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66화 (66/298)

# 66

66. 불의 아들.

66.

대장장이는 무거운 철괴를 나르고 계속해서 고된 노동을 하기에 일반인보다 체구가 크고 근육질의 육체를 가진 경우가 태반이다. 장사로 이름이 높은 이들 가운데 열 중 예닐곱은 대장장이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 따라서 서후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뱉은 검은 피부의 흑인도 근육질의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탄력적인 근육을 지닌 흑인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후를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다시 반문했다.

“지금 뭐라 했소?”

큰 체구를 가진 사내가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꺼내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내뱉었던 말도 철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후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가 말한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도 무기냐고 말했는데 뭐 문제 있습니까?”

팅기스의 토박이 파이살은 기가 차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소년을 노려봤다. 욕이라도 한 사발 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나마 거친 말을 뱉지 않은 건 센튜리온의 직책을 가진 자가 소년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파이살은 한숨을 푹 내쉬며 서후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귀하신 분 같은데 일이 바쁘니 괜한 트집 잡지 말고 그만 가보슈.”

서후는 미간을 좁히며 흑인 대장장이를 바라보다가 그가 가리킨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 몇 번 휘둘렀다.

“외관만 번지르르하면 뭘 하나? 무게 중심도 개판이고 날은 제법 날카롭게 세웠다만 다른 검과 몇 번 부딪치면 이가 금세 나가버리겠군. 이딴 검을 무기랍시고 들고 전장에 나갔다가는 비명횡사하기 딱 좋군. 그런데 이게 무기라고? 장식품이 아니고?”

“뭐.. 뭐요? 이놈이 정말!”

파이살은 서후가 예사롭지 않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 잠시 위축되기는 했지만 자신의 작품을 형편없는 물품으로 폄훼해버리는 서후의 언사에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쳤다.

그때 노쇠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나 시중에 나도는 검보다는 파이살이 만든 검이 나을 것이오.”

“벨리키!”

“쯔쯔. 내 그토록 말했건만.”

구불거리는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노인이 그의 등판을 막대기로 후려갈기면서 외쳤다.

철썩

“크흑!”

“검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제대로 평가당했으면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고 더 노력할 생각을 해야지. 뭘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분통이나 터트리고 있는 게야!”

파이살의 체구도 거대했지만 어찌된 것이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벨리키라는 노인의 덩치가 더 컸다. 나이가 들어 노쇠했어도 이러하니 젊었을 때는 정말 한가락 했을 것처럼 보였다. 아닌 말이 아니라 그의 몸 곳곳에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상처로 온몸이 뒤덮여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파이살은 얼굴을 붉히며 말없이 대장간 안쪽으로 사라졌다. 서후를 힐끗거리며 보긴 했지만 분노나 적의에 찬 눈빛은 아니었다.

‘저 흑인 청년은 도제인가? 아니 자신의 검을 홀로 만들어 내니 도제라기보다는 엄연히 한 명의 대장장이라고 봐야겠군. 그럼 이 노인은 저 청년의 스승이려나? 제자는 흑인이고 스승은 백인이라.. 게다가 갈리아족?’

벨리키는 묘한 눈으로 서후를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검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구려.”

“갈리아족?”

“가까운 곳을 두고 참 멀리까지 가시는구려. 어디 켈타이가 갈리아 놈들뿐이겠소?”

“그럼?”

“히스파니아 지역에서 넘어왔소.”

“히스파니아에도 켈트. 그러니까 켈타이족이 있었습니까?”

“검을 보는 눈은 있는데 다른 걸 헤아리는 눈은 없는 모양이군. 아무렴 그럼. 내 할 짓이 없어서 이런 몸을 가지고 갈리아에서 이곳 팅기스까지 내려왔겠소?”

말했지만 그의 몸 가운데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특히 그는 다리 한쪽을 심하게 절고 있었다.

