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93화 (93/298)

# 93

93. 순리대로.

93.

테세우스는 나디르를 만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그에게 무역을 담당하게 하고 로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정확하게는 정보수집이 우선이었고 무역은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나디르는 그 둘 모두에서 꽤 괜찮은 수완을 발휘했다.

테세우스는 팅기스의 무역을 주도할 당시 피티우사 제도의 에부수스를 오가는 상인들은 물론 팅기스를 오가는 수많은 상인들과 꽤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 관계 속에 나디르도 함께였기에 정보를 수집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마사에실리족 내부에서 그 위세를 나날이 더해가고 있는 소우판의 전폭적인 협력은 정보수집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었다.

“현재 로마의 콘술은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와 아피우스 클라디우스 풀처입니다.”

집정관은 임기가 1년이다. 따라서 술라와 메텔루스 피우스는 그 임기를 마치고 집정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현재 집정관의 이름을 파악하는 정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술라도 잘 몰랐던 테세우스가 저들의 이름을 듣는다고 아 그들? 이러고 알아챌 리 만무하지 않은가? 집정관의 권세나 명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1년이 지나면 결국 다시 뒤바뀐다.

따라서 집정관의 자리에 오른 사람보다는 그들을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만든 이가 누군지가 중요했다.

딕다토르, 독재관의 자리에 올라 그 임기까지 무기한 연장했던 술라가 모든 권력의지를 놓았다고 보기 어려웠던 테세우스는 나디르에게 다시 질문했다.

“술라와 어떤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지?”

“바티아는 메텔루스 피우스와 마찬가지로 술라의 부관이었던 자이며 풀처는 술라를 후원하던 사람입니다.”

집정관 두 사람 모두 술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술라의 영향력이 여전히 로마에서 막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술라와 연관이 있던 사람 중 세 사람이나 집정관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가장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는 집정관이 이러하니 다른 정무관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으흠. 아버지께는?”

침음을 삼키던 테세우스가 나디르에게 질문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미 보고를 드렸습니다. 다만 레가투스께서는 로마를 도모하긴 아직 이르다고 하셨습니다.”

테세우스는 세르토리우스의 뜻을 헤아렸다. 로마도 로마지만 히스파니아부터 장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이리라.

로마인들은 2차 포에니 전쟁 후 카르타고와 협력하던 히스파니아 지역을 점령했다. 히스파니아 동편 해안선이 바로 카르타고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던 곳이었고 따라서 현재 로마의 세력 역시 동편 해안선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이곳을 점령한 이유는 히스파니아가 카르타고의 가장 훌륭한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점령하면 카르타고의 숨통을 죌 수 있음은 물론 막대한 물자를 로마가 얻을 수 있으니 로마인들의 히스파니아 점령은 카르타고가 몰락하는 순간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참고로 그 동편 해안선의 대표적인 도시가 타라코(Tarraco), 발렌티아(Vallentia), 카르타고 노바(Cartago Nova)다.

“다른 소식보다도 이 소식을 먼저 전해드려야 할 듯합니다. 코르두바에 로마의 병력이 집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에티카의 가장 큰 도시는 가데스(Gades)지만 총독이 주둔하는 도시는 바로 이 코르두바(Corduba)였다.

“음.”

테세우스는 나디르의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그게 사실인가? 아니 사실이겠군.”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카르페타니 연맹이 베토네스 연맹을 점령하면 그때를 틈타 투르둘리나 켈티시를 치고 그대로 북상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해 함부로 결정할 수 없긴 하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될지도 모르겠군.’

바에티카의 로마군이 북상한다면 투르둘리와 켈티시 연맹이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로마군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켈티시는 투드둘리 북쪽에 위치한 연맹이다. 둘 사이가 화평했다면 모를까? 아무리 협력을 위해서라지만 켈티시인들을 투르둘리 연맹에 들어서게끔 하지 않을 것이고 로마군은 그 틈을 타서 두 연맹을 순식간에 부숴버릴 것이다.

이런 바에티카의 진군을 막으려면 바에티카와 근접한 카르페타니의 압박이 필요하다. 투르둘리와 카르페타니가 전방에서 압박하고 그 가운데 다른 연맹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다면 바에티카의 로마군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개발되지 않은 땅을 얻고자 이미 로마의 문명화를 시작한 지역을 적의 손에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하지만 정작 바에티카를 함께 막아설 카르페타니는 바에티카와 손을 잡았다.

지원받아야 할 켈티시 연맹과는 테세우스로 인해 사이가 더 틀어졌고 루시타니아나 베토네스 연맹과는 비 켈타이인이라는 명목 아래 저들은 압박하는 행위에 가담했으니 역시 지원을 받기 어렵다. 바에티카의 로마군이 움직이면 다른 지역은 몰라도 투르둘리 지역은 순식간에 장악하고도 남을 것이다.

심지어 투르둘리나 켈티시 모두 이러한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저들의 손에 이리저리 놀아난 것일 테지. 물론 저들 나름의 야욕도 있었을 테지만 말이야. 어쨌든 카르페타니와 바에티카가 사이좋게 이 지역을 나눠 먹으려고 했군.’

테세우스는 저들의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 보다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만약 베토네스마저 순식간에 점령당했다면······.’

