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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91화 (91/298)

# 91

91. 순리대로.

91. 순리대로.

테세우스는 일렁이는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잘 익은 기름진 고기가 꼬챙이에 꽂혀있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바로 누아란이었다.

“어떻게 입맛에 맞으십니까?”

“비리긴 한데 생각보다는 훨씬 맛있군.”

테세우스는 악어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악어를 본 것도 손에 꼽을 지경, 그마저도 서후였을 때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먹어봤을 리도 만무했다.

이번에 실제로 먹어본 맛은 닭고기 맛이랑 비슷했다. 제법 풍미가 있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닭고기보다 더 맛있었다.

“다행이군요. 사실 악어가 잡기 어려워서 그렇지 별미에 해당합니다. 다시 한번 족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테세우스는 육지로 쫓아온 악어들을 창으로 가볍게 찔러 죽였다. 물속에 있던 놈도 테세우스가 던진 창과 꼬챙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는데 육지에 올라온 놈을 죽이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꺼운 가죽은 창날조차 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테세우스의 힘은 그것을 무시하기에 충분했고 결국 악어들은 테세우스의 창에 무참하게 꿰뚫려 생을 마감했다.

솔리치족은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위용과 힘에 다시 한번 크게 놀라워했다. 아무리 육지라지만 어떤 전사가 저토록 거대한 악어들을 저리도 수월하게 쳐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테세우스의 손에 죽은 수가 무려 20 마리는 넘었다. 악어들은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싸우는 건 불리하다고 여겼는지 어쨌든 강이나 강가로 도망쳤다.

무사히 도착한 솔리치족을 확인한 테세우스는 삼백의 솔리치 전사들을 시켜 주변을 정탐하게 하여 근방에 잠시 거주할 곳을 찾으라 명했다. 정탐을 마친 오넨구스가 적당한 곳이 있음을 보고하자 테세우스는 그곳으로 솔리치족을 이동시켰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죽은 악어들을 챙겨가면 안 되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 그 의도를 알지 못한 테세우스는 정색하며 어떤 의식 때문에 그러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만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웬걸? 의식도 의식이지만 그보다는 악어를 도축해서 먹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악어를 먹는다고? 그 악어를? 매우 황당했지만 식량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해서 허락했지만 별로 탐탁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맛있군. 거기에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니만큼 별미라 여겨질만 해.’

악어고기가 무슨 천상의 맛을 낸다는 소리가 아니다. 지금도 베어 물은 고기에서 비릿한 향이 감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적절한 향신료나 조미료를 가미해 제대로 조리한다면 정말 별미라 부를 수 있는 음식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테세우스는 이곳저곳에 불을 피워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악어고기를 뜯어먹는 솔리치족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번들번들한 기름을 손과 입에 잔뜩 묻히고 환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테세우스는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별 대답 없이 주변을 살피는 테세우스를 바라보던 누아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축제는 비극이었고 심지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비극이 될 뻔했지만 족장님께서..”

테세우스는 누아란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많은 걸 준비하고 많은 것을 가져야 웃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모양이군.”

그 말은 누아란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누아란은 테세우스가 바라보던 아이들을 바라보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추측했다.

누아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사랑하던 지역과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고기 한 점에 비할 수 있으랴? 그 슬픔을 아는 자들이 어찌 고기 한 점에 기쁨을 표할 수 있겠는가?

“아이는 아이의 일을 생각할 뿐입니다. 악어고기 한 점에도 웃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지요.”

“글쎄.. 그럴지도. 하지만 웃을 수 있을 때 웃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웃을 수 있지? 아픔도 사실이지만 고기가 맛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왜 다른 사실로 인해 그 즐거움이 방해받아야 하나? 슬픔과 고통, 걱정과 후회가 가득한 것이 삶일 진데 그것들로만 마음을 채운다면 대체 언제 웃어야 하는가?”

“으음..”

“······.”

침묵을 지키며 고기를 마저 먹은 테세우스는 타오르는 모닥불 가운데 악어고기를 끼웠던 꼬챙이를 집어던졌다.

당연히 모닥불은 얇은 나무 꼬챙이가 더해졌다고 불길이 거세지지는 않았다. 꼬챙이만 거센 불길 아래 빠르게 타들어 갔을 뿐이다.

‘사람이 세운 계획이란 것도, 아니 삶조차 이 꼬챙이 불과할지도..’

무심한 눈으로 금세 재가 되어버린 꼬챙이를 바라보던 테세우스가 대뜸 누아란에게 말했다.

“고작 고기가 맛있냐고 질문하고자 찾아온 것은 아닐 테고.. 말해보시오.”

쓴웃음을 짓던 누아란이 입을 열었다.

“이제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솔리치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것임을 알아차린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을 모닥불에서 누아란에게 돌렸다.

영토도 없고 전사도 얼마 없으며 부양해야 할 인원은 3천에 달하니 도망칠 수 있다면 어디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리라.

“그걸 누가 알겠소? 오늘 밤은 악어고기의 맛을 아는 것으로 족할 뿐이니.”

*

드르르륵

쿠웅

쿠우웅

해안가에 150척이 넘는 갤리선이 상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2만에 달하는 병력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렬해!”

“서둘러!!”

“진형부터 구축해라!”

“스쿠툼 똑바로 잡고 새끼야!”

“정신차려!”

센튜리온들이 호령하며 군의 진형을 빠르게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바라보던 세르토리우스는 사비누스에게 말했다.

“수고 많았네.”

사비누스가 장담한 대로 훈련이 제법 잘 되어있었다. 그 점에 대해 거론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저들이 따로 사신을 보냈던가?”