갈리아족은 켈트족의 한 분파 중 하나일 뿐이다. 켈트족, 그러니까 켈타이(Celtae)는 여러 지역에 널리 분포해 살았는데 이곳 히스파니아 지역의 중앙과 서부 지역에 널리 분포해 살고 있었다. 켈타이족이라고 엮어서 말하지만 켈타이 내에서도 부족만 수십 개가 넘었고 그들 외에도 히베리아족과 그리스인, 로마인 등이 뒤섞여 있었으니 내부 정세는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히스파니아의 바에티카 지역을 다스렸던 세르토리우스라면 알고 있을 내용이지만 당연히 서후는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히스파니아에 켈트족이 있었나? 흠. 켈트. 켈트족이라.’

서후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즉 히스파니아에 있는 켈트족들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눈앞의 켈타이, 벨리키를 통해서 알아보면 될 일이다.

벨리키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서후를 백태가 낀 눈으로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 늙은이의 과거가 궁금해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 테고. 어디 보자. 음? 가만 보니.. 이제 알겠군. 이제 알겠어. 테세우스. 테세우스 맞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알아보는 벨리키를 의아하게 쳐다보자 벨리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허허허. 내가 당신을 알아보는 것이 신기한 것이오? 그보다는 아스칼리스의 명장 익티다르와 그 익티다르의 맹장 파드와를 한꺼번에 죽인 자가 소년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운 것 아니겠소?”

서후가 말없이 미간을 좁히자 벨리키는 여전히 웃음기 서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무구를 잘 아는 사람은 두 부류요. 첫째 무구를 많이 만들어본 사람. 둘째 무구를 많이 다뤄본 사람. 파이살의 검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토록 적나라하게 평가하는 것을 보며 일단 당신의 손을 살펴봤소. 대장장이는 대장장이의 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 하지만 당신의 손은 대장장이의 손이 아니었소. 남은 건 하나인데 그것도 이상하더란 말이지. 소년이 무구를 많이 다뤄봤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니겠소? 근데 마침 그 사실에 어울리는 소문이 떠오르더란 말이오. 마지막으로 당신의 반응으로 확신할 수 있었고. 자. 이제 대답이 되었소?”

작은 사실 몇 가지만으로 자신이 누군지까지 유추해내다니. 역시 세월이 주는 연륜은 무시할 수 없었다.

벨리키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말을 마치자 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마찬가지로 내 과거나 밝히려고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니.. 검을 좀 봅시다. 왠지 노인장이 만든 것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군.”

“흐음.. 좋소. 내 지금은 망치질을 할 수 없지만 망치질을 할 수 있을 때 만들어놓은 것을 보여드리지. 이대로 한 구석에 처박혀 녹슬어가느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주인 손에서 노니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말한 벨리키는 우렁찬 목소리로 파이살을 불렀다.

“파이살!”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던 흑인 청년이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예.”

“가서 내 검들을 가져와라.”

“예?”

“내 검들을 가져오라고.”

“하.. 하지만! 그건!”

“쯔! 몇 번을 말하게 할 참이냐?”

“아.. 알겠습니다.”

“몸만 컸지 여전히 쯔쯔. 저래 가지고 험한 세상 어찌 살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로군.”

“노인장이 걱정하기엔 너무 큰 청년 아닙니까?”

“흘흘흘.”

벨리카는 그저 말없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서후는 그 웃음에서 진한 연륜과 그가 파이살이라는 청년과 보낸 과거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많은 설명이 없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금 벨리카의 웃음이 그러했다.

파이살은 대장간 안에서 두 자루의 장검을 가져왔다. 파이살은 사탕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쯔쯔쯔. 네가 그러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좋은 철을 쓰지도 않았고 기력이 딸려 균일하게 망치질을 하지도 못한 검이다. 어디에 내다 팔기도 머쓱해서 네가 검을 만들 때 참고하라고 내버려 두었거늘 그럼에도 연일 안일한 태도로 망치를 잡더니 이젠 내 검을 내 마음대로 팔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이냐?”

“하지만 벨리키!”

파이살도 파이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 모습에 벨리키는 혀를 차면서 그에게 말했다.

“쯔쯔쯔쯔. 너는 천상 전사가 되긴 그른 놈이다. 망치는 잡되 절대로 검은 잡지 말거라. 알겠느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서후는 벨리키의 말에 담긴 온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서후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벨리키의 말에 파이살은 수많은 감정이 섞인 눈으로 자신이 가져온 두 자루의 검을 서후 앞에 내려놓았다.