동쪽에서는 카르페타니를 남쪽에서는 바에티카의 로마군을 상대로 싸워야 했을지도 모른다. 루시타니아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상황이니만큼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팅기스에 계속 주둔해있었다면 이 지역을 점령한 막강한 로마군과 더불어 마우레타니아의 마스타네소스군과 전투를 치러야 했을 테니 루시타니아로의 이동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팅기스는 방어에 결코 적합한 도시가 아니고 히스파니아 지역만큼 물류가 풍부한 지역도 아닌지라 로마를 상대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따라서 히스파니아 진출은 루시타니아인들이 신종을 청해오기 전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다만 언제 어디를 어떻게 치느냐의 문제만 남아있었을 뿐인데 때마침 루시타니아인들이 찾아왔으니 세리토리우스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따로 문이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테세우스는 그가 누군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에고르였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고르는 나디르를 힐끗 바라본 다음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들었습니다만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누가 야심을 품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내게도 아버지께도! 그건 네 선에서 끝난 사항이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고 신뢰받지 못하는 자는 결국 더 배신하기 쉬워지는 법이다. 한번 배신한 자를 다시 믿기란 어려운 일이며 나를 신뢰하지 않는 자에게 충성을 바칠 이유도 희박해지는 법이니까. 해결되지 않은 일이라면 모를까? 에고르의 손에 어떤 부족의 누가 죽었는지는 굳이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다시 말해 충성을 얻고 싶다면 충성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어야 한다. 사사건건 부하를 믿지 못하고 간섭하는 상관에게 누가 충성을 바치겠는가? 하지만 어찌 아무나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도자에게는 번뜩이는 냉철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속거나 죽거나 멸망하는 수밖에. 운이 좋은 것도 한두 번이다.

테세우스의 발언에 에고르는 제 목숨이 위협당할 수 있었던 매우 중대한 일임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발언은 나올 수 없었다. 따라서 에고르는 테세우스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깊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보고드릴 부분이 있습니다.”

테세우스가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에고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들이 왜 카르페타니에 밀고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저들이 뭘 하려고 했든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구태여 알 필요도 없다.”

에고르가 테세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테세우스가 눈빛으로 재촉했다.

“제 억측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동자들 모두가 외부에서 용병으로 활약하고 부족에 자리 잡은 자들이었습니다.”

“네 말은 그들이 로마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

“저들이 부족에 자리 잡은 세월이 꽤 되었던지라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흐음.”

테세우스는 에고르와 루시타니아 전사들을 대동하고 오피다니 지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에고르의 말을 듣는 순간, 이들을 루시타니아 지역에 남겨둬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외적으로 에고르와 자신의 접점은 미미하다. 더욱이 이들이 자신에게 충성맹세를 바쳤다는 사실은 저들과 자신만의 비밀에 가깝다. 루시타니아 지역에 자신이 머무른다면 모를까? 오피다니 지역으로 향하는 마당에 이들을 대동하고 간다면 이들과의 관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숨길 내용도 아니었고. 하지만 에고르의 말을 듣는 순간,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항할 보이지 않는 칼을 만들 필요를 느꼈다.

“에고르.”

“예.”

“더 조사해 봐라.”

“알겠습니다.”

에고르는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가며 나디르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나디르는 밖으로 나가는 에고르를 주시하다가 테세우스에게 질문했다.

“이번에 함께한 켈타이인입니까? 그보다도 믿을 수 있는 자입니까?”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숨을 내게 바친다더군.”

“목숨이라······. 그렇군요.”

그 말을 끝으로 나디르는 에고르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자신의 말을 지킬만한 자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해상무역 쪽은 어떤가?”

“팅기스와 무역로를 잇는 것은 별문제가 없습니다. 지난번 해상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후 바에티카의 로마군은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라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코르두바로 병력을 집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럴만한 여력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저희가 쳐들어갈까 저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겁니다.”

“두려워한다라.. 저들도 지금쯤이면 아군의 배가 어디에 상륙했는지 정도는 파악했을 텐데?”

“상륙했다고 그 배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아군이 오피다니와 루시타니아를 점령했으니 바에티카의 로마군은 역시 서둘러 투르둘리로 진격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진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군이 루시타니아 지역 등에서 완전히 자리잡고 육지와 해상 양면에서 바에티카를 압박하기 전에 처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투르둘리는 이미 로마군의 손에 들어갔다고 봐야겠군. 어쨌든 로마군을 어찌 공격하고 또 어떻게 방어할지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나는 오피다니에 신경을 쓴다. 해안선에 접한 곳이니만큼 팅기스와 교역할만한 또다른 무역도시로 만들면 후에 아군을 훨씬 더 부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내부정리부터 해야겠지.’

테세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볼 때 듬직한 체구의 사내가 거침없이 테세우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호라티우스였다. 세르토리우스는 한 군단, 즉 5000명에 달하는 병사를 테세우스에게 맡기고자 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그 병력을 유보하고 1천 명의 병사만 받아들였다. 자신보다 전방의 세르토리우스에게 병력이 더 많이 필요할뿐더러 그래야 오피다니 연맹 내에 불순분자들을 잘 솎아낼 수 있다는 테세우스의 말에 세르토리우스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자신이 내어준 병력은 1천이지만 일단 오피다니 지역으로 함께하는 이동하는 숫자는 3천에 달하고 나디르와 함께하는 해적들의 숫자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센튜리온이었던 호라티우스는 프리무스 필루스(수석 백부장)로 진급하여 테세우스를 보좌하라는 명을 받았다. 호라티우스가 수석 백부장이 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가 없었기에 공에 걸맞은 아주 적절한 인사조치였다.

“좋아. 오피다니로 이동한다.”

테세우스의 단호한 명령에 나디르와 호라티우스 모두 절도있게 가슴에 주먹을 가져갔다가 손을 쭉 펴서 예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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