에 불과할 것이다.

후두두둑

화살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테세우스는 새파랗게 눈을 빛내며 왼손에 착용한 작은 손방패로 막아냈다. 오른손에는 루기를 허리에 끼듯이 잡고 있었기에 루기를 태우고 있던 병사의 방패 뒤쪽으로 말을 이동해 남은 화살을 처리했다.

자신이 만든 창, 보아디케아는 들고 오지 않았다. 자신은 전장에 선 것이 아니라 순찰을 하고 있었기에 중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압적으로 보이는 무기를 들고 순시를 한다면 그것도 별로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파이살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놓은 작은 손방패는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날아오는 화살을 모조리 일일이 걷어내야 했을 것이다. 그것도 노파를 옆구리에 끼고 말이다.

테세우스는 화살의 일차공격이 끝나고 잠시 뜸해지자 소리쳤다.

“습격을 알려라! 나머지는 내려서 방진!”

그러자 8명의 병사, 즉 하나의 콘투베르니움 일제히 말에서 내려와 방진을 형성했다. 단 그들 중 1명의 병사는 치스몬타니 방향으로 급히 말을 달렸다.

테세우스는 부축하고 있던 루기를 소식을 전하러 마을로 이동하는 1명의 군단병에게 맡기고 그녀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기 위해 던졌던 자신의 검을 바닥에서 주워들었다. 바닥에 내려선 병사들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엉덩이를 쳐서 저 멀리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미 화살에 맞아 절뚝거리는 말도 몇 마리 존재했다.

히이이잉

그러는 사이 다시 하늘에서 화살이 빗발쳤다. 화살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고 잠시 뜸해졌을 뿐 간간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던 것이 다시 빗발치듯 떨어졌다는 말이었다.

테세우스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방진을 유지하고 전진!”

“우아!”

테세우스와 함께하는 콘투베르니움은 군단병 내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자들. 이들은 방패로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완전히 차단함은 물론 전진할 수도 있었기에 방진을 유지한 채 빠르게 진격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명한 뒤 홀로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다른 병사들은 말에서 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말에 타고 있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내며 진격하는 건 자신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저들에게 방진을 형성하고 진격하라 명하고 자신은 먼저 저들을 칠 생각으로 이동했다.

마을로 이동한 1명의 병사는 나머지 콘투베르니움을 대동하고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홀로 나선 것은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나머지 콘투베르니움 네 부대는 치스몬타니 마을에서 테세우스가 따로 명령한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테세우스는 총 40명의 군단병과 함께하고 있었다. 적어 보일 수 있지만 결단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물론 적진을 이 정도 숫자로 활보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오피다니 지역은 더 이상 적진이 아니었고 중무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훈련된 군단병 40명이면 어지간한 위협은 막아내고도 남는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습격을 당하다니 게다가 이건 노파, 루기를 노린 습격이 아니다.

‘이건 나를 노린 습격이다. 이상하군. 아직도 오피다니 내에 내게 대항하는 자들이 남아있었나?’

기묘한 일이다. 그런 자들이 남아있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대적으로 습격할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다. 오피다니 내에서도 배척당할 만한 행동이 아닌가? 따라서 테세우스는 순시 중에 자신이 습격할 것이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루기가 가장 먼저 습격당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겨누지 못하는 노파를 죽이고자 이렇게 대규모의 군대가 은신하고 있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건 테세우스, 자신을 노린 습격이라고 봐야 했다.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하지만 우선 습격한 놈들부터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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