서후는 말없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다마스쿠스? 다마스쿠스 검?’

서후는 검을 뽑고 검신을 보는 순간, 크게 놀랐다. 다마스쿠스처럼 물결치는 문양이 그곳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문양을 살피자 벨리키가 말했다.

“우리 켈타이족은 두 마리의 뱀을 꼬아서 검에 집어넣곤 한다오. 그 문양은 두 마리의 뱀이 한데 녹으면서 남은 흔적이지.”

서후는 벨리키의 말에 좀 더 자세하게 검신을 살폈다. 불규칙적인 물결 문양은 다마스쿠스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자세하게 살피니 이건 다마스쿠스 검이 아니었다.

‘패턴 웰딩 기법을 사용한 검이다. 다마스쿠스가 아니야. 하지만 놀랍군. 켈트족에게 이런 기술이 있었나?’

패턴 웰딩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이러하다. 너무 단단한 검은 쉽게 깨어진다. 너무 무른 검은 물러서 쓸 수 없다. 기계도 아닌 사람이 너무 무르지도 않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검을 항상 동일하게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패턴 웰딩 기법이다.

간단히 말해 무른 연철과 단단한 주철을 한데 붙여서 하나의 검으로 단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검으로 쓰기에 적당한 탄성과 단단함을 가진 철이 탄생한다.

참고로 접쇠단조를 통하면 어떤 신검이 된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접쇠단조는 철을 두들겨 펴고 다시 접어서 두들겨 펴는 과정으로 이는 철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존재한다. 불순물이 없는 철을 구할 수 있다면 접쇠단조 과정 자체가 불필요하다. 물론 이 시대에는 그런 철을 구하기 어려우니 그런 과정을 통해 순수한 철을 뽑아내는 것이고.

더 자세한 건 각설하고 켈트족은 BC 8세기경에 이미 패턴 웰딩 기법을 사용해 검을 만들었다. 다만 이들은 일반적인 접쇠 단조가 아닌 철과 강철로 된 두 개의 봉을 꼬아서 두들겨 하나의 검으로 만들었다. 서후가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 역시 그런 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리처드는 살라딘과 검 대결(쇠봉을 자르며 자신의 검을 자랑했으나 살라딘이 검날 위에 머리카락을 떨구자 그대로 갈라지는 것을 보고 그 자리를 피함.)에서 나름 치욕을 당한 후 절치부심으로 검의 위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제조법을 찾았고 그 결과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뛰어난 대장장이만큼이나 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매우 비슷해 보이는 다마스쿠스와 패턴 웰딩으로 제조된 검의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와서 본 검들 가운데는 가장 쓸만한 검이다.’

서후는 두 자루의 장검을 검집에서 동시에 뽑아 들었다.

스르릉

장검인 데다가 서후의 몸집이 아직은 작아서 유난히 더 길어 보였다. 하지만 서후는 거뜬하게 두 자루의 장검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장검을 쓰지 않지만 우리 켈타이인들은 장검을 즐겨 씁니다. 뒤에 공터가 있으니 한번 휘둘러 보시죠.”

서후는 고개를 끄덕인 뒤 훌쩍 뒤로 이동해 양손의 검을 휘둘러봤다.

후우우웅 후우웅

‘무게 중심도 적당하게 잡혀있고. 쓸만한 검이다.’

여러 차례 휘둘러 보던 서후는 적당한 검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후의 마음에 쏙 드는 검은 아니었다. 뛰어난 검이지만 그보다 뛰어난 검을 본 기억이 있는 서후는 어쩔 수 없이 다마스쿠스 검과 비교가 되었다.

파이살은 놀란 눈으로 그런 서후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고 벨리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서후의 움직임을 살폈다. 하지만 그 역시 경탄을 눈빛에서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나이에 저런 실력이라니.

게다가 장검이라 저리 수월히 휘두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늘. 벨리키는 서후의 움직임을 보면서 소문의 진위를 확실하게 가려낼 수 있었다.

훙 후훙

몇 번 더 휘둘러 보던 서후는 검집에 검을 넣고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벨리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족하시오?”

“무엇을 말입니까”

“이 검. 만족하냐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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