“보시다시피.”

사비누스가 가리킨 해안선 저편으로 오피다니 전사들이 세르토리우스군과 싸우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그 수가 오천은 넘어보였지만 세르토리우스의 군대를 막기란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였다.

“으흠.”

눈매를 좁히고 침음을 흘리는 세르토리우스에게 사비누스가 살벌한 어조로 말했다.

“바로 공격을 실시할까요?”

“본래 계획대로라면 그러는 것이 맞지만 일단 진형을 완전히 정렬시키게.”

바로 공격명령을 내릴 줄 알았던 사비누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뒤 세르토리우스의 군이 완벽하게 정렬하자 그것을 지켜보던 오피다니 전사들은 숨이 막힐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전사들의 두려움을 확인한 오피다니의 드루이드, 킨벨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의 배를 걷어차 홀로 세르토리우스 진형으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

세르토리우스는 오피다니와 대치한 상황에서 백마를 탄 켈타이족이 이곳을 향해 말을 달리는 것을 확인했다. 누가 봐도 전투를 위해 돌격하는 모양은 아니었다. 심지어 달려오는 이는 혼자였고 무기랍시고 뭘 들고 있기는 했는데 나무지팡이와 풀을 벨 때 쓰는 낫이 전부였다.

“레가투스. 어떻게 할까요?”

“나를 보러 온 자 같은데 일단 이곳으로 들여라.”

“알겠습니다.”

오피다니 드루이드 수장, 킨벨은 세르토리우스를 만나자마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오피다니 연맹이 오늘 당신을 시험하였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저희 오피다니를 받아주십시오.”

세르토리우스는 남아있는 오른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킨벨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를 시험하였을 뿐 아니라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이 전장에 섰다. 우리 군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너희는 반드시 우리를 쳤을 것이다. 그렇지않느냐?”

“무엇을 감추겠습니까?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적의를 가지고 나온 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엎드렸으니 너희 스스로 이 일을 굴종이라 여길 것이야. 그러니 말하라.”

세르토리우스의 말에 킨벨은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너희 전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더 큰 두려움으로 군림하지 않을 이유를 말이다. 너희 전사들뿐만 아니라 너희 부족 전부를 죽여서 내 적이 될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지 않을 이유에 대해 말하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반드시 너희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세르토리우스의 사나운 기세에 킨벨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근하게 입을 열었다. 킨벨은 무릎을 꿇을 때 바닥에 내려놓은 지팡이와 낫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오크나무로 만든 지팡이이며 신성한 제사 때 파나케아를 자르는 낫입니다. 오피다니 모든 부족이 지팡이와 낫에 대고 맹세를 했으며 저는 오피다니 연맹을 대표하는 드루이드 킨벨입니다. 비록 적의를 가지고 나와왔으나 엎드리기로 결의한 이상,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그 말에 사비누스가 황당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봐야 고작 두 개의 물건이 아닌가? 그런 것을 지금 우리보고 믿으라는 말인가?”

“고작 두 개의 물건이 아니오! 나는 지금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오! 이를 어긴다면 오피다니 연맹에 속한 모든 부족은 우리 신들의 저주를 받을 것이오.”

가만히 듣고 있던 세르토리우스가 말했다.

“너희가 얼마나 신의 있는 부족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희를 본보기로 삼을 예정이야. 군을 이끌고 온 다음에야 굴종했으니 그런 선례를 만들면 아군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군을 이끌고 나온 것만으로도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다.”

킨벨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허풍 따위가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을 지닌 자다. 자신의 세 치 혀에 오피다니에 속한 수많은 자들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킨벨은 더욱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장군. 장군께서는 히스파니아 지역을 정벌하실 계획이십니까? 제가 알기로 장군의 적은 로마이지 히스파니아의 켈타이족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저희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루시타니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저희의 존재는 저들을 견제하기에도 용이하실 겁니다. 무엇보다 장군께서는 켈타이족을 정벌하고자 함이 아니라 협력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십니까? 장군을 시험한 일은 목숨으로 갚아나가겠으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히스파니아 지역은 참으로 풍요로운 지역이다. 심지어 히스파니아 지역은 로마제국이 점령한 수많은 영토 중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영토였다.

하지만 이 지역은 그만큼이나 호전적이며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지역이다.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는 이 지역을 로마군이 최초로 대외 정복에 나선 곳이지만 가장 늦게 정복된 지역이라 말했다. 그런 곳이 히스파니아 지역이다.

지역을 정복할 수만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날 테니 힘으로 누르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로마와의 전투도 벅찬데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반란은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바에티카를 다스렸던 세르토리우스는 히스파니아 지역의 이점과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힘으로 누르면 튀어 오를 자들이다. 그래서 아예 오피다니 지역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 지역을 본보기로 삼을 생각이었다. 더욱이 해안을 경계로 두고 있는 만큼 여러모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들을 관리하느라 병력을 분배하기도 어렵다.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그렇지 않아도 모두 이점이 있다. 하지만 피를 보는 것이 당장 더 큰 이득이다. 그래서 굳이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듯 항복을 청한 대상을 쓸어버리면 득보다 실이 커진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자들을 쓸어버리면 그 과정에서 대의가 손상될 확률이 높았다. 그 때문에 공격명령을 뒤로 미루고 저들의 사신을 기다린 부분도 있었다.

사실 이들이 항복을 자처한다면 대처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테세우스에게 이 지역을 맡기면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를 떠올린 세르토리우스는 순리대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아들이라면 어지간한 반란은 조기에 쓸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눈매를 좁히고 킨벨을 바라보던 세르토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좋다.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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